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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Nell - onetime bestseller
끼익, 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언젠가 김명수가 처음으로 사주었던 하얀 니트를 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미리 김명수가 내려놓은 커피를 잔에 따라서 빛이 들어오는 거실로 향했다. 햇빛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의자와 탁자를 가져다 놓은 김명수 덕에 가끔 이렇게 나른한 오후를 맞이 할 수 있었다. 베란다 저 넘어로 걸어가는 김명수가 보였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보다가 김명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밖이 추운지 손에 들고 나가던 목도리를 하는 걸 보고 살풋 웃음을 지었다. 햇살이 잔뜩 쏟아져내렸다. 창에 고개를 기대고 탁자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너 편식 엄청 심하네?"
야채가 잔뜩 남은 내 식판과 다르게 김명수의 식판은 깨끗했다. 물컹물컹하고 질긴, 혹은 기분 나쁠 정도로 아삭거리는. 그런 야채가 왜 좋은지 이해 못했다. 편식을 하니까 키가 안 크지, 하는 목소리가 좋았다. 우유를 먹으라고 타이르는 목소리도 좋았고, 야채를 남길 때면 먹으라며 입가에 야채를 들이미는 행동도 좋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야채를 안 먹은 게 아니었을까? 밖에 나가서 노는게 싫었던 내가 밖에서 처음으로 놀게 된 건 김명수 덕이었다. 어디서 축구공을 가져와 이리저리 차고 노는 김명수를 따라 어설프게 발을 놀렸다. 편식이 심한 나와 다르게 김명수는 뭐든 잘 먹으니, 그 때는 김명수가 훨씬 더 키가 컸다. 그래서인지 나는 좀처럼 김명수에게서 공을 빼앗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 뭐든지 처음은 김명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나는 김명수가 한시라도 내 곁에서 떨어져 있는게 싫었다.
"나랑 같이 있고 싶지?"
"…응"
그렇게 하면 같이 있어줄거냐는 내 물음에 김명수는 처음 내게 안녕, 하고 말을 걸었을 때처럼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날부터 싫어하던 우유를 먹었고, 야채를 먹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김명수의 손길을 따뜻했다. 그렇게 꼭 붙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어색해 보이는 내 교복과 달리 김명수의 교복은 김명수에게 매우 잘 어울렸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니 용돈이 늘었다. 꼬박꼬박 용돈을 받아 돈이 어느정도 모이면 김명수와 나는 집에서 같이 주말을 보내는 대신 어딘가로 나가 맛있는 걸 먹거나 놀러를 가기도 했다.
"다 묻었어"
꼬박 3년동안 김명수와 나는 그렇게 똑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졸업하는 날에는 부모님은 제쳐두고 둘이서 짜장면을 먹고 왔었다. 아무렇지 앟ㄴ게 내 입가에 묻은 것들을 손으로 닦아주는 김명수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똑같이 쓴 원서인만큼 나란히 같은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고, 심지어는 같은 반이 되었다. 즐거웠다. 김명수와 나란히 등하교를 하는게. 내가 늦잠을 자면 김명수가 나를 기다려주었고, 김명수가 늦잠을 자면 내가 김명수를 기다려주었다. 내게는 김명수 하나가 끝이라서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왜 갑자기 야채 남겨"
내게 다가오는 아이들을 나는 밀어냈고, 김명수도 그럴 줄 알았다. 나 때문에 여짓것 다른 친구를 사귀지 않아서인지 김명수는 이번에 다가오는 아이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제 친구들에게 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이는 걸 보다가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야채 안 먹어?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묻는 김명수를 무시하고 식판을 정리했다. 김명수의 말을 무시하고 야채를 남긴 것이 녀석의 심기를 건들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친구로 삼을 것에 대해 나도 기분이 나빠있는 상태였다. 한숨을 푹 내쉬고 제 친구들에게 가버리는 김명수가 미웠다. 가자마자 씩 웃는 김명수에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아닌 다른사람한테도 저렇게 잘 웃어주는구나, 싶었다.
"열아, 나 오늘 애들이랑 놀다가 들어 갈 건데… 혼자 갈 수 있지?"
