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철] 쟤 17살 차이 나는 아저씨랑 결혼했대
w.1억
원래대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저씨랑 나는 또 평소처럼 잘 지낸다.
"…아니이 맞다니까요? 에전에 취해가지고 집에 들어와서는 한달동안 나한테 용돈 받고 산다고 그랬어."
"…아닌데 난 기억 안 나는데."
"진짜 인성이 여기서 드러나죠."
"인성이랑 기억 안 나는 거랑 뭔..!"
"진짜 맨날 불리할 때만 기억 안 나는 척 ㅡㅡ."
"지는~"
"아저씨만큼 하겠습니까 내가?"
"허허~ 참."
아저씨랑 카페에 앉아서 서로 이런 얘기나 하면서 투닥 거리고 있으면, 우리 옆으로 커피를 가지고 온 예은이가 말한다.
"진짜 뭔 들어오면서부터 싸우더니 지금까지 싸워요? 유치하게."
"그치 유치하지. 진짜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진다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 같애."
"야.. 예은아 내가 너한테 미움 받을 짓 한 건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 매번 만날 때마다 나한테 왜 그래?"
"원래 전 친구 편이에요."
"좋겠다 너희는 죽고 못 사는 친구라서?"
"네."
"나도 태평이한테 일러야지."
"참나."
"일러야지~~"
"아! 놀리려고 그러죠! 또 놀리려고."
"너 피해망상증 있니?"
"ㅡ.ㅡ"
"태평이가 너한테 반한 이유 알겠다. 알겠어.."
"…알긴."
"ㅋㅋ그래그래 볼일 봐~"
"……."
예은이가 무심하게 뒤 돌아서 한발자국 움직이더니 갑자기 뒤를 힐끔 본다.
아저씨랑 나를 번갈아보더니 크흠.. 하고 가길래 나랑 아저씨랑 픽- 웃었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예은이가 태평쒸랑 연애 하는 게 안 믿긴단 말이지?
"근데 태평쒸한테 뭐 들은 건 없어요? 예은이 얘기.."
"태평이가 워낙 지 얘기를 안 해서."
"…아 궁금한데."
"예전부터 왜 이렇게 태평이한테 관심이 많아?"
"잘생겼잖아."
"아, 그래서 나한테도 관심이 많았었네."
"과거형이지 그치."
"이야.."
"ㅋ."
"그 뭔가 기분나쁜 썩소까지 너무 완벽한데 도연?"
아저씨가 날 향해 박수를 쳐주었고, 나는 아저씨가 시킨 아메리카노를 쪽- 빨아 마시고선 말했다.
"아, 나도 이제 어른인가. 아메리카노가 땡기네."
"취향만 어른이 되는가봐."
"뭔 뜻이야?"
아저씨가 눈으로 내 가슴을 가리키길래 아씨이! 하고 주먹을 쥐고 때리는 시늉을 하자, 아저씨가 푸하하 하고 웃는다.
아오 진짜 왜 저래!
카페에서 나올 땐 예은이 알바 하는 거 약올릴라고 메롱- 하니, 예은이가 썩소를 지으며 뻐큐를 날린다.
그러다 아저씨가 뒤 돌아- '고생해' 하면 예은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인다.
아저씨는 이제 pc방은 알바생들만 쓰고 카페도 알바생은 예은이만 쓴다고 했다.
그냥 한가지 일에 몰두 하고 싶다지..
그리고 뭔가 집에서 아저씨랑 대청소 하고 가만히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아저씨를 보니까 든 생각이 있다.
"애 낳을까?"
"어?"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그냥 뭔가 아저씨가 유독 동안이라서 그렇지 남들은 다 42세의 얼굴을 하고 벌써 애까지 낳고 애는 고등학생이라는데.
아저씨는 애 낳지도 못 하고 이렇게 일만 하고 있다니.
