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철] 쟤 17살 차이 나는 아저씨랑 결혼했대
w.1억
아저씨랑 나는 결혼 하고나서 처음 싸우게 되었다.
밤이 되어서야 방에 들어 온 아저씨가 내게 묻는다.
"밥 진짜 안 먹을 거야?"
"……"
"나랑 말도 안 할 거야?"
"……."
"좀이따 배고플텐데."
내가 예민하다면 예민한 게 맞다. 그냥 서로 이해 하고 끝낼 수도 있는 게 맞으니까.
그냥 내가 예민한가보다 하고 넘기려고 해도 더 기분이 안 좋았다.
그냥 결혼만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근데 현실을 생각을 못한 내 잘못이다.
편의점에서 따듯한 음료수를 사 온 태평은 나오자마자 호오- 하고 손에 입김을 부는 예은을 보았다.
태평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예은은 태평을 힐끔 보고 놀란 듯 표정을 짓는다.
추워 죽겠는데 짧은 치마에 얇게 입고 온 옷이 태평도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아, 추워서 그런 거 아닌데."
"누가 뭐라했나."
"오해할까봐요. 막 잘 보이려고 옷 이렇게 입고 왔다고 생각할까봐."
"아무 생각 안 들었는데."
"아."
마시라며 음료수를 건네주자, 예은이 음료수를 받자마자 손을 녹인다. 와 더럽게 따듯해...
둘은 또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가만히 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서로 눈치만 보다가 먼저 입을 연 건 태평이었다.
"아까 한 짓 후회 한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는데."
"후회 안 해요. 만약에 우리가 헤어진다고 해도 그냥 봉사 한 번 했다고 생각 하면 되는 거죠."
"……."
"근데 그쪽이 이렇게 저 그냥 보내버리면 후회는 할 것 같아요."
"……."
"나 어디서든 꿀리지 않는데. 그쪽 옆에만 있으면 엄청 꿀리는 것 같은 느낌 들어서 짜증나요."
"어디서도 안 꿀리는 사람 옆에 붙어 있어본 적 없는데."
"…에?"
"항상 자존감 낮아서 내가 자존감 높여주기만 했지, 자존감 높은 사람 만나 본 적도 없어."
"…왜 그랬대요. 왜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나 만났대."
"그러게."
"……."
"그래서 내 자존감을 높여 줄 사람은 없었어."
"……."
"오늘 처음이네."
"……."
"스스로 말고, 남이 내 자존감 높여준 거."
"…아니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자존감 높여주는 사람 하나 없다구요?"
"……."
그냥 무슨 말 하나 건네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들던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등이라도 토닥이고 싶은데, 그 여자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과연 내가 그럴 가치가 있는 여자일까 싶어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 했다.
내가 도연이나 위로 해봤지.. 어른들을 위로 해봤냐고...
"……."
자연스레 내 옆에 누워 잠든 아저씨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잠이 안 와서 침대에서 내려와 창밖을 보고 있는데 아저씨가 등을 돌린 채로 내게 말을 건다.
"왜, 잠이 안 와?"
"……"
"거봐 내가 배고플 거라고 했잖아. 라면이라도 끓여줄까."
"아저씨."
"…어."
"아저씨는 나랑 결혼한 거 후회 한 적 있어요?"
아저씨랑 헤어지고 싶어서 한 소린 아니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는데.
"……"
"왜요.."
화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오해 할 수도 있겠단 생각에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을 한다.
"그냥 물어 본 거예요. 그냥 다른 의미 없어."
"아까 전소민 걔한테 연락 온 거 때문에 그래?"
"아니 그거 때문이 아니ㄹ.."
"그건 오해라고 내가 말.."
말도 끝내지 않고 한숨을 내쉰다.
답답할 때마다, 말이 안 통한다 싶을 때마다 하는 행동이었다.
"단순하게 정말 밥 먹고, 술만 마셨을 뿐이야. 그 뒤로 연락한 적도 없고. 갑자기 뜬금없이 온 카톡을 네가 본 것 뿐이야.
그 작은 일 하나가지고 결혼한 거 후회 하지 않냐고 묻는 네가 이해 안 가. 지지고 볶고 싸워도, 둘중 하나가 큰 잘못을 해도 꾹꾹 눌러 담고 참고, 사는 게 부부야."
"그냥 단순하게 궁금해서 물었던 건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을 해요. 갑자기 밤이 되니까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것 뿐인데."
"타이밍이 이상하잖아. 우리 아까 전 까지만 해도 싸웠는데 갑자기 등 돌리고 자던 네가, 잠도 못 자더니 일어나서 하는 말이 하필 그렇잖아.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대화 할 생각도 없이 그냥 방으로 들어간 것도 너야."
