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진] 12살 차이 극복기
w.1억
"야 그냥 병원 같이 가달라고 해. 병원비도 병원비인데.. 그래야 더 볼 수도 있고."
"싫어. 민망하기도 하고.. 계속 보면 진짜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아서 그래."
"어깨 보니까 이거 흉 남겠는데 뭐.."
"……."
"아~ 난 모르겠다. 네 사랑은 알아서 해라. 병원이라도 같이 간다고 하면 얼굴이라도 보려고 했더니만."
"……."
몰라 나도.. 시아랑 같이 학교에 올라가는데 계속 쌤이 떠올랐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이미 끝났는데.
"그리고 어제 되게 웃긴다? 마음도 없는 사람이 왜 너 따라와서 국밥까지 사줘? 그리고 국밥을 혼자 먹는 게 뭐! 그럼 지가 사주던가!!"
"사줬는데."
"아하..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라.. 사주는 것도 이상해! 왜 사줘?? 싫다고 찰 땐 언제고 왜?"
"나이 때문이라고 했으니까.. 내가 그냥 애처럼 보이니까. 안쓰러웠나보지."
"진짜 그 사람도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언젠가 마주치면! 정강이 확 차버릴 거야. 마주치기만 해봐."
이럴 때 보면 유시아 되게 믿음직스럽다니까.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과대 오빠가 나를 보고선 또 치근덕 거리며 다가온다.
"단한이 잘 지냈어? 어째 더 예뻐졌네~?"
과대 오빠의 별명은 근덕이다. 치근덕거려서 근덕.
29살인데 아직 대학 졸업 못 했다고 해서 욕 하기 싫었는데 하는 짓 보면 딱 답이 나온다.
여자들만 보면 졸졸 따라다니고 괴롭히고.. 과제도 무임승차에.
"단한이가 예뻐지던 말던 뭔 상관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번 학기에는 그만 치근덕 거려요."
"야 유시아. 말이 심하다?? 어린 게.."
"나이 많은 게 자랑인가."
"이게 얼굴 반반하다고 봐줬더니!"
"어! 교수님!!"
맨날 저래, 맨날.. 저러니까 욕만 먹지.
책상에 엎드려서 해진쌤 카톡 프사나 보고있는데 시아가 내 옆자리에 앉더니 곧 내 등짝을 치며 말한다.
"야 너 변태같아. 그만 봐."
"잊기 전에.. 얼굴 한 번 더 보고싶어서 그래. 진짜 잘생겼거든."
"이 얼빠야. 그냥 오늘 안에 잊자! 해봤자 그냥 아저씨일 뿐이야."
"아저씨 아니거든.."
"아저씨야 37이면."
"…얼굴이 아저씨가 아닌데."
"아저씨야."
"…아!"
"왜!"
"나 학원에 필기노트 놓고왔어. 책상 서랍에."
"어쩐지 너무 문제가 없다했는데.. 기어코 생기는구만."
"그냥 버릴래."
"같이 가자."
"안 가."
"같이 가자앙. 나 그 사람 얼굴 보고싶어. 얼마나 잘생겼길래 이렇게 우리의 단한이의 마음을 흔드는지이잉~"
점심시간에 맞춰 학원 앞에 도착했다.
강의실 안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고.. 단한이는 안심하며 시아와 함께 강의실 안으로 들어선다.
"뭔데 아무도 없냐? 그 쌤새끼는."
"오늘 강의 11시라 12시에 끝났거든."
"아하.. 10분 늦었네 우리가.. 아깝다."
"아깝긴.. 안 마주쳐서 좋구만."
시아가 학원 강의실을 구경하고 있었고, 단한이 노트를 챙겨 가방 안에 넣고서 얼른 가자며 시아를 재촉한다.
시아가 알았다며 질질 끌려 강의실 안에서 나왔을까..
강의실 앞을 지나던 해진과 눈이 마주친 단한이 멍하니 해진을 올려다보았고.. 해진도 단한을 내려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다.
