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 자퇴했냐?
민현) 뭔소리야.
지훈) 아님 휴학했어?
민현) ..뭔,
지훈) 그것도 아닌데 왜 우리학교에 있냐고.
여주의 수업이 끝나기까지 기다리던 정한과 지훈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건 다름아닌 민현이었다. 금요일은 공강이었던 민현은 카페에서 과제를하다 단톡방에서 점심약속을 잡는 여주와 정한, 그리고 지훈을 보고서 잽싸게 아이들의 학교로 향했다.
정한) 왜왔어, 엉?
민현) 나 이번에 금공강있다고 몇번을 말했어. 여주 시간표는 달달 외우고 있는 것들이 어떻게-,
정한) 너랑 비교하냐, 여주를.
지훈) 그니까.
민현) ..됐다.
아이들의 무관심 아닌 무관심에 민현은 고개를 저어보이더니 아이들을 따라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시간이 좀 흘렀을까, 여주의 끝나가고 있다는 카톡을 읽은 셋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주가 있는 창조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현) 뭐먹을건데?
정한) 몰라.
민현) 왜 몰라. 메뉴 안정했어?
지훈) 여주가 모르겠대.
정한) 그래서 다시 물어봐야돼.
민현) 아.
민규나 승관이가 있었더라면 환장하고도 남을 대화였지만, 여주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셋의 일상엔 지극히 당연한 대화였다. 아직 추운 날씨에 혹여나 여주가 기다릴까 발걸음을 재촉한 아이들은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여주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고, 한껏 성난 발걸음으로 여주의 앞에 섰다.
여주) 뭐먹으러-,
민현) 너 옷이 뭐야, 여주야.
정한) 안추워?
여주) ..뭐가? 니트바지 따듯한데?
지훈) 자켓이 얇잖아.
여주) 뽀글이 따듯해! 3월인데 왜들 난리야.
아잇, 왜그래-
민현이 제 숏패딩을 벗고 여주의 뽀글이 자켓을 벗긴 뒤 자신의 옷을 여주의 어깨에 걸쳤다. 그 모습을 본 지훈은 한 발 늦었다는 듯 한껏 민현을 째려보고, 다른의미로 정한은 민현을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정한) 넌 고딩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무려 학교도 다른데.
지훈) 그니까. 여전히 짜증나게.
민현) 그럼 다들 속도를 높이시던지.
여주) 아이, 하나도 안춥다니까.
민현) 감기도 잘걸리면서. 너 오늘 민규 한 번도 못봤지?
여주) 응, 왜?
민현) 민규가 너 옷 그렇게 입은거 봤으면 펄쩍펄쩍 날뛰었을걸.
지훈) 그치. 감기 걸리려고 작정했냐면서,
정한) 석민이를 갈궜겠지. 왜 저렇게 입히고 내보냈냐고.
석민과 민규를 언급하자 아이들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고, 큰 웃음소리에 이목을 집중시키기엔 다분했다. 여주와 같은 건물에서 나오던 사람들은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한 번, 웃음을 띤 잘생긴 외모에 한 번 치여 시선을 고정시켰다.
정한) 그래서 뭐 먹고싶은데?
여주) 아무거나 상관 없는데, 다들 뭐 먹고싶은 거 없어?
지훈) 밥 종류는 어때.
여주) 밥 좋지.
민현) 밥 뭐?
지훈) 뭐먹고싶어?
여주) 오빠가 정해. 밥은 오빠 전문이잖아.
지훈) 내가 밥 제안했으니까, 뭐먹을 지는 여주가 정하자.
여주) ..감자탕?
정한) 그래 그럼 요 앞에 감자탕 먹자.
매번 반복되는 대화에 지훈은 여주가 메뉴를 고르게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 학교를 빠져나와 가게 앞 신호등에서 멀뚱멀뚱 서있을 때 즈음 석민에게서 전화 한통이 오고, 여주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버럭 소리치는 석민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새어나왔다. 여보세-,
‘김여주!!!!!’
여주) ...아, 이석민 화났네.
민현) 석민이가 왜 화나?
지훈) 집에서 뭔 일 있었어?
여주) ...그게,
‘니가 어딜 나가!!!!!!!‘
여주) 석민아 일단 진정을-,
정한) 줘 봐, 스피커로 좀 하게.
지훈) 그니까, 왜 그렇게 화가 난건데?
여주) 아냐! 줘봐 내가 얘기 할-!
