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인과 경수의 연애 소식에 누구보다 기쁜 건 준면이 아닌 찬열과 백현이었다. 백현은 꺄르르 웃으며 뒹굴거렸고, 박찬열은 정확히 집자면 백현의 모습을 보고 웃었다. 준면은 이 넷에게 늘 호탕히 웃으며 긍정마인드를 잃지 않았지만. 스물 두 살 김준면 게이들에게 둘러싸여 제 짝도 못 찾고 빌빌거리는 꼴을 보고만 있을 백현과 찬열이 아니었다. 이름하여 ‘준면이형 애인만들기 프로젝트’! 카페로 준면을 부른 둘은 신나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으으, 형이 마음에 들어할까? 근데 세훈이가 선배들 중에 제일로 예쁜 선배 보낸댔어. 믿어도 되겠지?”
“으……음, 글쎄. 오세훈 얘 좀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여자 보는 눈은 있으니까 믿어보지 뭐.”
“아으으! 왜 안와, 진짜 왜 내가 떨리지? 크크 웃기다.”
백현의 앞머리를 부비적거리며 갖고 놀던 찬열과 초조한듯 휴대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백현에게 댓가라도 내리듯 딸랑이는 종소리가 들렸다. 왔다! 벌떡 일어난 백현과 찬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예쁘장한 여자. 우와아……. 동성애자인 둘이 보기에도 참 예뻤다. 카페 안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랬고. 남자들만 가득한 저희에게 이런 눈 호강을 시켜주시다니, 세훈느님 감사합니다. 백현은 속으로 생각하며 살갑게 여자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세훈이 학교 선배 맞으신가요? 어…… 김태연양.”
“네, 맞아요. 와, 실제로 보니까 더 귀여우세요. 어, 박찬열 선수도요.”
이 여자 외모부터 성격까지 딱! 준면이형 스타일이다. 찬열과 백현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준면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늦지 않게 준면이 도착했다. 혀엉, 이런 데서 남자가 늦으면 어떡해요. 마이너스야. 백현의 툴툴거림에 준면은 땀을 슥슥 닦고 태연의 맞은편에 앉았다. 찬열과 백현은 서둘러 화장실 앞 화분에 몸을 숨기고 둘의 소개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둘 다 표정은 좋은데. 도청기라도 있음 좋으련만.
“김준면 선수 매번 경기 좋게 보고 있어요. 세훈이가 이런 분을 소개시켜줄지 몰랐는데…… 복 받았네요, 헤헤.”
“아, 과찬이세요. 저도 이렇게 예쁜 여자 분은 오랜만에 만나보는거라…… 아하하, 어색하네요. 그쵸?”
네. 어색하네요. 백현은 혀를 끌끌 찼다. 찬열은 이미 흥미를 잃은건지 휴대폰을 삐빅거리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백현은 찬열의 이마를 퉁 튕기며 둘을 바라보았다. 아후, 남자라는 게 진짜! 선수촌 안에선 형인 척 다 해놓고는 이런데선 쑥맥이 따로 없었다. 준면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찬열과 백현이 있는 쪽을 도움을 요청하듯 불쌍하게 쳐다보았다. 노노, 형, 안되. 백현의 냉정한 대답에 준면은 울상이 되어버렸다.
* * *
“형 진짜 바보 등신이다. 아니 소개팅 한번도 안 해봤어? 으으, 바보.”
“야, 난 그런 여자 딱 질색이거든?”
거―짓말. 백현은 입이 부루퉁 나와서는 준면을 꾸중하듯 이리저리 잔소리를 늘여놓았다. 준면은 짜증이 난건지 습관적으로 주머니 속을 뒤졌다. 아 씨, 마이쮸 떨어졌다. 당장이라도 팬클럽 회장님께 전화를 걸어 마이쮸를 사달라고 해볼까 생각하다가 그러면 마이쮸를 밝히는 남자가 되어버릴 것 같아 팬서비스 용으로 셀카를 찍어 팬카페에 올린 준면이 휴대폰 홀드키를 누르자 백현의 잔소리는 배가 되었다. 형, 내가 말하는데 지금 셀카가 찍혀? 준면이 툴툴거렸다. 야, 나도 셀카 이제 좀 찍는데 왜 그르냐. 응? 찬열은 큰 키를 이용해 둘의 머리를 꾹 누르며 말했다. 닥. 쳐.
“야, 난 그렇게 키 쪼그만한 여자 싫어. 응? 비율이 좋아 뭐가 되냐? 노래 잘한댔지 그 여자? 그럼 뭐하냐 난 운동선수인데. 경기 나갔을 때 노래라도 불러줄거야? 나 참. 오세훈이나 너희나 진짜 대책없다. 어쩌자고 그런 여자를!!! 아 그리고, 내가 오늘 그렇게 군 건 다 그 여자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거니까! 괜히 나 쑥맥으로 만들지말아. 응? 나 너희보다 형인 거 알지?”
준면이 따박따박 쏘아붙이자 백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앙 다물었다. 택시에 오른 셋을 보자 택시기사는 ‘운동하는 청년들이유’ 하는 물음을 던졌지만, 쿨한 셋은 대답하지 않았다. 뭐 각자 머릿 속이 복잡해서 그런 거라고 해두자. 뒤늦게 맞다고 백현이 수습해보아도, 굳어버린 택시기사의 표정은 풀어질 줄을 몰랐다. 결국 비싼 요금을 단단히 치르고 내린 셋은 피곤했는지 터덜터덜 선수촌에 입성했다.
“오세훈?”