너무 어색한 나머지 시아가 둘을 번갈아 보았고.. 단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웃음기 없는 인사.. 시아는 대충 짐작을 한다. 아, 이 사람이구나 근데...
"뭐 놓고 간 거라도 있어?"
"…네."
"옆엔.."
"친구요."
무슨 일인지 시아가 벙찐 표정으로 해진을 올려다보다가 곧 허허 웃으며 대답을 한다.
"아! 안녕하세요오.. 단한이가 놓고간 게 있다고 해서요오.. 그리고 끝나고 병원도 같이 가기로 했어요!
어깨에 흉이 좀 남을 것 같다고 해서어어.."
"…아니에요! 그냥 걱정돼서 하는 소리예요. 흉 안 진다니까 걱정 마세요."
"……."
"…가보겠습니다! 잘 지내세요!"
시아의 손목을 잡고 질질 끌고 학원에서 나온 단한이 시아에게 말한다.
"보면 정강이 걷어 찬다더니."
"생각보다 너무 잘생겼는데 어떡해. 나 무슨 연예인인줄 알았잖아. 너무 잘생겼는데????????????????? 야 누가 37로 봐???"
"……."
"딱 아는 척 하고 그러는 거 보니까. 마음이 없지는 않은데.싫으면 모른 척 하고 말지! 야 잘생겼네에에! 한 번 더 들이대보자!"
"넌 친구가 민망한 게 좋냐.."
"아니이 좋은 게 아니라.. 너무 아까워서 그래. 나 못 믿어? 표정이 말해주잖아. 표정이..! 너 근덕 오빠 좋아~ 싫어?
싫잖아! 싫어서 막 표정 일그러지잖아아!"
"희망 주지 마.. 나한테 마음이라곤 1도 없어 보였단 말이야."
"그래.. 둘이 얘기 하는 모습을 못 봐서 내가 이러지만.. 그래도 내가 안타까워서 그러는데에..?? 응????????????????????엉?????????"
솔직히 흔들린다. 시아가 저럴 때마다 너무 흔들려서 미치겠다.
하지만 어려서 별로라는 쌤의 표정이, 말투가 계속 생각이 나서 못 다가가겠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어보려고는 하는데...
"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잖어."
"쌤이 나무는 아니잖아."
"그건 그렇네."
"……."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잖아. 일단 그 병원부터 어떻게 좀 해봐. 같이 가고.. 밥도 먹고! 그래야 더 가까워지지."
단한씨!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시아와 단한이 놀라 뒤를 돌아보자
차키를 들고있는 해진이 단한이에게 다가와 말한다.
"오늘 학교 몇시에 끝나."
"…네?"
"병원 같이 가."
"……."
"내가 그런 거잖아.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니까. 내가 책임 지고싶어."
"……."
"연락 줘."
해진이 단한이의 인사도 받지 않고 그냥 혼자 둘을 지나쳐 자신의 차에 오른다.
당황한 건 단한 뿐만이 아니다. 시아도 놀라서 저 멀리 사라지는 해진의 차를 보다가도 금방 정신을 차리고선 말한다.
"저봐. 싫다는데 굳이.. 책임 지려고 하는 이유가. 마음 생긴 거지."
"……."
"오늘 끝나고 저 쌤이랑 같이 가. 알겠지? 이번이 기회야! 기회!"
5시가 넘어도 연락이 없는 단한에 해진은 소파에 앉아서 한참을 있는다.
그러다 카톡- 소리에 손을 뻗어 탁자 위에 있는 핸드폰을 확인해보면..
[병원 방금 갔다 왔습니다! 걱정 하지 않으셔도 돼요!]
"……."
표정이 좋지 않은 해진이 단한이에게 답장을 보낸다.
- 왜 그랬어. 저녁에 시간 돼? 밥 사줄게.
아무리 기다려도 단한이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
단한이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자, 해진이 고민도 없이 전화를 받는다.
"어, 오랜만이네."
- 잘 지냈냐?
"응. 잘 지냈지, 너는? 사업 잘 되는 것 같던데."
