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로망, 클리셰
W. 백빠
박찬열; 조건만남 남자친구
→조건만남 아저씨 번외입니다. 안 읽고 보셔도 괜찮지만, 읽고 보시면 더 몰입될거에요:D
" …. "
아침이 왔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남자는…,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남자 중 가장 잘생기고 돈 많은 아저씨 박찬열. 잠자리가 바뀌면 편히 잠들지 못하는 나임에도 얼마나 푹 잤던지, 오랜만에 온 몸이 개운한 느낌이다. 그래도 낯선공간이란 무의식적 생각에 조금 일찍 떠진 눈. 나는 지금 엎드려 누워 턱을 괸 채, 코 자고 있는 아저씨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왠지 나 변태같다. 아저씨의 눈 감은 얼굴을 보는데, 문득 어제 아저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 앞으로 이거 나랑만 해. '
' 다른 아저씨들이랑 하지 말고 나랑만. 응? '
' 아가, 약속하고 자. '
으, 얼굴이 다 화끈해지는 기분이다. 아니, 조건만남 원조교제 여고생과의 부도덕한 섹스를 이렇게 로맨틱하게 하는 아저씨가 이세상에 어디있담? 괜히 부끄러워지는 마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가도 다시 자고 있는 아저씨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 더럽게 잘생겼다. 31살 아저씨가 이렇게 잘생기면 반칙 아닌가. 코도 높고, 입술도 예쁘고, 속눈썹도 길고.. 나보다 더 예쁜 것 같기도 한...
" …. "
....아저씨가 눈을 떴다. 그리고 제 옆에서 턱을 괸 채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자고있던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아저씨가 작게 웃는다.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났어요? 물었는데 아저씨가 아니, 대답하며 내 팔을 잡아당겨 날 품 안에 끌어안는다.
" 더 잘거야. "
" 잉... 또 자요? "
" 자지말까? "
자고 일어나 잔뜩 나른해진 목소리. 살짝 끝이 갈라진 낮은 목소리가 미친듯이 섹시하다. 자지말까? 하며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묻길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나와 눈을 마주하며 묻는다. 뭐할까, 그럼? 그 질문에 눈을 또르르 굴러가며 생각해보는데 아침은 잘 먹지 않는 타입이라 딱히 배고프지도 않고, 토요일이라 학교나 회사를 갈 일 도 없고… 음.
" 우리 진실게임 할래요? "
" …진실게임? "
" 응! "
아저씨는 진실게임, 이라는 뜬금없는 말이 꽤나 웃겼는지 한참을 웃다가 날 품에 꽉 끌어안더니 진짜 귀여워 죽겠다, 중얼거린다. 내가 얼른요,응? 보채자 아직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알았어, 알았어. 대답하는 아저씨. 자, 우리 이제 서로 질문 하나씩 하는거에요. 묵비권은 없음. 그러자 아저씨가 말했다. 묵비권이 없으면 재미없지. 벌칙도 정하자.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으응, 묵비권 없는걸로 해요. 대신 수위 지켜서 질문하기. 아저씨는 내 볼을 한번 꼬집고는 알았어, 대답한다. 아싸. 물어보고 싶은거 다 물어봐야지.
" 나부터 시작한다? "
" 응. "
"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
" 어제 회사원이라고 했잖아. "
" 평범한 회사원이 무슨 돈이 이렇게 많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
" …음. 그러니까 회사원인데, 직급이 좀 높아. "
" 얼마나 높은데요? "
" 질문 하나 끝. "
...방심했다. 입을 삐죽 내밀며 알았어요, 아저씨 차례. 말했다. 아저씨는 날 빤히 바라보며 뭘 물어보지, 얼마간 고민하다 입을 연다.
