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w. 옥수수소세지
Q. 들떠 계시네요?
"저희 오늘 제주도 가요!!"
"태교 여행을 갑니다. 어우, 되게 좋아하네? ㅎㅎ"
EP. 09: 부부의 쿵짝
"턱."
"턱. 근데 자기, 좀 사랑스럽게 말해주면 안 돼?"
"앙."
"앙."
사상최초. 해가 서쪽에서 뜬 게 분명해요.
ㅇㅇ 씨 같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잠꾸러기가 알람 하나 없이 일찍 일어난 것도 모자라, 지훈 씨의 모닝콜은 물론 남편의 준비 과정까지 직접 재촉하다니요.
어젯밤에 미리 골라 둔 옷을 입고 가벼운 화장까지 끝마친 아내는 방글방글 웃으며 아직 남편이 잠에 취해있는 안방으로 달려가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켰어요. 얼른 서둘러야 한다며 조잘조잘- 천진난만하게 떠드는 아내에게 못 이긴 척 이끌려 화장실로 이송된 남편이 제일 먼저 꺼낸 말은 다름 아닌, 보고 싶었어.
후... 아침부터 세상 낮게 잠긴 목소리로 앙탈을 피우시네요.
설마 지금 길어야 8시간 잠에 들었던 그동안 보고 싶었다는 건가요?
아니길 바라야 할 겁니다 주지훈 씨.
솔로 만세. 부들부들.
"오늘 왜 이렇게 예뻐?"
"볼 뿌."
"뿌."
역시 아내의 말이라면 언제나 참 잘 들으시는 지훈 씨.
지금 ㅇㅇ 씨는 곧 제주도로 떠날 생각에 너무도 신이 난 나머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의도치 않은 먹금을 당하셨으나 지훈 씨는 일단 저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아내를 껴안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아침을 보내고 계신 듯 하네요.
그래요, 두 분이 행복하시면 됐죠.
"오늘 운전은 내가 한다."
"왜요. 제가 할게요."
"쓰흡! 속도 안 좋은게 어딜. 이거나 받아, 오다 주웠다."
연보라색의 머그 텀블러에는
남편을 기다리며 아내가 직접 탄 꿀을 듬뿍 담은 생강차가 담겨있네요.
아, 지훈 씨요?
의학 전문용어로 쿠바드 증후군이라고 하죠.
예비 아빠 주지훈 씨는 저번주를 시작으로 아내를 대신해 입덧을 겪고 계십니다. 공감 임신도 처음에서야 이것이 바로 저 둘 사이의 사랑의 증표라며 능글맞게 넘기셨죠. 아내가 아닌 제가 힘든 것이 차라리 천만다행이기는 하나, 남편은 매일매일 새로운 충격과 공포의 신세계를 몸소 경험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후기를 알려달라 물었더니, 고개만 절레절레 저으시더라구요.
대충 뭐, 장난이 아니라는 뜻이겠죠?
그리하여 시아버님이 며느리를 위해 직접 담근 꿀생강청은 주인도 만나지 못한 채, 아들의 쓰린 속을 달래기에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부지 땡큐, 라고 ㅇㅇ 씨께서 전해달라고 하네요.
"뽀뽀해주면 옆에 탈게."
"자! 이제 잔말 말고 옆에 타."
ㅇㅇ 씨, 박력… 언니 멋져요♡
제가 극진히 챙기지는 못할 망정 챙김을 받아야하는 제 신세를 유일하게 나쁘지 않다 느낄 때는 바로 이러한 순간들 덕분이라구요. 헛구역질로 자주 메슥거리는 저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아내 덕에, 요즘은 예상치 못한 문제의 입덧을 빌미로 아무 때나 뽀뽀를 받으실 수 있다고.
하긴, 예전 같았다면 간단한 주먹치기로 끝났을지도 모르겠네요.
다 모르겠고 온 우주의 모든 커플들 망했으면 좋겠습니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이른 아침부터 두 분은 흥이 넘치시네요.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은 설레임으로 그득합니다.
