학회장 민윤기랑 연애하기 05 (부제 : 학회장의 취중진담?)
w. 달비
05-1
으. 속이 너무 안 좋다. 동이 틀 새벽까지 술로 달린 것에 대한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일어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토할 뻔 했으니까. 정말, 세상에 마상에? 내 생에 이토록 술을 마신 적이 있던가. 초반부터 진행된 술 게임에 이미 좀 가있는 상태였는데, 그 뒤로 술 게임은 그만 두고 동기들끼리 모여 부어라, 마셔라 했으니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날이 밝아오는 것도 모른 채 계속 퍼마시다 결국 잠과 취함에 못 이겨 그 자리에서 잠들었지.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분명 일찍 자라고 했는데 일찍은 무슨. 엄마, 나 밤 새고 잤어. 술도 엄청 마셨고. 하하. 이건 뭐 해장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속이 안 좋아서 계속 골골댔다. 나 속 안 좋아. 토할 것 같아. 이 두 마디를 제일 많이 한 것 같다. 근데 그건 다른 동기들도 마찬가지인 듯 우리는 모두 좀비 몰골로 집에 가게 되었다.
버스는 이곳에 올 때 탔던 인원 그대로 탑승했다. 그러니까 나는 민윤기랑 또 같은 버스. 몰골이 말이 아닌지라 뒤에 앉고 싶었지만 멀미를 하는 보미도 있고, 나도 오늘만큼은 멀미할 것 같았기에 조용히 앞자리에 앉았다. 버스에 앉아서도 표정을 구기고 배만 부여잡고 있는데 민윤기가 들어와 인원체크를 하고 나를 쳐다본다. 아니, 좀 째려보는 것 같기도. 사실 어제 민윤기가 그렇게 나가고 나서 술 왕창 마셨다. 그냥 분위기에 취해서, 라고 변명을 해본다. 친구들이 다 다른 방에 있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중간에 민윤기랑 마주칠 때마다 계속 자라고 하는 민윤기를 뿌리치고 이리저리 참 잘도 마시러 다녔다. 그래서 결과는 이 모양.
“오빠……. 저 속 안 좋아요.”
“그렇게 퍼마시니 당연히 안 좋겠지.”
“…….”
“그러게 술 작작 마시라고 했지.”
세상에서 이렇게 한심한 사람이 있을까, 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잔소리. 그러게 내가 술 그만 마시라고 하지 않았냐며 왜 말을 해도 안 듣냐며……. 아니 뭐, 신입생이 오티 와서 술 왕창 마시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허허. 내가 마시겠다는데. 아, 근데 진짜 자제할 걸 그랬다. 이렇게 후폭풍이 셀 줄이야. 민윤기의 손길에 설렐 틈도 없이 속이 너무 안 좋아서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민윤기는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속이 안 좋다는 사실을 이리저리 떠벌리고 다녀야 괜찮아지는 것도 아닌데 금세 또 폰을 꺼내 들어 카톡으로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징징거리기 시작한다. 근데 이 주말에, 그것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답장이 오는 게 이상한 법. 대화 목록이 ‘나 속 안 좋아.. 토할 것 같아...’로 가득 채워졌다. 속이 안 좋으면 잠이나 자지, 괜히 누가 나 속 안 좋은 걸 알아줬으면 하는 심보는 대체 무슨 심보인지. 아 이게 관종인 건가?
오빠
저 주글 것 같아요.... - 오전 9:47
관종 맞나보다. 결국 민윤기한테도 징징거리고 만다. 그냥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는 알려야겠다는 이상한 심보와 동시에 민윤기의 걱정이 조금 더 듣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랬다. 휴대폰을 만지고 있던 지라 민윤기는 내가 카톡을 보냄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금세 고개를 돌리고는
넌 멀미도 안 하냐 - 오전 9:47
폰 만지지 말고 자 - 오전 9:48
아, 걱정 먼저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싫어요오어ㅓ어 - 오전 9:48
민윤기가 순순히 걱정을 안 해준다면, 나는 순순히 말을 들을 리가 없지.
