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사랑하려 합니다
w.1억
BGM -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곽진언
누군가 그랬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사람과 함께 있었을 때 있었던 모든 순간들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그저 남을 위해 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도 결국엔 그 누군가가 하는 말을 믿고 싶어졌다.
여름이 싫은 나와, 여름을 좋아하는 내 친구는 정말 안 맞는다. 옷은 무조건 딱 달라붙은 옷이어야 하는 친구와, 무조건 헐렁한 옷을 입어야 하는 나.
그리고 밤 10시만 되면 재미있는 드라마를 본방사수 해야 하는 친구와, 그런 친구가 신기한 나.
이 친구랑 같이 산 것만 지금 6년이 넘는다. 아, 그러고보니 벌써 우리가 26살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니까.
요즘엔 약속 하나 없이 집에만 있던 친구는 열심히 화장을 하더니, 이제는 화려한 귀걸이까지 끼고 있었고, 나는 그런 친구를 한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어디 가?"
"응. 나 자주 가는 술집에 이종석 떴대. 나 걔 실물 진짜 궁금했거든. 당장 가줘야지."
"아..., 그래?"
"응. 야야, 귀걸이 이게 나아, 이게 나아?"
"오른쪽 거."
"오케이.. 나 그럼 나간다?
"잘 갔다와."
친구 이름은 문가영이고, 나랑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다. 대학교도 같이 다니면서 같이 자취를 하게 됐는데. 26살이 된 지금까지 붙어다니고 있다.
나가기 싫어하는 나인 걸 알기에 굳이 같이 가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 가영이는 결국 썸남과 함께 술집에 간다고 했고, 나는 잘 갔다오라고 손을 흔들어준 후에야 TV에 시선을 두었다.
채널을 돌리면 음악방송,영화,드라마 등등 나오는데 저 사람들이 조금은 많이 부러웠다. 예쁘고 잘난 사람들이 못난 사람들보다 더 고평가를 받고 쉽게 TV에 나올 수 있겠지?
저런 사람들은 돈도 많이 벌고.. 하루하루 살아갈 때마다 노후엔 뭘 해야 하나 고민도 안 해도 되고, 참 좋겠다.
갑자기 비밀번호 치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턱을 괸 채로 문쪽을 봤다. 가영이가 가방을 놓고갔네- 하고 웃으며 가방을 챙겨 나갔고.. 나는 고갤 저었다. 역시 너다워.
혼자 지루하게 채널 돌리며 재미없는 프로그램만 보고 있는데 배게 옆에 둔 핸드폰 진동 소리에 화면을 보니, 너무 오랜만에 전화를 주는 아는 동생 녀석에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 진구야. 무슨 일이야? 전화를 다 주고.. 그것도 늦은 시간에."
- 아, 누나 잘 지냈어?
"잘 지냈지. 용건이 뭔데?"
- 아, 이 누나는 눈치가 너무 빨라서 큰일이야.
"질질 끄는 건 딱 질색이야, 얼른 말해."
- 이게.. 전화로 얘기하긴 좀 그렇고..! 잠깐 만날 수 있어? 잠깐이면 돼.
지금? 하고 눈만 굴려 시계를 본 나는 잠깐 고민을 하는 듯 했다가, 곧 상대에겐 보이지도 않겠지만.. 고갤 끄덕이며 '그래'하고 대답을 했다.
원래 이 친구의 성격상 정말 쓸데없는 일로 나를 밤에 부를리가 없어서, 너를 한 번만 믿어보기로 했다. 집에만 사는 나를 밖으로 끌어들이다니.. 너도 참 대단해.
"…미안해. 밤늦게 불러서.. 부탁할 사람이 누나밖에 없어서.. 대신..! 내가 커피 쏠게.."
"그래. 어떤 부탁이길래 밤 11시에 사람을 불러? 이유 좀 들어보자."
"누나 요즘에 일 하나?"
"그냥 엄마랑 카페 하지. 근데.. 막 사람이 많이 오고 그러진 않고.. 그냥 뭐.."
"아, 그래? 누나 일 하는 거 생각도 못 했다. 작년에는 누나가 학교 다녔으니까.."
"…그렇지? 작년엔 졸업반이어서 정신 못차리고 있었는데."
"응. 맞아."
"그래서 뭐."
"아, 그래!..우리 회사에 톱스타 한명 있는데. 그 사람 매니저가 줄줄이 다 관두고 아무도 없거든, 주변에.
대표님이 혹시라도 매니저 할 사람 없냐고 하길래.. 근데 누나가 바로 생각났어.. 딱 한달!이면.. 되거든."
"톱스타? 근데 왜 줄줄이 관둬?"
"아, 그게.. 사실은 성격이 좀 지랄 맞거든."
역시 뜬 새끼들은 거만해져서 저런다니까. 저래서 내가 연예인들을 별로 안 좋아해.. 진구도 많이 힘들었는지. '지랄'를 강요하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도 욕이란 걸 하는구나, 진구야. 내가 아무 대답도 안 하고 진구를 바라보면, 진구는 내가 안 한다고 할까봐 불안한 듯 날 바라보며 말했다.
"누나 먼저 생각나서 매니저 일 해본 적은 없지만, 사람 케어는 잘할 거고, 운전도 가능하다고 말했거든. 그랬더니 아무나 데리고 오라고.. 되게 급하셔서."
"그래. 나도 한 지랄 하잖아. 사람 케어는 잘 하긴 해. 근데!.. 그렇게 톱스타 매니저 일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게 맞긴 해? 말이 안 되는데? 대형소속사잖아?"
"지금 관둔 매니저만 하나..,둘,셋..넷..... 어.. 여섯명 정도 돼. 근데 이게 1년만에 일어난 일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대표님도 지친 거지. 톱스타는 회사에 잡아둬야 하는데.. 톱스타는 말썽이지.. 답이 없잖아."
"얼마나 더러우면."
"근데 누나.. 왜 누구냐고 안 물어봐?"
"연예인 이름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어."
"아.. 하긴.. 정해인이 누구냐고 물었던 사람이지, 누나.. 아, 이걸 말 안 했네. 월급은 한달에 300이야. 대표님이 일 잘하면 더 빡세게 주신다고 했어. 어때? 솔깃하지?"
"많이."
"급하니까 빨리 대답해줘. 할 거야?"
"지금 당장 대답 하라고?"
"응. 많이 급하니까 이 시간에 누나한테 달려왔겠지? 나 한 번만 살려주라, 응?"
살려달라며 두손을 모아 비는 진구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얘가 이런 성격이었나.. 원래 같으면 미안하단 말만 백번은 넘게 했을 텐데. 너도 일하면서 성격이 변했구나.
엄마랑 카페 일 하면서 월 몇십만원 받으며 산다, 아니면 눈 한 번 꾹- 감고 톱스타 따까리 짓 하고 300만원을 받는다.. 솔직히 고민할 것도 없었지만, 비싼 척 고민하는 척 하다가 '콜'을 외쳤다.
톱스타들은 비리가 그렇게 많던데.. 조금은 기대가 됐다. 나와 앞으로 함께 지내야할 톱스타도 아마, 비리 몇개쯤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겠지.
"뭐? 톱스타? 그게 누군데?"
가영이의 말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이름 하나 알아오지도 못 했냐며 괜히 성질을 내는 가영이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내가 알아야 돼?
"난 연예인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감쪽같이 가면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완전 혐오한다고."
"야 일하면서 가면 안 쓰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냐? 근데 너 어디가냐?"
"톱스타 보러."
"둘이서 보재?"
"아니? 그 사람이 좀 보자고 했대. 둘이서는 아니고, 셋이서 보겠지."
"엄청 궁금하네.. 낮도 아니고, 이 밤에 부른 거 보면 어지간히 바빴나보다. 만나면 누군지 카톡으로 좀 알려주라. 너무 궁금해."
"어유.. 알겠어. 일단 나 나간다. 늦었어."
"응! 어여 가~"
가영이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집에서 나왔다. 오늘 하루종일 날이 흐렸다. 밤이 되니 그렇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습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또 비가 오려나.. 혼자 중얼 거리며 택시를 탔다. 약속장소로 향하면서 택시 안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에 흥얼거렸다. 막상 만나러 가니까, 누군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대로 정말 가면을 쓰고 다니는 가식덩어리일 뿐일까?..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땐, 한적한 공원이었다.
밤이기도 하고, 날씨도 비가 올 것만 같으니 사람들은 한두명 정도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진구는 어디있지.. 혼잣말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진구에게 연락을 하려고 핸드폰을 켰을까.
타이밍 좋게, 진구에게서 오는 전화에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어, 여보세요."
- 어, 누나 도착했어?
"응. 지금 내렸는데 네가 안 보이네?"
- 난 급한 일이 생겨서 회사에 왔거든.. 오늘은 둘이서 만나야 될 것 같아. 불편하겠지만.. 미안해.
"됐어. 바쁜데 어쩌겠어.. 근데 그 사람은 어디있는데?"
- 공원 앞에 주차했을 건데..
"아, 검은 차?"
- 응.
"알겠어. 끊어봐."
검은차로 다가가 창문에 똑똑- 노크를 하면, 곧 차 문이 열린다. 너무 가차없이 열리는 문에 박을 것만 같았고.. 예의가 없단 생각에 인상을 쓴 채로 뒷걸음질을 쳤다.
어디 한 번 얼굴이나 보자! 재수 없는 것.. 속으로 읊으며 고갤 들어 문을 닫는 남자를 보았다.
"……."
tv 잘 안 보는 나도, 연예인한테 관심이 없는 나도 이 사람 쯤이야 너무 잘 안다.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성격까지 좋다고 꽤 유명하다. 그리고 이 사람은 데뷔한지 3년 밖에 안 됐는데 너무 크게 떠서 더 잘 안다.
그치만... 이런 싸가지. 사람이 다칠 뻔 했는데 싸가지 없게 내려다보기만 해? 역시 기대를 하면 안 됐지. 그래도 내가 이 쪽보다는 좋은 사람인 건 확실하니까, 내가 먼저 굽신 거려야 겠단 생각에 나도 가면을 쓴다.