안쓰러워서 든 생각이었다. 아저씨를 생각하면 나오는 말이었고.. 나를 생각하자면.
"그냥.. 요즘 문득 막 별 생각이 다 들어서요."
평소엔 장난으로 애 낳자고, 그냥 한 번 낳자고 하던 아저씨였는데.
이번만큼은 내가 진지하게 말하니까, 당황스러웠나보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다 아저씨는 나를 진정시키려 한다.
아저씨의 저런 표정은 난생 처음 봤다. 물론 이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애 낳을까? 하고 묻는 나도 처음이라 아저씨가 당황한 게 틀림 없지만.
"아니야 연아. 일단은 너무 빠르지않나? 너무 빠르지 않아도 돼. 충분히 더 네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지내다가.. 네 마음이 편할 때 그런 생각 해도 되는데."
"아니 지철씌 솔직하게 말해봐."
"뭘..?"
"그 뭐냐 저~기 만덕이 아저씨 딸이 고1이람서? 그런 얘기 들으면 기분이 어때."
"와 벌써 그렇게 컸나 징그럽다."
"그게 끝이야?"
"만덕이 닮아서 못생겼던데."
"아니 그런 거 말곸ㅋㅋㅋㅋㅋ"
"그럼."
"아저씨도 애 낳고 싶지않아??"
"애를 내가 낳나, 네가 낳지."
"아니..씨!"
"ㅋㅋㅋㅋㅋㅋ아니! 별 생각 없어 정말이야."
"…지금 애 낳아도 애가 고등학생이면 아저씨는.. 와.. 거의 60살인데......."
"걱정 마.. 60살이 되어도 내 얼굴은 그대로일 거야."
"ㅋ..."
웃기는 하겠는데..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진짜 아저씨를 사랑하는데. 정말 사랑하기는 하는데.. 이 문제의 대해서는 정말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웬일이냐.. 집순이가 집밖에서 만나자고 하고?"
예은이는 갈증이 났는지 쥬스를 원샷 하고서 트름을 작게 하더니 내게 말한다.
그럼 난 조금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예은이를 보고.. 예은이는 대충 무슨 일이 있구나.. 생각을 하고선 내게 말한다.
"무슨 일 있냐?"
"그냥 아저씨 일이지 뭐."
"싸웠어?"
"아니 ㅡㅡ."
"그럼?"
"애 낳을까.. 고민이 좀 돼서."
"왜 갑자기? 좀 있다가 하는 거 아니었어?"
"그건 그런데.. 아저씨도 나이가 있잖아."
"무슨 나이 보고 안쓰러워서 애 낳냐? 삘이 있으면 낳는 거지 ㄱ-."
"…그건 또 그런데."
"아니면 그냥 확 애 가져버려!"
"……."
"애초에 결혼도 애 낳고 오순도순 살려고 결혼 하는 거 아니야? 뭘 그렇게 고민하냐."
"야.. 결혼을 애 낳으려고 한다는 건 난 또 처음 듣는다."
"왜? 다들 결혼하면 애 낳잖아."
"결혼하고 10년이 지나도록 애 안 낳는 부부들도 많아."
"그러다 낳겠지."
"……."
"그리고 애초에 네가 아저씨 더 좋아해서 연애했고, 네가 결혼 하자고 해서 한 거잖아. 그냥 애 한 번 낳아."
예은이의 말에 솔직히 기분은 나빴다. 그래도 한 번더 참기로 했는데.
"야 아저씨가 동안이라서 그렇지.. 이제 또 5년 훅 지나봐라. 네가 30살 때 아저씨는 내일 모레 쉰이야.
안 보이던 주름 더 생길 거고.. 나중에 애도 70다 돼가는 아빠 데리고 고등학교 졸업식 가면 좀 그럴 거 아니야."
"야 넌 말을 왜 그렇게."
"에전부터 이런 거 고민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솔직하게 말해주는 건데."