" 어제 물었던 거. "
" 응? 뭐? "
" 이거 왜 시작했어? "
…아. 맞아, 어제 그거 물어봤었는데 내가 대답 대신 키스해버렸지. 크크. ...말해도 되려나. 아니, 나는 말해도 괜찮은데 아저씨가 날 측은하게 볼까봐 그래. 동정표 얻는거 세상에서 가장 질색이란 말이야. 어떻게 말을 해줘야할까, 곰곰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 조금 긴데, 괜찮아요? "
" 괜찮아. "
그러니까, 내가 조건만남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하려면 내 유감스런 가정사부터 시작해야한다. 내가 열일곱살이 되던 해, 엄마는 도망갔고 아빠는 재혼 후 연락이 끊겼으며 내게는 동생 두명이 남아 있었다. 첫째 동생은 어렸을 때 완치됐던 백혈병이 재발되어 재작년, 결국 하늘나라로 갔고 둘째 동생은 기숙사가 있는 중학교에서 생활 중이다. 첫째동생이 죽고 남은 병원비와 장례식 비용을 내가 다달이 갚고있고 둘째동생 학급비에 기숙사비, 용돈 그리고 내 학급비에 생활비까지. 아무리 병원비니 학급비니 국가에서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한달에 이백 이상은 필요한데, 건전한 아르바이트로는 백만원도 벌 수가 없었다. 미성년자는 10시까지만 고용 가능에, 최저도 못받는 시급으론 한달에 아무리 세네탕을 뛰어봤자 백만원 남짓. 동생이 죽은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일을 해야했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돈에 결국 난 조건만남, 이라는 걸 하게 됐다. 처음에는 당연히 수치스럽고 하기 싫고 죽어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막상 동생을 생각하니 할 수 밖에 없어지더라. 어차피 공부나 꿈 같은건 포기해야하는게 내 인생이니까.
…까지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끝내자 아저씨는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래서 얘기 하기 싫었어. 나 불쌍하게 여길까봐.
" 근데, 지금은 뭐. 조금 적응됐어요. 한지는 얼마 안됐지만. "
" …. "
" 자, 이제 내 질문 차례죠? "
" …. "
" 아까 못한 질,…어. "
아까 못한 질문, 얼마나 직급이 높은지 물으려 했는데 아저씨가 날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진짜 힘들었겠다…. 순식간에 울컥, 설움이 차오른다. 나는 떨려오는 목울대를 꾹꾹 누르며 아저씨 가슴팍을 밀어냈다. 이러지마요, 동정하지마, 동정할거면 돈으로 줘. 그렇지만 행동과 다르게 나는 어느새 눈물을 줄줄 흘려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날 더 꼬옥 품에 안았다. 옷 젖을텐데… 울면 아저씨 옷 젖어요…. 그러나 아저씨는 실컷 울으라는 듯, 내 등을 더 다정히 쓰다듬었다. 나는 결국 지금까지 참아내야만 했던 눈물을 아저씨의 품에서 쏟아내버리고 말았다.
" 그러니까… 왜, 위로를… 해줘가지구… 흐끅… "
" 지금까지 투정도 못부리고 어떻게 살았어, 응? "
" 몰라, 아저씨 때문이야…. "
그렇게 품에서 한참을 울었을까, 울음이 그쳐갈 즈음 아저씨가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앉혀선 볼에 붙은 머리카락을 살살 떼주었다. 그리곤 두 손으로 내 볼을 감싸더니 엄지 손가락으로 눈물자국을 닦아주는 아저씨.
" 아가, 어제 약속했던 거 기억해? "
" …응? "
" 나랑만 만나기로 했던거. "
응.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가 말한다. 어기지 말고 꼭 지켜. 안그럼 혼나.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여본다. 응응, 그럴게요. 아저씨랑만 만날게요…. 그 대답에 아저씨는 착하다, 아가. 하며 머리를 쓰다듬다 이제 씻으러 가자며 날 공주님 안기로 들어 욕실로 향했다. 아저씨는 욕조에서 날 씻겨주며 많은 질문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받는 질문들. 하고 싶은거 있어. 꿈이 뭐였어. 제일 좋아하는게 뭐야.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생각들이었다. 내가 하고싶은 거? 내 꿈이… 내가 제일 좋아했던게…. 그 질문에 답하던 그 순간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난 행복했다.
