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밤하늘로 한숨 섞인 입김이 퍼진다. 태현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지난날을 떠올렸다. 꿈인지 현실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꿈과 현실의 그 중간 즈음에 어중간하게 서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적어내렸다. 쓰여지지 않았지만 마음에 새겨졌다. 밤이 깊었다. - "우리 일출 보러 가자!" "일출은 역시 동해지~" "그럼 정동진 어때? 정동진 가는 거다??" "우리 진짜 가요??" 우리는 웃고 있었다. 어찌나 할 말들이 많았는지, 매일 붙어 다녀도 말소리들로 가득했다. 웃음소리는 배경음악이었다. - "야 태현이 무슨 생각해!" 생각에 잠겨 복도를 거닐던 태현의 어깨에 팔이 둘러졌다. 연준이었다. "아, 형." "뭐야 짜식 진지하기는- 무슨 일 있는건 아니지?" "별 건 아니고, 제가 형보다 잘생긴 이유들을 고찰 중이었어요." 이 자식이- 하며 팔로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는 연준이었다. "아악! 장난이에요!!"
함께라면 잠깐의 고민도 고뇌도 별것 아닌 게 되었다. 함께였기에 그럴 수 있었다. - "우리 진짜 일출보러 가?"
그럼 가짜로 가냐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학교는 끝난지 한참이었지만 친구들은 옥상에 모였다. 태현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가슴 깊은 곳에 숨어들었다. . "아 해 언제 지냐-" 별똥별 잔치가 열릴 것이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내린 날이었다. 33년 만의 우주쇼라고 그랬다. 그들은 평소처럼 한참이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어? 별똥별이다!" "진짜네??!!" "어디?! 어디 있어??!"
"우와! 진짜 별똥별이다!!!" "빨리 소원 빌어 빨리!" 태현은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친구들과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게 해주세요. 욕심 없는 소원이었다. - 별똥별에게 소원을 전한지 딱 2주가 지난 어느 금요일이었다. "오늘 마지막 교시 째고 정동진 고?" 범규의 제안이었다. "내가 버스 표도 알아놨지롱~"
"형 잠깐만요. 우리 진짜 가요?" 다시 한번 알 수 없는 불안함이 태현을 에워쌌다. "태현이는 가기 싫은 거야?!" 휴닝카이의 서운한 말투에 태현은 아니, 당연히 가고싶지! 하고 답했다. 불안한 느낌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이거봐봐. 정동진 가면 이건 꼭 먹어야한대." 친구들은 그새 모여 계획을 세웠다. "우리 하루 자고올까요?" "그래! 좋아!" "저 형들이랑 다 같이 잘래요! 우리 다 같이 한침대에서 자요!" "휴닝아 너가 애냐. 다 같이 자게."
- "수빈이 형 빨리! 이러다가 버스 놓친다고!" 범규가 마지막에 나온 수빈의 팔을 잡아끌며 뛰었다. 아이들은 출발 2분 전의 버스를 겨우 탔다. 고작 2분이었다. "아 진짜 놓칠뻔했다!" "아 수빈이 형-" 친구들은 그저 즐거웠다. 작은 일탈이었다. 창밖으로는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 "얘들아. 얘들아!" 수빈의 목소리가 잠든 아이들을 깨웠다. "다 왔어. 밖에 봐!" 바다 앞의 정류장에서 내린 아이들은 냅다 달렸다. "바다다!" 태현은 친구들과 함께 달리다가 잠시 뒷걸음질 쳤다. 밤바다는 검고 깊었다. 모든 걸 다 삼켜버릴 듯 했다. 잠재웠던 불안한 마음이 다시 올라왔다. - 아이들은 밤바다를 잠시 구경한 뒤, 먹을거리를 잔뜩 사 숙소로 들어갔다. 방은 하나였다. 형들과 다 함께 자고싶다는 막내의 소원 덕이었다.