종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웃고있는 작자는 내년에 태릉선수촌으로 입성하기로 한 고 3 오세훈이다. 어……. 벙 져있는 셋에게 통통 튀어와서는 세훈이 깍듯이 인사하며 외쳤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수영 국가대표 오세훈입니다! 흐하항! 뭐……다냐. 굳어버린 셋의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훈은 다시 종인의 곁으로 뛰어가 강아지마냥 종인의 어깨에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뭐, 그 와중에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오던 경수의 얼굴은 딱딱히 굳어버렸지만.
“어 경수야, 너 얘 산책시키고 오는거야? 어딨었어, 한참 찾았는데.”
“야, 잠깐잠깐. 오세훈 네가 여기 왜 왔어?”
자신을 끌어안으려 드는 종인을 제지한 경수가 경계심을 가득 품은 두 눈으로 세훈에게 물었다. 나머지 셋도 몹시 궁금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세훈의 대답을 기다렸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게 꼭 개새…… 강아지같다. 경수는 자꾸만 자신의 어깨에 팔을 걸치는 종인이 거추장스러운지 팔을 툭툭 쳐내며 세훈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다.
“며칠 전에 통보 왔거든요, 이번 올림픽에 나가도 될 것 같다고. 사실 형들 몰래 계속 연습은 했었어요.”
“허? 너 그럼 내년이 아니라 지금부터 선수촌 생활 하는거야?”
“네! 좋죠? 흐히히”
좋……다마다. 준면이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훈은 말없이 ‘루한이형 보고싶다아’ 라며 중얼거렸다. 백현은 꿍얼거리며 찬열의 팔을 붙들고 숙소로 들어가버렸고, 경수도 강아지를 데려다놓기 위해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준면은 어색히 웃으며 매점으로 향했고, 어느덧 종인과 세훈 둘 밖에 남지 않았다.
“왜 형들이 전부 나 싫어해요? 내가 뭐 잘못했나, 준면이형 소개팅까지 시켜줬음 됬잖아요. 응?”
“루한이가 너 싫다고 선수촌 떠났는데 좋게 볼리가. 내년에 왔어도 똑같았을 거야.”
“으음…… 그래도 나는 루한이가 좋아요. 집착이라고 해도 난 걔가 좋아.”
중국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뛰어난 실력 때문에 한국의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있던 루한은, 다른 이유가 아닌 오세훈 하나 때문에 국가대표를 그만두고 중국으로 잠적했다. 세훈의 집착이 지친다면서. 하지만 세훈은 부정했다. 내 마음은 집착이 아닌데? 지나치게 해맑고 순수한데, 집착 또한 그만큼 강하다. 그런 세훈이 선수촌으로 들어왔으니 세훈의 실력이 어떻든 선배선수들은 떨떠름할 수 밖에. 그만큼 루한은 대단한 실력자였다.
“여튼 너 앞으로 계속 왕따생활 하기 싫으면 제대로 해라. 이번 올림픽 때 아무 실적 없으면 진짜 끝장이야.”
“네? 왜요?”
“너 내보내라고 난리도 아닐거라고. 참고로 경수형 팬사랑 끔찍한 거 알지? 네가 형 팬들 다 데려가면 넌……”
“…”
“뒈지는거야.”
종인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세훈에게 손을 두어번 흔들고 뒤돌아섰다. 아 씨, 아까 경수형 삐진 거 같은데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숙소에 들어와보니 경수는 말없이 티비만 보고 있을 뿐 종인에겐 한 치의 시선도 용납하지 않았다. 종인은 한숨을 푹 내쉬며 경수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슬금슬금 기어올라갔다.
“어딜 올라와, 안 내려가? 오세훈이랑 같은 방 쓰지 그래 아예?”
“형마저 유치하게 왜그래. 루한이가 간 건 어쩔 수 없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세훈이 받아주자. 응?”
“어후, 그렇게 소중한 친구가 와서 기뻐? 그럼 걔한테 가. 나랑 같은 방 쓰지 말고 가라고!”
경수의 질투에 종인이 풉하고 웃었다. 형, 설마 지금 질투하는 거야? 종인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경수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야, 나가, 나가라고 이 미친놈아! 어쩜 진지한 구석이 하나도 없냐. 경수는 한숨을 내쉬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티비 속에선 뭐라고 하하호호 떠드는데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티비를 끈 경수가 단단히 화가 나 있음을 그제서야 인지한 종인이 미안했는지 경수를 꼭 끌어안았다.
“이거 안 놔? 네가 요새 간덩이가 부었구나 김종인? 아 씨, 이거 놓으라고!”
“귀엽네 도경수, 계속 끼 떨어봐. 잡아먹고 싶게 하기는.”
“뭐?”
“세훈이가 어쩌고 저째? 아 진짜 귀여워 미치겠네. 야 도경수, 너 진짜 먹어버린다?”
상황파악이 안되는 경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종인이 경수의 볼에 쪽하고 뽀뽀하고는 방긋 웃었다. 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던 경수가 중얼거렸다. 제가 이런 또라이랑 정녕 연애를 해야하나요 하나님, 헝헝.
<작가의말>
번외는 조금 길게 쓴 것 같네요. 참고로 시험이 3일 남았는데 번외 올렸습니다 ㅎㅎㅎㅎ
투런팜태 이제 반응연재 입니다.
저번 편이 아무리 분량이 적었다고 해도 조회수와 추천 수 차이를 보고 내린 결정이니
깡총이를 실컷 원망하세요.
그런만큼 꾸준히 손팅해주시는 독자분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