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을텐데 왜 여기까지 나왔어. 그냥 혼자 간다니까."
"어? 아.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할 말? 응, 해봐."
"나 대답 이제 할게. 뭐라고 할지 결정했어."
"아... 되게 빠르네. 벌써 생각 다 한 거야?"
"어, 뭐.. 나는 너,"
"잠깐, 잠깐만. 지금 말고. 내일 하면 안 될까? 내일 들을게 네 대답."
"그래. 그럼."
"내일 연락할게. 들어가봐."
쩝... 고백하기 실패......
차라리 잘 된 건가. 뭐라고 말 할지 생각이나 좀 해놓게.
안일한 생각이었다. 사실 별 생각 없이 고백해야겠다는 마음만 들었었는데 타이밍을 놓치니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무슨 말로 운을 띄워야할지, 끝은 뭐라고하면 되는 건지. 날이 밝고 옷을 골라입을 때까지도 개중에 괜찮은 말을 고르려고 노력이었다.
마음은 정했는데, 말을 못 정했네.
"이름아. 일찍 나왔네? 내가 더 먼저 와있으려고 했는데."
"...어, 왔어? 아직 밥 안 먹었지?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그럼 저기 갈까? 오픈한지 얼마 안 됐다는데 피자 맛집이래."
"뭐야. 미리 알아본 거야?"
"응. 그러니까 오늘은 나한테 좀 맡겨줘. 나 많이 찾아봤으니까."
"코스라도 짜온 것 같네."
"어떻게 알았어? 게다가 그 코스 완전 빡세. 따라오기 벅찰걸."
"한 번 따라가보지 뭐."
선호가 당찬 얼굴로 가르킨 가게에 들어가 후딱 메뉴판을 훑었다. 그래. 고백 멘트는 뒷전으로 미루고, 배라도 일단 채우자. 나중엔 떨려서 먹지도 못 해.
"... 너 오늘은 그런 거 금지야."
"그런 게 뭔데? 아, 나 이거. 이거 먹을래."
"이렇게 막, 훅. 어퍼컷 날리는 거."
"내가 언제... 어퍼컷을 날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아무튼 오늘은 안 돼. 그렇게 멋있게 구는 거. 오늘은 하지마. 나 마음 가다듬으려면 시간 꽤 걸릴 것 같거든."
얘 뭐야. 얘 지금 오늘 고백하지 말라는 거 돌려 말 하는 거니? 아니면 멋 없게 고백하라는 건가...
김선호가 짜온 코스는 정말 빽빽했다. 어째 대답할 틈을 안 주는 것만 같았다. 밥 먹고 바로 영화관으로 넘어가서는 말 할 시간도 없었고. 영화 끝나니까 소화 좀 시키자고 돌다가 냅다 게임장으로 들어가버렸다. 거기는 뭐... 고백 지를 분위기가 전혀 아니던데? 이미 해는 지기 시작했는데, 나는 좋아한다의 좋도 못 꺼내고 있다. 게임장에서 나와선 안 봐도 시끌벅적한 건물로 또 들어서려는 김선호를 막아세웠다.
"안 돼. 네 코스는 여기까지야. 나 가고 싶은 데 생겼어."
"어딘데?"
"저기. 저기로 가자."
대충 주위를 둘러보다 아기자기한 카페를 콕 찝었다. 나는 빨리 말 하고 싶은데 김선호는 최대한 늦게 듣고 싶은 모양이다. 얼굴에 쓰여있어. 자칫하다간 내일로 또 미루게 생겼네. 그건 안 되지.
카페라떼를 몇 모금 쪽 빨아마시다 말고 컵을 옆으로 밀어냈다. 카페에 들어온지가 지금 몇 분이 지났는데. 메뉴 주문할 때를 제외하고는 오고가는 말이 없다. 컵을 옆으로 밀어내니까 주구장창 딴 곳만 보던 김선호가 그제서야 눈을 쳐다본다.
"선호야."
"아, 아 나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네. 이건 케이크랑 먹어야 좀... 잘. 어. 시키고 올게."
"앉아."
"...금방 올게."
"아니. 너 케이크 안 좋아하잖아. 단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애가 무슨. 쓸데없는 짓 하지말고 도로 앉아."
맞네. 백프로. 쟤 지금 내 대답 피하는 중이다. 앉으라는 말에 엉거주춤 앉긴 하는데 눈은 또 딴 곳으로 가있다. 뭘 어떻게 해야될지 갈피를 못 잡았는데 이제 알겠다. 뭘 어떻게하든 빨리 질러야겠다는 거 알겠어. 눈도 안 맞추고 휴지나 쪼물딱대는 김선호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준비해라 고백 쏜다.
"내 대답. 안 듣고 싶어? 자꾸 피하네?"
"아, 아니야~ 피하긴 언제..."
"안 궁금해?"
"...듣고 싶고, 궁금하지. 너한테 고백했던 이후로 줄곧 궁금했는데. 막상 들으려니까...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아서. 대답 듣고나면 끝일까봐 자꾸, 겁이 나서."
휴지를 만지던 손이 멈추고, 눈이 마주쳤다. 김선호가 천천히 내뱉는 말들이 전의 내가 김선호한테 전하고 싶었던 말들 같아서 떨렸다. 고백이 이런 거구나. 하려니까 겁난다기보다 떨리고 설레네. 고백이 이런 거였네.
"그럼, 네가 대답할래? 고백은 내가 할게."
"...어?"
"나도 설레는 고백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 네가 받아주지 않을까하는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찬 그런 고백. 나랑 만날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너 좋아해. 내가 겁먹고 널 피했던 순간들, 네가 날 친구로 찾아댔던 그 순간들에도 널 좋아했어."
고백의 맛을 알아버렸다. 어떡해. 이 감정이 너무 좋아. 다시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대신 더 좋은 사이로 만날 수 있겠다는 설렘으로 가득찬 이 고백이 좋아.
"나 좀 받아주라, 선호야."
그런 고백을 너한테 할 수 있어서 좋아.
네가 좋아. 쭉 네가 좋았어, 난.
*
사족 |
(내적함성) 얘네 둘 대체 고백만 몇 번이죠? 사귈 때 됐드... 참고 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화엔 연애하는 선호이름 보실 수 있습니다!! 후딱 써오겠슴다. 또 늘 써놓는 거지만 건강 조심하시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 봬요^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