"안녕하세요. 진구 통해서.."
"얼마 받기로 했어요?"
"네?"
"한달 월급 얼마 받기로 했냐고."
어디서 반말질이야? 진짜 이 사람이 미쳤구나? 가면쓰고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성격상 그럴 수가 없었다. 어색하게 웃고있던 표정을 굳히고선 조금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300이요."
"얼마나 일하는데."
"한달."
"그럼."
김정현은 내 말에 눈썹을 작게 움직였다. 마치 내게 무언가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왜? 난 그저 너한테 인사 했을 뿐인데? 전혀 기분 나쁠 포인트가 없었는데, 왜?
그는 곧 지갑에서 수표 몇장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고, 나는 그 수표를 받지도 못한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뭐, 어쩌라고?
"1000만원이면 됐지. 한달 동안 일 했다 쳐."
"일도 안 하고 이 돈을 그냥 받으란 소리예요?"
"난 매니저 같은 거 필요 없어. 그러니까 이거 받고 네 할 일 찾으라고."
"전 기분 나쁘네요. 들었던 것 보다 더 큰 돈을 주는 것도 저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구요. 일 했다 치라는 말도 기분이 엄청 나빠요."
그의 손에 들린 수표를 받지 않고, 가만히 올려다보면, 그는 수표를 내 몸에 무심하게 던졌다. 그리고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미쳤구나,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한데요? 당장 사과해요. 나같은 보잘 거 없는 일반인들은 그쪽 처럼 돈이 없어서, 자존심도 없을 것 같아요? 진짜 확 사람들한테 당신 실체 밝히기 전에..!"
"밝혀."
"뭐?"
"내가 망하든, 말든 정말 상관 없으니까. 네가 하고싶은대로 해. 이 돈은 네가 가지고싶으면 가지고, 버리고 싶으면 버려. 난 줬다고 생각할 거니까."
"미친놈. 역시 연예인들은 다 똑같아. 조금이라도 인간이길 기대하고 온 내가 잘못이지. 그쪽 이렇게 계속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하나도 안 무서워."
"……."
"죽는 것도 안 무서워."
난 원래 말싸움이 지는 사람이 아니다. 지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라 이기려면 논리를 따지지 않고 막말까지 내뱉는 사람인데.. 나는 왜 이 사람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걸까.
죽는 것도 무섭지 않다는 말에, 이 사람의 표정에 정말 많은 것이 담겨져 있는 것만 같아서 내 스스로 입을 막아버렸다.
"귀찮게 하지 말고.. 돈 받고 그냥 가. 누구랑 상대하는 것도 이제 지쳐."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차에 타버리고, 가버리는 김정현에 나는 여전히 벙어리라도 된 것 처럼 서서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바닥에 뿌려진 수표를 줍기 시작했다.
진짜 저런 미친놈.. 진짜 미친놈..
- 미안해.. 누나가 힘들겠지만.. 부탁할게. 우리 회사에 잘나가는 연예인이 정현이형 뿐이라.. 형이 잠수 타버리면 우리가 곤란해지거든...
그래서 무조건 정현이형 마음을 돌려야 돼. 누나가 붙어서! 멘탈 치료 좀 해주라.. 돈 더 얹혀줄게! 응?
진구네 회사도 돈줄이 끊기면 안 되니까 김정현을 붙잡는 것 같은데.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어놓고서도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완전 싸가지한테 가서 뭘 말해봤자 분명히 또 싸가지 없이 수표만 던져댈텐데.. 내가 여기서 뭘 어떻게 더 해야 되냐? 어?
그래도.. 그래도... 진구에게서 오는 카톡에 또 나는 인간이길 포기했다. 받은 수표만큼 돈을 주겠다는 말에 난 개처럼 또 왈왈 짖어댄다.
진구는 김정현의 집 주소를 알려주었고,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었다. 아주 자기 회사 살려달라고 울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도 에라 모르겠다! 도전을 하기로 한다.
아니, 사람 마음 하나 돌리는데 그렇게 어렵겠어? 어??
"근데 김정현 드라마랑 영화 두개씩 찍고 잠수 탔잖아. 욕도 많이 먹고 그랬었는데.. 결국엔 인성이 문제였구나? 잘생겨서 좋아했는데.. 역시.."
"굉장한 싸가지야..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표 던지기를 나한테 할 줄이야.. 그래도 난 돈을 벌기 위해, 개처럼 짖으러 갑니다. 왈왈."
"그래. 그냥 잘생긴 얼굴 보면서 화를 식히는 쪽으로 하자.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얼굴 보면 잊혀지지 않겠어?"
"잘생기긴 개뿔. 완전 인상 팍- 쓰고 말이야.. 어휴."
가영이는 일을 하러 간다며 준비를 다 하고선 집에서 나갔고, 나는 핸드폰을 켜 김정현을 검색해보았다.
김정현은 6개월 전부터 모든 활동을 멈췄다. 심지어 드라마 캐스팅이 되었는데.. 잠적을 하는 바람에 감독님과 싸웠다는 소문도 있고 말이다.
근데 그 싸가지는 가능할 것 같아.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런 짜증 개짜증 내는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안 그럴 거라는 법 없지.
그래도.. 이 사람..
"웃긴 웃네."
사진들을 보면 웃고 있는 사진들이 꽤 많았다. 저것도 다.. 가면일 뿐이겠지. 연기자는 연기자니까.
사진 찍을 때만 저렇게 웃었을지 누가 알아?
왈왈- 하필이면 저 멀리서 산책을 하던 개가 짖는데..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자본주의....나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임이 틀림없다.
김정현 집 앞에 서서 한참 고민을 했다. 일단 벨을 먼저 눌러? 그치, 그게 예의지.. 아니지! 걔도 나한테 예의란 걸 차린 적이 없는데.
나라고 차릴 필요가 있나? 혼자 궁시렁 궁시렁 하면, 뒤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민망해서 얼굴을 가린 채로 벨을 눌렀다.
그나저나.. 주택 사는 건 의외네. 고급진 대문까지 너무 완벽하군.. 퍼펙트.. 혼자 또 중얼거리며 응답을 해주길 기다리는데.. 역시는 역시다. 아무 반응이 없다.
분명히 진구가 김정현은 집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답이 없는 걸 보면, 날 봐놓고 무시하는 게 100퍼다.
이런 사람들은 똑같이 대해줘야 교육 시키기 편하다는 생각에 진구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급히 치면, 대문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혼자 제 멋대로 움직인다.
세상에.. 대문이 지 멋대로 움직여.. 입을 벌린 채로 대문을 넘어서면 정원에 작은 나무와, 꽃들은 관리를 오랫동안 하지 않은 듯 지저분하게 자라났다.
돈도 많은 사람이 이런 거 관리하는 사람 하나 안 부르고 뭐한대.. 계단 몇개를 밟고 올라서면 또 큰 현관문이 보였다. 그 문을 열려면 또 비밀번호를 쳐야만 했고, 예의상 노크를 해준다.
여전히 답이 없는 김정현에 이젠 정말 깡따구가 세져서 비밀번호를 당당히 치고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나는.. 당당했던 표정은 어디 가고, 주방에 서서 물을 마시는 김정현과 눈이 마주쳐 뻘쭘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오늘은 누구일까 맞춰보려고 했는데. 예상도 못 한 사람이라 당황스럽네."
"……."
"어제 얘기 다 끝난 걸로 아는데. 오늘은 무슨 일로."
누군가 비밀번호를 치고 자신의 집에 들어온다는 것은 정말 드물고, 놀라운 일인데. 남자는 너무 태평했다.
마치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이 집에 드나들었던 것 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저 사람은 나를 어제보다 더 당황스럽게 했다.
그리고 그는.. 어제보다 더 지쳐보였다. 기분탓일까? 당황하는 건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을 그에게 밝히기로 한다. 신발을 벗고서 집에 들어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무작정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럼 남자는 내 행동에 당황하지 않은 듯 피하지도 않은 채 나를 무심하게 바라본다.
"일 하게 해주세요."
"……."
"이렇게 쉽게 돈 버는 거 말고. 개미처럼 일해서, 그쪽 옆에 붙어 있으면서 돈 받고 싶어요. 그리고 이거 돈! 가져왔어요."
"……."
"어제 그쪽한테 미친놈이라고 한 거 사과합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 해서요. 그쪽 직업 가진 사람들이 많이들 하는 가식 좀 떨어보려 합니다. 그래야 그쪽처럼 돈 좀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쪽 옆에서 개처럼 일 할 생각으로 개처럼 짖는 연습도 해 왔어요. 각오 했습니다."
"……."
"그쪽한테는 자존심 다 버리고 옆에 붙어있을 자신 있으니까. 일 좀 하게 해주시죠. 부탁드립니다. 혹시 막 사람 괴로워 하는 거 좋아하세요?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
남자는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한참 나를 보았다. 하지만 어이가 없다는 것 뿐만이 아닌 여러 감정이 섞인 표정이어서 말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저 표정은 도대체 뭘까.. 도대체.. 이 사람은 나를 여러번 당황시켰고, 또 당당한 표정은 사라지고 당황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무슨 어리광 부리는 사촌 동생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남자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선 다 마신 물컵을 싱크대에 놨고, 그 사람의 손목을 보게 되었다.
정말로 저렇게 큰 흉터를 본 적이 없었다. 세게 그어봤자 작게 흉터가 남는 수준만 봐왔던 나는.. 김정현의 손목에 선명하게, 크게 가로로 남겨져 있는 흉터에 입을 꾹 닫았다.
가로로 생긴 흉터 뿐만이 아닌, 세로로 생긴 흉터도 여러개 보였다. 저건 분명히.. 자해를 한 것이다. 힘들어서 잠깐씩 그은 게 아닌, 정말로 죽으려고 다짐하고선 그은 것.
내가 시선을 떼지도 못 하고 손목을 바라보면, 그는 내 표정을 보더니 자신의 손목을 내 눈 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이런데?"
"……."
"이런데도 내 옆에 있겠다고? 이까짓 거 보고도 무서워 떨면서 내 옆에 있어? 그깟 돈 때문에?"