"…솔직하게 말하는 건 괜찮은데. 기분 나쁘게 애기 하잖아."
"돌려서 말하면 못 알아 듣잖아."
"ㅋㅋㅋㅋㅋㅋ."
"왜?"
"다 마셨음 나가자."
"그래 그럼."
예은이랑 분위기 안 좋은 상태로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예은이한테 말했다.
"집 간다."
"저녁 먹자면서."
"너같으면 저녁이 넘어가냐."
"너 화났냐?"
"화났지 당연히. 기분이 더러운데."
"기분이 왜 더러운데."
"원래 상처 주는 사람들은 모른다더라."
"뭐래."
"여봐 모르잖아."
"참.. 그냥 가게?"
"어."
"가서 연락도 안 하겠다 너??"
"당연한 거 아니냐?"
"유치해 죽겠다 진짜."
"ㅋㅋㅋ진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뭐가 어이가 없고, 뭐가 웃긴데."
"말해도 모를 건데 왜 내가 또 말해? 내 입만 아프게."
예은이랑 처음 싸웠다. 장난으로 싸워봤어도 이렇게 싸운 건 처음이다.
예은이한테 인사도 없이 그냥 뒤돌아 걸어서 택시를 탔다. 참나 아직도 짜증나.
뭐 때문에 화가 났냐는 아저씨의 말에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계속 내 눈치를 보는 아저씨는 한시간에 한 번씩 내게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
그럼 난 결국에 말해버린다.
"예은이랑 싸웠어요. 가끔 보면 예은이가 기분 나쁘게 애기 할 때가 있었는데. 오늘이 진짜 심했다니까.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자기는 잘못 없다고 나만 유치하고 쪼잔한 년 만들잖아."
"뭐 때문에 싸웠는데."
말해줄 수 없었다.
아저씨 얘기 하다가 싸운 건데.. 아저씨한테 말하면 아저씨만 기분 나쁠 테니까.
"그냥.. 의견 차이..가 있었는데 예은이가 기분 나쁘게 애기 했어요."
"의견?"
"저녁 뭐 먹을지 고민하다가!"
"저녁....."
"…서로 먹고 싶은 것만 먹으려고 하다가.."
"그럼 그냥 예은이가 먹자는 걸로 먹고 집에 와서 나랑 다른 거 또 먹으러 가지~~ 난 저녁 먹었어도 너랑 또 먹을 수 있는데."
"치."
"뭔가 밖에서 남이랑 먹는 저녁이랑, 너랑 먹는 저녁이랑 느낌이 달라서 배도 따로 부르더라고."
"…하지 마요 ㅡㅡ."
"진짜야. 근데 가끔은 네가 밥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던ㄷ.."
"아잇! 진짜 좀!!"
"그래서 넌 저녁을 뭐 먹고 싶었는데."
"…쿠우쿠우."
"예은이는."
"스시."
"쿠우쿠우에 초밥 있잖아 예은이가 잘못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마흔둘인데도 장난치는 거 보면 진짜..
"왜 기분이 나쁜지 모르겠어요.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돌려 말하는 거 싫어하는 거 뻔하니까. 나는 솔직하게 말한 거였어요.
그 때는 돌려 말한다고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내더니 이제는 솔직하다고 뭐라 하고."
"……."
"여태 한 번도 싸운 적 없었는데. 이런 이유로 싸운 게 너무 어이 없잖아요. 그래놓고 연락도 없어. 카톡 보냈더니 읽지도 않아."
예은이의 얘기를 듣던 태평은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선 예은을 보더니 작게 웃는다.
예은은 왜 웃냐는 듯 태평을 올려다보고선 마른 오징어를 뜯는다.
"나는 연이가 기분 나쁠만 하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연이한테 한 말들을
본인이 알면서도 혼자 해결하기가 힘들어서 너한테 말한 건데.. 따듯한 말은 커녕 돌직구로 기분 나쁜 말들을 해줬으니. 속상할만 했네.