답장하면 혼날 줄 알아. - 오전 9:48
그대로 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더 반항했다간 내리자마자 민윤기한테 딱밤 세례를 받을 것만 같았으니까.
05-2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단체 사진을 한 번 찍은 후에 인사를 마치고 금방 헤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집에서 골골대는 중이다. 엄마, 속 안 좋아. 엄마, 토할 것 같아. 엄마, 나 속.. 하다가 혼났다. 기집애가 술을 대체 얼만큼 마신 거냐며, 잔다더니 언제 잔 거냐며. 자긴 잤어. 해 뜨고 잔 것뿐이야.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갈증에 나는 물만 계속 마셨고, 배는 고프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위에 넣을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내 속에 그냥 계속 물만 넣어줬다. 갈증도 해소하고, 배도 채우고. 물도 처음 마실 땐 벌컥벌컥 잘도 들어갔는데 이젠 맛이 없다. 마시기 싫지만 갈증이 나고... 후. 그래. 당분간은 술을 마시지 말자. 어후. 오티의 여파가 이렇게 클 줄이야. 내가 조절 못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황금같은 휴일에 내가 속이나 달래주고 있어야 한다니.
그렇게 얼마나 물 마심과 누워있음의 연속이었을까, 오전에 들어온 집이 이제 조금씩 어둑해지기 시작할 때서야 드디어 속이 괜찮아졌다. 그럼 속이 괜찮아진 내가 해야 할 일은?
오빠
저 이제 속 괜찮아요
계속 누워있다가
방금 일어났어요 - 오후 5:52
ㅠㅠㅠㅠㅠㅠㅠ - 오후 5:53
네. 제가 바로 이 구역의 관종입니다.
버스에서 내린 뒤에 민윤기한테 따로 인사한다고 배를 부여잡고 걸어가 오빠, 저 갈게요. 했더니 민윤기가 볼을 그냥 아주 정성스럽게 꼬집으면서 속이 안 좋은데 카톡할 겨를은 있었냐고, 답장은 집 가서 푹 쉬고 난 다음에 하라고 그래서 꾹 참았다가 방금 보낸 거다. 나 나름 말 잘 듣는 관종이다. 그나저나 민윤기는 속 괜찮나. 학회장이라 적어도 나만큼은 마셨을 텐데.
민윤기도 자는 건지, 아니면 그냥 휴대폰은 덮어두고 쉬는 건지 답이 없다. 그렇게 민윤기 답만 기다리면서 침대를 뒹굴거리다 꼬르륵 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그곳엔 엄마가 끓여 놓은 콩나물국!은 무슨. 그런 거 없어서 내가 라면 끓여 먹는 중이다. 콩나물 넣어서. 달걀도 풀었다. 으으. 이제 진짜 해장 되는 것 같다. 해장을 하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내가 다시 한 번 이렇게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 어휴. 이 와중에 라면 맛있다. 엄마의 잔소리와 한숨소리를 비지엠으로 깔아 두고 먹는 라면이지만 맛있다. 마지막 남은 한 입을 입에 털어 넣으려는데
해장은 - 오후 7:02
민윤기다. 타이밍 기가 막하는구만.
오 나이스 타이밍
저 방금 라면 먹었어요
오빠는요? - 오후 7:04
(사진)
오빠는 해장술. - 오후 7:05
....?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민윤기는 또 술이 들어 가나보다. 해장술이라니 저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어떻게 술로 해장을 할 수가 있는 걸까. 세상에. 테이블보니까 이미 좀 마신 것 같은데 그럼 저 인간은 내가 골골대고 있을 때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와. 대단하다. 경이롭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민윤기도 지나가는 말로 나한테 속 안 좋다고 했던 것 같은데 왜 저 자리에 끼어 있,
정호석이 데려왔어.