- 생각보다 잘 돼. 아직 강원도야?
"응."
- 오늘 저녁 먹을래? 강원도에 내려와있거든.
"그래... 뭐.. 몇시에 볼까."
- 여덟시쯤 어때.
"그래."
이게 진짜 마지막 카톡이겠지.
해진에게서 온 카톡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단한이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시련 당한 기분이라도 밥을 먹어야겠단 생각에 냉장고를 연다.
"먹을 것도 하나도 없네..."
시아한테 같이 밥 먹자고 하기엔 병원 얘기 하겠지. 에라 모르겠다..
침대에 벌러덩 누운 단한이 해진 생각에 한숨을 내쉰다. 왜 헷갈리게 그러는 거예요 진짜.
나 이런 거 너무 어렵단 말이야. 발을 동동 굴리며 한숨을 쉬던 단한이는 전화 벨소리에 핸드폰을 본다.
화면을 확인 한 단한이 놀란 눈을 한다. 해진에게서 오는 전화였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한다고.. 하긴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너무 빨리 받아버려서 단한이 작게 아씨.. 하고 고개를 숙인다.
"…네."
- 잠깐 나와볼래?
"…네?"
- 줄 게 있어서.
뭔 소린가 싶다. 단한이 전화를 끊자마자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뭐야 못생겼잖아. 급히 모자를 쓰고 나온 단한이는 빌라 앞에 세워져있는 해진의 차에 긴장하며 멈춰선다.
차에서 내린 해진이 단한이에게 다가와 빵이 많이 담긴 쇼핑백을 건네준다.
"나랑 밥 먹는 건 불편해 하는 것 같아서."
"……."
"너 불편하게 만들기 싫은데. 나도 내 마음이 불편한 건 싫어서."
"…괜찮은데."
"받지. 네 생각해서 사온 건데."
"…저는요."
"……."
"왜 고백하고 나니까.. 쌤이 저한테 더 친절하게 대해주시는지 모르겠어요.
제 착각일 수도 있는데요.. 쌤이 말씀해주신 대로.. 제가 어려서 잘 모르는 거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쌤같이 어른들 처럼 쿨하지 못 해서.. 차이고나면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아무리 봐야하는 상황이라도 피하고 싶어요."
"……."
"너무 불편해서 숨이 막혀요. 그러니까.. 이러지 마세요. 제가 계속 오해하게 되기도 하고.."
"……."
"다음부턴 이런 거 안 주셔도 돼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역시 오늘도 너는 웃는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웃는 걸까.
단한이 집으로 들어서면, 해진이 한참 발을 떼지 못 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단한이는 집에 가자마자 쇼핑백 안에 든 빵들을 꺼내보지도 못 한 채 울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엮이는 게 싫은 건 아닌데.. 이렇게 그냥 가까이서 보는 게 더 힘든데 어떡하라고.
"너 진짜 얼굴 보기 힘들다."
"네가 더 바쁘지."
"카톡 해도 씹던 사람이 말을 그렇게 한다고?"
"새벽에 카톡 보내는 사람이 말이 많네?"
"ㅋㅋㅋㅋ술도 마실 거지?"
"너 술 잘 못 마시잖아."
"요즘엔 꽤 늘었어. 여자친구랑 같이 저녁마다 술 마셔 버릇했더니."
"아, 애인.. 맞아. 잘 지내? 예전에 한 번 봤었는데. 본지 오래 됐네.."
"잘 지내. 같이 왔거든.. 자기도 여기 옆에 친구 만난다고 갈라졌어."
"그래? 시간 나면 오라그래. 내가 밥 사주고 싶어."
"야 됐어.. 내가 사."
밥을 먹던 중.. 애인의 전화를 받는 재욱에 해진은 귀를 기울였다.
"어.. 여기 골목길 들어가기 전 고깃집.. 아, 알겠어.."
그러고보니..
"애인..이.. 몇살이랬지."
"24살."
"아.. 13살 차이?"
"응."
"뭐.. 만나면서 특별히 다르고, 불편한 건 없어?"
