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 이 씨발 진짜-!
지훈) 멈춰.
증거를 남겨야 족칠거아냐.
먼저 와있는 지훈이 욕을 읊조리며 뛰어가려는 민규를 멈춰세운 뒤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찍을만큼 찍은 지훈은 주머니에 휴대폰을 다시금 넣으며 민규를 막아선 손을 내리고 저벅저벅 여주를 향해 걸어갔다. 벽에 기댄 지현의 시선이 지훈에게 향했다가 그 뒤를 잇는 민현에게 닿았고, 지훈은 곧 여주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는 아이의 머리채를 잡아 당겼다.
“아!”
“야 너 미쳤어?!”
미친건 내가 아니라 니들이겠지.
여자아이의 비명과 함께 여자아이들의 행동이 일제히 멈추고 뒤돌아 지훈을 쳐다봤다. 그러다 머리채를 던지듯 놓은 지훈에 아이의 머리를 살피며 지훈에게 소리쳤고, 지훈의 음성과 함께 분위기는 한층 더 싸늘해졌다. 여자 아이들은 분위기를 살피다 달아나듯 뒷뜰을 벗어나고, 어느덧 지훈의 옆에 선 민현이 여주를 일으켜 세우곤 민규에게 말했다.
민현) 보건실로 가.
민규) 형.
민현) 여기서 네가 주먹 휘두르면 그 감당 나라도 못해줘.
민규) .......
민현) 내가 해결할게. 여주부터 데려가.
민현의 말에 민규가 여주의 어깨를 감싸며 뒷뜰을 빠져나갔고, 뒤에 서있던 정한은 한솔에게 지훈이 주먹이라도 들면 제게 전화를 하라는 말을 남긴 채 민규를 따라나섰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봐?”
민현) 한지현.
“니 쓰레기 담당은 애초에 나 아니었어?”
민현) 뭐?
“중학교 때부터 너 귀찮게 하는건 내가 다 처리했잖아.”
지훈) 장난하냐?
“장난하는거 아닌데.”
입가에 웃음을 걸친 채 모든 말을 되받아치는 지현에 지훈은 단단히 화가난듯 제 머리를 쓸어넘기며 목을 돌렸고, 민현은 차분한 표정으로 지현의 시선을 맞췄다. 옅은 정적에 지훈은 곧 날카로운 시선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지훈) 중학교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네.
“그럼.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잖아.”
지훈) 대가리 좋은 것도 여전하고.
“황민현만 없었어도 내가 1등이지.”
쟤 때문에 만년2등이네.
지훈) 황민현을 좋아해서 이짓거리하는것도,
“........”
존나 여전하고.
“그래. 여전히 좋아해.”
민현) 한지현.
“고백하려고 전교 꼴찌 타이틀 떼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민현) ........
“전교 회장 나간다길래, 부회장하면 바라봐 줄 것 같아서 부회장도 됐더니,”
네가 바라보는게 고작 저런애였어?
지현이 실소를 뱉으며 민현을 쳐다봤고, 지현의 눈에는 적게 눈물이 차올랐다. 그 모습에 지훈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고 민현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민현) 고작 저런 애. 그렇게 부르지마.
“야. 니 옆에서 너 지켜주느라 바빴던건 나야.”
민현) 아니.
“.........”
민현) 그건 날 향한 소유욕이었지.
“...뭐?”
민현) 날 지킨게 아니라, 널 위해서였잖아.
“...황민현.”
민현) 넌 내 아픔에 공감해주고 위로해 준 적,
단 한 순간도 없었어.
“...어머니가 너 많이 삐뚤어졌다고 하더니, 쟤 때문이구나?”
민현) ........
“어차피 그 싸움에선 네가 지게 되어있어. 힘 빼지마.”
민현) 봐. 니 눈에 지금 내가 삐뚤어져보이잖아.
넌 날 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니까.
민현이 실소를 터뜨리다 다시금 표정을 없애고 지현의 시선을 맞췄다.
민현) 이젠 진짜 끝이야.
“........”
민현) 다신 보지말자.
“........”
민현) 물론 학폭위는 열릴거니까, 어머니 부르고.
쟤 건든 이상 나 그냥 안넘어가.
민현이 지현을 흘겨보며 뒷뜰을 빠져나가고, 뒤에 서있던 한솔이 천천히 지훈을 향해 걸어왔다. 그 순간 지훈은 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훈) 중학교 때 너 좋아했었어.
“........”
지훈) 민현이가.