"……."
"그 돈 내가 주겠다고. 1억? 10억? 아니, 내가 죽으면 나오는 돈들도 다 너한테 줄게. 그러니까."
"……."
"그만 찾아와. 내가 아직 그렇게 못된 새끼는 아니라서, 남들 괴롭히는 건 못하겠으니까."
"그치만!..."
"너!"
"……."
"내가 어느날 갑자기 네 눈 앞에서 죽어버려도 안 놀랄 자신 있어?"
"……."
"평생 그 날을 떠올리면서 안 힘들어 할 자신 있냐고."
오늘도 난 그에게서 졌다. 이번 만큼은 정말로 지지 않겠다고, 놀라지 않겠다고 다짐을 몇 번이고 했는데.
어제보다 더 큰 충격이 내게 닿았고, 나는 그에게서 말로 지는 것도 모자라서 눈도 못 마주치고 있다.
그래도.. 김정현이.. 아니, 사람이 이렇게 힘든 건 큰 문제라 생각이 들어, 겨우 고갤 들어 그와 눈을 맞추고선 입을 열었다.
"그쪽이 죽으면 안 놀랄 자신은 없는데요."
"……."
"그쪽이 죽을 생각 하지 않게, 옆에 있어줄 수는 있어요."
"돈 때문에?"
"아니요. 이건 돈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 때문에."
"……."
"제가 이렇게 그냥 가버려도, 나중에 그쪽이 죽어버리면 전 또 어떻게 살라구요."
그는 내 말에 아무 표정도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아무 표정도 없이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사람의 눈에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슬픔도, 삶의 의욕도 보이지가 않았다.
아무리 가면을 쓰고 있는 싸가지 없는 사람이라도, 살리고 싶었다. 당신이 유명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사람으로서, 당신을 살리고 싶었다.
누군가 죽는 건 백 번, 천 번을 겪어도 슬프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
김정현은 내 말에 아직도 대답이 없었다. 마치 그래도 된다는 것으로 느껴졌다. 아마 이 사람도 외로웠던 걸까? 그래서 나를 내치지 않았던 걸까.
분명히 나는 이 집에 들어오기 전 그가 너무 싫었다. 너무 싫어서 어떻게든 기분 나쁘게 비꼬며 몰아붙일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오히려 마음만 약해졌다. 어떻게 죽으려고 하는 사람을 못본 척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정말 못된 게 아닐까?
내 눈이 잘못했지.. 왜 괜히 손목을 봐서, 이렇게 사람 하나한테 마음을 주게 된 거야.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하는데.. tv에서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그나마 이 정적을 깨주었다.
다음주 부터 장마가 시작 된다는 소식이었다. 아, 장마.. 정말 싫은데. 이 사람도 장마가 싫겠지.
"안 죽어."
"……."
"그러니까. 나 혼자 있게 좀 해줘. 회사랑 계약은 끝낼 거야. 너한테 연락 가는 일 없을 거고. 한달 동안 봉사 좀 해. 그럼 네가 받기로 한 돈 내가 줄게."
"…아니요."
"……."
"그쪽이 너무 불안해 보여서 안 되겠어요."
그는 내 말에 웃었다. 분명히 웃었다.. 그렇게 표정 없이 허공만 바라보던 그는 드디어 웃음을 보였다. 물론.. 기분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 비웃는 것 같았지만.
"넌 내 옆에 있을 수 없어."
"그쪽이 언제 어디서 갑자기 죽어버리려고 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안 나갈게요."
"……."
"아니면 회사한테 말해서 그쪽 옆에 사람들을 붙이던가. 딱 보니까 회사 사람들이랑, 대중들은 그쪽 이러는 거 모르는 것 같은데.
대답 잘 해요. 모든 문제는 나한테 달렸어요."
"맘대로 해."
"……!?"
그가 나를 무시하고서 2층으로 올라가려고 하기에 급히 그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아 돌렸다.
그는 여전히 공허한 눈을 하고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그쪽 살리겠다고. 어느 누가 죽겠다는 사람 두고 가."
"두고 가."
"……."
"네가 유별난 거지. 다른 사람들은 두고 가."
"……."
"한집에 같이 살게 되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넌 왜 겁도 없이 함부로 말해?"
"어떻게 되는 게, 당신 죽는 것 보다 더 심한 게 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내가 너한테 키스를 할 수도 있고, 섹스 하자고 할 수도 있어."
"……."
"제발 감당 못 하겠으면, 좀 꺼져."
"감당 할 수 있어요."
"넌."
"……."
"미친년이야."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계단을 밟고 올라가 그 뒤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올라가서 확인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1층 한가운데 멀뚱히 서서 한참 서있다가.. 힘 없이 소파에 앉았다.
집에 가야 된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나한테 모진 말만 하는 김정현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죽는 건 싫기에 어떻게든 자존심 버리고 붙어있게 되었다.
몇시간이 지나도, 새벽이 되어도 정현은 2층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은호는 결국엔 소파에서 잠이 든다.
새벽 5시.. 비가 조용히 내렸고, 정현은 약을 먹고 죽은 듯이 자기만 하다가 1층으로 내려온다.
1층으로 내려오면, 은호가 뿌렸던 향수 냄새가 아직도 은은하게 풍기자.. 인상을 쓴 채로 거실을 본다.
tv를 틀어놓은 채로 소파에서 잠이 든 은호에 정현이 그 옆에 서서 한참 은호를 바라보다, 리모컨을 들어 tv를 끈다.
"진짜 미쳤구나, 너."
테이블 위로 리모컨을 둔 정현은 팔짱을 낀 채로 창밖을 본다. 비가 오는 소리를 한참 듣고, 한참 보는 정현은 눈을 감은 채로 한참을 있는다.
정현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힘 없이 비틀거리며 움직여 의자에 겨우 앉은 정현이 고갤 숙인 채로 한숨을 쉰다.
눈을 뜨고선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을 땐, 벌써 점심 시간대가 다 되어갔다.
와, 난 무슨 처음보는 사람 집에서도 이렇게 잘 자?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구나.. 갑작스레 생각난 김정현에 급히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면, 슬리퍼 끄는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그리고.. 그가 내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쓴 채로 말한다.
"뭘봐. 일어났으면 빨리 집이나 가."
"…에?"
"뭔 에?야."
"…하, 난 또.. 제가 자는 사이에 그쪽이 막 죽으려고 했을까봐."
"경찰 불러."
"경찰 부를 상황이 아닌데."
"그쪽이 내 집에 들어와서 허락도 없이 잤는데. 부를 상황이 아니야?"
"아침부터 한결같이 싸가지가 없으시네요."
"그러니까. 그만 좀 가."
"안 간다고 했는데."
그를 올려다보다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는 여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뻔뻔하게 그를 또 바라보았다.
근데... 옷을 깔끔하게 입은 걸 보니.. 어딜 가는 것 같아서 물음표를 띄운 채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가요?"
"회사."
"왜요?"
"계약해지 하러."
"아직 계약 기간 남은 거 아니에요?"
"일어나. 가!"
"밥 한 번만 사주시면!"
"뭐?"
"밥 한 번만 사주시면 간다구요. 그쪽 소원대로."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쪽한테 막말 콤보 받으면서 뻔뻔함도 더 늘었네요. 내가 원래 한성깔 하는데. 참은 것만으로도 이건 정말.."
그는 뻔뻔한 내 행동에 또 한숨을 내쉬었다. 나오라는 듯 턱짓으로 밖을 가리키기에 '오케이'소리치며 그를 따라 나왔다.
밖으로 주차가 되어있는 그떄 그 비싼 차 조수석에 타면, 나는 괜히 신나서 차 안을 구경한다.
비싼차는 처음 타보니까..어디 한 번 차 안에서 셀카 찍어봐? 찰칵- 셀카 몇 번 찍으면 그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그러다 운전대를 잡은 손 밑으로 손목에 흉터를 다시 보게 됨으로서.. 다시 측은해지는 나다. 그래도.. 저렇게 죽으려고 하는 사람 치곤.. 되게 오늘은 안 그래 보이네. 멀쩡한 사람 같아.
회사 앞에 도착한 김정현은 차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선 혼자 회사로 들어섰다. 그렇게 한시간.. 두시간.. 세시간을 넘게 기다린 나는 너무 지루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도 괜히 인터넷에 또 김정현의 이름을 쳐보았다. 김정현 우울증.. 김정현 자살기도.. 등등 연관 된 것들은 다 쳐봤지만, 그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고.
잠적 했다는 기사들엔 김정현의 악플이 너무 많았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이 너무 가득해서 인상을 쓴 채로 한참 보게 되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욕을 할 수가 있을까. 악플 때문에 우울증이 온 걸까? 그래서 죽으려고 까지 한 걸까? 온갖 상상들을 했고, 문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차에 타는 김정현을 보았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바로 출발하는 김정현에 결국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뭐 계약 해지 하는 건데 그렇게 오래 걸려요?"
"계약 해지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인 줄 알아?"
"그런 거 해본 적 없으니까, 모르죠."
"뭐 먹고싶어."
"맛있는 거."
"그러니까, 맛있는 거 뭐."
"돈 많으시니까.. 비싼 거 골라도 되죠? 스테이크 먹죠? 아, 보는 사람들 많아서.. 좀 그런가요. 시켜 먹을까?"
"됐어."
이런 싸가지...하다가도 다시 화를 줄이고선 다시금 그의 손목을 보았다.
흉터가 많은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지 않았고, 멀쩡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그래도.. 한손은 멀쩡해서 다행이네.
이쯤 되면.. 이 사람이 뭐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 했는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먹어. 먹고, 다시는 찾아 오지 마."
"일단 그건 생각 좀 해보죠."
"아까 했던 말이랑 틀린데."
"그쪽도 어제랑 많이 틀린데요."
"악플러들 보다 더 지독해, 네가."
"악플러.. 악플러 때문에 그런 거예요?"
"뭐?"
"죽으려고 하는 거 말이에요."
"…악플러 같은 거 신경 안 써. 지들이 뭐라 떠들던, 말던.. 안 보면 그만이야."
"…아."