"이게 우리 휴닝이 소원이야~?" "네. 형들이랑 다 같이 있고싶었어요." 애교 가득한 막내의 말에 다들 웃었다. 휴닝카이는 본인 위에 누운 태현의 허리를 토닥여줬다. 그 손길이, 친구들의 온기가 안심이 됐다. 태현은 괜찮을거라 되뇌이며 잠에 들었다.
- "빨리 일어나! 이러다가 해 다 뜨겠다고!" 범규의 외침에 다들 비몽사몽 옷을 챙겨입었다. 아침의 바다는 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바닷물이 발끝을 건드렸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저 일출 처음봐요!" "나도! 나도 처음 봐!" "어! 해 뜬다!" 떠오르는 붉은 태양에 압도된 아이들은 잠시 잠잠해졌다. 세상의 시작이었다. "우와-" "진짜 빨개!" 태현은 말없이 뜨는 해를 지켜봤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느껴졌다. "봐, 아무 일도 없지?" "네?" 뜬금없는 연준의 말에 태현이 놀라 쳐다봤다. 연준은 그런 태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니- 태현이 너가 너무 불안해보였거든. 그래서 걱정했는데." 태현은 조용히 웃었다. 어깨의 두른 연준의 팔이 든든하게 느껴져 안심이 됐다. 함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 "얘들아 사진 찍어야지! 여기 봐!"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한참을 놀았다. 식사를 하고도 다시 바닷모래를 밟았다.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마치 재앙의 예고처럼 느껴졌다. 일종의 경고였을까.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굵어진다. 아이들은 그저 좋았다.
"아 쫄딱 젖었어!" 빗소리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묻혔다. 폭우였다. - "아 진짜 수빈이형 또!" 제일 느린 수빈의 팔을 잡아끈 범규가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출발 2분 전의 버스였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차편이었다. "재밌었어요!" "재미있었다-" "다음에 또 오자." 아이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달리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아주아주 깊은 잠이었다. 그날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 폭우가 쏟아진 어느 날, 뉴스에서는 다급한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속보입니다.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 전복되었습니다. 탑승자 14명 중, 부상자 9명, 사망자가 5명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 이 사고로 버스를 몰던 기사가 숨졌으며, 나머지 사망자 4명은 어린 학생들로 알려져 큰 안타까움을 ......" - 눈을 떴을때는, 부모님이 울고계셨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시간이 지나 상황을 파악한 뒤에는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친구들이 보고싶었다. 꿈이길 바랐다. 버스를 타면 안됐다. 고작 2분이었다. 그 2분이 우리의 운명을 뒤바꿨다. 태현은 자책했다. 태현은 별들에게 물었다. 별똥별도 아닌 그냥 별들에게 물었다. 내가 그리 큰 소원을 빈거냐고. 무리한 소원이었냐고. 곧이어 태현의 눈에서 별똥별들이 무수히 떨어졌다. - 다시 아침이 밝았다. 밤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건만, 그럼에도 아침은 기어이 온다. - 태현은 종종 옥상에 올라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봤다. 웃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사진은 이미 눈물로 젖어있었다. - 친구들의 곁으로 가고 싶었다. 함께라면 괜찮을 거다. 이 아픔도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태현은 다시 한번 옥상에 올랐다. - 별똥별이 떨어진다. 그날 이후 2달 만의 최대의 우주쇼였다. 태현은 다시 한번 소원을 빌었다. 시간을 돌려달라고. 친구들을 돌려달라고. 그리고 다시 한번 같은 소원을 빌었다. 친구들과 오래오래 함께하게 해주세요. 별똥별이 반짝이며 떨어진다. 친구들은 하나가 됐다. - "야 태현이 무슨 생각해!" 익숙한 목소리였다. 연준이 형이었다. "무슨 일 있는건 아니지?" "별 건 아니고, 제가 형보다 잘생긴 이유들을 고찰 중이었어요." "이 자식이-" "아악! 장난이에요!!"
기시감이 태현의 온몸을 감쌌다. 별똥별에게 소원이 닿았다. '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이번에는 꼭 성공하길 바라.' -THE END -bgm : TXT-Magic Island (다 읽은 후, 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