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의 집에서 잔 다음 날, 지훈은 학교에 갔다가 동아리 방에서 집으로 가려는 아이들을 붙잡았다. 밥이나 먹고 가자. 꽤 담담한 어조였다. 지훈의 상황을 익히 전해들은 아이들은 별 말 없이 긍정의 대답을 표했고, 결국 아이들은 겉옷을 챙겨입으며 근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한) 아직 안가신거야?
지훈) 모르겠어.
정한) 근데 어머니 오신걸 아버지가 너한테 왜 보낸건데?
지훈) 그러게. 그냥 왔다고만 보냈더라고. 근데 이상한건 올 이유가 전혀 없는데 온거야.
순영) 진작에 갈라서신거 아니었어?
지훈) 그니까.
원우) 국수집 어때.
순영) 난 좋아. 거기 돈까스도 팔지않냐?
원우) 어. 덮밥류도 팔아.
지훈) 그럼 거기 가자.
지수) 뭔 일이 있어서 오셨겠지. 재산 분할이나 그런건 이미 다 끝났어?
지훈) 끝난지 오래지.
순영) 재결합은 아니겠지?
지훈) 엄마가 이혼하자고 먼저 말했는데, 설마.
정한) 뭐가됐든, 너도 빨리 자취해야겠다.
지훈) 그니까. 집에 들어가기 싫어 죽겠어.
순영) 집에만 있는거 좋아하는 애였는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지훈아!
지훈) ..왜저래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정한) 같이 가줘?
여주) 그러니까. 같이 갈까?
정한) 집에 갔다가 나오고 싶으면 바로 나와서 다시 우리집 가면 되잖아.
지훈) ...됐어. 뭘 같이 가.
여주) 그럼 연락해.
정한) 그래. 오고싶으면 주소 찍어줄게.
지훈) 그래, 그럼.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던 아이들이 가게를 들어서자 인원수를 세며 뭉쳐 앉았고, 주문을 마친 아이들은 겉옷을 벗으며 다시금 말을 잇기 시작했다.
지수) 승철이도 많이 외로운가봐. 톡방에서 제일 자주 보여 ㅋㅋㅋㅋㅋㅋ
정한) 보기보다 외로움을 잘타는 타입이야. 혼자 있기보단 누구 하나라도 같이 있고싶어해. 아무말 안하고 있더라도 ㅋㅋㅋㅋㅋ
순영) 그래서 저번에 자꾸 아무것도 안할거면서 같이 있으려하길래 내가 계속 말시켰더니 준휘 부르더니 나 보냈잖아. 겁나 서운했다.
지수) 니가 얼마나 괴롭혔음 그랬겠냐 ㅋㅋㅋㅋㅋㅋ 안봐도 비디오지. 부승관처럼 쉴틈없이 말걸었을거 아냐.
승관) 형 나도 침착할 땐 한 침착 하거든?
민규) 이제 슬슬 패딩은 집어 넣어야겠다.
석민) 날씨가 많이 풀리긴 했어.
민규) 김여주 넌 더 입어.
여주) 야 무슨 소리야. 싫어!
석민) 여름 감기도 잘걸리는 애가! 또 아프다고 골골대지말고 좀 더 입어!
석민) 그래 여주야 웬만하면 더 입고 벚꽃 질 때 넣어.
여주) 뭐? 말도안되는 소리하지마.
지훈) 민규야. 여주 이미 너 학교 안온 날에 뽀글이 점퍼만 입었었어.
민규) 뭐? 야 김여주!!
식사 나왔습니다-
민규의 말은 곧 종업원의 목소리에 묻히고, 여주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야 밥이나 먹자. 하곤 말했다. 그러자 민규는 입을 삐죽거리며 자신이 시킨 돈까스를 포크로 콱 찍어 입에 쏙 넣은 뒤 웅얼거리며 여주를 향해 말했다.
민규) 하여틍, 또 그러고 다녀봐 진짜. 꼭 패딩 입고다녀라. 안그래도 자취하면서 어? 말이라도 좀 들으라고.
석민) 그래 여주야. 감기 걸리면 안되잖아. 앞으로 형들 여주 춥게 입고있으면 다 민규한테 일러.
여주) 아 알았어- 따듯하게 입고 다닐게.
승관) 근데 김민규가 저렇게 말하니까 왜이렇게 웃기지? 사실 상 말 제일 안듣는건 민규잖아.
민규) 야 뭐래! 말 안듣는 건 이석민이지!
석민) 저기요 날 왜 걸고 넘어져어~!
승관) 형! 형이 말해봐! 말 제일 안듣는 거 고딩 때부터 김민규 아니었어?!
정한) 아 왜 나한테 그랰ㅋㅋㅋㅋㅋ
민규) 아 형이 부장이었잖아!
정한) 여주도 부장이었잖아!
승관) 그래 그럼! 여주야!
여주) 왜 나한테 물어! 정한오빠한테 물어봨ㅋㅋㅋㅋ
승관) 아 아무나 말 좀 해봐!
준휘) 솔직히 민규가 더 안듣지 않았나?
민규) 형!
지수) 근데 우리 눈에 거기서 거기인게 말 안듣는 사람 최고는 최승철이었어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
지훈) 그거 인정. 승철 미만 잡.
석민) 왜? 승철이 형 말 안들었던 적 있었어?
원우) 최승철 중학교 때 질풍노도였어 ㅋㅋㅋㅋㅋㅋㅋㅋ 담넘고 등하교는 기본이었다.