아저씨는 내가 애기라도 되는 마냥 날 씻기곤 밥을 먹이고 옷을 입혔다. 그리곤 나를 차에 태웠, 아니, 잠깐만. 이 아저씨가 말도 없이 어딜가는거야? 영문 모를 표정으로 운전석에서 안전벨트를 하고 있는 아저씨를 바라보자, 아저씨는 그저 내게 다가와 안전벨트를 매주곤 어디론가 출발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엥. 여긴 내 동생 있는 병원인데? 아저씨가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나도 얼떨결에 안전벨트를 풀고 조수석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아저씨에게 다급히 묻는 나.
" 아저씨, 여긴 왜 온거에요? "
키가 커다란 아저씨는 날 조용히 내려다보니 씨익 웃으며 말한다.
" 선불. "
" ....에? "
그리곤 무작정 병원 입구로 걸어가는 아저씨. 순간 멍- 하니 입구로 들어간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말도 안되는 생각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진짜 병원비를…? …미쳤나봐, 저 아저씨…! 상황파악이 완료 되자마자 혼신의 힘을 다해 병원비 납부 창구로 날려갔다. 확실히 눈에 띄는 긴 기럭지. 부리나케 달려가 헉헉대며 자, 잠시만요! 를 외쳤지만 이미 영수증이 나오는 소리가…. 이, 이번 달 병원비만 내준거겠지!, 하며 안내원의 손에서 빼앗듯 영수증을 가져와 보니,
총 납부금 19,271,900 원
…이런… 미친. 숨을 헐떡이며 영수증을 보고 어이없어 하는 나를 보더니 아저씨는 자기 혼자 막 웃는다. ..웃겨요, 아저씨? 이천만원이 웃겨? 진짜, 미쳤나봐 이 아저씨. 어? 아니, 이게 말이, 아니 진짜…. 아저씨 진짜 뭐하는 사람…. 아니, 회사원이라면서… 아. 말이 안나와.
" ...뭐한거에요, 지금? "
" 말했잖아. 선불이라고. "
" 아니, 나랑 이천만원어치만큼 만나겠다고요? "
" 생각보다 안 많을 걸. "
그러더니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속삭인다. 어젯밤만 해도 세번 했으니까 백오십이잖아. 우리 열밤만 같이 자면 천오백인데? ....그게 무슨 개똥같은 소리에요, 아저씨. 분명 후회할거에요. 난 이렇게 큰 돈을 받을만큼 가치가 없다구요.. 난 속이 후련하면서도 미안하고, 고맙고 …어쩔 줄을 모르겠는 감정이 내 속 안에서 마구 소용돌이 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진짜 지금까지 못 울었던거 오늘 하루 다 우는구나.
" 흐으, 아저씨이… 진짜 이러면 어떡해요…흐끅, 그렇게 큰 돈을… 흐으…. "
" 나한텐 그렇게 큰 돈 아니야. "
" …. "
..아니, 그렇게 말하면 위로가 되긴 하는데요, 좀 심기가 뒤틀리는… 결국 흐아앙, 하고 아이처럼 울어버리는 나. 그게 뭐에요, 그걸 위로라고 하는거에요, 아저씨 후회할거란 말이에요, 고마운데, 미안한데, 그렇게 덥석 결제해버리면 어떡해요, 등등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겠지만 여튼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는 그게 또 웃긴지 우는 내 앞에서 내 등을 토닥이면서도 큭큭, 웃고있다.
" 우찌마여어… 흐으… "
" 귀여운데 어떡해. "
" 흐어… 몰라아… 흐끅, 흐으…. "
" 내가 너 키울까봐. 나 아빠 시켜줘. "
아저씨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퍽,하고 쳐버렸다. 그러면서도 너무 고마워서 내가 먼저 아저씨의 허리를 꼬옥 껴안았다. 고마워요, 아저씨.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요… 울면서 이런 말도 했던 것 같다. 나중에 꼭 갚을게요, 제가 꼭 갚을게요… 그리고 아마 그때부터 이 세상 기댈 곳 하나 없던 난 아저씨를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저씨가 후회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 내가 무색하게도 우리는 원조교제 아닌 원조교제를 꽤나 길게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도 어색했던 아저씨의 집이, 차가, 동네가 모두 익숙해지고 있었다.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버스정류장을 어떻게 가야하는지, 거기서 몇 번을 타야 우리 학교 앞까지 가는지 딱히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두 다리가 알아서 움직인다.
