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진] 12살 차이 극복기
w.1억
오늘은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안 좋아서 모자쓰고 폐인처럼 학교에 갔다가 바로 집에 왔다.
집에 오자마자 잠에 들었고.. 눈을 떠보니 벌써 7시가 되어있었다.
엊그제 쌤이 줬었던 빵들이 책상 위에 널브러져있다. 내가 싫다고 했던 쌤이 싫어서 안 먹는 게 아니다.
쌤이 준 걸 먹는 게 아까워서.. 그래서 먹을 수가 없었다. 이젠 짝사랑 할 수도 없는 상대인 걸 알면서도 난 왜 이렇게 구질구질할까.
혼자 편의점 갈 생각에 나왔다가.. 공기가 너무 좋아서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러다보면 또 쌤이 떠올랐고..
쌤 카톡을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하다가.. 무언갈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아, 며칠은 더 있다 가겠네 그럼."
"응. 석류 학교 가야 돼서 데려다줘야지.. 요즘 엄청 피곤하네."
"일 좀 쉬어가면서 해. 그러다 쓰러진다."
"쓰러졌음 좋겠네."
"왜."
"석류가 걱정할 땐 또 다른 사람 같거든."
"참나 ㅋㅋㅋ."
"얼마 전에는.. 돈 모아서 시계 사줬더라고. 되게 기특하더라.."
"둘이 사이 되게 좋아보이던데?"
"가끔 성격 차이는 있는데.. 괜찮아. 가끔 져주면 되니까."
"너랑 성격이 워낙 정반대라 신기했어."
저녁 강의가 끝나고 재욱과 카페에서 만난 해진은 커피를 마시지도 않고 빨대로 휘적이기만 한다.
재욱이 턱을 괸채 해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진에게 묻는다.
"너 그 때 술 마시고선 그 친구한테 연락 안 했어?"
"그 친구?"
"스물다섯."
"아아."
"……."
"안 했지."
"그냥 무시하려고?"
"그러려고."
"후회 하지 말고.. 눈 한 번 꼭 감고 연락해보지. 이게 처음이 무섭지 만나면 생각이 달리진다니까."
"난 그 무서운 게 싫은 사람이라."
"너무 쉽게 살아가려고 해. 넌.."
"ㅋㅋㅋㅋ 그러냐? 난 너처럼 자유롭고 쉽게 살아가는 애 본 적이 없는데?"
"나랑은 또 다르게 쉽게 살아가려고 하지 넌."
"ㅋㅋㅋㅋㅋ참나."
해진이 푸하하- 웃다가도 카톡 소리에 별 생각 없이 핸드폰 화면을 본다.
"……"
[저 장미공원이에요.]
뜬금없는 카톡인 건 안다. 해진은 한참 카톡 화면을 보자, 눈치가 빠른 재욱이 작게 웃으며 말한다.
"그 스물다섯 친구?"
"……."
재욱의 말에 대답을 않자.. 재욱은 확신하고선 웃으며 커피를 한모금 마셨고.. 해진은 망설임도 없이 가방을 챙겨 일어난다.
"나 먼저 간다. "
"에? 아 네네.. 급하신 것 같은데 얼른 가보세요."
해진은 가방을 아무렇게나 뒷좌석에 던져놓고서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는다.
단한이는 카톡을 보내놓고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선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카톡을 지울까? 아, 핸드폰을 끌까? 괜히 보냈어.. 어떡해.. 공원 옆에 있는 놀이터 까지 도망을 친 단한이 놀이터 그네에 앉아서 한숨을 내쉰다.
나 진짜 구질구질하네.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나한테 정이란 정은 다 떨어지겠다. 쌤.
장미공원에 도착한 해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장미공원이랬는데.. 어디있지?
공원을 돌아다니며 찾아보아도 단한이 없자, 해진이 핸드폰을 꺼낸다.
"……"
단한이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해진이 인상을 쓴 채로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본다.
공원에는 어디에도 보이지않자.. 해진은 전화를 한 번 더 걸었고, 긴 신호음 끝에 단한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여보세요?
"어디야."
- …아, 그게 쌤.
"……."
- 잘못 보냈어요.
"……."