"특별히 다르고 불편한 거.."
"……."
"딱히 그런 건 없고.. 어리다고 철이 없진 않겠지.. 라는 생각은 안 들어.
나이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 차이라 생각해. 생각보다.. 나보다 더 어른스러울 때도 있어."
"……."
"가끔은 엄마같이 걱정도 해주고, 정말 내 와이프처럼 챙겨주기도 하고.. 나이에 맞게 귀여운 모습도 보이고.
내가 콩깍지가 씌인 건지는 몰라도.. 그래."
"……"
"왜?"
"…아니."
"……."
해진은 말 없이 재욱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재욱의 잔을 채워주며 입술을 열었다.
"스물다섯살 친구가 내가 좋대."
"…그래서? 어려서 불편한 게 있을 것 같아?"
"어. 아무래도 나이 차이도 꽤 나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다를 거 아니야.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사람들 시선이 제일 걱정이야, 난."
"……."
"그 친구랑 나랑 만나게 되면, 내가 욕 먹는 것 보다.. 그 친구가 욕 먹는 게 더 클 거니까.
그리고 난.. 지금 결혼 생각해야 하는 나이인데. 그 친구를 만나면.."
"이해 했어."
"……"
"어려서 생각하는 게 다르다고 생각 하지 마. 어려서가 아니라.. 사람들 마다 생각하는 건 다 달라.
결혼? 나도 그거 때문에 애인이랑 많이 싸웠었어. 근데 그거 진짜 별 거 아닌 문제더라."
"……."
"그냥 내가 좋으면 만나다가 마음이 맞으면 결혼하면 되는 건데. 서로 좋아서 죽겠다는데.
서로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걱정이 끝도 없이 늘어나서 결국엔 헤어지게 돼. 근데 결국 나중에 보면 돌아오는 건 없어. 다시 만나게 돼."
"……."
"그래서 난 지금 몇 번을 그렇게 결혼 얘기로 싸우다가, 이젠 맘 먹었어."
"……"
"때가 되면 결혼하겠다고. 결혼 생활 하다가.. 서로 또 마음이 안 맞으면 이혼하겠지.
어떻게 앞만 보고 살아. 단순하게 사는 게 차라리 낫겠더라고.. 남 눈치 보면서 살지 마. 결혼? 신경 쓰지 마. 하고싶은 대로 하고 살아."
"안 본 사이에."
"……"
"말 되게 많아졌네? 요즘 힘드냐."
"힘들게 대답해줬더니, 말 많다네."
가게 문이 열리고 재욱의 애인이 들어와 손을 마구 흔들자, 해인이 웃으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석류씨."
"오오! 해진쓰앵님! 너무 오랜만인 거 아니에요!? 더 잘생겨지셨다아!!! 뭐야 아저씨 술 마셔요?? 그것도 소주??? 와 얼굴 벌써 빨개진 것 봐."
"한 잔 마셨어."
"그러니까.. 소주 말고, 맥주 마시지! 왜 소주 마셔요?????? 허어어어얼."
"친구는 갔어??"
"갔죠!!! 친구가 밥 사줬지렁. 다음엔 내가 쏘려고!!"
"친구 만나고 오더니 엄청 기분 좋아보이네."
"그러엄..!! 근데 평소에 좀! 남길삼촌이랑 술 마시지 말고!! 쓰앵님이랑 마시란말이에요!
남길삼촌은 맨날 죽을 때까지 마시게 하고.. 우리 해진 쓰앵님은 얼마나 천사같아!!"
"얘 남길이형보다 술 잘 마셔."
"아 그래요??????????????? 아 뭐야아 그래도 난 해진쓰앵님 편."
"왜."
"잘생겨서"<- 재욱, 석류 동시에 말함.
"오오 ㅋ"<- 석류
"……"
"엇.. 왜요.. 왜.. 그렇게 보세요..? 제가 너무 시끄러웠나여..."
"아니요."
"……."
"되게 좋아보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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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옹.. 내일은 기용찌도 낼게..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