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괴롭혔던 변백현. 1 W. 백빠 시끄러운 알람소리.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 사이로 캄캄한 방 안이 보였다. 저번주 목요일이었나, 창문에 검은색의 암막 커튼을 단 이후로는 아침 햇빛이 눈부셔 깨어나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덕분에 그 이후로의 내 기상시간은 일정해졌다. 언제나 알람이 울리는 4PM. 오후 네시가 되어야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부엉이처럼 밤이 되서야 눈을 뜨는 나로서는,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드는 평범함을 항상 꿈꾸고 있다. 알람을 끄곤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창가로 갔다. 커튼을 치자 해가 뜬 것도, 진 것도 아닌 애매한 밝기의 빛이 눈가를 파고들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져있는, 어제 입었던 외투를 주워 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찾아 능숙히 한 개피를 꺼내 물었다. 끝에 불을 붙이곤, 가만히 내 손에 쥐어진 라이터를 바라보았다. 300원짜리 작은 라이터만 쓰다 며칠 전부터 손님이 준 고급 라이터를 쓰고 있는데, 그 이후로는 불을 붙일 때마다 이 라이터를 보는 습관 아닌 습관이 생겼다. 아마 일종의 자괴감인듯 했다. 내가 이런 몇십만원을 호가하는 라이터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나를, 내 자신을 팔았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피워도, 담배 연기엔 여전히 비위가 상했다. 아니, 담배 연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창문을 살짝 열자 틈새 사이로 내 온 몸 주변을 매캐하게 떠돌던 연기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코 끝에 맴도는 담배향이 조금 누그러졌다. 내가 담배를 처음 피우기 시작한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그때 나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였다. 남자친구는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모두 지역구 내에서 알아주는 싸움꾼들이었다. 매일 같이 비슷한 부류들과 어울려 놀았고, 마셨고, 피우고, 뺏었다. 마침 ‘부모님의 사업실패’라는 적절한 이유가 나타나 질 낮은 학창시절을 즐겼고, 그 결과 지금이 되었다. 인과응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가 만든 것이었다. 순간 머릿 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과거를 생각하는 일은 손에 꼽을만큼 드물지만, 그럴때면 어김없이 그 얼굴이 떠올랐다. 변백현, 그 얼굴이. 이젠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필수불가결 할 뿐이었다. 고개를 저으며 얼른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오늘 최회장님 예약 니가 받을래?” “최회장님요? …그분은 무턱대고 만져서 불편한데.” “그래도 돈 많이 주잖어. 지금 괜찮은 애가 너밖에 없어서 그래. 응?” “……네.” 최회장, 이라면 아마 저번에 허벅지와 허리부근을 뻔질나게 주물거리던 영감 아니었던가. 매니저의 물음에 싫은 티를 팍 냈지만 결국엔 네, 라는 대답이 나오고야 말았다. 언제나 그랬지만서도. 내가 일하고 있는 이 곳은 회원제로 운영이 되고 있는 술집이었다. 회원이 아니면 알 수도, 이용할 수도 없는 곳. 최상의 여자들로 구성해 S급의 남자들만 상대했다. 재벌가, 국회의원, 법조인, 연예인 등등 많은 상류층의 남자들은 모두 이곳의 회원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으면 쉽사리 가입할 수 없기에 이곳의 회원은 아주 소수였다. 백여명 남짓. 보장되는 강력한 비밀유지에 숨길 것이 많은 남자들은 이곳을 찾아들었다. 난 그들에게 웃음을 팔고 친절을 팔고 진심을 파는 여자였다. 저급하고도 날카롭게 말하면 술집여자였다. 몸만 자주 내어주지 않을 뿐 창녀나 마찬가지인. 애초에 이렇게 되길 바라고 태어난 사람은 없듯이 나 또한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내가 화류계에 뛰어든 것은 2년 전,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을 기점으로 4년을 방황하다 24살에 결국은 이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틀고야 만 것이다.내가 이렇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을 그따위로 보냈음에 있다. 학교에서 잘나간다 싶은 남자애들은 어떻게 날 한번 사겨보려 안달했었고 여자애들은 그런 내 옆에 붙어다니고 싶어 안달했었다. 