- 친구한테 카톡을 보낸다는데! 이름이 비슷해서.. 쌤한테 잘못 보낸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 …….
"정말 잘못 보냈어?"
- …아니요.
"……."
- 생각나서 보냈고, 보고싶어서 보냈어요.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어디야? 잠깐 보자."
- …저 집인데.. 친구랑 같이 있어요.
"…집이야?"
주변에 들리는 차 소리에 해진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한다.
"어딘지 말 안 해줄 거야?"
- …죄송해요. 끊을게요.
무작정 전화를 끊은 단한에 해진이 핸드폰을 손에 꽉 쥔 채로 발걸음을 옮긴다.
공원 옆에 있는 놀이터로 온 해진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네에 앉아있는 단한을 보고 터벅터벅 다가섰다.
가까이 다가서자, 단한이 고갤 들고선 해진을 보았고.. 단한이 울고있자.. 해진이 망설이다 입을 연다.
"여기가 집이야?"
"……."
"집 되게 크네."
"…죄송하다니까요."
"왜 네가 죄송한지 모르겠네."
"……."
"만나자, 우리."
당황한 표정이었다. 해진은 너무 아무렇지않게 단한을 내려다보았고.. 단한이는 여전히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제가 구질구질하게 구는 게 불쌍해서 그러시는 거면 저 싫어요."
"네가 구질구질하게 대한 적 없는데."
"……."
"남들이 그렇게 봤다고 해도, 난 그렇게 안 느껴졌어. 만나자."
진심이었다. 진심 같았지만 너무 무덤덤하게 얘기하니까 그게 꼭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단한이 아니에요.. 그러지 마세요. 하며 일어나 가려고 하면, 해진이 단한이의 손목을 잡았다.
"고단한."
"왜 그래요 저한테."
"……."
"죄송하다고 했잖아요. 왜 그래요 진짜. 이러는 이유가 뭔데요."
"나도 너 좋아해서 만나자고 하는 건데, 그게 그렇게 문제야? 이유가 있어야 해?"
"…거짓말 하지 마세요."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분명 쌤은 제가 고백했을 때 싫다고 했잖아요."
"……."
"너무 어리다고.. 선부터 긋고. 그 다음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더 쑤셨으면서 이제와서 그러면 제가 어떻게 믿어요."
"……."
갑자기 비가 내렸다. 투둑투둑- 빗소리에 사람들이 하나같이 비를 피하려 뛰기 시작했고..
여전히 둘은 놀이터 한가운데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차놓고서 갑자기 말을 걸고, 밥을 사주지를 않나.. 빵을 사다주질 않나.
쌤이 저한테 이런 식으로 대해주는데 제가.. 어떻게 믿고 쌤을 만나요."
"그래 네 말대로.. 네가 너무 어려서 싫었어. 네 나이대 애인을 만날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너를 만나면 나도 이상한 사람이 되고, 너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 난 남들 시선이 더 중요했으니까."
"……."
"그냥 한 번 스쳐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하고 무시하려고 했어. 근데.. 생각보다 그게 쉽지 않더라."
"……."
"강의시간에 몇 번 마주쳤던 학생이었던 네가, 그 이후론 한 번 마주치기 시작하면 수업에 집중이 안 됐어.
불편해서가 아니라, 너무 신경이 쓰여서."
"……."
"강의가 끝나고 나한테 말을 거는 너한테 뭔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말이 안 나왔어.
네가 더 조심스러워져서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해야될지 잘 모르겠어서."
"……."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났어. 뭘 하던간에 집중도 안 되게 생각나는 거 보니.. 이거 동정이 아니라,호기심이 아니라..
나도 널 좋아하는 거라 생각이 들었어."
비가 더 많이 쏟아졌고, 단한이는 얼굴을 가린 채 울기 시작했다. 해진은 그런 단한을 기다려주기로 했다.
나도 사랑이란 걸 해본 사람으로서.. 이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 그런 네가 나를 바라볼 때까지 기다려준다.
둘은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한참을 서있었고, 단한이 해진을 올려다보았다.
"상처 받을까봐 못 하겠어요."