친구가 생겼더라도 나와 꼭 같이 등하교를 하는 김명수 때문에 1학년을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 2학년이 되어서도 그렇게 같이 다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내가 제일 끔찍하게 여기는 그 날, 김명수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었던 그 날에도 하루종일 내가 아닌 친구들과 노는 김명수가 싫어서 야채를 보란 듯이 남겼다.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던 그 날부터 한 번도 떨어져서 등하교를 해 본적이 없었다. 김명수가 없는 건 싫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여 주고 가방을 맸다. 내 나름의 작은 반항이었다. 금방이라도 같이 가자고 할 것만 같았다. 잘 가, 내일 보자, 좋은 꿈 꾸고. 언젠가부터 내게 하기 시작한 인사였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내 볼을 두 번 톡톡 쳐주는 행동. 항상 집 앞에서 받다가 학교에서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꼭 김명수가 나에게서 멀어진 것 같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둡기보다는 밝았다. 가로등이며 편의점 등, 불빛을 내뿜는 것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항상 같이 있던 김명수가 없으니 겁이 났다. 결국 얼마 못 가서 편의점 옆 계단에 주저 앉았다.
"무서워, 혼자 못 가겠어"
같이 있고 싶으면 야채 먹어야 한다며. 예전에 김명수가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던 그 날은 잊혀질 수 없는 날이었다. 내 말에 김명수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쉰 뒤 어디야, 하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가지 않아 오겠지, 하고 생각했던 김명수는 30분이 넘어가도록 오지 않았다. 조금 멀리서 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전화를 걸기위해 폰을 꺼냈다. 단축번호를 누르려던 찰나에 문자가 왔다.
"이제 야채 다 먹을게, 나 혼자 두지 마…"
내 말에 김명수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내게 처음 말을 걸어주었던 그 순간부터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미안해, 하고 계속 귓가에 중얼거리는 김명수의 등을 토닥이며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는 내 방이었고, 내 옆에는 김명수가 누워 있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있는 벽지를 발라놓은 천장을 보며 오랜만에 하늘이 보고 싶었다. 이상하게 말을 안 듣는 몸을 움직여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들어왔지만 아랑곳 않고 창틀에 기댔다. 파란 하늘이 보고 싶었는데,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보며 같은 빛깔로 물든 구름을 쳐다봤다.
"뭐해, 일어났으면 나 깨우지"
허리를 감싸 안아오는 김명수의 팔을 붙잡고 창문을 닫았다. 등 뒤로 닿아오는 김명수의 가슴팍에 기대 눈을 감았다. 미안해. 내 목에 코를 부빈 김명수가 목에 입을 맞췄다. 끔찍했던 행동이 떠올라 김명수의 품에서 벗어났다. 김명수의 입술이 닿았던 곳을 옷소매로 닦았다.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김명수를 보다가 녀석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밥 먹자. 내 머리를 쓰다듬은 김명수가 나를 이끌고 부엌으로 향했다.
"조금만 기다려, 그새 다 식었다"
렌지 위에 냄비를 얹고 불을 켠 김명수가 나를 식탁 앞에 앉혔다. 가만히 앉아 있다보니 잠이 쏟아져 왓다. 눈을 감고 벽에 고개를 기댔다. 성열아, 자? 대답하지 않았다. 내 쪽으로 다가온 김명수가 내 뺨을 감싸 쥐었다. 미안해.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아른거리다가 퍼졌다. 이제 계속 같이 있어 줄 거야? 눈을 뜨고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김명수에게 물었다.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김명수가 입술을 맞물려왔다. 겁내지마, 괜찮아. 용케도 눈치 챈 김명수가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끓는다."
냄비에 들어있던게 끓으며 뚜껑이 들썩거렸다. 인상을 쓴 김명수가 불을 끄고 냄비를 가져왔다. 밥을 가득 퍼 내 앞에 놓아준 김명수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김명수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지그시 나를 보는 시선에 기분이 좋아졌다. 김명수가 퍼준 밥을 다 먹고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김명수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당연히 김명수가 잇을 줄 알고 눈을 떴던 나는 말도 없이 사라진 김명수에 짜증이 났다.
"왜 갔어"
김명수의 옷자락을 꾹 쥐고 입술을 삐죽였다. 색 웃는 김명수를 따라 학교로 향했다. 고작 며칠 사이에 학교는 뭔가 달라져 있었다. 이상하게 와 닿는 시선들. 김명수는 계속 같이 있어 줄 거라는 말과 다르게 내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했다. 계속 같이 있어준다며. 혼자 나를 두고 제 친구들과 어울리는 김명수의 옷자락을 잡았다. 킥킥거리는 장난끼 가득한 시선들이 모였고, 그 중에는 귀찮음이 닮긴 김명수의 시선도 있었다. 애써 귀찮음을 감추려는 듯 웃어보이는 김명수는 처음이었다. 결국 나중에 이야기 하자, 하고 내 손을 떼어낸 김명수가 제 친구들과 멀어졌다.