정한이 여주의 휴대폰을 앗아가고 스피커로 돌린 동시에 신호등이 초록빛을 반짝였지만, 석민의 우렁찬 목소리에 그리고 충격적인 대사에 아이들은 땅에 시선을 고정시킨 여주를 쳐다봤다.
석민) 니가 자취를 왜 하는데!!!!!!!!!!!!!!!!!!!!!!!
오랜만이었다. 반갑지는 않은 소식으로 모인 것이었지만, 대한대 아이들까지 이렇게 카페에 모여 앉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과제 때문에 스튜디오에 있는 여주를 제외하고 모인 아이들의 표정은 적잖게 착잡했다.
승철) 너무 빨라.
찬) 그래. 일단 좀 위험하기도 하고..
원우) 구한 원룸도 근처에 애들 안사는 곳이잖아.
지수) 무슨 일 생기면 바로 갈 사람들이 근처에 일단 없어, 그게 제일 좀 그렇지.
민현) 여주 입장에선 빨리 나와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충분히 그럴 상황이었으니까.
지훈) 그래도 좀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어.
민규) 언제부터 들어간다는데.
석민) 다음주 주말에 짐 옮기고 바로. 아 진짜, 솔직히 이해는 되는데, 그냥, 아 그냥 너무 속상해서 그래.
석민의 심경이 복잡한듯 테이블에 제 이마를 쿵 하고 박은 채 고개를 숙였고, 민규도 똑같은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빨대로 음료를 휘적휘적 저어댔다. 나머지 아이들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으며 한참이 지나자 민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훈) ...왜그렇게 피곤해 보이지?
민규) 쟤 피곤한 거 맞아, 형.
민현) 왜?
여주) 어제 밤에 집에 들어가고 오늘 아침까지 석민이한테 시달렸어.
정한) 자취때문에?
여주) 응. 자기를 두고 나가야겠냐고, 왜 그러냐고, 간식 다 주고 심부름도 다 자기가 하고 배달음식도 다 사줄테니까 제에발 나가지 말라고...하.
과제 같이 할 사람- 하고 여주가 단톡방에 올리자마자 밤을 샌 민규와 지훈, 그리고 아침 운동을 하던 민현, 그리고 카톡 소리에 눈을 뜬 정한이 모였고, 지훈이 노트북을 두드리다 피곤한 여주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민규) 이해해야지. 네가 잘못한 건 맞잖아. 너한테 얘기 들은 것도 아니고 어머니한테 들었다는데, 애가 얼마나 놀랐겠어.
여주) ..그날 저녁에 들어가서 천천히 말하려했어. 타이밍이 틀렸을 뿐이야.
민현) 다음주 주말이랬지?
여주) 응.
민현) 통학하기엔 가까워서 좋겠네.
여주) 그건 그렇지.
정한) 그럼 월세도 매달 내야하잖아. 알바는 구했어?
여주) 응. 빵집 알바 구했어, 월 화 이틀.
민규) 학교 시간표 다 맞춰서 한거야?
여주) 응. 아 지옥문이 열렸다. 알바에 학교에 과제에.. 상상만해도 끔찍하네.
지훈) 자초했잖아. 속상하게.
여주) 그치.. 자초했지, 그리고 원래 이렇게 살았어야했던거고.
언제까지 그 따듯한 석민이네 집에 있을 순 없잖아.
씁쓸한 듯 당찬 여주의 말을 끝으로 아이들은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한 여주를 잠시 쳐다봤다가 다들 자신들의 과제로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꽤 흘러 정오에 다달았을 때 즈음 지훈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밥.
민현) ..아. 밥. 뭐먹고싶어?
정한) ...뭐먹지. 니네집 근처잖아. 메뉴 추천해줘봐.
민현) 우리집 근처면 뭐해, 밖에서 먹질 않는데.
지훈) 뭐 없어? 나 약간 오늘 초밥 먹고싶은데.
여주) 오 초밥 좋다. 난 버블티도 먹고싶은데 근처에 없나?
민현) 내가 검색해볼게.
민현이 노트북을 접고 휴대폰을 꺼내자 아이들도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민규는 졸린 듯 눈이 잔뜩 풀려 여주의 팔을 붙잡았다.
민규) 아 나 집에 갈까? 너무 졸린데.
여주) 밤 낮 바꾸고싶다며. 잔말말고 밥이나 먹으러가자.
민규) 아 너무 졸려, 진짜 진심이야.
여주) 가서 세수 한 번 하고 와.