"……"
"쌤이랑 헤어지면 더 슬플 것 같아서 못 만나겠고.. 쌤이 저 좋아한다는 것도 다 거짓말 같아요.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다 예쁜 여자들인데. 왜 하필 제가 좋아요? 제가 뭐라고.. 저한테 만나자고 해요."
"……"
"…그냥 장난삼아 저 만나보려고 그러는 건 아니죠? 죄송해요.. 제가 진짜 너무 못 믿겠어서.."
"어. 아니야.. 일단 차에 가자. 가서.. 얘기 하ㅈ.."
갑자기 해진을 와락 끌어안는 단한에 해진이 놀란 눈을 한다.
해진을 끌어안은 채 엉엉 우는 단한에 해진이 단한을 감싸 안아주고선 등을 토닥여주며 말한다.
"내일.. 둘 다."
"……."
"감기 걸리겠네."
"옷이.."
"…….'
"많이 크네."
"그야..! 쌤이.. 어깨가 그렇게 막! 엄청.. 넓은데.. 제가 입으니까 그러죠.. 옷에서 쌤 냄새 나요! 짱 좋아요."
"내 냄새?"
"네! 쌤한테 좋은 냄새 나요! 몰랐어요?"
"처음 듣는데 ㅎㅎ."
"그래요..? 나는데..."
옷이 다 젖어서.. 해진의 옷을 입은 단한이는 뻘쭘하게 소파에 앉아서 티비에 시선을 두었다가 주변을 둘러본다.
와.. 쌤 집이다.. 쌤 집.. 엄청 크네..
해진이 유자차를 타 단한이에게 건네주며 단한이의 옆자리에 앉자.. 단한이 움찔 놀라 해진을 올려다본다.
"뭘 그렇게 놀래??"
"너무 가까워서요.."
"나 그럼 저 멀리 앉을까?"
"아니요!.. 그건 싫어요."
그건 싫다며 해진의 팔을 덥썩 잡아버리자 해진이 픽- 웃는다.
그거에 또 설렌 단한이 얼굴이 붉어져서는 다른 곳을 보며 말한다.
"근데.. 저.. 오늘 엄청 아팠었거든요!.. 머리도 아프고.."
"응응."
"막 속도 울렁거려서 겨우 학교 갔다 왔었는데.."
"지금 완전 멀쩡한데 너?"
"네! 쌤이랑 같이 있으니까! 엄청 멀쩡해졌어요."
"진짜??"
"진짜!"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건가? 열은 안 나는데.."
"그런가봐요.. 쌤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 받아가지고.."
"미안해."
"맞아요. 쌤은 좀 미안해야 돼요."
"만날 때마다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치.. 아아! 근데 쌤!"
"응?"
"왜 갑자기 말 놓으세요 근데??"
"……."
"……."
"그럼 다시 존댓말 할까요? 단한씨??"
"아! 아니요오!!!!!!! 반말이 더 좋아요!!!!!!!!!"
해진이 단한이의 손을 덥썩 잡자.. 단한이 놀란 듯 해진을 올려다보았고
해진은 웃으며 단한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 쌤.. 진짜 또.. 설레게 하네..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겠지? 그치? 아니겠지?
단한이 집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허공을 발로 마구 차기 시작했다.
미쳤나봐 미쳤나봐!! 나 진짜 쌤이랑 사귀는 거야? 발로 마구 차다가 벽을 찬 단한이 아픈지
비명도 못 지르고 아으으.. 하다가 또 해진 생각에 브ㅔ헤헤 웃으며 시아에게 전화를 건다.
- 웨 베이비.
"나!!!!!!!!!!!!"
- 뭐씌
"나 쌤이랑 만나!!!!!!!!!!!!!"
- 엥? 왜??????????????????? 어쩌다가???? 아니 갑자기 왜?????????????????????????
"그게 어떻게 됐냐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겉옷을 벗으려고 했을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려 소파에 앉아서는 알림을 확인한다.
[쌤! 집 도착하셨어용?[이모티콘]]
"……."
- 지금 막 도착했어 ㅎㅎ
[저 친구한테 쌤이랑 만난다고 얘기했는데.. 괜찮죠!?ㅠㅠ]
"……."
- 당연히 괜찮지.
[혹시라도 불편해하실까봐! 감사합니다~~~~~[이모티콘]]
"…별게 다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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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형...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