가끔은 답을 알면서도 좋은 말 듣고 싶어서 고민 털어놓을 때도 있잖아."
"……."
"근데 그건 좀 심했다.. 일흔살에 고등학교 졸업식은.."
태평이 픽- 웃으며 맥주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예은이 태평을 보더니 곧 치- 하고 말한다.
"뭐 이렇게 솔직해요."
"…응?"
"원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잘못해도 여자친구 편만 들어주는데. 그쪽은 왜 이렇게 달라요."
"그래서 기분 상했어?"
"아니. 그냥 멋있어서."
"……."
"그래서 제가 사과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그쪽이 더 쉽지 않을까."
"……."
"연이 만나러 가고 싶으면 말해. 좀이따 데려다줄게."
"…몰라요."
"아무래도 이상해."
"뭐가 이상해."
"저녁 메뉴로 싸운 것 같지가 않은데. 그렇게 속이 좁은 우리 연이가 아닌데."
"ㅡㅡ 지금 나보고 속좁다고 한 거야?"
"아니아니????????????"
연이가 인상을 쓰고 지철을 바라보자, 지철은 괜히 연이에게 말실수 했다며 자책을 한다.
곧 태평에게서 전화가 오고, 지철은 드라마 보고 있는 연이를 배려해 방 안에 들어가 전화를 받는다.
"어, 태평아."
- 어 뭐하고 있어?
"그냥 tv보고 있었지."
- 연이랑?
"어. 왜? 무슨 일."
- 아니 연이랑 싸웠다길래.
"아, 맞아. 그렇다더라. 눈치보여 죽겠어.. 나 무슨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다니까. 말 걸 때마다 눈치 봐야 돼."
- ㅋㅋㅋㅋㅋ 화났겠지.
"왜 뭐 들은 거 있어??"
- 그냥 연이가 고민거리가 있었나봐.
태평이 계속 돌려 말하자,지철은 얼른 말해보라며 한숨을 내쉬었고, 태평은 결국 그냥 말해버린다.
- 형 좀 일찍 태어나지 그랬어.
"그러게 나도 90년대 사람이고싶다."
결국엔 내 나이 잘못이네^^.
나름 지철과 태평은 둘이 화해했음 좋겠어서 그랬다.
뭘 그랬냐고?
"ㄱ-."
"ㄱ-."< 예은
"…ㅋ."
"왜 웃어요?"< 연
"아니 눈만 마주쳐도 깔깔 웃던 애들이 갑자기 서로 보고 정색하고 있으니까 웃겨서."
"…무슨 곱창 먹으러 나가자더니..다른 사람들도 있어. 일부러 그랬죠."
연이가 일부러 그랬냐며 지철과 태평을 번갈아보자, 태평이 말한다.
"우리 같이 맥주 마시다가 갑자기 곱창 먹고 싶어서 나온 건데."
태평과 예은이 같이 있는 걸 꼭 보고싶어 했던 연이로서 연이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곧 한숨을 푹 내쉰다.
"……."
결국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철과 태평만 곱창을 굽느라 바쁘다.
둘만 있게 납두고 사라지자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까 담배를 피러 둘이서 나가서 10분을 안 들어와봤지만 둘은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
"……."
정말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지철은 결국엔 입을 연다.
"어른인 내가 입을 열어야지 또!"
"……."
"내가 79년생이라 미안하다. 늙어서 미안해. 그냥 화해 좀 해."
"아니.. 그.."
"……."
"미안해. 미안해요.."
"……."
"형 울어..?"
"ㅋㅌㅋㅌㅋㅋㅋㅋㅌ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른 먹고! 먹어!! 하고 지철이 연이의 앞접시 위로 고기를 세개 올려놓고, 예은의 앞접시엔 하나를 올려놓자 에은과 연이가 결국 눈을 마주치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