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하실래요?"
"지금요? 저야 좋죠. 잠시만요."
오늘도 집에 데려다준다길래, 거절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계속 신경이 쓰이더라.
그래서, 처음으로 내가 먼저 제안했다.
"괜찮아요? 피곤하시면 다음에 마셔요."
"괜찮아요. 저야 완전 좋죠. 어디로 갈까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사람 없는 곳이 편하시죠?"
"전 아무 곳이나 상관없어요."
"저희 집 가는 길에, 카페 하나 있어요. 지금 시간이면 사람 거의 없을 거예요."
나만의 카페지만, 이 사람 정도는 괜찮겠지.
"거기로 가요."
"그래요."
"... 죄송해요."
그는 라테, 나는 허브티 한 잔.
"김석진 씨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랬어요."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니까.
"사실 지금도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이해 못 할 테지.
"고마워요. 나 좋아해 줘서. 그리고 미안해요. 상처를 줬다면 사과할게요."
아까 본 굳은 표정이 계속 신경 쓰이더라.
사과하고 싶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처받았을 수도 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훨씬 더 쓰라린 법이니까.
"... 이제 안 볼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아니에요. 그런 의도는 아니고,"
"......"
"사과하고 싶었어요. 너무 막... 의심하고 그런 것 같아서..."
"괜찮아요. 이해해요."
"....."
"저라도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갑자기 나타나서 첫눈에 반했다고 들이대는 게, 이해하기 쉬운 상황은 아니니까요."
"...."
"그래도, 진심이에요. 선생님이 상상하시는 그 이상으로 제가 좋아해요, 선생님을."
이봐. 또 이렇게 훅 들어오잖아.
"저는, 제 직업 특성상 누군가에게 이렇게 들이대는 일이 쉽지 않아요."
"... 그죠."
"제 성격도 이렇게 들이대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
"제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대놓고, 적극적으로 들이댄다는 건,"
"......"
"정말 많이 좋아하고, 진짜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또또.
"처음이에요.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것도, 들이대본 것도."
"다 선생님이 처음이에요."
K.O. 완패다.
"다 왔네요."
이래서 다들 비싼 차를 타나보다.
승차감이 미쳤어요.
"감사합니다. 또 얻어먹었네요."
"제가 선생님 시간 뺏은 대신 밥 산 거죠, 뭐."
"덕분에 집까지 편하게 왔어요."
"커피 사주셨잖아요. 맛있었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선생님."
느낌이 온다.
"오늘도 번호는 탈락인가요, 저?"
아, 이번엔 얼굴이 반칙이다.
이건 내 탓이 아니다.
저 빛나는 얼굴 때문이다. 그래서 약해진 거다. 그런 거다.
"..... 드릴게요."
".... 와 세상에."
"핸드폰 주세요."
숫자 하나하나, 꼼꼼하게.
잘못 누른 건 없겠지.
"이제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연락하세요."
".... 네."
"피곤하실 텐데 힘들잖아요. 시간도 아깝고요."
"......"
" 제가 빠르게 답장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헛걸음은 안 하셔도 될 테니까요."
이건 저 사람의 시간이 아까워서 그런 거다.
"... 와. 저 심장 터질 것 같아요. 번호 받는 게 이렇게 설레고 좋은 일이네요."
그렇게 웃으면서 말씀하시면 제 심장도 터질 것 같은데요...
씻고 나왔는데, 핸드폰이 번쩍번쩍한다.
[김석진입니다. 제 번호 저장해 주세요.]_21:17
[오늘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_21:17
딱 그 사람답다.
예의 바르고
[덕분에 집에 오는 길이 설레고 좋았어요.]_21:18
다정한
[설레는 건 제가 다 할 테니, 제 몫까지 푹 자요.]_21:30
[잘 자요.]_21:30
돌직구.
[잘자요.]_21:35
[잘 잤어요?]_7:25
[아침 꼭 챙겨 먹고 움직여요.]_7:25
[바쁘겠지만, 시간 날 때 제 생각 해주면 더 좋을 것 같네요.]_7:26
[오늘도 파이팅.]_7:30
낯설다.
며칠 째 아침마다 울리는 핸드폰이, 화면에 뜨는 다정한 연락이 익숙하지가 않다.
이른 아침 연락 오는 건 다 급한 호출 연락뿐이었는데.
시덥잖은 연락을 주고 받은지도 며칠 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락을 하더라.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스케줄도 바쁠텐데.
답장을...
어떡하지?
"하..."
에라 모르겠다.
[오늘도 파이팅 하세요.]_7:50
괜찮겠지.
언제나 늘 그랬듯이, 병원의 하루는 참 정신없이 지나간다.
눈 감았다 뜨면, 해가 졌더라.
몇 시간 만에 앉는 건지.
"괜찮냐? 오늘 겁나 뛰어다니던데."
"언제는 안 그랬던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하긴. 그건 그렇긴 하다."
"퇴근 안 하세요?"
"해야지. 너는?"
"저 당직입니다, 오늘."
"뭐, 먹을 거라도 좀 사다 줘? 너 오늘 밥도 제대로 못 먹었을 거 아냐."