그는 룸이 있는 레스토랑에 날 데리고 왔고, 직원들은 그를 보고 엄청 놀란 듯 했다.
팬이라며 웃어주는 팬들과는 다르게, 김정현은 아무 표정도 없이 '감사합니다'하고선 자리를 찾았고, 나는 그 사이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연예인은 이미지가 생명인데.. 팬들한테도 저러는 걸 보면.. 이 사람도 정말 다 놨구나 싶었다. 돈도 많고, 행복해야 할 사람이 이렇게 다 놓아버리다니.. 내겐 아직 충격적이었다.
밥을 다 먹고서 나왔을까, 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고.. 우산이 없는 우린 비를 맞고 차로 향해야 했다.
뛰어갑시다- 내 말에 김정현은 '같이 갈 생각 아니지?'하며 인상을 쓴 채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여전히 뻔뻔한 미소를 띄우며 말한다.
"당연하죠. 같이 집에 가야죠."
"진짜 도라이냐, 너."
"…저요. 제 동생이 자살했어요. 처음엔 손목을 그었고, 그걸로 안 죽으니까 목 매달아서요."
"……."
"그쪽 보면 내 동생 생각나서, 더 붙잡고 싶고, 옆에 있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쳐내지 말아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
"네 동생이 죽은 거랑,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그냥 네가 동생 그렇게 보낸 게 마음에 쓰이니까, 어떻게든 나한테 붙어서라도 그 마음을 풀어버리고 싶은 거 아니야?"
그가 내게 짜증을 냈다. 어제와 같은 표정이었다. 정말 당장이라도 죽어도 상관 없는 표정.
그냥 가버리려고 하는 그의 손목을 잡았고, 그는 나를 뿌리쳤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던지, 말던지 그냥 가버리는 그에게 소리쳤다.
"내가 뭐! 나 위로 해달라고 했어요!? 그냥! 그쪽 살릴 수 있게! 옆에 있게만 해달라고 했지! 왜 이래요 사람이, 정말!? 나도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그쪽 보고 난 뒤로 더 힘들어서 죽어버릴 것 같은데!"
내 말은 들은 채도 안 하는 김정현은 차에 탔고, 나는 결국 그를 포기하기로 한다. 네가 죽던 말던 이제 나도 상관 안 해. 나도 사람이라 자존심 상하고, 당신 살릴 이유 따위 없어졌으니까.
당신 돈 많으니까, 그 돈으로 옆에 상담사를 붙이든, 의사를 붙이든 알아서 해. 화가 나서 뒤돌아 무작정 어딘가로 향해 빠르게 걸었을까, 골목길에서 나오던 자전거와 부딪힌 나는 넘어지고 말았다.
같이 넘어진 자전거 주인은 내게 미안하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선 그냥 또 걸었다. 발을 쩔뚝이며 말이다.
너무 서러웠다. 하필이면 재수없는 비까지 오니까, 너무 서럽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흘러 나오는 눈물을 무심하게 닦아냈을까..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았다.
뒤를 돌아보면 김정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비는 마법처럼 그친다. 김정현이 내 손을 잡아 끌어 옆에 있는 벤치에 앉혔다. 자켓 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낸 그는 내 발목에 손수건을 감싸주려는 것 같았다.
"네 동생도 그렇게 잃어놓고서, 네 동생과 같은 행동을 할지도 모르는 사람 옆에 붙어있으려는 네가 이해가 안 가는 거야."
"……."
"뭔 사람이 이렇게 뻔뻔하고 당당한지, 이런 또라이 미친년은 본 적도 없어서 어이도 없고."
"…비 좋아해요?"
"뭐?"
"비 좋아하냐구요."
"싫어해."
"왜요."
"비 맞으면 찝찝하니까."
"그럼 장마도 싫겠네. 다음주부터 장마 시작이라던데."
"장마는 좋아해."
"에?"
"장마일 땐, 내가 집에서 안 나가."
"……."
"가."
"……."
"태워줄테니까."
안 가? 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그에 나는 작게 웃어보였다. 결국엔 김정현도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라, 나를 이해 해주는 것이다.
아니?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그랬음 좋겠어서,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일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은 그에게 찾아가지 않았다. 그를 잠깐이라도 잊고 싶었던 거였을까? 그래도 인터넷으로는 그의 소식을 볼 수가 있어서?
오늘부터 장마는 시작 된다. 꽤 오랫동안 장마가 올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창밖을 보았다. 비가 거하게도 오는구나.. 김정현은 뭐 하고 있을까.
내가 사라지고 난 뒤에 김정현은 죽을 생각을 했을까? 걱정이 됐다. 마지 몇년은 봐온 사람처럼, 그가 걱정이 되고, 보고싶었다.
그가 무사한 걸 너무 보고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침대 위로 그의 손수건을 한참 보았다. 그때 내 발목을 잡고서 해주던 말들이 떠올라 조금은 웃음이 나왔다.
"내가 뭐 어떻다고.. 또라이 미친년이래.."
내 말에 tv를 보던 가영이는 뭐? 하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고, 나는 고갤 저었다.
겉으론 되게 차갑고, 싸가지 없지만.. 마음이 아프기 전에는 따듯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사람이 싫었고, 내가 가기를 바랬다면.. 그때 그냥 차를 타고 가버렸을 텐데. 그는 나를 버리지 못 하고 다시 돌아왔으니 말이다.
일주일만에 그의 집에 다시 오게 되었다. 참 웃기다. 알지도 못 했던 톱스타 집에 드나들 수 있는 일반인이라.. 근데 전화번호는 모른다..라..
이런 경우가 나 말고 또 일어날 수가 있을까?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우산을 펼치자마자 놀래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집 대문 앞에.. 그가 우산을 쓴 채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그의 옆에 서서 그를 바라보면.. 내가 온 줄도 모르는지 무언가 열심히 한다.
작은 상자 위로 우비를 씌우고.. 그 앞에는 유리 그릇 두개.. 한 곳엔 사료가, 한곳엔 물이.. 그리고.. 상자 안에선 새끼 고양이가 나와 김정현에게 야옹- 소리를 낸다.
"뭐예요... 장마엔 집에서 안 나온다면서요."
내 말에 김정현은 놀라지도 않았는지 무심하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보고선 아무렇지도 않은지 대문 비밀번호를 치기에 따라 들어갈 생각으로 뒤에 바짝 서면..
곧.. 우비를 씌워놓은 고양이 집 위로 자신의 우산 마저도 올려 놓는 김정현에 난 살짝 의외다 생각을 했다. 역시.. 태생부터 나쁜 사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를 쪼르르 따라가 팔을 뻗어 그가 비에 맞지 않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집에 들어가서는 우산을 우산 꽂이에 놓고선 조금 젖은 옷을 털어내며 그에게 말했다.
"고양이 좋아해요?"
"안 좋아해."
"그럼 왜 저렇게 까지 해요?"
"엄마가 죽었어."
"에???"
"새끼 고양이 말이야."
"……."
"그때 한 번 밥 줬는데. 계속 집 앞에서 맴돌더라고."
"…아."
"오늘은 또.. 에휴.. 됐다."
"뭐예요. 왜 말을 끝까지 안 해?"
"네가 하고싶은대로 해."
"…참나. 제가 고양이보다 못 해요? 왜 개무시를 하시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2층으로 올라갔고, 난 그래도.. 김정현이 무사한 걸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당장 죽어버릴 것만 같은 사람이.. 내 앞에 멀쩡히 나타나는 것 보다 행복한 일은 없는 것 같다.
네가 하고싶은대로 하라는 말이 정말 여러 뜻으로 풀이가 됐다. 여기서 지내도 된다는 것, 냉장고 문을 함부로 열어도 된다는 것.
저녁 시간이 되면, 나는 무슨 가정주부라도 된 것 마냥 냉장고 문을 열어 재료란 재료들은 다 꺼내놓고 저녁을 차린다.
아, 가정주부 말고 그냥 와이프로 할까.. 그게 더 나은 것 같아. 흠.. 혼자 혼잣말을 하며 저녁을 다 차리면.. 밥 먹으라고 나오라고 해야 되는데. 그러면 2층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은호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2층에는 두개의 방이 있었고.. 방 하나는 문이 열려있었다. 기타, 피아노 등등 예쁘게 꾸며져 있는 방에 구경을 하다가..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선 은호는 정현이 있을만한 방 문에 똑똑- 노크를 한다.
"밥 먹어요, 제가 요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해서. 저녁 좀 차려봤는데."
- …….
"하고싶은대로 하라고 하시길래. 제가 하고싶은대로 한 거예요. 뭐라 하지 마요."
- …….
"뭐해요? 자요?"
방 안에선 아무 대답도 없었고, 은호는 한 번더 똑똑- 노크를 한다.
그리고 방 안에서는.. 정현이 바닥에 주저 앉아서 힘들어 하고 있었다.
"……."
"……."
머리를 움켜 쥐고 힘들어 하는 정현은 문 밖에서 들려오는 은호의 부름에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하지만, 몸이 쉽게 따라주지 않는다.
은호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정현이 걱정 되는지.. 주위를 둘러본다. 1층으로 내려가 문이란 문은 다 열어 확인한 은호가 소화기를 들고선 2층으로 올라갔고,
문고리를 부수려고 소화기를 들어올렸을까.. 곧 문이 천천히 열리고, 정현이 은호를 내려다본다.
"…뭐하냐. 문이라도 부수게? 가지가지한다..너도 참."
"…뭐 했어요? 아니 왜 문을 안 열어요!"
"잤어."
"…에?"
"비켜."
어딘가 많이 힘이 없고, 아파 보이는 정현에 은호는 어디 아파요? 하고 물었지만, 정현은 고갤 저으며 1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식탁 위로 보이는 진수성찬에 정현이 한참 식탁 위를 보면, 은호가 아파보이는 정현이 신경쓰이는지 힐끔 보며 말한다.
"냉장고에 있는 걸로 한 거예요. 좀 해먹지.. 상한 것들도 있던데. 뭐.. 맨날 시켜먹어요?"
"……."