“..뭐?”
지훈) 물론 동질감 때문이었다고 했긴 했지.
“........”
지훈) 성향이 비슷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자기는 이렇게 어둡지만 넌 밝은게 신기하면서도 관심이 갔대.
“........”
지훈) 근데 니가 민현이 곁에있는 소중한 연들을 없애버렸잖아. 널 위해서.
“........”
지훈) 민현이가 너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고 나서도 니 행동들을 말하지 않았던 건, 널 향한 배려였어. 자기가 갖지 못한걸 가진 널 위한.
근데 그 마지막 배려도 발로 걷어찬건 너야.
한솔과 지훈이 뒷뜰에서 나오고, 혼자 남은 지현은 참고있던 울음을 토해냈다. 가을바람에 낙엽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지현의 울음소리를 덮어주다가도 낙엽들이 떨어져 지현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흘리는 눈물이 서러워서였는지, 민현을 향한 원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급히 보건실로 향한 지훈과 민현을 맞이한 건 보건실에서 막 나오는 민규와 정한이었다. 정한은 여주가 방금 잠들었다며 예비종도 쳤으니 다음에 와야할 것 같다고 말했고, 정한의 말에 지훈과 민현은 아 하고 탄식을 뱉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민규는 아직도 분한 듯 눈이 새빨개져있었고, 이를 이해하는 듯 정한은 민규의 등을 쓸어댔다.
석민) ........
5교시가 끝나자마자 붉은 눈을 한 채 달려와 잠든 여주를 쳐다보는 석민이었고, 그런 석민을 쫓아 달려온 민규가 숨을 고르며 석민 옆에 섰다. 좀 걸어가라니까 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석민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민규는 0.1초 만에 그 말을 제 속에서 없앴다. 침대 밑 바닥에 털썩 앉아 누워있는 여주의 시선을 맞춘 석민이 눈물을 흘리고,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석민의 눈물에 여주는 놀란듯 하다가도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여주) 아, 나 이제 이석민 못달래주는데.
민규) 뭐하러 달래. 이제 달래주지마. 열일곱인데.
여주) 석민아, 나랑 떡볶이 먹을래?
석민) ........
여주) 봐. 이거 봐. 이제 떡볶이도 안먹힌다니까.
민규) ..야, 이석민. 그만 울어.
석민) 왜, 왜 또. 왜 내가 없을 때만,
여주) ........
석민) 너는 맨날 나 지켜줬는데, 왜 나는 널 못지켜?
여주) 석민아.
석민의 울음젖은 목소리에 보건실로 발을 들이던 아이들이 일제히 멈춰 석민을 바라보고, 석민은 여주의 손을 부여잡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곤 말을 이었다.
석민) 초등학교 때 나 괴롭히는 애들은 너가 다 때려줬잖아,
여주) .........
석민) 중학교 때 따돌림 당했을 때도, 같이 전학가주면서까지 날 위해줬잖아,
여주) .........
석민) 근데 거기서 네가 따돌림 당할 때, 그 때도 나 말고 민규가 도와줬잖아. 나는 겁쟁이라서, 무서워서, 계속 뒷걸음만 치고, 그게 뭐가 무서워서는,
여주) 석민아.
석민) 그 때 꼭 다짐했단말이야. 나도 민규처럼 널 위해서 만큼은 뭐든 하겠다고, 달려들 수 있다고. 근데 또 나는-,
여주) 초등학교 땐 남자애들이 맞아줘서 널 구할 수 있었던거지, 내가 강해서가 아니었어.
중학교 때 네가 힘들어 해서 같이 전학간 건, 내가 너랑 같이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였고.
그리고 그 때, 내가 따돌림 당했을 때 말을 안한 건 내 잘못이었고, 그 상황을 마주한 건 지나가던 민규였던거지. 네가 겁쟁이라서가 아니었어.
오늘도, 넌 교무실에 가느라 바빠서 동아리실에 없었잖아. 동아리실에 민규랑 있었더라면 너도 나한테 왔겠지.
여주) 그리고 석민아. 넌 날 계속 구해주고 있어. 매일 내 곁에 있잖아.
나 속상하게 자꾸 울지마.
정한) 뭐야. 왜 너희 둘만 들어와? 여주는.
민규) 여주 오늘 학교 안왔는데?
석민) 여주 입원했어.
승철) 이 씹, 그 정도로 맞았어!?
민현) 내가 입원시켰어, 승철아 제발 앉아 무서워 죽겠네.