집 가고 싶다. - 오후 7:06
워-후. 호석오빠 스고이데스. 아, 나 국문관데. 호석오빠 진짜 대단하다. 부학회장이랑 술 마시면 절대 안 된다고 누가 저번에 그랬는데, 난 몸 사려야겠다. 저 오빠 피해 다녀야지. 그나저나 이쯤 되면 민윤기가 걱정되기 시작하는데... 민윤기 어떡하지. 내가 저기서 꺼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 테이블 상황도 그렇고 그 자리에 정호석이 있는 거면 또 오티 꼴 나게 생겼는데, 아니 이틀 연속으로 어떻게 그러지. 민윤기도 어지간히 그 상황이 싫었나보다. 나한테 사진까지 찍어서 보낼 정도면.
아, 생각해보니 귀엽잖아. 다들 술 마시고 건배하고, 정호석은 신나서 또 막 아, 형! 술은 술로 다스리는 거죠~ 하면서 호탕하게 웃어 재끼고 있을 텐데 그 분위기에서 카메라 실행시키고 그 테이블을 찍었다는 게 웃기기도 하고, 귀엽다. 생각해봐라. 그 무표정으로 폰만 들고 테이블을 찍는 모습. 무슨 음식 사진 찍는 것 마냥 술병들이 가지런히 세워진 테이블을 찍는 민윤기라니. 세상에 귀여워.
나도 모르게 급 귀여움을 느껴 마지막 라면 한 입을 우겨 넣고 상을 탁, 치자 젓가락이 움찔하며 큰 소리를 냈고, 결국 가만히 밥 먹다가 뭐하는 짓이냐며 다 먹었으면 얼른 설거지 하고 빨리 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아니, 엄마 이것 좀 보세ㅇ.... 아니야. 우리 학회장을 뭐라고 생각하겠어. 나만 봐야지.
여주야 - 오후 7:24
헐. 뭐야 이거. 침대에 폰 던져두고 설거지 하고 와서 답장한다는 게 벌써 민윤기한테 새로운 카톡이 왔다. 내가 읽고 씹어서 화나서 그러나. 뭐지. 대체 왜 이름만 부르는 거야, 사람 무섭게.
네? - 오후 7:27
집 좀 보내줘. - 오후 7:27
아, 혹시 거기 관 짜주는 곳 맞나요? 비석은요? 비석에 스물여섯 살의 씹덕사로 잠들다. 로 적어주실래요?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건가 싶어서 보자마자 답장을 했더니 민윤기는 단지 집이 가고 싶었을 뿐이다. 그 상황에 끼기는 싫고, 술도 마시기 싫고 집은 가고 싶고 술을 안 마시면 할 수 있는 게 휴대폰을 만지는 것뿐이니. 아 귀여워. 뭔데 귀엽지? 언제 한 번 민윤기 민증 검사를 한 번 해볼 필요가 있다. 90년생이 아니라 00년생 아니야? 는 오버다. 그만큼 민윤기가 귀엽다는 거다.
집에 가고 싶은 스물여섯 살 민윤기 학회장님을 어떻게 달래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땅히 해줄 말이 없어 그냥 적당히 마시고 얼른 집에 들어가란 얘기만 해줬다. 본인도 싫어하는데 뭐, 알아서 일찍 들어가겠지. 그나저나 민윤기 보고 싶다. 주말이 참 좋은데 민윤기를 못 보는 건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05-3
답장을 꼬박꼬박 잘만 해주던 민윤기 답장이 느려지기 시작한 건 집에 가고 싶다던 카톡이 오고 1시간 뒤부터였다. 어느 순간 답이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텀이 길어지고 지금 거의 1시간 째 민윤기 답만 기다리는 중이다.
응
어직도 술 마셔
짖ㅂ 가고 싶다 - 오후 9:39
시간이 지나고, 답이 느려지기 시작하면서 또 늘어난 건 민윤기의 오타다. 이 사람, 술 취해가고 있나보다. 생전 오타 한 번 안 내고 점까지 꼬박꼬박 찍어서 보내던 사람이 이런 오타라니. 어직도가 뭐야, 어직도가. 민윤기도 약간 그런 스타일인가, 술 마셨으면 폰 꺼둬야 하는? 아니 뭐 아직 그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오타만 내고 헛소리는 안 하는 걸 보면.