오늘은 아저씨의 집에서 맞는 열아홉번째 아침이었다. 매일 만나지도 않고, 호텔을 갈 때도 있고, 아저씨의 오피스텔로 갈 때도 있으니, 오로지 아저씨의 집에서만 맞는 아침이 열아홉번째나 되는건 실로 많은 시간을 아저씨와 보냈다는게 확실했다.
" 아가, 일어나. 학교 가야지. "
" … 늦게가두 되여어…. "
" 너 어제도 지각했잖아. 안돼, 얼른 일어나. "
" …으, 시러어…. "
그리고 또 시작된… 아저씨VS내 잠의 싸움. 학교는 좀 늦게 가도 되니까, 나 조금만 더 잘게요, 응? 아니, 이렇게 아침 일찍 깨워서 학교를 보낼 생각이었으면 밤에 잠을 좀 자게 해주던가. 잠은 잠대로 못자게 해놓고 아침 일찍 깨우는 건 대체 무슨 심보야?
" 너 나랑 지각 안하기로 약속했잖아. 까먹었어? "
" …오늘까지만 늦구… 낼부터 일찍 갈게요. "
" 내일 토요일이에요, 아가."
" …. "
…아우씨! 일어난다, 일어나! 일어나면 되자나! 결국 잔뜩 심통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두 눈을 비비며 이씨, 좀 늦어도 되는데..피곤해 죽겠는데.. 어짜피 학교가도 잘건데... 쭝얼쭝얼 궁시렁 대자 아저씨는 웃으며, 그래도 기특히 일어난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마에 쪽, 입을 맞춘다. 볼에도 쪽. 코에도 쪽. 입에도 쪽.
" 말 잘 들으니까 얼마나 예뻐. "
" …몰라, 지금 아저씬 하나도 안 예뻐. "
" 왜. 나도 예뻐해줘, 아가. "
" 좀만 더 자게해주면 예뻐해줄게요… 졸려어…. "
졸려어… 하며 뒤로 넘어가려하자 아저씨가 너한테 예쁨 받는 건 포기해야겠다, 하며 날 두 팔로 단단히 안아 침대에서 일으킨다. 거의 램수면 상태인 나를 질질 끌어서는 거실로 데려가는데 역시나, 맛있는 냄새가 코를 파고든다. 이런 젠쟝! 잠이 깨고 있쟈나! 항상 아저씨의 레파토리는, 날 억지로 깨우기→안 일어남→아침을 차려놓은 식탁 앞으로 끌고간다→말끔히 깨어남 이다. 아저씨는 식탁 앞에 날 앉혔고 나는 저절로 떠지는 눈에 꿈뻑꿈뻑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헐, 미친. 갈비찜.
" …아주머니가 해놓은거에요? "
" 응. 새벽에 와서 해놓고 가셨나봐. "
" 아저씨가 갈비찜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
" 너가 먹고싶다고 노랠 불렀잖아. "
" …. "
내가 그저께부터 갈비찜을 먹고 싶다고 난리를 치고 다녔는데… 그새 그걸 파출부 아주머니한테 그걸 부탁할 줄이야… 히잉, 아저씨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맞은 편에 앉은 아저씨의 얼굴을 덥석 두손으로 잡곤 볼에 뽀뽀폭탄을 날렸다. 아이 예쁘다, 우리 아저씨. 내 쉴 새 없는 뽀뽀폭탄에 아저씨가 웃으며 묻는다.
" 이제 나 예뻐해주는거야? "
" 아니, 사랑해주는거야. 이뻐하는 걸론 부족해요. "
평생토록 사랑해줄게요, 아저씨. 저, 절대 갈비찜 때문은 아니고..! 내 뽀뽀폭탄에 아저씨 양 볼이 점점 빨개진다. 너무 많이 했나, 빨개질 정도로 입술을 부비대다니. 키스마크도 아니고... 이정도로만 해두자, 싶어 마지막으로 입술에 꾸욱- 도장 남기듯 뽀뽀를 하곤 자리로 돌아왔다. 어딘가 야한 아저씨의 양 볼에 히히 웃었더니 고개를 저으며 미치겠다, 진짜... 중얼거리는 아저씨다. 배고픔에 한 숟가락 크게 떠 밥을 입에 우겨넣으며 물었다. 머가 미치게써여? 그러자 아저씨는 큭큭 웃으며 말한다. 너. 너 때문에 미치겠다고.