지훈) 난 아직도 첫인상을 기억해. 종례시간에 분리수거 버리러 소각장 갔는데 담넘고 등교하고 있었잖아 ㅋㅋㅋㅋㅋ
민규) 종례에 등교를 했다고?ㅋㅋㅋㅋㅋ
정한) 워낙 성격이 안될 건 그냥 하지말자. 마인드가 강한 애라서 공부는 애초에 잘 안했지. 초등학교 때부터 나한테 그랬었어, 자기 대학교 안간다곸ㅋㅋㅋㅋㅋ
민규) 그럼 난 약과네~!
석민) 에이 야 너도 별 다를 거 없어~! 너 여주 괴롭히는 애들한테-! 악!!!! 야 발 왜 밟아!!!!!
민규) 뭐래! 밥 먹기나해!!!!!
여주) 나 뭐? 나 뭐!!
민규) 악! 김여주 발 왜 밟아!
여주) 너도 석민이 발 밟았잖아! 빨리 말해! 나 뭐!!!
민규) 아 됐어! 별거 아냐! 이석민 넌 왜 말꺼내가지고!
석민) 아 뭐!
악!!!!! 김여주 밟지 말라고!!!!!!
어둠이 내려앉고, 모두가 헤어질 때 아이들은 지훈을 보며 옅은 미소를 띠웠다. 지훈은 이에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유난히 높고 커 보이는 자신의 집 대문을 열었다. 넓은 마당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던 지훈은 도어락을 열고 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후회했다. 아, 하룻밤만 더 자고 올 걸. 하고.
"이리와서 앉아라."
"........"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아버지와, 제 어머니를 보던 지훈은 작게 한숨을 내뱉더니 곧 맞은편에 자리했고, 지훈의 어머니는 그런 지훈을 보며 애틋한 미소를 입에 걸쳐보였다. 많이 컸구나.
"청년이 다됐네."
"...무슨 일이세요."
"니 엄마가 재결합을 하고싶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아버지 입에서 나온 말에 지훈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눈을 느리게 깜박였고, 유리 테이블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왜요?"
"..그야 지훈이 너한테 엄마로서-,"
"아버지 바람피시는거 싫어서 도망치셨잖아요."
"........"
"고작 14살 짜리 애를 이 차가운 집에 내팽겨치고,"
혼자 도망치셨잖아요.
"...지훈아."
"뭐가 좀 달라졌다고 생각하세요? 아버지는 여전히 밥먹듯이 여자를 갈아치우는데."
"이지훈! 너 그게 아빠한테 무슨!"
"아버지는 자식새끼 집에 있는 거 뻔히 알면서도 외간여자 들여오는거,"
제발 부끄러운 줄 아세요.
쪽팔리니까.
지훈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고 다시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잠시 멈춰선 채 말했다.
"재결합을 하든 말든 알아서 하세요."
뭐가 됐든, 저랑 상관 없습니다.
민현) 그래서. 오늘은 어떡하려고.
지훈) 모르겠다. 들어가긴 싫고, 언제까지 니네집에 갈 수도 없고.
정한) 어쩔 수 없지. 일단 계속 우리집에서 좀 지내.
민현) 그래. 윤정한이랑 같이 지내고 있어. 어쩔 수 없잖아.
여주)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공강이었던 아이들은 민현의 막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민현네 학교를 찾았고, 학교 앞 카페에 둘러앉은 아이들의 대화주제는 다름아닌 지훈의 이야기였다. 누구보다 속사정을 잘 알고있던 아이들은 빨대를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에 빠졌고 그건 지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민현은 창밖을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민현) 계획이 자꾸 조금씩 어긋나네.
정한) 뭐가?
민현) 아니. 여주 자취도 생각보다 빨랐고, 이지훈도 자취하는게 좀 빨라질 것 같아서.
정한) 근데 그게 네 계획이랑 무슨 상관인데?
민현) 있어, 그런게.
민현) 그니까 너도 일단 윤정한이랑 같이 있어.
지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도 없고, 방법을 찾아야돼.
민현) 그 방법은 나한테 있으니까 일단 같이 있으라고.
정한) 야. 니가 무슨 기생충의 최우식도 아니고 혼자 뭐가 그렇게 계획이 있는건데? 말 좀 해봐!
여주) 그러게. 오빠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민현) 조금만 기다려. 5월까지만. 딱 한달 반만 더.
그럼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어.
민현과의 만남을 가진 뒤 셋은 카페를 나와 민현에게 인사를 건넨 뒤 자연스레 오피스텔로 향했다. 봄날의 밤은 아직 쌀쌀했고, 서로 생각에 잠긴 듯 대화가 오가지 않았지만 그 정적이 어색하지만은 않았다. 대화가 없었지만, 대화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신호등에 멈춰서고, 여주는 가로등 뒤에서 벚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는 벚꽃나무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여주) 봄에도 눈이 올까?
정한) ..어?
여주) 나랑 석민이가 민규를 처음 만난 날, 그 봄날 저녁에 눈이 왔거든.
그 때 미치도록 예뻤는데, 봄에 내린 눈이.
여주의 말이 끝나자 신호등의 붉은 빛이 초록빛을 내고, 아이들은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다 한참 말이 없더니 오피스텔 단지에 들어와 벚꽃나무가 길을 밝히고 있을 때 여주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여주) 그 날 이후로 봄날에 단 한 번도 눈 내린 적 없었어. 신기하지?
지훈) ........
정한) ..그러게. 신기하네.
여주) 올해도 왔음 좋겠다.
여주가 손바닥을 펼쳐 떨어지는 벚꽃잎을 받고, 그 벚꽃잎을 내려다보더니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
민규를 만난 날 예쁘게 봄 눈이 왔고, 여주는 그 상황이 다시 오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런 기적적인 행복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여주에게 민규는 기적적인 행복의 존재였으니까. 이것은 슾호?)
넉점반의 봄
넉점반의 봄눈 같은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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