아 ㅋㅋㅋㅋㅋㅋ
오빠 오타 뭐예요 - 오후 9:39
이거 다 캡쳐할 거예요 - 오후 9:40
맘ㄱ대로해 - 오후 9:42
오
그럼 공지톡에 올려도 돼요? - 오후 9:43
어ㅏ아니 - 오후 9:45
오타는 내도 글 읽는 데는 지장이 없나보다. 오타까지 내는 민윤기를 보면서 걱정이 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오타를 날 때까지 술을 마셨음에도 카톡 답장을 잊지 않고 해주고 있다는 게 고마웠다. 나 같으면 나는 안중에도 없이 술 마시다 다음 날 술 다 깼을 때 연락할 것 같은데 민윤기는 술 취했어도 오는 카톡 답장해줄 정신은 아직 있나보다.
9시 45분에 마지막으로 온 민윤기 카톡에 알겠으니 술 적당히 마시고 얼른 들어가라는 카톡을 보내놨고, 그 카톡에 대한 답은 1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아까까지 답장해주던 사람이 이렇게 늦는 걸 보면 이젠 정말 이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많이 마신 거겠지. 민윤기는 내일 속 어떡하려고 저렇게 마시는 걸까 걱정하는데 시끄럽게 울어 재끼는 전화벨.
.....민윤기다.
“여보세요.”
- …….
“여보세요?”
아까 그 술자리는 아닌 건지 전화 너머가 조용했다. 옅게나마 민윤기 숨소리만 들려올 뿐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잠깐 밖으로 나온 건가?
- 여주야
“네?”
- 뭐해
술 취해서 전화해놓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뭐해? 뭐?해? 11시가 넘은 이 시간에 내가 뭘 하겠어요. 자려고 준비 중이었지. 이대로 말할 순 없었고 그냥 자려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하자 민윤기는 아 자려던 거 깨운 거냐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여러 번이나 하더니 이내,
- 속 안 좋아
“그렇게 퍼.. 아니, 마시니까 속이 안 좋죠.”
- 어지러워
“오빠 어딘데요?”
- 집
민윤기 말투가 원래 좀 약간 술 마신 듯한 그런 말투긴 했지만 진짜 술 마셨을 때의 민윤기 목소리는 정말, 귀엽다. 원래 말투에 웅얼거림까지 더해지니 이게 정말 스물여섯 살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많이 마신 건지 내가 물어보는 질문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속 안 좋아, 어지러워. 라고 말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어디냐는 질문에만 제대로 답해줬다. 얼마나 마셨냐니까 자기도 모르겠단다. 나참.
“얼른 자요.”
- 싫어
“저도 혼낼 거예요.”
- 맘대로 해
“아 뭐야. 얼른 자지, 왜 저한테 전화하고 그래요.”
민윤기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숨소리만 들리길래 전화하다 잠들었나 싶어서 내가 아 왜 전화했냐구요, 하고 한 번 더 볶으니 그제야 대답하는데 그대로 전화기 떨굴 뻔 했다.
-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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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번 편 답글이 늦었던 이유는 글도 못 썼는데 답글 남겨드리기 뭐해서 늦게 달았습니다... (또륵) 헤ㅔ헤..ㅎ..헤...ㅎㅎㅎ.... 매일같이 새벽에 글 쓰다가 그냥 갑자기 쭈굴모드에 들어가서 저도 당황했는데요! 극복하고 이렇게 다시 다섯 번째 이야기 들고 왔습니다! 워!후! 곧 개강이라 그런가봐요! 신난다! 어젠가 독방에서 제 글을 추천한 게시글을 봤는데 그거 보고 덩실거리면서 글 썼잖아요. 껄껄. 그렇게 추천해주시는 분들이랑,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보면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입니다! (감동) 이제 정말 곧 개강이라 텀이 이것보다 느려질 수도 있는데, 그래도 틈틈히 써서 올리도록 할게요! 매번 부족한 글,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사랑해요! ♡ +) 분량이 적은 것은 죄송합니다...또르르.. 분량 조절 실패...☆★달비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