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에 배우 된 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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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생선구이 정식이 맛있는데, 아가 생선구이 괜찮아?"
"...네... 괜찮은데....ㅠㅠ..."
"괜찮은데 왜 울상이야? 다른 거 시켜줘? 불고기?"
"...아... 아니요! 생선구이 좋아요... 좋은데... 얼떨떨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웃으세요...ㅠㅠ...."
"ㅋㅋㅋㅋㅋ귀여워서ㅋㅋㅋㅋ귀여워서 웃었어ㅋㅋㅋㅋ"
결국 난... 대한민국을 빛내는 여섯 명의 배우와 한정식 집을 왔다. 딱 봐도 비싸보이는 가게 내부에 놀랄 새도 없이
이미 예약을 해뒀는지 자연스럽게 룸으로 안내해주는 직원을 따라 룸으로 자리를 잡았다.
생선구이고 불고기고... 다 모르겠고......저 좀 그만 쳐다봐주세요.....ㅠㅠ
"영화 일은 언제부터 시작한거야? 대학 졸업하고 시작한건가?"
"..아... 네.. 제작년에 졸업했고 해변이라는 작품 들어갔었는데... 엎어져서... 촬영은 이 작품이 첫 작품이에요."
"아, 그래? 일은 어때? 힘들지는 않고?"
"네네...! 힘들지는 않구..... 재밌는데...... 아직 막내라.. 눈치 보기 바쁜 것 같아요"
"그렇지.. 막내는 다 그래. 주지훈 봐. 서른 아홉 먹고도 막내여서 물 따르기 바쁜 거ㅋㅋㅋㅋㅋ"
전지현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니 내 왼쪽에 앉은 주지훈은 물컵 7개를 펼쳐놓고 물을 따르고 있었다.
저런 건 내가 해야 하는데.....!
"아, 그거, 그거 제가 할게요....! 저 주세요....! "
"됐어, 쟤가 하게 냅둬. 꼬맹이 너는 가만히 앉아서 맛있게 먹고 잘 생각해보고 긍정적으로, 어?"
"...아....넵... 그래두 제가 제일 어린데....."
"와~ 지금 어리다고 자랑하는 거야? 나는 그래도 아직 마흔 아니다."
"아니, 아니...ㅠㅠ 그게 아니구ㅠ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장난이야, 장난. 정우 형 말 대로 손 까딱 하지 말고 맛있게 먹기나 해"
그러곤 내 앞에 물잔을 놓아주었다.
.....지금 다들 나만 보고 있는 거지? 물도 못 마시겠다...정말.....
"식사 준비해드릴게요~"
곧 주문한 음식들이 들어오고 내 자리 앞에 맛있게 구워진 갈치가 놓여졌다.
자취생이라 평소에 못 먹는 생선구이라 원래라면 허겁지겁 먹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래도 어른들이니까.... 먼저 수저를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겠지...?
"아가, 안 먹어?"
"여기 진짜 맛있으니까 먹고 더 시켜도 돼. 마음 편히 먹어"
그렇게들 쳐다보시면 못 먹는다구요.....ㅠㅠ
내가 숟가락을 들 때까지 쳐다볼 기세라 결국 밥을 한 숟가락 퍼 먹었더니 그제서야 다들 식사를 시작하셨다...하....
저어기 있는 계란말이도 먹고 싶고 저어어어기 있는 갈비찜도 먹고 싶지만 그걸 먹으려면
내 오른쪽 하정우, 내 왼쪽 주지훈 앞을 지나쳐 손을 뻗어야 한다. 그럴 수 없지....
그리고 나는..... 생선살을 잘 못 바른다. 고등어면 몰라도 갈치는 절대 못 바른다.
그냥 밥만 먹자.... 그냥 얌전히 밥만 깨작깨작 거리고 있으니
"입맛에 안 맞아? 왜 밥만 먹어"
"너보고 계산하라고 할까봐 안 먹는거야?ㅋㅋㅋㅋㅋ"
"지훈이가 계산 할 거니까 걱정 말고 배부르게 먹어, 강아지"
"아, 형!! 이런 건 형들이 계산하셔야죠!!!"
"꼭 이럴 때만 연장자 우선이지?"
"ㅎㅎㅎ말은 저렇게 해도 우성오빠랑 정재오빠가 계산할거야. 걱정 말고 먹어"
"공주, 진짜 입맛에 안 맞아?"
스물 여섯인데......생선살 못 바른다고 하면 좀 그런가..?
"아...생선살을 잘 못 발라서...."
"아이구... 애기네, 애기"
피식 웃으며 내 갈치구이 접시를 가져간 하정우는 능숙하게 뼈를 바르고 먹기 좋게 잘라 내 앞으로 갖다주었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아까부터 힐끔힐끔 쳐다보던 걸 느꼈는지
계란말이와 갈비찜을 비롯해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귀신 같이 내 앞 쪽으로 놓아준다.
"어... 괜찮은데.... 감사합니다...ㅎㅎㅎ..."
"뭘 괜찮아.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더만. 나물반찬은 손도 안 대고, 완전 편식하는 꼬맹이네"
저 꼬맹이 아닌데요ㅠㅠ
그렇게 소소하게 영화 얘기, 일상 얘기를 하며 식사를 마쳤을까, 식후 다과와 음료를 주문 받는다며 직원이 들어왔다.
"아가, 음료 뭐 마실래?
"애기니까 커피 말고, 주스나 에이드? 아니면 아이스티도 있네"
"계절과일 주스 이런 건 없나?"
"언니, 언니 수박주스 이런 거. 요새 수박주스 많이 팔던데"
"수박주스 있네. 수박주스 먹을래?"
