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자 권순영x고딩 김여주
쨍그랑, 투명한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아늑해야 할 집 안은 집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고, 무서웠다. 걸을 때마다 유리가 부딪쳐 듣기 싫은 소리가 순영의 귀에 울렸다."아, 시발 진짜."
작게 욕설을 내뱉은 순영이 더러워진 소파 위에 대충 몸을 앉혔다. 답답한지 머리를 쓸어 넘기던 순영은 찢어진 눈을 위로 치켜뜨며 자신의 앞에서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인 4명의 남자들을 바라보았다."도망 갔다고."
"...예. 아무래도 눈치채고 이미 튄 거 같습니다." "찾을 방법은." "....아무리 뒤져도 정보가 안 나옵니다." 면목 없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물고 말하는 남자의 순영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영의 한숨에 작게 몸을 떨던 남자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무거운 정적 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벽에 걸려있는 시계의 초침 소리뿐이었다. 정적이 이어지다 다시 한번 순영이 입을 뗐다. "가족은." "아내 하고는 3년 전에 이혼을 한 상태라 서류상으로는 남이고, 딸이 하나 있습니다." "딸?" 조금은 흥미로웠던지 몸을 앞쪽으로 숙인 순영이 되물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네, 19살인 딸이 하나 있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에 재밌는 놀이라도 찾은 것 마냥 남모르게 미소를 짓던 순영이 정장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하나 입에 물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불을 붙인다. 새하얀 연기가 공중에 흩날린다. 어느새 얼굴에 있던 미소를 지운 순영이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데려와."
"네?" "데려오라고. 내 앞에."사채업자 권순영x고딩 김여주
새벽 1시, 골목길은 개미 하나 지나가지 않을 것처럼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쌀쌀한 날씨에 여주는 얼굴을 패딩 안으로 숙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빚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여주는 오늘 역시도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때 자신의 옆으로 외제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이런 동네에 외제차? 의문을 갖던 여주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향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외제차에서 내린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명의 남자는 여주에게로 다가가 뒤에서 여주의 목에 팔을 감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경직된 여주는 그저 눈만 크게 떴다. 이게 무슨..... 소리라도 질러야겠다고 생각한 여주의 생각은 곧바로 자신의 코와 입에 손수건을 갖다 댄 남자의 말이 막혀버렸다.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추욱, 늘어진 여주를 자연스레 안아 올린 남자는 차 문을 열어 여주의 몸이 짐이라도 된 듯 시트에 몸을 던졌다.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아....." 작게 신음을 흘린 여주는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떴다. 고개를 올려 주위를 확인하니 자신의 집 안 거실이었다. 아니, 사실 알아챈 것도 용했다. 집의 형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워진 바닥. 곳곳의 유리가 깨져 바닥은 온통 유리뿐이었다. 신발 없이 발이라도 내디뎠다가는 곧바로 피가 날 정도. 몸을 일으키려 하자 그제야 온몸이 묶여진 게 느껴졌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가늠조차 가지 않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10분 정도 그러고 있었을까,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자 5명이 자신의 집에 들이닥쳤다."일어났네."
".........." "수면제 때문에 머리만 좀 아플 거야." ".....왜... 저, 납치... 당한 건가요."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지, 낯선 환경과 사람 때문인지 벌벌 떨던 여주의 음성이 그대로 순영의 귀를 울렸다. 납치? 납치라는 단어에 낮게 웃음 짓던 순영은 표정을 굳히고 여주를 바라봤다. 뭐... 납치라면 납친 건가. "김병창. 누군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아빠, 우리 아빠예요. 아빠는요? 우리 아빠는 어딨어요? 아빠는 괜찮은 거죠?" 자신의 아버지 이름에 여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툭툭 흘렀다. 아빠... 비록, 아빠 노릇을 제대로 해준 건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는 가족이란, 아빠란 존재가 그 어느 것보다 컸다. 툭툭 떨어지는 눈물이 가엾지도 않은지 순영의 차가운 음성이 여주의 가슴에 푹하고 박혔다. "튀었다. 그것도 사천만 원이라는 빚을 남기고." "......아...." "김병창 혈연은 너밖에 없더구나." 말도 안 돼..... 결국 아빠 간 거야...? 나만 놔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주먹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여주의 눈에서는 후두둑, 계속해서 눈물이 떨어졌다. 난 이제 어떡해...? 그럼 난 이제 뭐 보고 살아 아빠... 빚에 쫓겨 살아도 아빠가 있으면 행복했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반겨줄 가족이 있다는 게, 그거 하나면 됐었다. 근데... 이렇게 나 버리고 가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 소리가 새어나갈까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꽉 깨문 여주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팔던가, 죽이던가."
아무런 감정 없이 무서운 말을 내뱉은 순영에 여주는 작게 몸을 떨었다. 매서울 정도로 사나운 순영의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였다. 무서워. 여주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차라리...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것처럼 살 바에야... 죽는 게 나을지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처지를 수긍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의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순영의 낮은 목소리."아니면,"
".........." "살려줄까." 여전히 표정 없이 아무런 감정 없이 내뱉은 순영의 말에 오히려 놀란건 여주였다. 살려준다고? 정말? 마음속으로 되물은 여주는 눈을 크게 뜨고 순영을 바라봤다. 순영의 말에 놀란건 여주뿐만이 아니었다. 순영의 아래로 보이는 남자들도 말은 못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발언이었는지 순영의 눈치를 봤다. "네가 여기서 죽든 말든 난 상관없는데," ".........." "그래도 네가 원하면 기회는 한 번 더 주지. 어떻게 해줄까 아가." "........살려주세요." "형님! 이딴 년 하나 처리 못하시면.....!""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야. 입 털지 말고 조용히 가서 보고해. 얘 내가 죽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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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캐 권순영이 체고야...... 짜릿해........ 저는 나름 제가 꼭 써보고 싶었던 소재라 마음에 드는데 독자님들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어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