"일단 앉아서 얼른 먹어요. 뭔 몸에 뼈밖에 없어? 내가 원래 이거 집에서도 안 하는 건데. 어휴..."
"내 팬이냐, 너?"
"에? 미쳤어요? 난 연예인에 관심도 없고, 연예인 좋아해본 적도 없어요! 연예인 좋아할 바엔 대통령을 따라다닌다!"
"그래."
"……."
"맛있겠네."
정현은 웃었고, 은호는 아주 잠깐이지만.. 정현의 웃는 모습에 잠깐 벙찐 채 서있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같기에 은호는 헛기침을 하며 먼저 의자에 앉는다.
정현도 의자에 앉아서 수저를 들지도 못한 채 한참 또 음식을 보았다. 남의 눈치 따위 잘 보지않는 은호는 정현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식탁 위로 올려진 정현의 손은 떨려왔다. 물론.. 흉터가 진 손 말이다. 심하게 떨려오는 손에 은호는 봤지만 못본 척 했고, 정현은 아프지않은 손으로 젓가락을 쥐었다.
그렇게 둘은 한참 말 없이 밥만 먹었고, 이 어색한 정적 속에서 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요. 제 이름이랑 나이는 안 궁금해요?"
"…어."
"…진짜 사람이."
"나이는 나보다 어릴 것 같고. 이름은 이은호 아니야?"
"어떻게 알았대요? 맞아요."
"여진구가 너 얘기 했으니까."
"…아.. 참.. 저는 그쪽 나이 듣고 엄청 놀랬어요. 해봤자 20대 후반이겠구나~ 했는데.. 서른하나? 재수없지만 동안 인정이요. 우리 친군데 말 놓을까요?"
"몇살인데."
"스물여섯이요."
"헛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손이요."
"……."
"자해한 거 때문에 그런 거죠..? 떨리는 거."
"…어."
"맛있게 먹어요. 제가 원래 싸가지 없는 놈한테는 잘해주지 않는데. 복 받은 줄 알고."
정현은 이젠 대놓고 은호의 말을 무시했고, 은호가 저 싸가지..하며 중얼거리다가도 힐끔 정현을 본다. 그래도.. 먹기는 먹네.
너무 말라서 계속 안 먹는 줄 알고 걱정 했는데.
가영이를 시켜서 문 앞에 내 짐들을 놓아달라고 했다. 내가 잠깐 방심한 사이에 김정현이 안 좋은 생각을 할 수가 있으니 나갈 수가 없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때 김정현이 내게 했던 말이 맞는 것 같다. 동생한테 못해준 게 미안해서, 마음이 쓰여서 그 마음 풀어보겠다고 김정현한테 이렇게 매달리는 거.
난 동생을 붙잡지 못 했었으니까. 김정현은 살아있으니,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었다.
쓸데없이 이렇게 우울한데 장마까지 시작이 되다니..
"오늘로 계약해지 문제는 끝났음 좋겠네요. 내가 회사로 찾아가는 일도 오늘이 마지막이었음 좋겠고."
전화를 끊은 김정현은 말 없이 신발을 신었고, 어디 가냐는 내 말에, 심심하면 집에가서 청소나 해 그 말에 뭐요? 하고 짜증을 내다가도.. 힘 없이 나가는 걸 보니 입을 꾹 닫게 해주었다.
아마도 회사에 가는 거겠지.. 회사도 저 사람을 괴롭히는 건가? 아니면.. 애초에 회사 때문에 힘이 들었던 거였을까.
혼자 이 큰 집 안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그렇게 죽고싶을 때, 이렇게 큰 집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말 살고싶은 나도 이 집에 있으면 공허하고, 마음이 이상한데.. 김정현 저 사람은 어땠을까..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듯, 선반 위에는 먼지가 쌓여있었고, 간단한 청소 쯤이야 해줘도 될 것 같단 생각에 청소를 시작했다. 티나지 않게, 먼지 정도만..
그렇게 나는 여태 김정현 걱정에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 한 집을 구경하게 됐다. 시상식에서 받은 상, 그리고 친구들과 찍은 듯한 사진.. 그중에는 가영이가 요즘 좋아하는 이종석과 찍은 사진도 보였다.
사진 찍은 날짜를 보면.. 거의 다 최근 사진이 없었다. 1년 전, 2년 전.. 최근들어 우울증이 온 걸까? 왜일까.. 이렇게 밝게 웃었던 사람이.. 넓은 1층을 천천히 다 구경하고서 2층으로 향했다.
"……."
김정현이 항상 머물고 있는 방이 궁금해졌다. 그곳엔 많은 것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책상 위로는 뒤집어져있는 사진 액자가 보였다. 왜 이렇게 해놓은 거지..
그 액자를 제대로 놓고선 사진을 보았을까.. 가족들의 사진인 것 같았다. 네명의 가족.. 여동생, 엄마,아빠.. 그리고 김정현 넷이서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행복해보였다.
왜 이런 사진을 뒤집어 놓은 거지.. 혼잣말을 하며 사진을 한참 본 것 같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나도 동생이 살아있을 땐 이렇게 행복했는데..
책상 서랍 틈 사이로 빼꼼히 나온 무언가에 서랍을 열었을까, 그 안에는 수많은 약봉지들이 있었다. 우울증 약인가.. 이거 없음 잠을 못 자고 그런 거겠지.
BGM 보통의 하루 - 정승환
김정현의 침대 위에 누워있다보니 잠이 들었다. 무심하게 '야'하고 부르는 김정현의 목소리에 잠에서 깰 수 있었고.. 몸을 일으켜 앉으면, 김정현이 내게 말한다.
"너네 집이냐?"
"…아, 잠이 들었네요. 계약해지는 어떻게 됐어요?"
"죽어도 안 된다고 하더라. 자기 회사에 남아달라고."
"……."
"아무 간섭도 안 할 테니 그렇게라도 남아달래. 그래서 아무 대답도 못 했어."
"…왜 계약해지 하려는 건데요? 당신이 죽어버리면 회사만 곤란하니까?"
"그래."
"죽지 마요."
"……."
"그러지말자, 그냥. 안 그러면 되잖아요."
너무 재수가 없을 것이다. 내 말에 김정현은 작게 웃어버리고선 나가라는 듯 손짓을 한다. 침대에서 내려와 그의 앞에 서면, 그가 나를 지나쳐 책상 위를 본다.
다시금 액자를 뒤집어놓는 행동에,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왜요? 왜 뒤집어놔요? 가족들이 다 웃고 있어서 보기 좋던데."
"그래서 죽고 싶은 거야."
"……."
"아무 일도 없듯이 웃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 죽고 싶은 거라고."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내가 죽으면 끝나는 일."
"…죽으면 끝나는 일?"
김정현은 한숨을 푹- 쉬고선 침대에 앉았다. 앉은 상태로 한참 눈을 감고 있던 그는 내게 말했다.
"피곤하니까 문 잠그고 나가. 너랑 떠들 힘도 없어."
"…어디 아파요?"
"안 아파."
"식은땀 나는ㄷ.."
"나가."
"……."
"부탁이야."
은호가 문을 닫고 나갔을까, 정현은 점점 더 크게 오는 통증에 참아보려고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
익숙해져야 하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큰 고통에 정현은 힘 없이 바닥에 쓰러져 머리를 움켜 쥔 채로 작게 신음을 내뱉는다.
혹시라도 밖에 은호가 들을까, 이를 악물고선 신음을 참는 정현은 결국엔 눈물을 흘리고 만다.
- 괜찮아요? 어디 아픈 거예요?!
"……."
- 문 좀 열어봐요...!
"……."
- 김정현씨!
@
- 난 네가 이해가 안 가. 아니 그렇게 김정현 욕할 땐 언제고 김정현 집에서 살고 있냐? 그게 말이 돼? 김정현이 너한테 첫눈에 반했대?
"…아냐, 그런 거.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
- 그럴만한 사정이 뭔데. 나도 좀 이유를 알자. 내 친구가 유명한 연예인 집에서 며칠동안 외박하는데..!
"미안. 집에 가면 말해줄게."
나만 알고 있는 김정현의 상태를 누군가한테 말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김정현은 그때 이후로 이틀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 앞에 과일과, 죽을 놓고 가도 그대로였고, 걱정이 돼서 문을 따볼까.. 누군가 불러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를 조금은 믿기로 했다.
이틀동안 사람 소리라곤 tv에서만, 핸드폰에서만 들은 나는 항상 계단쪽을 보았고, 오늘은 드디어 김정현이 1층으로 내려왔다. 무슨 주인 반기듯 웃으며 다가가는 날 보면.. 정말 개가 맞나보다.
"이틀동안 뭐한 거예요? 밥도 안 먹고, 방에서..!"
"……."
"그래도.. 난 그쪽 믿었어요. 죽지 않고, 나와줄 거라고. 그래도..."
눈물이 나왔다. 나도 울 줄은 몰랐는데. 자꾸 무의식적으로 동생이 생각났나보다.
"다행이에요. 살아있어서."
"생각할게 좀 있고 그래서."
그의 손을 잡고 손목을 살펴보았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손을 보니 더 안심이 됐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서럽게 울어버렸다.
"……."
그렇게 한참을 눈치 보는 거 없이, 김정현 앞에서 울어버렸다. 어렸을 때, 동생이 내가 아끼는 물건을 망가뜨렸을 떄처럼 운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울고있는 나에게 그 어떤 위로도 하지않는 김정현은 나빠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을 다 잃어서, 자신을 다 잃어버렸기에 위로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해요. 그래야 알죠. 그래야 위로라도 하고, 옆에서 같이 힘들어 해줄 거 아니에요.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 하는지..!"
"……."
"사람 한 번 살리게 해줘요. 나도.. 나도.. 그쪽이 너무 안쓰럽고, 살리고 싶고, 멀쩡히 활동 하는 거 너무 보고싶으니까. 제발."
그는 끝까지 내게 말을 아꼈고, 나는 그의 앞에 서서 또 하염없이 울기만 한다.
