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흐트러진 복장을 추스리며 방을 빠져나오는 남자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에는 ‘백현’이라는 이름이 떡하니 적혀있었다. 예명을 사용할 법도 한데, 자신의 지저분함에 질려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삶의 목적도 이유도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자신의 몸을 추스르는 남자는 슬퍼보였다. 백현은 슬퍼보였다. 온 몸이 울긋불긋한 백현을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는 것은 준면이었다. 말없이 허리를 굽혀 백현을 안고 토닥이던 준면은 다시 아이라이너를 백현의 손에 쥐어주었다. ‘손님이 기다리고 계셔’ 라는 준면의 말에 백현은 허탈한듯 실소를 터트리다 화장을 정돈하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끝없이 자신의 몸을 탐하는 더러운 손길에 수치심이 흐르다 못해 넘쳤지만, 이 악물고 참아냈다.
“선배, 제가 2년동안 여기서 일해서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말해줄까요?”
“얼마 벌었는데?”
“천만원이요, 내 허리가 으스러질 때까지 억척같이 버텼는데 천만원이 생겼어요.”
준면은 백현이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를 아직도 짐작하지 못하며 멍하니 가계부만 들여다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백현은 차갑게 식어버린 손으로 준면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백현의 초점 없는 두 눈을 바라보는 준면이 만족스러웠는지 방긋 웃은 백현은 두둑한 돈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보여요? 이 돈, 되게 많죠? 나 이제 중국으로 갈 거예요. 확실하진 않지만.”
“일을 그만둔다는 얘기야? 백현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응? 너 없으면 정말 안 되.”
“장사가 안되겠죠 물론. 근데 나도 이제 의리 같은 거 안지키고 내 행복 위해서 살 거예요. 질려.”
준면은 초조했는지 술잔에 담긴 술을 입 안에 탈탈 털어넣으며 백현의 손을 꾹 잡았다. 하지만 백현은 슬프게 미소지으며 준면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었다. 가슴팍에 달랑거리며 간신히 매달려있는 명찰을 거칠게 떼어냈다. ‘백현’. 예쁘기만 한 자신의 이름이 이 명찰에서 보니 그렇게 더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수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음을 회상했다. 온 몸에 개미 몇백마리가 기어가듯 소름이 우스스 돋았다. 백현이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떼며 말했다.
“중국에 백퍼센트 가는 건 아니예요, 아까 말했듯이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럼 돌아올거야?”
“아뇨. 그래도 여기로 다시 들어오진 않을거예요.”
종인이를 찾아야하니까. 백현은 뒷말을 생략했다. 창고에선 말없이 땀을 닦아내는 찬열이 보였다. …찬열이도 안녕이네. 백현이 슬프게 웃었다. 동갑내기인 둘은 더럽고 수치스러운 술집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이해하는 각별한 사이였다. 허리가 아파 낑낑거리는 백현을 향해 파스를 사다준 것도, 사장인 준면에 꾸지람을 대신 다 받아쳐준 것도 찬열이었다. 백현은 찬열을 향해 옅게 웃어보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백현을 붙잡지 않는 준면은 말없이 술을 입 안에 담았다.
“…찬열이 안녕. 잘 있어야해. 응?”
찬열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말을 하지 못하는 찬열은, 오로지 입모양만으로 백현을 이해하는지 까칠해진 백현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기름 때가 백현의 뺨에 묻어나는 게 미안했는지, 황급히 자신의 목덜미에 걸쳐져있던 수건으로 백현의 뺨을 닦아내는 게 조심스러웠다. 고마워 찬열아, 너라도 이렇게 날 소중히 대해줘서. 백현은 찬열의 주머니에 지폐를 꽂아놓고 길을 나섰다. 안녕, 이제 이 더러운 술집도 모두 다 안녕. 준면선배랑, 찬열이도 안녕. 그리고 날 탐했던 못난 아저씨들, 다 용서해줄테니까 이제 더 이상 날 찾지마요. 진짜 안녕.
“종인이 어딨어요 아줌마? 종인이 입원했댔잖아요, 지금 어디있어요?”
무언가에 쫓기듯 황급히 종인을 찾는 백현이 귀찮았는지 청소부 아줌마는 턱으로 슬쩍 종인의 병실을 가르켰다. 허리가 지끈거려 비틀거리면서도 황급히 발걸음을 떼 병실 문을 열었다. 아…, 종인이. 여전히 근사했다. 여전히 멋있었다. 초췌해진 얼굴로 환자복 차림을 한 채 누워있었지만, 2년 전과 달라질 게 없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백현은 금세 차오른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비틀거렸다. 그런 백현을 부축한 건 경수였다.
“경수…?”
“종인이 형이 많이 아파요. 암이래요.”
하지만 경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건지 백현은 터덜터덜 종인을 향해 다가섰다. 종인아… 내가 왔어, 일어나 봐. 당장이라도 종인의 넓은 품에 끌어안겨 지난 세월의 자신의 수치심을 씻겨내고 싶었지만, 종인 또한 너무 많이 약해져 있었다. 강인했던 종인의 패기가 살짝은 깎여버린 듯 해 씁쓸했다. 여전히 말랑거리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억지로 갖다대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꼭 로미오와 줄리엣 같았다. 경수는 말없이 볼펜을 탈칵거리며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2년동안 종인이랑 있어줘서 고마웠어. 잊지 않을게, 이 은혜.”
“난 계속 종인이형 곁에 있을거예요. 이 감정이 뭔진 모르겠는데, 이젠 종인이 형에 있고싶거든요 쭉.”
백현이 미간을 찡긋거렸다. 뭐래는거야 얘는? 백현은 확신이 있었기에 옅게 웃으며 경수를 향해 미소지었다. 그래, 마음껏 덤벼. 너같은 꼬마애가 아무리 옹알거려도 종인이는 내 거니까. 백현은 까칠한 종인의 손을 쓰다듬었다. 내일이면 깨어나겠지, 날 안아주겠지. 아무렇지 않게 우린 다시 사랑하겠지… 그러겠지 종인아?
안녕하세요 깡총입니다
사실 이 글은 지금 작성한 게 아니고요 예전에 써 놓은건데.. 비도 오겠다
그냥 올리고 싶어서 ㅋㅋㅋㅋㅋㅋ 올려봤어요 반응연재일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이제 시험 끝나고 찾아뵐 수 있을 것 같네요 손팅 좋슴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