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쑨양, 보고싶어요. ]
나두. 나도요 태환. 나도 보고싶어요. 당신을 보면 죄책감이 들어요. 그래서 당신을 보고싶어도 못보겠고 당신의 기억이 내 목을 조여와서 미치겠어요.
[ 쑨양, 나 한번만 만나주면 안돼요? ]
이 너머 울고있을 태환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초조해 하고있을 태환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 그래요, 만나요. ]
안되겠다.
그냥 본능대로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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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한다. 잘못본건가? 눈을 슥슥 비비고 다시 액정을 쳐다보니 역시 잘못본게 아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답장을 어떻게 해야할지 머뭇거리는 사이에 다시 답장이 온다.
[ 지금 당장 태환 집 앞으로 갈게요, 전화하면 나와요. ]
머리에 해머를 맞은 듯 멍-했다. 아침에 땀 많이 흘렸는데!! 다시 씻어야겠다. 아 머리를 좀 자를까? 어떻게 하지? 일단 씻기나 해야지.
화장실에 들어가 씻으려고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린다.
" 악! "
" 으악, 깜짝아! "
퍽 하고 문에 이마를 부딪혀 버렸고, 기성용이 씻고 있었던 듯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나에게 놀랐다며 신경질을 낸다.
아오 나도 놀랬다고! 빨리 나와! 씻게!
" 씨... 왜 나한테 성질이야! 원래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엔 노크가 상식 아니냐?! "
" 무슨 노크야, 새삼스럽게! "
" 와, 진짜 너무한다, 박태환. 몰라. 넌 이제 공동체 생활이란 쥐꼬리도 모르는 이기주의자야. 난 친구나 만나러 가야지. "
친구?
" 친구 누구? "
" 너 지금 내 놀이 하냐? 언제부터 그렇게 간섭했다고. "
녀석이 살짝 정색을 하며 물어온다. 뭐야, 좀 물어보는것도 안되나?
" 아니, 너 또 클럽갈까봐. "
하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냥 오랜만에 친구 만나러 간다며 신경쓰지 말란다. 결국 알았다고 답하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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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 구자철. "
" 오, 기성용. 올만! "
대낮부터 호프집 앞에서 만난다. 간만에 만나니까 좋네. 자주 만나면 단물 빠져- 하고 말하는 날 보더니 무작정 헤드락이다. 결국 알겠다고, 항복! 하고 외치니 그제서야 놓아준다. 넌 이따 두고보자.
" 근데 요즘 재수때문에 바쁘실텐데, 저는 어인일로? "
만나자마자 비꼬기 스킬 들어가는 구자철이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친구 보고싶다는데 이유 있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녀석도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호프집으로 들어간다. 나도 곧 따라 들어가자, 실내에선 호프집 특유의 향이 진동했다. 구자철 뒤를 따라 어슬렁 어슬렁 걷다가 그냥 아무 테이블에 앉아버렸다.
" 여기 앉게? "
" 자리가 중요한가, 뭐. 술마시러 온 거 아냐. "
그가 의아해하며 내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이 곳 사장님이 오시더니 역시 간만이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나도 꾸벅 고개로 인사하며 잘 지내셨냐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어 대낮부터 술이냐며 핀잔을 들었고 맥주 두 병만 줄테니 그것만 마시고 꺼지란다. 바라던 바라 나도 기분좋게 웃으며 알겠습니다- 했다.
구자철이 술을 꺼내러 저만치 가버리는 사장님의 뒤를 보고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 크, 언제봐도 대단해, 사장님. "
" 그러게. "
이런 광경도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다. 이러니까 왠지 모르게 대학생이 된 거 같다. 그러고보니 수능도 얼마 안남았네. 뭐 어차피 난 공부 안해도 평타는 치니까 괜찮겠지. 저번 시험엔 그 평타가 안나와서 문제였지만.
" 근데, 그 할 말이란게 뭐야? "
조심스레 물어오는 자철이. 난 그냥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맥주 두 병의 뚜껑을 따주며 우리 테이블에 놓고 간다.
일단 녀석의 잔에 맥주를 가득 따랐다.
" 일단 마셔봐. "
녀석이 고개를 갸웃 하며 망설임 없이 쭉 들이킨다. 캬- 하며 깊이 막힌 숨을 뱉는다. 녀석이 이제 됐냐는 듯 나를 쳐다본다. 한참 눈을 맞추고 있다가 결국 내가 입을 열었다.
" 그 쑨양이라는 사람말야. "
" 쑨양? 요즘 너 왜이렇게 쑨양이한테 관심이 많냐? "
쑨양도 너한테 관심많고... 아 정확히는 박태환이겠네, 하는 그. 니가 박태환을 어떻게 알아? 하고 되묻자 쑨양에게 많이 들었단다.
" 아, 암튼 지금 이게 중요한 얘기는 아니고.. "
" 응, 계속 해봐. "
" 그 새끼가 태환이 많이 좋아하냐? "
구자철이 한번 눈썹을 찡긋 하더니 나에게 말한다.
" 넌 상상도 못 할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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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마치고 얼핏 태환의 집 근처까지 다다르니 5시가 훌쩍 지나가있다. 태환이 엄청 기다리고 있겠지? 어쩌면 나 만난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대된다. 하지만 걱정된다.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그리고 내가 그 얘기를 들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운전하는 내내 그에 대한 생각만 하다가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나와 천천히 꺾어 들어갔다. 그의 원룸 앞으로 차를 대어놓고 문자를 했다.
[ 나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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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양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 아직 후드티 고르고 있는데!
그냥 빨간 후드티와 전해줄 쑨양의 옷을 집고 빨리 현관으로 나갔다. 대충 운동화를 구겨신으며 후드티를 입고 얼른 바깥으로 나갔다.
원룸 밖으로 통하는 유리문에 얼굴을 비춰보고 머리를 정돈했다. 옷 매무새도 정리하고, 억지로 구겨신었던 운동화도 정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 옷을 건네주고, 하고싶었던 말을 다 하는거야.
문을 벌컥 열었다. 쑨양의 차로 보이는 외제차 한 대가 원룸 건물 계단 앞에 서있다. 한 번 헛기침을 하고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쑨양이 날 봤는지 내 쪽 창문을 스르륵 내린다. 옛날과 같은 그 미소를 보여주며 나에게 ' 안녕- ' 하며 손을 흔든다.
나도 밝게 웃으며
" 안녕, "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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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교 했습니다...
지금 남부지방은 난리났겠죠..;?
제발 인명피해가 안났으면 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