여전히 다정하다, 선배는.
"괜찮아요. 여기 먹을 거 좀 있어요."
"김밥이라도 사다 줄게. 잠시만 기다려."
"아니 괜찮..."
바람인 줄.
바람처럼 사라지네. 뭐 저리 빠르담.
"와 죽겠다, 야."
"사람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야 넌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사람한테 그렇게 말해야겠냐 굳이?"
"뭔 의사가 맨날 죽겠대."
"나 오늘 진짜 바빴어. 핸드폰도 못 봤다니까?"
아, 핸드폰.
[점심은 챙겨 먹었어요?]_12:37
[바빠도 밥은 꼭 챙겨 먹어요.]_13:52
[많이 바쁜가 봐요. 시간 나면 답장 꼭 해줘요.]_17:03
생각도 못 했다.
너무 늦었으려나... 그래도
[이제 봤어요. 오늘따라 좀 바빴네요.]_20:48
답장해달랬으니까.
♬♪♪♬♬
엥?
[김석진]
"여보세요?"
"통화 괜찮아요?"
"아, 네네."
"누군데."
"잠시만."
밖으로 나왔다.
복도 조용하네.
"제가 일하는데 방해한 건 아니죠?"
와. 전화로 들으니까 또 다르다.
목소리도 좋네. 사기 캐릭터.
"아니에요. 방금 들어와서 앉았어요."
"쉬는데 방해했네... 미안해요. 오늘 많이 바빴어요?"
"네, 좀... 죄송해요."
"아니에요. 죄송할 일 없는데. 지금 통화해 주시잖아요."
"아..."
"목소리 들으니까 설레요, 저."
"....."
"통화로 목소리만 들어도 이렇게 좋네요."
또 훅 들어온다.
"밥은 챙겨 먹었어요?"
"아 그게..."
"목소리 보니까 안 챙겨 먹었네."
"오늘따라 좀 정신이 없었어요."
"저녁도 못 먹었어요?"
"네."
"흠..."
"왜요?"
"어떻게 해야 선생님 밥을 챙길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에요."
"....."
"도시락이라도 싸야 하나."
"네?"
"밥차나 출장뷔페 같은 걸 보내드릴까요?"
미치겠네.
"저희 식당 밥 잘 나와요."
"근데 선생님 못 드셨잖아요."
"시간이 없어서 못 먹은 거예요."
"그러니까요. 선생님 사무실로 보내면 늦더라도 밥 먹을 수 있잖아요."
"아니..."
"전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요. 할 수 있는 거 다 해주고 싶어요, 선생님한테는."
정신 차리기도 전에 두 번째 어택.
피할 수가 없다.
"저 오늘 연락 많이 기다렸어요."
"죄송해요."
"투정 한번 부려봤어요. 그래도 통화하니까 기분 좋네요."
"....."
"목소리만 들어도 설레네요. 통화가 이렇게 설레는 건지 처음 알았어요."
그러게요. 통화가 이렇게 간질간질하네요.
"오늘 퇴근 언제 해요?"
"오늘 당직이에요."
"아, 병원에서?"
"네."
"혼자는 아니죠?"
"네. 같이 당직 서는 동료 있..."
"ㅇㅇ아! 왜 나와있어. 복도에서 뭐해."
"어..."
"들어가자. 떡볶이 사 왔어."
".... 누구예요?"
"죄송해요. 들어가 봐야 될 것 같아요. 끊을게요."
"... 연락해요."
들킬뻔했네.
연예인이니까, 구설수 오르면 안 되니까.
"들어가요, 선배!"
"와 선배님 센스 대박. 미쳤다 진짜. 너무 맛있는 거 아니에요?"
"많이 먹어라. ㅇㅇㅇ 너도 많이 먹어."
"네, 먹고 있어요. 안 드세요?"
"너 많이 먹어.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으면서."
".... 퇴근 안 하세요?"
"왜. 나 갔으면 좋겠냐?"
"아뇨 그게 아니고..."
"야 근데 아까 누구 전화받고 나간 거냐?"
"... 어?"
"세상 당황한 얼굴로...."
"아 통화한다고 복도 나와있었던 거야?"
"아, 네."
"안에서 앉아서 통화하지. 난 또 나 기다린 줄 알았네."
"제가요? 설마요."
"왜, 나 기다릴 수도 있지."
"야야. 그래서 누구였는데."
"뭐가 그렇게 궁금하냐? 밥이나 먹어."
"아니 전화 오자마자 한껏 나 완전 당황했어요-하는 얼굴로 밖으로 후다닥 나가길래. 궁금하잖아."
"그냥 아는 사람."
"그냥 아는 사람?"
"어. 물어볼 거 있어서 전화했대. 야 떡 먹어 떡. 어묵도 먹고. 얼른."
입을 막아야 더 안 나불거리겠지.
"와 존맛 진짜. 역시 분식은 야식이지."
휴. 저거는 눈치가 빠른거야 없는거야.
하여간 도움은 안되는 놈.
조심해야겠다. 핸드폰 잘 넣어놔야지.
[아까 남자 목소리 들리던데... 누구였어요?]_2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