지훈) 그래 좀 앉아.
다음날, 어제 자리에 없던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을 때 민규와 석민이 들어오고, 입원했다는 여주의 소식을 들은 승철이 벌떡 일어섰다가 아이들이 진정시키자 머쓱한 웃음을 보인 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 정한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한) 쟤 있었으면 진짜 큰일이었을지도 몰라. 오히려 우리가 가해자 될 뻔 했을걸.
지훈) 쟤랑 권순영이랑. 주먹 먼저 나가는 애들.
순영) 난 진짜 보자마자 주먹 날라갔지.
지수) 입원은 왜 시켰어?
민현) 여주가 유리한 방향으로 학폭위 진행중이라 그래. 30일 정학으로 보고 있긴 한데, 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민규) 고작 30일 정학? 진짜 화나네.
석민) 애가 갈비뼈가 금이 갔는데도?
지훈) 갈비뼈에 금갔어? 아 진짜 그냥 때릴 걸 그랬나.
원우) 그럼 정학이 아니라 퇴학이어야하는거 아니야?
한솔) 그니까. 그정도면 퇴학이지.
민현) 퇴학이나 강제전학을 시키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학교 측은 이미지를 신경쓰니까.
승철) 하여튼 진짜 이놈의 학교 돌아가는건.
지수) 한지현 걔 빽때문에 그런건 아니고?
민현) 그런건 아니야. 30일보다 더 길게 얘기를 나누고 있긴한데 모르겠어. 결정은 어차피 학교 측에서 하는거니까. 근데 아마 30일 될 것 같아.
민현의 말에 아이들은 하나 같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고, 1학년 아이들은 눈치를 보다가 넉살 좋게 웃으며 문병 이야기를 꺼냈다.
찬) 우리 그럼 여주 문병갈까?
승관) 그래! 여주 힘들텐데 가서 신나게 해주자!
석민) 안그래도 혼자 심심하다고 하긴 했는데.
지훈) 그래?
정한) 다같이 가면 너무 많으니까 각자 나눠서 가는게 어때. 시간 되는 애들끼리.
승철) 그래, 그럼. 야 눈치껏 음료수 같은 건 겹치지 않게하자.
찬) 나 알로에 한박스! 나랑 내일 학교 끝나고 갈 사람!
승관) 나나 나 내일 돼.
한솔) 그럼 나도 내일.
승철) 나도 내일 학원 없으니까 내일!
순영) 그럼 난 여주가 좋아하는 아이스티 복숭아맛 티백 한박스 들고간다~! 내일 모레 나랑 갈 사람!
원우) 나랑 가자. 명호야 너도 같이가자.
명호) 그래. 준휘 형 같이 갈래?
준휘) 그래, 좋아.
정한) 아 그럼 난 자몽에이드 음료수 한박스를 들고가야겠네.
epilogue
며칠을 걸쳐 웬만한 아이들이 문병을 왔다가고, 올사람이 없을 것 같았던 여주는 휴대폰을 만지며 꾸벅꾸벅 졸다가 잠에 빠졌다. 노을이 져 주황빛이 병실을 가득 채울 때, 병실 문이 열렸다.
민현) ........
민현이 잠든 여주를 보고 자신이 들고온 로제 찜닭을 침대와 조금 떨어진 작은 냉장고 위에 올려두고, 간이 의자를 꺼내 침대 앞에 앉았다. 새근거리는 여주의 숨소리만이 들릴 때, 민현이 속삭이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괜히 나때문에.
“내가 다 갚아줄게.”
“...나 꺼내줘서 고마워.”
이기적인 부탁일 지 모르겠지만, 계속 옆에 있어줘 여주야.
나 이제 너 없으면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어.
쓴 웃음을 입에 머금은 채 말을 이어나가던 민현이 잠든 여주를 빤히 쳐다보다가 어느덧 노을이 뉘엿뉘엿 지고, 푸르게 하늘이 물들었을 때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더니 툭하고 내뱉었다.
내가 많이 좋아해, 여주야.
**
잠든 여주한테 고백하는 민현이가 엔딩이 딱 좋아서 짧지만 여기서 끊었슴미댜. 그 대신 일찍 가져왔어요! 잘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정말 춥더라구요. 다들 따듯하게 입고 나가셨죠? 이렇게 빨리 써지면 또 찾아올테니까 건강만 하세요! 흐흐 집에 오자마자 써둔거 올리고 갑니다! 오늘 하루 잘 마무리 하시고 예쁜꿈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