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처음 나누었던 내 두번째 키스도,
그녀를 잊게해준 너임에도,
결국 하늘은 널 앗아감으로 나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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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오늘은 어떤 노래 부를까?"
넌 이따금씩 선곡표를 내게 가져오며 곡을 추천해달라고 말하곤 했다. 내가 미안한 기색으로 거절할 손 치면, 넌 그래도 내가 리더라며 한번 더 물었었다. 그럼 이 곡은 어때, 하고 내가 선곡표에 적힌 아무 곡이나 손가락으로 집어주면, 넌 그럴줄 알았다며 씩- 웃고는 고마워! 라고 인사하며 보컬연습을 위해 트레이닝룸으로 들어갔다. 이 비내리는 밤, 네가 생각나는 이유는 그 때 내가 추천한 곡이 네 목소리로 녹음되어 내 방을 울리고 있기 때문일까.
창문을 열어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비는 추적추적 잘도 내렸다. 아무 생각 없이 비가 미워지기도 했다. 저 수많은 물방울들이 네 얼굴을 적시던 날, 내가 처음으로 네 앞에서 목놓아 울던 때가 생각나 괜시리 눈가가 발갛게 일기도 했다. 신은 왜 죄없는 널 내게서 앗아갔나. 아직도 난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니, 알고싶지 않다. 그저 이렇게 신을 원망하며 살고싶다. 적어도 넌 나에게, 무결점의 선인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크리스, 크리스, 하며 날 잘 따르던 내 옛 기억속 너는 눈물이 많았다. 부모님이 보고싶다, 친구가 보고싶다, 옛 여자친구가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보내왔다, 그냥 슬프다, 등등 너는 우는 이유도 참 많았다. 남자가 그래서야 되냐며 내가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넌 소매로 눈물을 훔쳐내며 강한 척 해보이기도 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너의 울음을 막기위해 널 안았을 때, 넌 더 서러이 울었다.
"좋아한다고, 내가 널 사랑하는 것 같아."
그렇게 말했을 때, 네 등을 토닥이던 내 손은 갈 곳을 잃은 채 공중에서 멈췄다. 모든 사고회로가 꽉 막혀 요지부동이었다. 언제부터 우리 둘은 서로에게 각별했을까. 다시는 사람에게 감정따위 가지지 않겠다던 다짐이 무너졌다. 그녀가 떠난 후, 넌 내 마음의 빈 곳을 찾아 스스로 들어왔다. 내가 손 쓸 틈도 없이, 그저 무방비상태였던 내게 넌 어떤 존재였나. 결국 난 널 잃었고, 또 다시 신에게 버려진채로 살아간다. 그 느낌이 싫어 방을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빗물이 내 바지 밑단을 잔뜩 적셨지만 개의치 않았다.
신은 참 잔인하다. 널 빌미로 붙잡은 그는 심신이 쇠약해진 내게 이리와 힘든 것을 모두 털어놓으라 두 팔을 벌린다. 나는 분별력을 상실한 채 너만을 보며 그에게로 걸어가 안긴다. 그는 불안한 미소를 지으며 묵묵히 듣기만한다. 끝은 똑같다. 모든것을 밝힌 내게 그는 돌이킬 시간이 없으니 혼자서라도 잘 살아가라 같잖은 해답을 내놓곤 네 목을 질질 끌며 내게서 멀어져간다.
정처없이 걸었다. 죽기살기로 집 앞에 붙어있던 사람들은 비가 거세지자 자리를 떠난 듯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곳, 너와 그녀를 떠나보냈던 그 곳.
"제게는..."
널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절 떠난 두 연인이 있었어요."
네가 원래 존재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 말한다.
"하나는 여인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정인이었습니다."
세가지 뜻을 가진 그 단어속에 네가 있다. 실재한다. 넌 내게 단 하나뿐인 정인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7월 7일…. 꼭 오늘같이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 그 둘은 절 떠났습니다."
날보며 웃던 얼굴, 울던 얼굴, 한없이 포근했던 목소리, 그 모든게 야속하게도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너무도 소중했던 사람이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어요..."
우산이 떨어졌다. 어깨가 떨리며 눈물이 차오른다. 내가 너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종대, 첸, 어떤 이름으로 널 불러도 메아리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수화기 속 앳된 목소리가 진정하라며 날 타이른다. 통화하고있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에게 의지했다. 칠흑같은 어둠 속의 전화기 한 대는 내게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금방이라도 널 따라갈 것만 같았기에, 신의 억지스러운 부름에 따라야 했던 그 순간의 니 얼굴이 생각나서.
-진정하고 그만 우세요, 제발요. 여보세요? 들리세요? 이과장님! 마포 4번에 자살위험자!!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는 내가 누군지 알까. 그저 직업정신으로 내 생명을 구하려 끝까지 수화기를 붙들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조금 있으면 경찰차나 구급차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다 이 곳으로 올 것이다. 이 새벽이라 통행하는 차들이 많지 않아 난 금방 눈치채겠지.
애초에 강에 뛰어들 목적으로 갔던 마포대교였다. 비가 조금 더 세차게 내리는지 툭툭거리는 소리가 내 생각을 더 복잡케 만들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서두르고 싶었다. 첸, 네가 보고싶다.
-크리스! 따라오지 마! 뒤로 물러서. 오지마, 제발 잘 살아
환청이었다. 분명 환청이었다. 너의 목소리가 다한 다음엔 곧바로 예의 그 안내원이 정신차리라는 말만 해댔기 때문이다. 너는 진정 내가 널 따라가길 바라지 않는 것일까. 눈물이 흘렀다. 또 이렇게 나는 운다. 널 잃은 후로 몇 번째인지 손가락으로 셀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넌, 나에게 특별 그 이상이었다. 모두가 널 부정할지라도, 넌 나에게만은 영원한 정인이다. 환청이라도, 잘 살게. 잡아줘서 고마워 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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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_휴 원래 결말은 이게 아닌데...
지금 써야할게 이게 아닌데...
또이렇게 하나의 망글이 탄생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