오랜만의 여행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죠.
"나가자."
"그래."
제주도에서 묵을 숙소에 짐을 풀며 잠시 숨을 고른 부부.
이제 밖으로 향하자는 아내의 마냥 해맑은 미소를 제 두 눈에 가득 담은 남편 또한 화사한 웃음으로 그녀에게 보답합니다.
짧은 휴식을 뒤로한 채, 남편과 아내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두 손을 꼭 잡고 하염없이 느긋한 동네를 걷기 시작하네요.
세월의 깊이를 보여주는 낡은 부둣가 너머의 구멍가게, 향수를 자극하는 인형 뽑기와 오락기 같은 기구들이 꽤나 이질적인 것 같으면서도 찬란하고도 쓸쓸한 겨울 감성을 담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아요.
"오- 여기 코인노래방 생겼네?"
"어떻게, 식사하시기 전에 몸 좀 푸시겠어요?"
"딱 세 곡만 부를까?
자기 한 곡, 나 한 곡- 그리고 마지막은?"
"무조건 소찬휘, 티얼스."
"훌륭하군. 아주 잘 배웠어."
들어가자- 아내의 비장한 발걸음을 따라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르던 남편의 담백한 대화는 알맞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지똥. 일어나!
우리 몬스타엑스 오빠들 노래야!!"
"...오빠들?"
"잘생기면 다 오빠야. 왜! 뭐! 혹시 덧붙일 말이라도 있으신가?"
"아니요… 전혀 없는데요?"
"그럼 춤 춰."
"넵."
주인 할머니께 서비스로 받은 노가리를 매우 격정적으로 씹는 모습을 보아하니 지훈 씨는 꽤나 할 말이 많은 듯 한데요. 그럼에도 아내의 단호한 덕심을 이길 영특한 방법은 없었기에, 남편은 삐쭉삐죽 자리에서 일어나 백댄서를 자처합니다. 아내의 핸드폰에서 자주 들리우던 익숙한 박자를 타며 각을 제대로 살리시는 지훈 씨. 탬버린과 교감하며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 남편을 흘끗 본 ㅇㅇ 씨는 꽤나 흡족스러운 미소를 짓네요.
"제주도까지 와서 노래방 오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을껄?"
들어오기 전에 약속한 건 분명 세 곡이었으나, 막상 오랜만의 유흥을 즐기자니 눈 깜짝할 사이 벌써 두 시간이 훌쩍 지났군요.
발라드와 댄스곡을 넘나들며 제 체력에 있어 꽤나 탄탄하고 농후한 전략을 보인 아내는 아직도 처음과 같이 팔팔합니다. 정말 젊은 게 좋네요.
생수병을 따 아내에게 건넨 남편은 여전히 흥으로 들썩이는 아내의 순박한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한가 보네요. 밖으로 향할 채비를 위해, 아내가 이전에 벗어던진 외투를 다시 입혀주던 남편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거든요.
"근데 뭘 자꾸 그렇게 먹어?"
"이거, 노가리."
"맛있어?"
"아, 혹시 노가리 드실려고? 아하, 이런.
전 누님이 노가리 까시는 것만 좋아하시는 줄 알고, 다 먹어버렸네?"
아내가 미처 팔을 다 뻗기도 전, 남편은 그 많은 걸 그릇째로 들어 한 입에 다 와앙- 털어넣으시네요. 와우. 혹시 이것은… 남편의 반란?
정말이지 유치뽕짝입니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아내가 멍을 때리는 틈을 타 남편은 재빠른 줄행랑을 시전했으나 그 비좁은 방에서는 금방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어요. 야, 넌 니 와이프 임신했는데 그러고 싶냐?! 솜방망이 같은 주먹으로 아내에게 등짝을 맞으면서도 남편은 통쾌한지 아주 싱글벙글입니다.
분명 아까 전의 오빠 소동으로 지금껏 서운해 있으셨던 게 분명해요.
뒤끝 쩌시네요, 주지훈 씨.