" 나 때무네? 왜여? "
" 됐어, 얼른 밥 먹어. 갈비찜 맛있어? "
왜 나 때문에 미쳐? 귀여워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갈비찜 어떠냐는 아저씨의 말에 단순한 나로써는.. 갈비찜을 얼른 먹어야한다는 생각으로 뒤덮였고.. 때깔 죽이는 갈비찜을 입 안에 넣고 온갖 감탄사를 내지르며 먹는 나를 아저씨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런걸 아미라고 하는건가여. 아빠미소? 그나저나 갈비찜 핵존맛. 아주머니 사랑합니다..♡ 아저씨보단 아니지만요(염장).
" 데려다줘? "
" 아니, 괜찮아요. 버스타고 갈래요. "
" 그럼 학교 끝나고 데리러 갈까? "
" 아저씨 퇴근시간보다 빨리 끝나거든요. "
" 그래도 학원 가려면 차로 가는게 편하잖아. "
" 괜찮아요, 진짜. 오지마요, 절대! 나 먼저 갈게요! "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빠르게 뛰어갔다. 아, 학원은 뭐냐면, 사실 2주 전부터 하고 싶은게 좀 생겨서... 제과제빵을 시작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빵 먹는 것도 좋아해서 아저씨한테 말해봤는데 한번 해보라고 해서... 근데 선생님이 나더러 소질이 있다고 했다 크하학. 여튼, 아저씨는 날 지금 양성해내고 있다. 마치 프린세스 메이커 마냥... 대체 아저씨랑 내 관계는 뭐지? 조건만남이나 원조교제이기엔 서로를 너무 좋아하고, 커플이라기엔 사귀잔 말이 없고, 양부모라기엔 사랑을 나누는데. 대체 뭘까? 우리사이는?
하나에 생각이 꽂히면 끝까지 가는 편이라, 하루종일 그 생각을 붙잡고 늘어지고 말았다. 아저씨와 나의 관계…. 7교시 끝을 알리는 종소리에 어지러운 머리를 한번 털어보았다. 얼른 학원가서 빵이나 만들자. 일찍가면 어제 남은 재료로 복습도 할 수 있으니까. 아저씨…한테는 이따가 퇴근할 때 쯤 전화해야겠다. 슬그머니 종례를 빠져나와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나서는데, …에?
" 아저씨? "
교문 앞에 낯익은 검은색 세단이 떡하니 서있다. 저거 우리 아저씨 차인데…. 아닌가 싶어 자세히 보려 다가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이 지잉, 열리며 아저씨의 얼굴이 보인다. …아, 진짜. 학교 앞에는 오지 말라니까...!
" 아저씨이! 학교 앞으론 오지 말랬잖아요..! "
" 응, 나두 보고싶어 죽는 줄 알았어. 얼른 타. "
그 앞으로 달려가 아저씨에게 핀잔을 주니 보고싶어 죽는 줄 알았다며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버린다. …진짜 아저씨야말로 말 드럽게 안듣지. 그래도 내심 나도 좋긴 좋은지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누가 볼새라 얼른 조수석 문을 열어 차에 올라탔다.
" 왜 이렇게 말을 안들어요. 학교엔 오지 말라니까. "
" 나 오는거 쪽팔려? "
" 쪽팔리는게 아니라! …으휴, 아니에요. 그나저나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요? "
" 왜 말 돌려. 진짜야? "
" 아니에요! 말이 되는 소릴 해, 진짜... 아저씨를 쪽팔려 할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딨어요? "
차라리 쪽팔려서 오지 말라는거면 좋겠다. 아저씨, 그쪽은요, 진짜 내가 자랑하고 싶어 미치겠는 사람이거든요?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이 남자가 지금 나랑 만나고 있어요, 자랑하고 싶은 남자라구요. …근데 아저씨랑 내가 사귀는 것도 아니고, 설명할 말이 없어 대체. 애들 입에선 조건만남, 원조교제 타이틀만 신나게 나올거라구. 나 지금도 학교에서 소문도 안좋은데, 검은색 외제차 타는 내 모습 보기라도 하면 난 끝이에요 끝.
