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아 맞다. 오늘은 아침에 회의했으니까 방과 후에 따로 학생회실 올 일은 없을 거야."
"아. 네 알겠습니다."
아침부터 도현은 학생회 회의 때문에 바쁜 모습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하나둘 교실로 이동하고 정리할 게 있어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도현은 할 일이 끝나고 학생회실을 나가려고 문손잡이를 잡았을까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두 명의 여학생이 하는 이야기가 도현의 손을 멈추게 했다.
"야, 너 김주리랑 이재욱이랑 중학교 때 사귄 거 기억나지?"
"엉. 당연하지."
"이번에 김주리 전학 간 학교가 이재욱 다니는 학교래. 심지어 둘이 같은 반이라는데?"
"미친~ 와 그 반 분위기 장난 아닐 듯 ㅋㅋㅋ"
"도현아, 뭐 할 말 있어? 안 나가고 뭐 해?"
"아... 네 아니에요. 안녕히 계세요."
"아... 뭐했다고 월요일이야... 주말 언제오냐아..."
"그러게."
"기말고사도 한 달도 안 남았어... 하... 야 주리야, 너희 아버지께 시험 좀 없애달라고 하면 안 돼? 아니지... 교육부에서 시험을 없애는 게 말이 안 되지..."
"ㅋㅋㅋ 또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 야 이제 너 교실로 가."
"아... 벌써 조회시간이넹 이따 봐~"
혜윤이 가고 주리는 핸드폰을 보고 있으면 옆에서 누군가 걸어오길래 당연히 혜윤이겠거니 생각한 주리는 "아, 왜 또 오는데?"라며 옆을 돌아보면 혜윤이 아닌 재욱이 있었다. 재욱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고 있던 표정을 풀며 다시 핸드폰으로 고개를 돌리는 주리에 어이없다는 듯 작게 웃던 재욱은 그녀의 옆에 앉았다.
"어제 너랑 같이 있던 애가 남친 맞지?"
재욱의 물음에 주리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한마디 하려던 찰나에 들어오는 담임에 작은 목소리로 "조희 끝나고 얘기 좀 해."라고 말했고 재욱은 주리를 보더니 "그러든지"하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렇게 꽉 막힌 곳에서 얘기하자는 건 줄은 몰랐네. 왜, 한 대 때리게?"
"부탁 하나만 하자."
"부탁? 그래. 들어나 보자. 뭔데?"
"우리 이제 제발 서로 모르는 듯 지내자. 너랑 나 친하게 지낼만한 사이도 아니고 난 너랑 지금 이렇게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도 좆같거든? 그러니까."
"...왜?"
"뭐?"
"왜,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안 되냐고."
"나랑 지금 장난해? 너랑 나, 헤어진 사이야. 그것도 안 좋게."
"난 헤어지자고 한 적 없는데."
"하... 그럼, 너 나 아직도 좋아해? 아니지, 너도 저번에 여자랑 같이 있던데 여친 아니야? 너 지금 이러는 거 나한테도 니 여친한테도"
"넌 나 한 번이라도 이해하려 한 적 있냐?"
재욱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없는 주리를 한참 마주 보다가 그는 한숨을 내쉬며 "됐다."라고 말하더니 그대로 주리를 지나쳐갔다.
주리는 수업 내내 아침의 상황을 생각하다가 재욱의 마지막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자신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책상을 주먹으로 쿵 하고 쳤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수업 중이라 조용했던 교실이었기에 선생님과 학생들은 모두 주리를 쳐다보았고 주리는 쪽팔림에 그대로 고대를 숙였다. 화가 나서인지 쪽팔려서인지 갑자기 조금씩 아파오는 아랫배에 배를 움켜쥐고 있던 주리는 설마 하는 마음에 서랍에서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하면 역시나 곧 생리 기간이었다. 의식하고 나니 계속 쑤셔오는 고통에 주리는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려버렸다.
김주리! 괜찮아? 야 너 왜 그래?"