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좋아하는데요..ㅠㅠ 저 얼죽아 회원인데....ㅠㅠ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꽤 나다보니 나를 정말 애기로 보는건지... 본인들은 다 아메리카노, 라떼 종류를 주문하면서
내 음료를 뭘 할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걸 보며..... 아메리카노는 집에 가는 길에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네에... 수박주스...."
"디저트는?"
"...음....저 그냥 에그타르트 한 개만..."
에그타르트만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타르트를 종류별로 시키는 바람에 내 앞 쪽으로는 수박주스와 함께 여섯 개의 타르트가 놓여졌다.
"저 이거 다 못 먹는데요ㅠㅠㅠㅠㅠ"
"다 못 먹으면 포장해가면 되지~ 걱정하지 말고 먹으세요, 내 새끼'"
언니가 그렇게 예쁘게 웃으면서 말하시면.......제가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잖아요.....ㅠㅠㅠㅠ
식후 아메리카노 대신에 식후 수박주스를 쪼로록 마시며 타르트를 야금 야금 먹고 있는데
저를 향한 눈길들에 포크를 문 채 고개를 들면 여섯 명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왜요..?"
"아직 성급한 거 아는데"
"......"
"같이 하자, 영화."
"그래~ 같이 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우성이 형이랑 정재 형이 이런 거 맨날 사줄거야. 어때? 끌리지?"
"주지훈 빼고 아가만 맛있는 거 매일 사줄게. 같이 하자."
"강아지랑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언니가 많이 도와줄게. 응?"
"정말 하기 싫은 거면 안 해도 돼. 근데 고민 중이라면 같이 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공주야"
아.......
"....저는 진짜 진짜... 연기 해본 적도 없고 카메라 앞에 서본 적도 없어서..... 아, 하기 싫다는 게 아니구요.... 제가 못해서 민폐 끼칠까 봐..."
"너 재능 있어. 아까처럼 그렇게 짧은 시간에 집중하는 것도 배우한테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고"
"아...."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진로를 선택하라고 하는 거, 너한테 힘든 일이라는 거 알아. 그래도 한 번만 용기내주면, 우리가 옆에서 많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썩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능이라 그래."
"그건 그래. 빈말이 아니고 은솔이 너 정말 재능 있어"
그렇게.... 그렇게 쳐다보시면서 설득하시면.... 제가 안 넘어갈 수가 없잖아요......
"....근데....저는 제작부고.... 제가 갑자기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 아, 분량이 많지 않으면 괜찮겠지만... 아까 수정하신다고 하셔서...."
"아, 그건 걱정하지 말고. 이미 윤감독님이 너네 제작사 대표랑 얘기 끝냈어. 꼬맹이만 오케이하면 윗선에서 알아서 정리해줄 거야. 당연히 출연료도 나갈 거고."
"...저희 대표님이 오케이 하셨어요..?....."
나를 이렇게 한 순간에 버린다고?????? 어??????? 사람 좋은 웃음 지으면서 잘해보자고 했던 거 다 거짓말이었네....ㅡㅡ
아, 물론 버린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 은솔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은솔이 뺏어가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한 번 쯤은 해야 하는 건 아니야?
"윤감독님이 싹싹 비셨대. 너 빼주면 안 되냐고. 그러니까 잘 생각해봐."
치....
"....진짜...연기 한 번도 안 해봤는데....그래도 괜찮아요.....?"
"그럼, 당연하지. 시나리오 수정되면 새로 준비해야 할 것들도 있고 콘티도 다시 짜야 하고... 빨라도 2주는 있어야 촬영 들어갈 거야."
"그래, 그 동안 우리가 많이 도와줄게. 걱정 하지마ㅎㅎ"
하.... 이 영화....잘 되겠지..? 분명히 대박 날 텐데.....
"...아...."
그럼 지금처럼 평범하게는 못 살겠지? ....지금보다 돈은 많이 벌겠지만.... 그래도...
"....어....."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시면.....저보고 어떡하라구요...ㅠㅠ 하......
"....네에.... 할게요....영화...."
"그럴 줄 알았어, 꼬맹이. 잘 생각했어."
하정우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주지훈은 타르트를 먹기 좋게 잘라주었다. 정우성과 이정재는 감독님과 통화를 하러 나갔고 전지현과 김혜수는 내 앞에 앉아 흐뭇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정확히 2주 후, 새로운 시나리오가 나왔다며 감독님은 내게 시나리오를 보내주었고 제일 앞 장에는
《이나 역 배우 유은솔》
이제야 실감이 난다...
지난 2주 동안 이틀에 한 번 꼴로 선배님들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아 물론 나는 커피를 못 먹었다. 저 얼죽아 회원이라구요....ㅠ
아무튼.. 커피를 마시며 시나리오 얘기도 하고 얼떨결에 연기를 하게 된 나를 위해 조언도 해주시고... 아무튼.. 결론은 조금.... 친해졌다.
또 언니들은 시커먼 남자들 사이에 이쁜 여동생이 생겨 좋다며 나를 데리고 피부과, 마사지샵, 헤어샵, 백화점을 돌며 이것 저것 사주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름 밤의 이나 역에 맞추어 머리도 조금 자르고 의상도 맞추었다.
그리고 오늘 수정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리딩 겸 연습을 하기 위해 회의실로 갔다.
며칠 전에 식사를 하긴 했지만 이렇게 각잡고 만나니까 괜히 긴장되어 물만 마시고 있으니 뒤늦게 들어온 감독님이 나를 보고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다.
"머리 다듬으니까 완전 이나 같네. 좋아. 그럼 일단 편하게 한 번 읽어볼까?" - 윤감독
아악....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