"별 것도 아니에요 이게? 아저씨는 이게 별 것도 아닌가봐요. 그건 아저씨 생각일 뿐이잖아요. 나는 다르잖아."
"그래. 별 것도 아니라고 해서 미안해. 연락 온 것도 답장 안 할테니까."
"……."
"이제 그만 화 좀 풀어. 내가 미안해."
"……"
"사과 안 받아줄 거야?"
"……."
화나기보단 삐졌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 같았다.
별 것도 아니라니. 진짜 웃기는 소리.
"걱정 좀 하지 마요."
"……."
"헤어지고 싶으면 이혼 해야 되는 거니까. 그건 또 못 하겠어서 그런 생각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화나서 그러니까. 별로 신경 쓰지 마."
"네가 그렇게 화를 내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그냥 가만히."
"……."
"그냥 그러면 되잖아요."
"그쪽이 곧 마흔이라도 저는 결혼 생각으로 그쪽 만나고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
"누가 뭐라냐구요? 그냥 혼자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래요. 곧 마흔이시고, 이혼까지 하셨는데. 다시 결혼이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이라도 가질까봐."
"……."
"제가 여태 많은 남자들을 만나면서 결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도 제가 혹여나 그쪽을 만나다가 결혼이 하고 싶다고 하면.."
"하면?"
"…아직 그건 생각 안 해봤어요."
"……."
"제가 항상 제 또래만 만나다가 30대는 처음 만나니까. 그쪽이 잘 해주셔야 돼요."
"나도 20대는 처음 만나는데."
"그래서 잘 못해주겠단 소리예요..?"
"미숙할 수도 있단 소리지."
"그래도 그쪽은 20대가 있어봤지만, 저는 30대가 돼본 적이 없어요."
"부럽네."
"부..러우라고 하는 소리 아닌데요."
"언제는 위화감 없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계속 나이 차이 난다고 눈치 주네."
"…그냥! 20대 때 연애 했던 거 떠올리면서 그렇게 하자구요."
"그럼 우리 삐삐 써야 되나. 그 땐 차도 없었는데."
"그런 장난 칠 줄도 알아요? 와."
"나도 사람인데."
"ㅋㅋㅋ참나아.. 내일은? 내일은 뭐하는데요."
"내일은 바빠."
"아, 바빠요? 내일부터 연휴인데.."
"응. 반지도 팔아야 되고."
"반지?"
"결혼반지."
"아 !!"
"이사 준비도 해야 되고."
"이사도 가요??????????"
"가야지."
"아무튼!"
예은이 맥주에 소주를 콸콸 들이 붓더니 태평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축하주."
"축하주?"
"이혼 축하주."
"당연히 아침 먹을 거죠? 다 차려놨는데."
"아니야 안 먹을래."
"차려놨는데?"
"속이 안 좋아서. 못 먹을 것 같아."
"……."
표정이 좋지 않은 연이는 고갤 끄덕이며 식탁 의자에 앉는다.
"……."
"가요?"
"갔다올게. 오늘 늦을 수도 있어. 빨간 날이라 그런지 애들이 다 오늘 쉰다고 그러네."
"……."
"……."
말도 없이 신발을 신으려고 하는 아저씨를 보니 짜증났다.
분명.
"화가 난 건 난데. 화가 나야 할 건 난데. 왜 아저씨가 화가 났어요."
"……."
"아무리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차려주는 밥은 다 먹고 나갔으면서 오늘은 싫다고 그러고."
"…그럼."
"……."
"속이 안 좋은데 어떡해."
"그럼 먹지 마요. 나 혼자 다 먹을 거니까."
"그래 너 다 먹어라."
"들어 오지도 마요. 나 혼자 잘 거니까."
"그래 너 혼자 자라."
유치하다.
우리 진짜 유치하다.
"헤어지고 싶은데 이혼 해야 되니까 못 헤어진단 소리 들어봤냐 너."
"…아니."
"그거 나름 좋은 말 같은데. 억장이 무너진다, 억장이 무너져."
"…그럴 것 같긴 하네."
"……."
"형 울어?"
"하품 했다."
- 아, 거기 계세요? 걱정은 돼도 연락 안 한다고 얼마나 난리인지.. 연이 그 기지배 울고 불고 난리 났다니까요.
그래서 지금 연이한테 가려구요. 아주.. 30분 내내 엉엉..
"그건.."
- …….
"여기도 비슷해."
맥주를 마시다가 식탁에 이마를 박은 채로 훌쩍이는 지철을 본 태평은 안쓰러우면서도 저 모습이 웃기고 귀여운지 픽- 웃는다.
마흔 둘 먹은 아저씨가 부부 싸움 하고 아는 동생 집에 와서 울고 있는 모습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