" 저 안그래도 소문 안 좋은데 아저씨 만나는거 애들이 보기라도 하면 소문 인정하는 꼴 돼요. "
" 내가 아저씨로 안보이는데 무슨 상관이야. "
" …그렇지만, 그럼 뭐라고 설명해요. 원조교제라고 할 수도 없고.. "
" 너랑 내가 왜 원조교제야. "
" 그럼 뭔데요? "
" 뭐? "
그럼 뭔데요, 라는 내 질문에 오히려 어이없다는 얼굴로 뭐? 하고 되물어 오는 아저씨. 그리곤 꽤 못마땅한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본다.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얼굴이, 퍽이나 맘에 안 든다는 얼굴이다. 물론 그 얼굴마저 잘생겼지만. 흐응, 차라리 잘됐다. 하루종일 우리가 무슨 사인가 궁금했는데 말꼬가 트여서.
" 아니, 그렇잖아요.아저씨는 나한테 사귀자고 한 적도 없고. "
" …. "
" 그렇다고 나랑 안자는 것도 아니고. "
" …. "
" 날 도와주기도 하니까 원조교제 그것뿐인가보다 했지. 난. "
그때 날 계속 심기 불편한 얼굴로 바라보던 아저씨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여기서 웃을만한 포인트가.. 난 정말 진지했는데 뭐가 웃긴거지..? 근데 이와중에 낮게 웃는 목소리는 또 왜 이렇게 설레는걸까. 간질간질한 가슴. 아저씨는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 아, 사귀자고 말 안하면 안사귀는거야? "
" 당연하죠! 말 안하면 그걸 어떻게 알아요...! "
" 내가 잘못했네. 사귀자고 말도 안해주고 내가 나빴네."
" …응. 헷갈리게 했단 말이에요. 아저씨가... "
뭐, 서른한살이나 되면 그런 말 없어도 되나본데 난 아직 어리고, 또 눈치도 없어서 말 해줘야 안단말이에요…. 아저씨는 귀여워 죽겠단 얼굴로 날 바라보다 묻는다. 아가, 나 좋아해? ...뭐, 뭐에요, 갑자기 그런 부끄러운 질문은...! 괜히 부끄러워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않자, 아저씨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인다. 난 너 좋아하는데. 그 말에 결국 나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도.. 아저씨 좋아해요.
코 앞에 다가온 아저씨의 얼굴, 향기…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심장 뛰는 소리가 아저씨한테까지 들릴 것만 같아... 그런 내게 아저씨가 나즈막히 묻는다.
" 아가, 그럼 아저씨랑 사귈까? "
아. 감격스런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진작 이렇게 말했으면 좋잖아, 이 바부아저씨야..! 나는 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저씨는 웃으며 부드럽게 내 입술을 제 입술에 담았다. 드디어 이 아저씨가 내 남자친구가 되는구나. 순순히 응했던 부드러운 입맞춤은 길어지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려 한다. 아저씨도 그걸 느꼈는지, 입술을 살짝 떼곤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 오늘은 학원 가지마. "
" …에? 안되요..! 오늘 실습 진짜 재밌는거란 말이에요.. "
" 오빠랑 더 재밌는거 하자. "
오, 오빠요..? 뭐라고 되묻기도 전에 빠르게 시동을 거는 아저씨다. 아니, 이 아저씨가 진짜..! 처, 천천히 가요! 아저.. 아니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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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Cocoa Butter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가장 인기 많았던 차녀리 아더띠 번외..ㅎ
上편은 비회원님들을 위해서 준비해봤구여! 下편은...크큭..ㅋ.ㅡㅋ큭.. 뭘까아~? (언제올지모른다는게함정)
+ 암호닉은 따로 받고 있진 않다만 구냥 댓글에 써놓으시면 기억해둘게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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