지훈) 같이가자.
민규) 그래.
지훈과 민규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고, 음료 잔을 다 치운 민현이 테이블을 대충 닦은 뒤 다시금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두드렸다.
정한) 점심 먹고 다시 과제 할거야?
여주) 도서관 갈래? 또 카페에 돈쓰긴 싫은데.
정한) 도서관도 괜찮지.
민현) 여기서 한 걸어서 10분? 가면 초밥집 있대.
정한) 그럼 거기로 가면 되겠네.
“어 황민현!”
민현) ...어 하이.
“뭐야. 너 이근처 살아? 저번에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민현) 어. 여기 안살아. 잠깐 애들 만나려고 온거야.
“아아, 아 안녕하세요. 민현이랑 같은학교 동기에요.”
정한) ...아.
화장실에서 걸어오는 민규와 지훈을 본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집어넣자 마자 민현에게 아는 채를 하며 다가오는 남자아이였고, 민현은 떨떠름 한 듯 인사를 건넸다. 대충 이야기가 오고가다 아이의 시선은 정한과 여주를 향했고, 정한은 아. 하고 적잖게 탄식같은 대답을 뱉어낸 뒤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훈) 누구야?
정한) 황민현 동기래.
여주) 잠 좀 깨?
민규) 엉. 세수하니까 좀 깬다.
지훈) 야, 우리 나가있을게.
민현) 아 그래.
지훈의 말을 끝으로 아이들이 먼저 카페를 나가고, 민현은 늘 입가에 걸치고있던 미소를 은은하게 띠운 채 자신보다 조금 작은 아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민현) 나 밥먹으러 갈건데. 할 말 더 있어?
“아니, 과제는 다했어?”
민현) 웬만큼 했어.
“..아 그래?”
민현) 응. 나 갈게. 학교에서 보-,
“아까 같이있던 여자애 누구야?”
민현) ...여자애?
“ 아까 저기 너랑 같이있던 일행. 걔 남자친구 있어?”
민현) 그건 왜?
“아니 그냥. 없으면 나 소개 좀 시켜주라.”
민현) 있어, 남자친구.
“...진짜? 누구?”
민현) 같은 학교 다니는 남자애래. 나도 잘 몰라.
“..아 그래? 아쉽다.”
그래 알았어, 학교에서 보자-
남자아이가 제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민현이 표정을 굳혔고, 곧 눈을 느리게 깜박거리다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고 살풋 웃음기를 머금은 채 카페를 빠져나갔다.
어제 석민의 부모님과 함께 짐을 옮긴 뒤 다음 날 아침인 지금 홀로 제 자취방으로 향했고, 마지막까지 울상이던 석민의 표정을 생각하며 제 침대에 풀썩 몸을 눕혔다. 이제 정말 완벽히 혼자임을 실감함과 동시에 벌써부터 공허함을 느끼던 여주는 어쩔 수 없다라는 걸 안다는 듯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여주) ...밖엔 왜그렇게 소란스럽지.
그러다가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에 여주는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어젯밤 앞으로 홀로 지낼 생각에 잠을 뒤척인 탓에 금새 잠에 빠졌다. 밖에서 미세하게 새어들어오는 소리와 여주의 일정한 숨소리가 방안을 가득채우고, 여주는 몸을 움츠리며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꽤 흘러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즈음 초인종이 울리고, 여주가 뒤척이다가 반복적으로 울리는 초인종에 눈을 흐릿하게 떠보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릿한 발걸음으로 현관문에 다가가 허리를 굽혀 구멍으로 밖을 바라보고, 곧 익숙한 얼굴에 ...어, 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문을 열었다.
여주) 무슨 일-,
정한) 자 여기 떡.
여주) ...엉?
정한)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여주) 무슨 소리야..?
정한) 나 옆집으로 이사왔어.
여주) ...?
**
아. 여주를 이렇게 일찍 독립시킬 생각은 없었는데.. 하. 무슨 생각이니 나 자신^^
새해 첫 글이네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는 작년보다 더 행복한 일들이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제목은 위성이 행성을 벗어나지 못하듯, 여주도 아이들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였습니당 (물론 빙빙도는 위성은 아이들이지만ㅋㅋㅋㅋㅋ
넉점반의 소중한 암호닉💛
[호시탐탐] [봉봉] [세봉해] [파란하트] [0846] [인절미] [콩콩] [하늘] [겸절미] [슈슈] [토끼] [대장]
암호닉은 마지막 회차에 받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