"난 결혼하면 제주도로 내려와서 살고 싶었는데."
"그래요? 이사할까?"
"참 나, 뭐가 이렇게 다 쉬워?"
"너한테만 쉬운 거야."
근처 시장에 잠시 들러, 이른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왕창 산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둘이 오붓하게 영화나 보며 편하게 밥을 먹자구요.
자줏빛의 황홀한 하늘 아래, 너른 바다의 수평선을 따라 부드러운 모래사장 위로 부서지던 잔잔한 파도의 선율이 펼쳐진 이곳. 아름답게 비추던 석양을 따라 더없이 완벽했던 부부의 하루도 저무는 시간입니다.
"난 제주도가 참 좋아.
바다도 좋고, 바람도 공기도, 풍경 그리고 사람들도 다 좋아.
키야- 대학 다닐 때 로망이었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정처 없이 걸어도 보고, 예쁜 카페나 분위기 좋은 펍 같은 데를 발견하면 들어가도 보고… 아! 가끔 자전거도 타고, 섬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니다가 좋은 사람도 만나,"
"뭘 만나?!"
"아하잇- 대학생 때, 대학생 때."
"..."
"응? 낭만적이잖아아!"
"나랑 해, 나랑 다. 나랑'만' 해.
둘이 같이, 쪼글쪼글 늙을 때까지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같이 해."
"모양! 주지훈 나 되게 좋아하네?!"
"이제라도 알아줘서 엄청 고맙네에?"
저희가 이전에도 말씀 드린 적 있죠.
아무리 인적이 드문 동네라고는 하나, 길 한복판에서 꽁냥꽁냥거리는 거 자제해 달라구요. 부탁 드립니다.
"오케이, 기분이다. 비밀 하나 알려줄까?"
"비밀? 뭔데."
"가까이 와."
"오, 왜..?"
"의사 선생님이… 나, 이제 해도 된데."
"무, 뭐. 뭐를?"
"나 이제 안정기,"
"뭐라고?!!?!"
"어우, 눈알 튀어나오겠다."
"야아! 넌 왜 그걸 이제 말해애에에?!?!!"
"어?"
"뭐해. 빨리 가자."
뜨밤.
후..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해요.
EPILOGUE.
Q. 오늘 하루 종일 사진을 많이 찍으시던데요.
"사진 작가님이셔서 그런가, ㅇㅇ는 평상시에 카메라를 잘 안 켜요.
말투는 물론이고 제 눈에만 보이는 사소한 몸짓이나 아주 작은 표정들 있잖아요. 그 미묘한 움직임들이 저한테는 너무너무 소중하거든요.
제게 말하려던 걸 까먹었을 때 뚱한 얼굴로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거,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입술을 삐쭉이면서 울먹이는 거.
그런 찰나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제 사진첩에 담는 거예요.
제 소소한 행복입니다."
Q. 인스타그램에 올리신 사진에 ㅇㅇ 씨가 댓글 남기셨던데.
"아, 정말요? 뭐라고요? 감동했대요?
근데, 사진 너무 예쁘죠?"
나의 이유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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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옥수수소세지예영❤️
투표 결과를 따라 70%의 독자님들이 원하시던
동상이몽을 가지고 왔습니당!
오늘 글의 소재,
입덧 장면과 태교여행을 추천해주신 뮤리무님, 독자 18님, 웅이님, 몽몽님
그리고 에필로그에 짧게나마 추가할 수 있었던 럽스타, 귱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그대들이 상상하던 달달함이었기를 바라요...
너무 늦어져서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새 글도 준비 중에 있으니 걱정 노노해요.
남주 추천은 계속 받을게요.
현재로써는 김선호님이 유리하긴 한데요, 스토리상 서브 남주도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다들 마음 속에 품고 계신 분 한 분은 있으시겠죠,
그 소중한 이름을 제게 좀...❤️)
오늘도 읽어주셔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늘 저를 먼저 배려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그대들의 주말에는 행복한 일들로만 가득하길 바래요!
그럼 우리는 다음에 또 만나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