점심시간이 되고 혜윤이 주리의 반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주리에 교실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엎드려 있는 주리였다. 당연히 자고 있다고 생각한 혜윤은 주리를 흔들어 깨웠고, 옅은 신음을 내며 움직이지 못하는 주리에 혜윤은 놀라 멈칫했다. 혜윤이 "어쩌지..."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찰나에 재욱이 교실로 들어왔다. 사물함에 있던 옷을 챙기러 들어온 재욱은 엎드려 있는 주리와 혜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재욱에 혜윤은 잠깐 망설이다가 상황 설명을 하자 혜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리를 안고 교실 밖을 나가는 재욱이었다.
한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울리는 5교시 쉬는 시간 종소리에 주리는 눈을 떴다. 방금보단 나아졌지만 그래도 약간 쑤시는 배에 미간을 찌푸렸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면 보건 선생님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사람에 주리는 다행인건지 아님 아쉬운건지 이유모를 한숨을 쉬었다.
"김주리! 야, 너 진짜... 사람 걱정시킬래?"
"야, 내가 뭐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근데 왜 왔어 여기까지? 나 혼자 갈 수 있는데."
"왜긴! 누가 쉬는 시간 되면 너한테 꼭 가보라고 당부를 하셔가지고~"
"이재욱이지?"
"그래! 가 아니지 어떻게 알았어?"
"나 여기로 데려온 거 이재욱이잖아. 정신은 멀쩡했거든?"
"아... 뭐 어쨌든 이제 좀 괜찮아? 안 아파?"
"응. 약 먹으면 이제 바로 괜찮아질 거야. 수업 늦겠다, 가자."
보건실을 나오기 전 받은 약을 먹고 나니 고통은 완전히 없어졌다. 주리는 점심시간에 자신을 보건실로 데려가 준 재욱에게 고맙다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말 하는 게 낫겠다 생각한 주리는 수업이 다 끝나고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는 재욱에 결국 '오늘 고마웠어.'라고 문자를 남겼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도현에게 '오늘 만날까?'라고 온 카톡에 답장하려고 하자 뒤에서 자신을 불러오는 누군가에 고개를 돌리면 종례가 끝났는지 가방을 메고 팔짱을 껴오는 혜윤이었다.
"오늘 바로 집 가?"
"응. 아마도?"
"갑자기 웬 치킨?"
"우리 학교 주변에 진짜 존맛 치킨집 있는데 나랑 가자! 응?"
주리는 알았다고 웃으며 도현에게 '오늘은 못 만나겠다. 쏘리'라고 답장을 보냈다. 한편 학교가 끝나고 주리의 집으로 향하고 있던 도현은 주리에게 온 답장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래. 그럼 내일 보자.'라고 답장하고 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때? 맛있징!"
"맛있네. 근데 왜 그렇게 쳐다봐? 할 말 있냐?"
"아니, 그냥ㅎㅎ 근데 넌 이재욱 어떻게 생각해? 이제 아예 마음 없어?"
"갑자기? 걔한테 마음은 무슨... 그리고 나 남친 있어."
"뭐?! 야 왜 말 안 했어? 언제부터 사겼는데? 무슨고 다니는데? 잘생겼어?"
"ㅋㅋㅋ 야 하나씩 물어봐. 여기 오기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만났고 사귄 지는 음... 1년 정도?"
"헐~ 어떻게 만났는데? 응? 썰 좀 풀어봐!"
"알겠어ㅋㅋㅋ 음 걔랑 처음 만났을 때는..."