"야채 안 남긴다며"
놀란 듯 크게 뜬 눈이 싫었다. 나랑 같이 안 있어주면서. 입을 꾹 다문 김명수는 내가 식판을 정리하기도 전에 가버렸다. 미워. 순식간에 멀어진 김명수가 싫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교실에 앉아 기다려도 김명수는 오지 않았다. 됐어, 혼자, 집에 갈 거야. 똑같은 길. 어김없이 가로등과 편의점이 불빛을 잔뜩 쏟아내는 그런 길. 또 안녕, 이라고 속삭여오면 어떡하지? 김명수가 또 안 오면 어떡하지. 정말로 나랑 같이 안 있어주면 어떡하지…
"나 어제 과제한다고 못 자서 피곤해, 귀찮게 하지 마"
귀찮은게 티가 나긴했지만 애써 티내지 않으려는 듯 똑같이 나를 대하는 김명수를 보고 어렴풋이 느꼈던 그것이, 2학년이 되고 나서야 완벽하게 티가 났다. 김명수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항상 귀찮다는 듯 얼굴에 잔뜩 티가 나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혼자 슬퍼졌다. 조심스럽게 허리를 끌어 안으면 팔을 풀어내는 김명수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 분명 같은 공간이었지만, 나는 김명수와 같이 있지 않았다. 꼭 혼자만의 세계를 가진 것처럼 김명수는 점점 내게 쏟던 정성을 거두어 가기 시작했다.
"인사해"
내 여자친구. 완벽히 저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김명수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린 날이었다. 꼭 저가 잘생긴 것만큼 예쁜 여자를 하나 데리고 온 김명수가 예전처럼 웃으며 내게 말을 했다. 멀뚱멀뚱 여자를 보다가 인사를 하고 꼬박 2시간을 같이 보냈다. 내가 꼭 벽지라도 된 것마냥 나에게 시선 혹은 관심이 없었다. 여자가 가고 난 뒤에 김명수의 옷자락을 꾹 쥐었다. 명수야, 하고 불렀던 목소리가 축축해서 나도 적지않게 당황을 했었다. 인상을 찌푸린 김명수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왜 우는데. 포근하고 달콤했던 그런 분위기는 언젠가부터 없었다.
"미안해…"
나를 찾지 않는 김명수가 미워 찾으러 온다 하여도 가지 않을 거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딱 3주를 채우고 찾아온 김명수의 사과에 굳게 먹었던 마음이 푹, 풀리고 말았다. 환하게 웃어주면서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는 김명수에 기분이 좋았다. 꼭 그간 있었던 일이 사실이 아닌 것마냥 김명수는 다정하게 나를 대해주었고 혼자만의 세계에 내가 녹아들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김명수는 예전처럼,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처럼 돌아왔다.
-성열아
뚝 끊겨버린 전화에 멍하게 있다가 폰을 내려놓았다. 아까처럼 주먹을 둥글게 말아쥐고 탁자를 쳤다. 딱, 하고 들리는 소리와 손가락 마디에 와닿는 감촉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
창에 기대어 햇살을 받다가 잠이 들었다. 깜깜해진 밖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작기만한 강아지가 뽈뽈뽈 거실 바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아지 사료를 안 챙겨 준 것 같아 그릇에 사료를 퍼주고 소파에 앉았다. 갑자기 울리는 진동에 놀란 강아지가 사료를 열심히 먹다가 고개를 휙 들었다. 손을 뻗어 폰을 잡으려 팔을 휙휙 저었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던 폰이 손에 닿았다. 전화가 끊기기 전에 얼른 받아야지 하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뭐해?
김명수의 물음에 그러자고 대답을 했다. 따뜻하게 입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에 방으로 향했다. 입고 있던 흰 니트에 짙은 남색 코트를 꺼내 입고 쫑쫑쫑 밖으로 향했다. 집 앞에 가만히 서서 흰 입김이 나오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으니 김명수가 금방 왔다. 웃으며 손을 내미는 김명수의 손을 잡았다. 뭐 먹으러 갈 건데? 내 물음에 글쎄, 하고 대답하는 김명수의 뒤통수를 보다가 살며시 웃었다. 성열아.
"어?"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찍어내리는 김명수를 향해 웃어보였다. |
하... 이걸 시작으로 하나하나 옮깁니다! 글은 차차 삭제될거구요. 놀라지 마세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