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먼트 하면 또 아티스트 컴퍼니지."
"그렇지. 아티스트 컴퍼니지. 우리 회사에서 맡는 걸로 해"
"에헤이, 이 형들 밑밥 까시네. 촬영 끝나면 은근슬쩍 계약서 들이밀려고 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아시나.
"아, 뭔 계약이야ㅎㅎㅎ 촬영하는 동안 케어해주는 정도지ㅎㅎㅎㅎㅎ 그렇게 매니저들이랑 안면 트면 뭐, 계약 할 수도 있겠지만ㅎㅎ"
"이봐, 이봐. 은솔 저 계략에 넘어가면 안 된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가?"
"그래, 혼자 어떻게 다녀. 촬영이 매번 낮에만 하는 것도 아닌데"
"너는 빠지고. 꼬맹이, 딱 정해. 아티스트 컴퍼니야, 워크하우스 컴퍼니야."
이렇게 나오시면 제가 너무 곤란한데요....
편하게 고르라면서 은근히 압박하는 듯한 눈빛에 어쩔 줄 모르고 볼펜만 만지작 거리다 결국....골랐다....
"....저어는.....하정우...선배님........ㅠㅠㅠㅠㅠㅠ...죄송해요ㅠㅠㅠㅠ"
하정우 선배님이 처음 내게 말을 걸어주기도 했고 몇 마디 더 먼저 나눴다고 쬐끔 더 편한 느낌이라 워크하우스 컴퍼니를 선택하고는
마치 죄인이 된 것 마냥 고개를 푹 숙이니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우성 선배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강아지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대신 다음에 도장 찍을 땐 우리 회사 와야 한다?"
"아.....ㅎㅎㅎㅎㅎ...그거까지는 제가..... 아직 생각을 안 해봐서....ㅎㅎㅎ"
"꼬맹이, 저 형들 말 듣지마. 완전 장사꾼들이니까. 너는 그냥 얌전히 우리 회사에 있으면 돼."
"...아니.... 제가..... 거기까지는 정말 생각을 안 해봤는데.....ㅠㅠ"
"또 울려고 하네, 은솔이. 형들은 그 나이 먹고 애를 울리고 싶나. 뚝, 예삐."
안 운다구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번 작품은 어떻게 우연히 하게 됐지만.... 앞으로 계속 배우를 한다는 건 아직 깊게 생각을 안 해봤는데
선배님들은 당연히 내가 배우를 계속 할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해주시니까 고맙기도 하고 또 남들은 어렵게 찾는 소속사들인데 내게 활짝 열려있다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놓이긴 한다.
그렇게 촬영하는 동안에는 하정우 선배님이 대표인 워크하우스 컴퍼니에서 나를 케어해주기로 결정됐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신난 선배님은 스케줄용 새 차, 매니저, 스타일리스트까지 붙여주려고 하는 걸 부담스럽다고 울먹거렸더니
전담 매니저까지는 아니어도 운전해줄 사람은 필요하다며 운전만 담당해주는 로드 매니저와 예전에 자신이 쓰던 차량을 내주기로 했다.
하아..... 나 진짜로 연예인 되는거야...? 이렇게 갑자기....?
수정된 시나리오가 나온 후 정확히 3주 뒤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 준비를 하는 3주 간의 시간 동안 선배님들은 별다른 스케줄이 없으면 매일 같이 회의실로 나와
연기 연습하는 것과 캐릭터 분석하는 걸 도와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촬영은 생각보다 어려울 때도 있었고 생각보다 간단할 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이나에 점점 몰입할 수 있었고 그렇게 5개월 간의 촬영이 끝이났다.
하정우 선배님 소속사에서 케어를 해주신 덕분에 촬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촬영하면서 마주치는 스탭들이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배우로 대해주시고 또 챙겨주셔서 다행이었다......
때로는 버거워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때면 귀신 같이 알고서 고민상담을 자처 해주는 선배님들 덕분에 아무 탈 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워낙 술을 좋아하는 남자 선배님들 때문에 술자리를 자주 가졌었는데 나만 술을 못 먹게 했다.
아예 못 마시게 한 건 아니지만 아직 안 취했는데 취한 거 같다며.... 그만 마시라며...... ㅠㅠ
결국 쫑파티 때 인내심이 폭발해버려서 그만 마시라는 말도 무시하고 부어라 마셔라한 덕분에 거하게 취했었다.
몸도 못 가누는 나를 겨우 집까지 데려다 준 막내 주지훈 선배님이 현관에 나를 쑤셔 넣고 꿀밤을 때렸더라지....
정말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고 촬영이 끝나서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선배님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불러내 밥도 사주고 옷이며 신발이며 악세사리며 선물을 주기도 했다.
"저번 주에 파리 다녀 오는 길에 샀어. 공주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목걸이....
"아가 피부가 하얘서 이거 입으면 천사 같을 것 같아서 샀어. 마음에 들어?"
원피스......
신발.......
"자, 면세점에서 너 생각나서 샀어. 면세점이라 싸게 샀으니까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받아."
향수......
"별 건 아니고... 내 옷 사러 갔다가 이쁘길래 하나 샀어. 노란 게 강아지가 입으면 병아리 같을 것 같아서."
블라우스.....
"이쁘지? 와~ 완전 은솔이 너 꺼네. 매봐, 얼른. 아, 너무 이뻐."
"응, 예삐 너. 너가 안 나가면 누가 나가?"
"꼬맹이 옷 골라야겠네. 이제 슬슬 도장 찍어야지. 스타일리스트도 붙어야 할 것 같은데."
"아, 아니..... 너무 당황스러운데......."
"너가 우리 영화에 제일 중요한 인물인데 너가 안 나가면 어떡해. 당연히 나가야지. 아, 그리고 보도자료도 뿌릴건데, 괜찮아?" - 윤감독
보도자료...? 무슨 보도자료...?
"....보도자료요?"
"응, 아무래도 아무런 언급도 없이 제작발표회 나가면 질문 폭발할 것 같아서. 미리 너에 대해서 알리려고 하는데, 불편하면 얘기하고." - 윤감독
아....... 분위기를 보아하니 제작발표회를 피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당일 날 끊이질 않는 질문을 받는 것보다는 미리 자료가 나가는 게... 낫겠지.....?
......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지..?
"....네에......괜찮아요... 당일 날 질문 폭탄 받으면 저 진짜로.....멘탈 터질 수도 있어요....ㅠㅠ"
"은솔이 혼자 있는 거 아니고 우리 다 같이 있는 거니까 너무 떨지 말고, 또 곤란한 질문 있으면 답 안해도 돼. 우리가 알아서 넘길게."
"....네에...ㅠㅠ 언니이이.....ㅠㅠ"
....그래.. 뭐, 고작 신인 배우에 대한 기사가 얼마나 이슈되겠어. 괜찮겠지...
그리고 이틀 뒤, 인터넷은 내 이름으로 도배가 됐다......
[초특급 캐스팅으로 화제인 "여름 밤", 신인배우 유은솔 누구?]
[영화 스탭이던 그녀, 현장에서 캐스팅 되어 "여름 밤" 출연]
[스탭에서 배우로, "여름 밤" 이나 역의 유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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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스탭이었는데 현장에서 캐스팅 됐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