(1년 전, 고등학교 1학년) 주리 시점
"쟤가 걔야?", "쟤 중학교 때 소문 진짜 안 좋던데.", "아빠 빽 믿고 저러나 보지 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친한 친구 한 명 없이 오게 된 학교였다. 교육부에서 꽤 높은 직급에 속하는 아빠 덕에 좋은 학교를 오게 된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소문은 빨랐다. 내가 모르는 아이들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 조례는 여기까지 하고, 예비 반장, 너가 애들 자기소개서 다 걷어 오도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비 반장 같은 것도 생겼나 보다. 담임이 나가자 관심 없다는 듯 책상위에 엎드리면 누군가 내 옆 빈 책상을 똑똑 두드렸다. 무슨 일인지 몸을 일으켜보니 아까 담임이 말한 예비 반장인가 뭔가 하는 남자애였다. "자기소개서."하며 손을 뻗는 그 애의 교복명찰을 보니 '이도현'이라고 적힌 이름이 보였고 당연히 그런 건 쓰지 않았던 나는 없다고 말하곤 다시 엎드리려고 했다. 그러자 이도현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뭘 하려는 건지 보고 있으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여분의 빈 자기소개서를 올려놓더니 내 자기소개서를 자신이 직접 쓰는 것이었다.
"이름... 김주리, 생일은... 언제야?"
내 명찰을 보고 내 이름을 적더니 생일을 물어보는 도현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종이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안 되겠다. 너가 써."
"나 이런 거 안 쓰니까 그냥 가."
"쓸 때까지 여기 앉아있는다."
도현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엎드렸고, 수업 종이 치고 몸을 일으키니 도현은 정말 수업이 시작됐는데도 자신의 교과서를 가지고 내 옆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난 그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쳤고, 결국 간단한 부분만 적어서 그에게 주었다. 쉬는 시간이 되고, 웃으며 내 자기소개서를 가지고 간 도현은 교무실에 다녀와서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자기의 짐을 이것저것 가지고 내 옆자리로 오는 것이었다.
"뭐냐?"
"아, 이 자리가 좋더라고~ 담임쌤한테 말씀드리고 옮기기로 했어."
난 '뭐 저런 애가 다 있어?'라고 생각하곤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이도현이 내 한쪽 이어폰을 빼더니 자신의 귀에 꽂는 것이었다.
"어? 나도 이 노래 좋아하는데. 너 노래 좀 들을 줄 안다?"
"너 이 노래 알아?"
"응. 나도 엄청 자주 듣는데~"
그렇게 다른 아이돌과는 달리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도현 덕분에 나도 그에게 점점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학교생활에 웬만큼 적응하게 되었고 항상 붙어 다녔던 도현과 나는 사귄다는 소문까지 돌고 말았다. 나는 원래 그런 소문들에 신경 쓰진 않지만, 왠지 도현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에 어느 날 부턴가 그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밥도 같이 먹지 않고, 이동 수업이 있을 때도 같이 가지 않고, 하교할 때도 항상 먼저 도망치듯 나와버리니 자연스레 도현과 붙어 있는 시간이 줄게 되었고, 도현과 나 사이에 소문도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주말이 됐고 민아와 만나서 놀다가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노래를 들으며 핸드폰을 보고 걷고 있다가 나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걸음이 내 앞에서 멈추길래 시선을 앞으로 두면 그 자리엔 도현이 있었다. 잠깐 놀랐지만 나는 다시 그를 피해 지나가려고 하면 그는 내 손목을 잡고 멈춰 세웠다. 그가 잠깐 얘기 좀 하자는 말에 망설이다가 결국 주변에 있는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 요즘 왜 그래?"
"뭐가?"
"너, 나 피하잖아. 방금도 그랬고."
역시나 도현은 알고 있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다가 우리에 대한 소문에 관해 이야기했고 도현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봐. 너도 나랑 엮이는 거 싫잖아. 나 같은 애랑 괜히 소문 돌아서 좋을 거 없어. 그러니까"
"하... 고작 그런 소문 때문에 날 피했던 거야?"
"뭐?"
"그럼 너랑 나랑 진짜 사귀면 되겠네."
"야, 이도현."
"사귀자. 김주리."
안녕하세요 덕심이에요 헤헤 오늘은 좀 일찍 왔어요😊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그럼 5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