그렇게 또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 시간은 흐르고, 나는 눈물만 늘어갔고, 김정현은 나와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은 마주치는 것이라도 안심이 됐다. 죽지않고 버텨줬다는 것이, 내게는 큰 희망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비밀번호 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현관문이 열리고.. TV에서 잠깐 틀기만 해도 나오는 연예인이 나를 보고 똑같이 놀라는 것이다.
"…어라.. 안 보던 사이에 정현이 형이.. 애인이 생겼나..."
"…아, 아뇨. 그런 건..아니구요.. 그... 매니저..."
"매니저요? 여자 매니저는 안 쓰는 걸로 아는데...."
"…그렇게 됐네요. 근데.. 여긴..."
"아, 저.. 정현이 형이랑 친해서 자주 만나요. 형이 말 안 했나보다... 혹시 형은.. 2층에..?"
"아, 네."
"형 좀 잘 부탁해요. 형이 정식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화내고 , 무시하고 그럴 수 있는데.. 이해 해주시고.. 이거 놓고 갈테니까. 형한테는 저 왔었다고 말해주세요."
"……."
"미안하다고도.. 꼭.. 전해주시고요."
"…네."
"가볼게요."
이종석이 건강에 좋다는 즙을 바닥에 내려놓고선 가버렸고, 나는 벙쪄서는 창밖으로.. 이종석을 보았다.
그리고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김정현이 2층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즙을 가리키며 오랜만에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 아는 동생분 왔다 갔어요, 방금. 이종석....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도 하시고..."
"알아."
"……."
"그거 너 먹어."
"에?"
"난 필요 없으니까, 네가 챙겨 먹으라고."
"…아."
물을 마시고선 나를 지나쳐 다시 2층으로 올라가려는 김정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밥 먹어요. 어제도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됐어."
"빈속에 약 먹으면 속 다 망가진다구요."
"……."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됐어. 됐으니까.. 그냥 가."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일단 앉아봐요. 자꾸 어딜 가려고! 무슨 2층이 병원이에요? 맨날 2층에만 가려고 하고!..."
김정현을 끌어다 소파에 앉혔다. 평소 같았으면 나를 뿌리치고도 남았을 인간인데. 힘 없이 끌려온 걸 보니.. 많이 아픈 게 분명했다.
식은땀은 기본이고, 자꾸만 한쪽눈을 깜빡이며 고통을 호소하는 김정현에 숨이 막혀왔다.
물이라도 마시면 괜찮아질까, 물을 갖고 오면, 김정현은 앉아서 겨우 고갤 들고선 말한다.
"…저거 가지고, 이제 네 집으로 가."
"……."
"너 말고도 괴롭히는 사람들 많고, 괴롭게 하는 일도 많으니까.. 이제 그만 해."
"어디 심하게 아픈 거죠? 병원은 가본 거 맞아요? 아니.. 스트레스 때문에 이 정도로 아플 수는 없는 거잖아. 나한테만이라도 솔직하게 말해봐요."
"…됐으니ㄲ.."
"나는 믿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잠깐이라도 믿어달라구요. 지금 당신 아프고, 힘든 거 알아주는 사람.. 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
"정현씨!!"
김정현이 쓰러졌다. 바닥을 기면서 까지 이렇게 아파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래서 더 무섭고, 두려웠다.
구급차를 부를 생각으로 핸드폰을 찾으면, 김정현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힘을 쓰며 소리쳤다.
"…괜찮아!...괜..찮으니까.. 아무것도..하지 마..!"
"…내,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나가라며 손짓을 하지만, 나는 나갈 수가 없었다. 옆에서 안절부절 아파하는 그의 모습만 바라보며 입을 틀어막고 있을 뿐, 나는 바보가 되었다.
TV속에서 누군가 아파하면 그 모습을 보며 얼타는 사람들을 보며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 만큼은 정말로 대처를 잘 해줘야겠단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데.
나도 결국엔 그 사람들과 똑같았다. 그를 바라보며 우는 방법밖에 없다.
"……."
떨면서 겨우 몸을 일으킨 김정현에게 다가가 부축을 했다. 2층까지 올라가긴 힘이 드니, 1층에 있는 방문을 열어.. 오랫동안 아무도 쓰지 않은 듯한 침대 위로 그를 눕혔다.
조금은 진정이 된 듯한 김정현에 나는, 죽을 끓여 방으로 향했다. 어제 하루종일 안 먹었으니.. 속이라도 채워야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말 없이 책상 위로 죽을 올려놓고서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번주엔 그래도 사람이 제대로 걸을 수도 있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상태가 너무 나빠졌다.
"내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
"4개월 전에 운동 하다가 쓰러졌어. 병원에 갔더니.. 나더러 머리에 큰 암 덩어리가 있어서. 2개월 밖에 못 산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대.."
"……."
"엄마가 나이를 먹고, 우울증이 생겼고.. 매일 죽고싶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집에 가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
"죽고 싶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하는데.. 나도 죽고싶고, 힘이 든데.. 자꾸만 죽고 싶다는 엄마가 그때는 너무 밉고, 싫었어. 그래서.. 죽어버리라고 했어.
그리고.. 그 다음 날 새벽에, 아빠랑, 동생이 자고 있는 사이에 집에 불을 질렀고.. 집에서 아무도 나오지 못 하고 다 죽었어."
"……."
"모든 게.. 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죄책감 때문에 더 살 수가 없었어.. 난 겨우 남은 2개월 조차도 숨도 쉬면 안 될 거라 생각해서.. 그래서 죽으려고 했어."
"……."
"근데.. 생각보다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 난 정말 죽고싶은데. 정말로 죽고 싶은데.. 사람이 쉽게 죽지 않더라고. 2개월도 못 버틴다고 했으면서, 나는 벌써 4개월을 넘기고 있더라고. 진짜 끈질기지."
"……."
"꿈에 가족들이 나오면 나는 그게 악몽이야. 자기들은 잘 지낸다고 안심 시키려고 웃어주는 것 같은데.. 난 그게 너무 괴로워. 너만 아니면 우리는 죽지 않았을 거야.. 너도 죽어. 하고 괴롭히는 것 처럼..
종석이도.. 다 내탓이래.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
"살고싶지가 않아.. 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말 없이, 그의 옆에 누워서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의 슬픔은.. 내가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슬픔이었고, 감히 위로 조차도 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4개월 동안 아무에게도 말 못한 채..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던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픈 것도 남들에게 숨긴 채,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늘따라 장마의 빗소리는 평소보다 더 슬프게 들려왔고, 나는 또 그에 의해 울고 만다. 그를 꼭 껴안고 말이다.
그는 눈물 조차도 흘리지 않았다. 4개월 전부터, 아마 그 눈물은 말라 비틀어졌을 것이다. 그가 죽으려고 하는 것도 슬펐지만, 얼마 못 산다는 말이 더 슬펐다.
내가 원래는 정이란 게 하나 없는 사람인데. 어쩌다 이 사람에게 정이란 것을 줘버린 것일까. 너무 슬프고, 아팠다.
"장례 치르고.. 한 번도 안 찾아 뵌 거예요?"
"…응."
"한 번 같이 가요."
"……."
"그래도.. 얼굴을 한 번 봐야 되지 않겠어요?.. 무섭다고 피하기만 하면, 정현씨만 더 아프고.. 힘들어요. 난.. 정현씨가 그래도 조금은.. 편안했음 좋겠어요."
"…알겠어."
김정현은 하루가 지날 수록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내 앞에서 쓰러졌던 엊그제보다 오늘은 더 상태가 최악이었고.. 김정현은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납골당에 도착했을까, 김정현은 알아서 자리를 찾아갔다. 아마도 김정현은.. 찾아오기 싫었던 것이 아니라, 두려웠던 것임이 틀림없다.
"……."
가족들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는 그의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의 잘못이 하나 없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왜 그가 제일 힘들어야 했을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바로 몸을 숨겼다.
"……."
정현은 한참을 말 없이 가족들의 사진을 보았다. 말을 하려고 하지만, 곧 나오지 않는 목소리에 정현은 괴로운 듯 했다.
그러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지 고갤 숙인 정현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 내가.. 따듯한 말이라도 해줬더라면.. 다 살 수 있었을 텐데..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만 생각하고.. 모진말 해서 미안해.. 내가 진짜 죽을 죄를 지었어.
위에 가면.. 나도 엄마,아빠.., 주현이 있는 곳으로 가면.. 그때.. 그때는.. 더 큰 벌도 받을게.. 내가 잘못했어. 나도.. 무섭고, 화가 나서 그랬어.. 정말.. 미안해..잘못했어..정말..."
몇분이 지나도 정현은 일어날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바닥에 얼굴을 묻고서 한참 흐느껴 우는 소리가 빗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BGM 폴킴 - 안녕
하루가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갔고, 하루가 지나가지 않았음 바랬다. 그러면 그럴 수록 시간은 더 빨리 자나갔고, 난 그의 곁에서 더 떨어질 수가 없어졌다.
겨우 힘 없이 앉아있는 김정현에게 죽을 먹이고 있었다. 내가 준다고 해서 잘 받아 먹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한입 먹고서 힘들어하는 그에.. 나는 포기 하지 않았다.
그러다 초인종 소리에 놀라 인터폰을 보면.. 이종석이 우산을 쓴 채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종석씨가 왔는데요."
"…그냥 보내. 걔도 나 때문에 죄책감 들어서 찾아 오는 거니까."
"……."
"다시는.. 찾아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
그냥 가라고 했더니, 이종석은 이번엔 과일 바구니를 놓고 갈테니까 챙겨달라고 말했다.
"이 사람은.. 그쪽 아픈 거 알아요..?"
"…몰라."
"……."
"그냥..엮이기 싫어. 걔랑은.. 나한테 미안해 하는 것도 싫고."
위로는 커녕.. 자기 때문이라는 소리를 한 믿었던 동생에 의해 더 망가진 김정현은 당연히 이종석을 보기 싫어할 것이다.
그 이후로 김정현이 우울증이 생겨 힘들어 하니까, 그제서야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서 이렇게 찾아오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난 이종석 이 사람이 너무 싫어졌다. 그를 힘들게 한 사람이니까, 그를 우울하게 만든 사람이니까.
