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아파트 사는 학교 선배 김선호와
거의 우리 집에 살다시피하는 불알 친구 우도환
이 둘이 번갈아가며 내 마음을 쥐고 마구 흔드는 썰
08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확실하게 제 마음의 길은 이 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선택을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고 사는걸까?
"도환이 걱정돼서 그래? 오늘 학교 안나왔던데."
"아니에요, 늦잠 잤겠죠 뭐."
"너 아까부터 휴대폰만 보고 있는건 알고 하는 말이지? 그렇게 걱정되면 전화라도 해보든가."
"아, ...그냥 어제부터 카톡도 안보고 그래서 좀 신경쓰였나봐요, 괜찮아요. 별 일 없을거에요."
"뭐 맛있는거라도 먹으러 갈까?"
나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웠는지 그런 나를 보고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낑낑거리는게 꼭 강아지 같아서
선배와 있으면 늘 웃음이 나오기 일수였다.
"기분 안좋아보이더니 잘 먹네. 떡볶이 좋아하나봐, 나도 떡볶이 되게 좋아하는데."
"당연하죠, 이 세상에 떡볶이 안좋아하는 여자도 있어요?"
"그러게."
내가 뭘하든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쳐다보는 그 눈이 좋았다.
이 세상에 도환이 하나밖에 없던 내게 어떤 목적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와준 사람.
"뭐야, 갑자기 왜 그렇게 봐. 사람 설레게."
세상에 내 편은 평생 우도환 하나인줄 알았는데.
"새삼 잘생겨서요. 선배는 안먹어요? 떡볶이 좋아한다더니."
"먹고 있는데 완전? 여기 되게 맛있네 그치."
"근데 방금 그 말 한번만 더 듣고싶은데, 다시 해주면 안돼?"
"뭐요? 떡볶이 먹으라구?"
"아니, 잘생겼다는 말. 너한테 들으니까 되게 좋다."
"참나, 살면서 잘생겼다는 말이라면 지겹도록 들어봤을 것 같은 사람이 그런 말 하면 되게 재수없는거 알죠?"
"너한테 듣는건 처음이잖아."
"그랬나?"
"응. 꽤 들어는 봤어도 그 말이 이렇게 좋은 말인줄도 처음 느꼈어 난."
"선배, 그 얼굴에 그런 말 하면 열 할 중에 구 할은 선배한테 뻑갈거 알고 하는 말이죠?"
진짜 사람 설레게 하는데 뭐 있다 이 사람.
대체 이렇게 예쁘게 말하는 법은 어디서 배워오는건지.
[미안. 아파서 연락 못했어.]
[학교는 잘 갔어? 별 일 없지?]
[이따 데리러갈게.]
누가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그랬었나.
그 타이밍에 하루종일 기다렸던 이의 답장이 온다는 건, 어떤 신의 장난이었는지.
장난을 치며 선배에게 뻗던 손을 거두고 확인한 문자는 다시금 내 모든 생각을 멈추게 했다.
"도환이야? 가봐야 되는거면, 나 신경쓰지말고 얼른 가봐."
아프다면서 끝내 자기한테 와달라는 말 한 마디 못하는 우도환이나
흔들리는 내 마음을 알면서도 가지 말라고 한 번을 못붙잡는 김선호나
어쩜 그렇게 하나 다를게 없다.
"...선배는 왜 그렇게 착하게만 굴어요. 나 좋아한다면서. 도환이한테 가지 마라, 내 옆에 있어달라, 그냥 한번쯤은 그렇게 말해도 되잖아요."
"내 욕심이 너를 웃게하지는 않는다는거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그렇게 해서 네가 나랑 있으면, 그거 사랑 아니잖아. 미안함이고 죄책감이지. 네가 내 옆에 있고 싶을 때 와주면 돼."
정말 잘 배운 따뜻함과 다정함.
미안했다.
그에게 받은 온기를 가지고 도환이에게 갈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나를 아낌없이 안아주는 선배라서.
.
"왜 왔어? 학교는?"
"친구 없어서 쨌다 왜. 아프다며, 죽 사왔어."
"나 걱정돼서 온거야? 와, 김여주 다 컸네, 키운 보람 있게."
"근데 어째 별로 안아파보인다 너."
"아닌데, 완전 아픈데 나. 이마 만져봐. 아 근데 나 아파서 못씻었어 아직."
열이 나기는 나는건지 빨갛게 달아올라있는 양 볼에 자연스레 그의 이마를 짚어보는데
온 몸이 불덩이 같은거지.
지금 이런 몸으로 어떻게 이렇게 서있나 싶을 정도로.
"장난해? 너 지금 열 완전 많이 나. 어머님은 아셔? 약은 먹었어? 일단 누워봐. 집에 해열제 있는지 찾아볼테니까."
"왜 이렇게 오바야 오늘따라. 아까 엄마가 약 사다줘서 먹었으니까 옆에 와서 앉아있어 그냥."
"무슨 사람이 열이 이렇게 날 때까지 병원도 안가고 집에 이러고 있어. 하여간 사람 걱정시키는데 뭐 있다니까. 아무리 집 안이래도 아픈 애가 옷도 그렇게 입고. 이거 목도리라도 좀 두르고 있어. 목이 따뜻해야 돼."
"김여주."
"아니, 아무 말도 하지마. 나 너 아픈거 처음 봐서 지금 되게 놀랐으니까. 그냥 마음이 너무 놀라서 주체가 안돼서 그런거니까.
다 아무 의미 없고 그냥, 그냥... 그러게 이 타이밍에 왜 아프고 그래 넌."
"... 한번만 안아보면 안되냐."
물러서지 않았다. 나도 우도환도.
그 큰 몸이 힘 없이 축 쳐져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안겨있는 동안에도 둘 중 누구도 피하지 않았다.
"참으면 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이 이제 와서 억울한지 멋대로 막 나와."
"미치겠다고, 너 때문에 내가."
-
여러분 뭔가 이야기가 끝을 달려가고 있는게 보이시나요 ??
자까는 이미 이 썰의 끝을 보고, 새로운 썰을 구상 중이랍니다 :)
앞으로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저는 선호와 도환이 그리구 여주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일 뿐 ...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