김정현 옆에 앉아서 별 생각을 다 했다. 2개월 밖에 못 산다고 했던 사람이.. 4개월을 살았고.. 이제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더 슬펐다.
그만 보면 자꾸만 슬퍼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참는 건 더 힘들었다. 그는 울지 않고, 아무 감정이 없는 눈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웃어주었다.
그 다음날.. 나는 그와 함께 대문 앞에 섰다. 새끼 고양이가 상자 안에서 나와 또 야옹- 소리를 내며 그에게 다가갔고.. 그는 웃었다.
"……."
"……."
그가 고양이를 보며 웃고 있으면,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죽을 것 같이 있던 사람이 이렇게 웃는데.. 안 웃을 수가 있나.
2주일 가까이 보면서 이렇게 웃는 모습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이렇게 웃으니까.. 그래도 나까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몸도,마음도 아픈 게.. 다 거짓인 것 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못 됐다. 나랑 김정현이랑 같이 밥 먹으러 간 날, 몰래 사진을 찍었고.. 곧 열애설이 뜬 것이다.
[잠적하더니 결국엔 연애하는구나 ㅋㅋㅋ병신 팔자 좋다 시발ㅋㅋ나도 다음생엔 연예인할래~]
[얼마전에 길에서 마주쳤는데 인사해도 안 받아줌 싸가지 없누]
[역시 돈 많아지니까 거만해졌구나 ㅋㅋ 팬이 지 졸개인 줄 아는 새끼들은 망해도 쌈. 뒤져라]
[교통사고 나서 죽었으면]
[난 얘 떴을 때 이해 안 갔음ㅋㅋㅋㅋㅋ딱 봐도 그렇게 생겼잖아.]
[보나마나 끼리끼리 사귀겠지]
진구에게 연락이 왔다. 저 사진 속 여자는 누나가 아니냐고 말이다. 김정현이, 계약 해지 얘기를 꺼낸 뒤로부터.. 회사는 김정현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고.
이번 열애설은 그 어떤 대처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밥 먹은 거라고.. 설명을 해주면, 진구는 어떻게 둘이 친해졌냐며 의아해 했고..나는 그 뒤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
증상이 더 심해지면서, 그는 말을 더 아꼈고.. 눈도 잘 보이지 않은 듯 했다. 내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내가 부를 때면 나를 보지 않고, 그 옆을 보기도 했다.
아마도 이 증상은.. 예전부터 그랬지만,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인터넷에 그의 병명을 쳐보았다. 한 번 쓰러지면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고, 재수가 없으면 그냥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댓글창에 글을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헛소리 말라고 너무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말한다고 이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평생 그럴 거다.
"같이 산책 할래요?"
내 말에 그는 멀뚱히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역시.. 그건 별로겠죠? 나와 어울리지않게 주눅 들어서는 그에게 말하면, 그는 곧 몸을 일으켰다.
가자는 듯 먼저 손짓을 하며 먼저 현관으로 향하는 김정현에 웃음이 나왔다.
그와의 추억이 고작 집에서밖에 없는 것이 싫었고, 밖에 나가서 아픔이란 것을 잠깐이라도 잊고 싶었다.
그는 내가 죽을 끓여주면 먹지 못 하고 항상 토를 했다. 그래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 강제로라도 먹이기도 했다.
"힘들면 말해요. 집 가게."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
"…집에 가요..!"
"미안. 장 보고 와. 차에 가있을게."
내가 욕심을 부렸다. 나 혼자 잠깐 행복하겠다고, 그를 끌고 나온 게.. 큰 잘못이었다.
우리 옆을 지나던 사람들은 김정현을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마트에서 연예인 보기란 드문 일이니까. 그래서 더 신기해 했고, 표정이 좋지 않은 상태로 그냥 가버리니..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를 혼자 둘 수 없었다. 결국엔 그를 따라갔다. 그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이기적이게 행동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조수석에 앉아서 힘든지 숨을 몰아쉬는 그를 보고선..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걸며 말했다.
"미안해요.. 잠깐이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바깥 공기 맡으면 그쪽도 좋아할 거라 생각해서.."
"……."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또 흉이 진 그 손은 심하게 떨려왔고.. 난 말 업이 그 손을 잡아주었다.
김정현도 놀란 듯 했다. 조금은 놀란 듯 나를 바라보기에,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집에 가요. 집에 가서 쉬어요."
"……."
"미안해요. 힘들 건데.. 같이 나와줘서 고마워요."
"…안 힘들어."
"……."
"나도..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서 좋았어. 그러니까.. 미안해 하지 마."
그렇게 한참을 손을 놓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나를 보지 않는 방법을 택했고, 나는 그의 눈을 한참을.. 한참을 보았다.
잊기가 싫었다.
BGM 지나간다 - 부엉이
지겹도록 내리는 비에 너무 우울했다. 차라리 날씨라도 좋던지.. 왜 그를 만났을 땐 장마였던 것일까.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그는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힘들어 했다. 그래서 1층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가 또 통증 때문에 힘들어하고, 약을 억지로 먹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에 들었다. 그의 옆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았다.
이렇게 인기도 많고, 친구도 많은 사람이.. 제일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게, 너무 속상했다. 그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더 슬펐다.
그래도.. 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그가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눈물이 또 났다. 그가 불쌍했다. 상황이 너무 안쓰러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것 뿐이라 미안했다.
그가 편하게 잠에 든 걸 보니.. 차라리 그게 죽는 게 나은 걸까 싶었다. 그가 죽으면 아파했던 순간은 사라지고, 지금처럼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을 거니까.
하루에 몇십 번은 운다. 오늘은 또 열 번을 넘게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그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더 나기에 자리를 떴다.
다른 생각 좀 하려고 거실에 나와서 다 채워지지도 않은 쓰레기봉투를 챙겨 밖에 나왔다.
은호가 나가고,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깬 정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은호가 없다. 2주일 동안 자신의 옆에 있어준 은호가 없어지자 불안한 듯 일어서서 벽을 짚으며 거실로 나왔다.
'이은호' 부름에도 아무 대답이 없자, 정현은 불안하게 서서 계속해서 은호를 부른다.
"……."
아픔을 견디지 못해 바닥에 쓰러져 한참 고통을 호소하던 정현은 겨우 숨을 몰아 쉬며 벽을 짚고 일어섰다.
"……."
"…이은호..."
곧 은호가 현관문을 열고선 들어왔을까, 정현이 비틀거리며 거실 한가운데에서 주위를 둘러보자, 은호가 멈춰서서 정현에게 말한다.
"…정현씨."
은호가 보이지 않으니, 정현은 소리로 은호를 찾아야 했다.
"어딨어.."
은호가 울먹이며 정현을 바라보았고, 눈 앞에 두고도 찾지 못 하는 정현에 결국에 눈물을 흘리며 정현을 끌어안았다.
정현의 허리춤을 안고서, 품에 얼굴을 묻고 우는 은호에 정현은 안심하듯 숨을 몰아쉬었다.
"어디 안 가고, 옆에 있을 거니까. 불안해 하지 마요."
"……."
"잠깐 어디 가더라도, 말 하고 갈 테니까. 그렇게 나 부르지 마요."
"……."
아픈 손을 들어 은호를 안은 정현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다가도 입을 꾹- 닫았다.
은호는 이내 참지 못 하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어느새 정현도 눈물을 흘리게 되었고, 둘은 한참을 안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그쪽이 나보고 또라이 미친년이라고 했잖아요. 그럼 그쪽은 뭔데요? 또라이 미친년 집에 들이고."
"…글쎄. 그럼 나도.. 또라이 미친놈이겠지."
"그러니까요. 또라이 미친놈,년들이니까 같이 살 수 있는 거겠죠. 생판 모르는 남인데 이렇게 같이 지내다니."
"……."
"제가 그래도 연예인들한텐 관심도 없고 그런데.. 그쪽은 알았어요. 워낙 유명했어야지."
"……."
"나도 한 번 연예인 해보고 싶다. 그러기엔 너무 못생겼나? 요즘은 예쁘고, 잘생겨야 뜨잖아요. 그쪽처럼."
"예뻐."
"…에?"
"너도 예쁘다고. 충분히 할 수 있어."
"……."
그는 내게 예쁘다고 해주었다.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굳이 나를 보겠다고 고갤 돌려 내쪽을 보는데.. 이번엔 정확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보이냐고 묻고 싶었다. 나를 볼 수 있게 된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래도 그쪽 성격만 빼면 완전 내 스타일인 거 알아요?"
"성격 빼면?"
"그래요. 성격 빼면요. 그 전에 성격은 어땠을지 몰라도. 처음 만났을 때 그 성격은 완전 별로인 거 알죠?"
"……."
"재수 없는 김정현이었는데."
"너같은 애를 다음생에도 볼 수 있을까."
"왜 벌써 다음생을 생각해요. 계속 보면 되지."
"……."
"저같이 특이하고, 별난 애는 처음 보죠? 다들 저보고 그래요. 근데.. 난 그쪽이 제일 특이하고 별났는데.. 처음보는데 반말을 하질 않나, 수표를 던지지를 않나."
"……."
"김정현 또라이새끼.. 이러고 친구한테 욕도 하고, 그랬는데."
"…하."
"…아..파요..?"
또 통증이 왔다. 저번주엔 그래도 하루에 세 번 정도 그랬는데, 이번주 들어서 하루에 7번 정도는 기본으로 발작을 일으킨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의 옆에 앉아서 등을 토닥여주었고, 그는 이를 악물고서 고통을 참았다.
"……."
차라리 소리내어 울고, 아파한다면 좋을 텐데. 나 때문에 참는 게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을 참는 그를 꼭 감싸 안았다. 이제는 잘 안다. 그가 아파서 고통을 호소할 때, 그 어떤 것보다.. 괜찮다는 말과 함께 안아주는 것.
그것보다 따듯한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없다.
"……."
오늘이 제일 힘든 것 같았다. 정말로 이러다 죽을 것만 같았다. 갑자기 숨이라도 멎으면 어쩌지, 난 어떻게 해야 되지.
여태동안 봤던 것중에 제일 고통스러워했다.
"……."
나도 이것쯤은 알고 있다. 이렇게 증상이 더 힘해질 수록.. 그가 내 곁에서 멀어질 거란 걸.
그래서인지 더 무서워졌고, 뒷걸음질을 쳐버렸다. 정신을 차리고선 그에게 다가가 급히 안아주었다.
"괜찮ㅇ.."
괜찮다는 말 조차조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괜찮다고 해버리면.. 난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니까. 너무 조심스러워졌다.
발작을 일으키면서 구토를 했던 적은 없었다. 오늘은 구토를 했고, 발작 이후로 그는 정신차리기 힘들어 했다.
평소처럼 힘 없이 그가 침대에 누웠고, 그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창문 좀 열어줘."
"창문이요?"
"…빗소리 좀 듣게."
"……."
하루만이라도 날씨가 좋을 수는 없는 걸까. 이 빌어먹을 장마는.. 언제 끝나려는 건지.
창문을 열어주고선 그를 바라보았다. 힘 없이 눈을 감는데.. 간신히 버티는 사람 같아서.. 오늘 만큼은 그에게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의 옆에 누워서는 옆으로 돌아누워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별 말 없이 초점 없이 나를 보는 듯 했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무섭지가 않아서.. 좋다."
"……."
"정말.. 죽고 싶었는데.. 아플 때, 네가 옆에 있어서 안심 되고.. 편안한 거 보니까.. 난 죽기가 싫었나."
"…그래요. 그런 생각은 이제 하지 말고.. 살 수 있는데 까지 살아봐요. 그런 말.. 이제 하지 마요.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쪽 사라지면.. 전 어떻게 살라구요.
고작 한달도 안 된 시간이지만.. 난 그쪽한테 너무 익숙해져서.. 그쪽이 사라져버리면 못 버텨요."
"…살 수 있어."
"……."
"넌..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니까."
"……."
"내가 죽으면.. 회사에서 .. 장례 치뤄주려나.."
"……."
"그건 싫은데..."
"…제가 해줄게요."
"……."
"제가 해주는 건 괜찮죠?"
"…응."
아무렇지도 않게 죽었을 때 얘기를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치만, 이렇게 대답을 해줘야.. 그를 안심 시킬 수 있다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런 말 하지 말라며 화를 내봤자.. 나만 후회할 것 같았다.
"…정현씨가 싫어하는 건 절대 안 시켜요. 내가 못 하게 할 거야."
"…응."
"그거 만큼은 내가 하게 해줘요."
"…응."
"……."
"…졸리다."
"…얼른 자요."
"…응."
"……."
그의 앞에 누워있는 나. 잘 안보이겠지만.. 그래도 들킬까봐. 일부러 눈물을 꾹 참았지만.. 결국에 눈물은 제멋대로 흐르고 만다.
신이 있다면.. 제발 이 사람 좀 살려주세요. 이 불쌍한 사람 좀 살려주세요.
제발 이 불쌍한 사람 좀 한 번만 봐주세요. 살려달란 소리까진 안 해요.. 제발 조금만 더 버틸 수 있게 해주세요.
BMG 살 수 있다고 - 김연준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그를 확인했다. 멀쩡히 숨을 고르고 있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이라도 마시려고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했을까..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놀라 고갤 돌려 그를 바라보면..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말한다.
"어디 가."
"…물 마시러요."
"……."
"어디 안 가요. 걱정 마요."
"…밥 먹고 싶어."
"밥이요?.."
"된장찌개랑.. 계란말이 먹고 싶어."
"…오늘 그거 해먹을까요? 잠깐 장 봐야 되는데.. 그럼 잠깐 있을래요?"
"…응."
"알겠어요. 빨리 갔다올게요. 잠깐만 있어요. 알겠죠?"
"응."
그가 처음으로 내게 무언가 먹고싶다고 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고, 신기하기도 하고.. 얼른 해주고 싶어서. 씻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당장 마트로 향했다.
장을 다 봐놓고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오늘따라 더 심각하게 내리는 비에 차가 밀리는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 왔어요!'소리치고선 식탁 위로 장 봐 온 것들을 올려두었다. 그리고서 그가 있을 방으로 가는데 문이 닫혀 있는 것이다.
분명히 문을 열어놓고 갔었는데.. 중얼거리며 문고리를 잡아 돌렸을까. 딸칵- 소리가 들리기만 할 뿐.. 열리지 않았다. 불안했다. 왜 방문이 잠긴 것이며, 안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일까.
예전에 한 번 청소를 하면서 서랍 속에서 열쇠를 봤던 게 기억이 났고, 나는 그 열쇠로 문을 열었다.
"……."
문을 열자마자 나는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
그가 목을 매달았다. 이미 숨을 거뒀는지.. 발버둥 조차 치지 않는 그에 나는 급히 그의 다리를 잡았다.
"…왜요!왜요오.... 된장찌개 먹고 싶다며어... 나보고 장 봐오라며!! 왜!! 죽지 마요... 죽지 마..제발... 왜 이래요....!!!"
그의 몸이 차가웠다. 분명.. 아침에 내 손목을 잡은 그의 손은 따듯했는데.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너무 차가웠다.
그는..
"제발..김정현..!!"
죽었다. 고통과, 죄책감을 짊어진 채로 그는.. 결국 버티지 못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은호.."
장례식장엔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김정현이 죽었다는 소식에 모두 많이 놀랐고, 특히 한국 뿐만이 아닌 모든 세상은 쇼크에 빠졌다.
울면서 가영이한테 전화를 했더니, 가영이는 한걸음에 달려와줬고.. 상주로 장례식장에 있는 나를 본 가영이는 눈물을 먼저 보였다.
김정현은 죽기 전에 회사에, 진구에게 문자를 하나 남겼다. 장례비는 자신의 돈으로 해결을 할 것이고, 가족은 없으니 상주로 이은호가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자신의 재산은 이은호에게 전해달라는 말까지 말이다.
"아니..! 너는 왜 여태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혼자서 끙끙 앓은 거야!"
"…미안."
"도대체 넌... 왜 그러니? 어? 얼마나 슬펐어. 얼마나.."
가영이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가 보고 싶었다. 그가 단지 불쌍하고, 안쓰러울 뿐이라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됐었고, 그를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다.
"가영아.. 나 너무 슬퍼. 그 사람이 너무 보고싶고.. 너무 미안해..그 사람이 처음으로 나한테 뭐가 먹고 싶다고 해서.. 신나서 장보러 갔는데..
그 사이에 죽어버렸어.. 나 진짜.. 어떻게 해야 돼? 진짜... 난 어떻게 살아..?"
"…미치겠다..진짜..."
나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를 그렇게 보낸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울면서 정신도 못 차리고 있을 때. 이종석이 나타났다.
그리고 저 사람이 미웠다. 그에게 죄책감을 안게 해준 저 사람이 너무 미웠다.
"…이게 다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형이.. 내가.. 이상한 소리만 안 했어도.."
"정현씨가.. 그쪽이 자신한테 미안해 하는 게 싫다고 했어요."
"……."
"미안해 하지 마요. 그쪽이 죄책감 가지고 사는 거, 정현씨도 안 바랄 거예요."
"……."
이종석도 하루 정도는 이곳을 지켜줬다. 입관식을 할 때도 너무 슬펐다. 이곳에 가족 한명 없는 것이 너무 슬펐고..
그가.. 그냥 자는 것 처럼.. 편하게 눈을 감고 있는 것 처럼 보여서.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기자들은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나는 그가 아팠다는 걸 알렸다.
자살하는 겁쟁이라며 욕을 하던 사람들은 그가 아팠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악플을 멈췄고, 팬들은 모두 슬퍼했다.
그리고 난 그가 그렇게 가버리고 일년동안 그의 집에 갈 수가 없었다. 가면 그의 생각 날까봐였다.
가영이와 함께 그의 집 앞에 왔다. 일년 전에 그가 열심히 만들어주던 고양이집을 보면서 또 눈물이 났다. 별것도 아닌데 눈물이 나고 또 난리였다.
가영이는 내 등을 토닥여주었고, 비밀번호를 치고 집에 들어섰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냄새가 났다.
그와 함께 얘기를 나누던 곳.. 항상 같이 있었던 곳. 그래서인지 더 슬펐고, 그가 떠올라서 미칠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그가 있었던 곳에 발을 들이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다. 혹시라도 내가 들어가자마자 숨이 막혀서 죽어버리지 않을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발을 디뎌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그때 정신이 없어서 보지 못 했던 것이 보였다.
[고마워 이은호]
[살 수 있어]
작은 포스트잇에 못생긴 글씨가 써져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내게 고마워했고, 나는 마지막까지 그를 생각하며 슬퍼한다.
"고맙다는 말이나 하질 말던가.. 그렇게 가버릴 거면..."
나는 그렇게 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다.
밖에선 빗소리가 들려왔다. 내일부터 장마가 시작이라 했는데. 그가 또 떠올랐다.
난 장마가 싫었다. 하지만, 그는 장마를 좋아한다 했다. 그리고 장마 하면, 그가 먼저 떠올랐다. 작년 장마엔 처음부터 끝까지 그와 함께 있었으니까.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가영이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아, 장마 또 시작이래.. 진짜 지겹다.. 너무 싫다.."
"…난 장마 좋아."
"에?"
"…장마를 사랑해보려고."
"…미쳤구나.."
나는.. 장마를 사랑하려 합니다. 그와 함께 지냈던 순간들을 잊지 않기위해 사랑하려 합니다.
-
-
-
제 기준.. 넘모 슬퍼서...울면서 쓰긴 했눈데................... 일단 브금이 너무 좋아요 ㅠ_ㅠ 흑흑...
정현아.. 거기선 꼭 행복해야대..흐극...................
이 글은! 초반 정현과 여주가 만나는 부분부터 마지막까지! 어제 새벽부터 쓴 거예요! 나름 빨리 쓴 것 같네요!!! 음하하,,!!
새드물은 뭔가 여운이 많이 남기도 하고 그래서 일부러 1편만 냈어요 !!그리고 오래 쓰면, 저도 보내주기 힘드러서 흐규흐규...그럼 여러분!!!!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