날 한심하게 보는 애들도 더러 있었지만 부러워 하는 눈길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에 졸업해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영원히 사람들의 그 ‘안달’이 지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나자, 당연히 고졸 딱지는 떼지 못한채로, 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졸업하기 전까지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조직폭력에 가입해 쌈질을 하러다녔고 그때 좀 친했던 애들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지방대학을 가거나 일찍이 화류계로 빠지거나 했다. 나는 생각과는 너무 다른 현실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방황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 공부를 하려 했지만 경제적인 벽에 부딫혀 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과는 고등학생 때 사업이 망한 이후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고. 그러니까,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내겐 젊음과 반반한 껍데기 하나만이 남아있었다. 자연스레 나는 누군가에게 이끌려오듯 이곳으로 오게되었다. 과거를 떠올린 지금 이 순간 역시나 그 얼굴이 또 떠올랐다. 변백현, 네가. “아, 그리고 한나야. 너 내일 출근 좀 해줘야겠다.” “…….” “한나야. 들었어, 내 말?” “…….” “야, 한에리!” 내 이름을 크게 불러오는 매니저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렇게 가끔 정신이 나가있을 땐, 항상 부르던 가명 대신 진짜의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곤 했다. 매니저에게 대답은 했지만 변백현에 대한 생각은 멈추지 못했다. “네?” “너 내일 출근 좀 하라구.” “내일요? 내일은 저 휴일이잖아요.” “구회장이 내일 너가 나와야된대. 친한 동생한테 여기 소개시켜준다고. 구회장이 너 아끼는거 알잖아.” “…휴일엔 좀 그런데.” “지금 휴일이 문제야? 야, 구회장 친한 동생이면 무조건 재벌가쪽이야. 걔만 단골 잡아도 십년은 먹고 살아.” “ ……. ” “완전 차원이 다른 사람일거라니까. 나올거지? 응?” 아까 말했듯 언제나 나는 또 네, 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한켠으론 변백현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되뇌여지는 그 아이를. 항상 한번 머릿 속에 떠오르면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너는 내게 잊기 참 힘든 존재임에는 분명했다. 너에게도 내가 그럴까. 그 이름이 내 머릿 속 구석모퉁이를 차지하게 된 것은 8년 전, 열여덟살 때부터였다. 변백현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던 남자애였다. 얼굴은 그냥저냥 평범했었던 것 같다. 사실 이젠 얼굴 생김새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키는 160 후반을 웃돌았었고 좀 말랐었다. 말도 없고 과묵해서 반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었다. 나는 그런 변백현을 1년 내내 괴롭혔다. 매일을, 하루같이. 왠만한 여자애들이라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질만큼 괴롭혔다. 내 친구들은 그런 비실거리는 남자앨 괴롭혀서 뭐가 재밌느냐며 쿠사리를 주었지만 나는 꼿꼿이 변백현을 괴롭혔다. 이유는 하나였다. 변백현이 괴로워하지 않아서. 괴로워할때까지 괴롭혔지만 너는 절대로 괴로워하지않았다. 아직도 니가 날 향해 보냈던 깔보는 듯한 눈빛은 선명하다. 너는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항상 나에게만큼은 무시하는 듯한 오묘한 눈빛을 내비쳤다. 여느 다른 아이들처럼 울고불고 그만해달라며 애원하기는 커녕, 너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날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돈도 수없이 뜯었고 때리기도 많이 때렸다. 변백현에게 말할 땐 단어 하나에 욕이 하나씩 붙었고 심부름도 오질나게 시켰었다. 그러나 변백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뭘 사오라고 시키면 것보다 두배는 더 사와 내 앞에 던져주곤 했다. 왜 패배감 또한 가해자의 몫이란 말인가. 내가 위에 서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변백현은 2학년이 끝나기 이틀 전, 말 없이 이민길에 올랐다. 내가 ‘그때’를 생각할때마다 변백현이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 그 눈빛 때문일거다. 유독 나에게만 내비쳤던 그 무시하는 듯한 눈빛. 너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만약 내가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걸 알면 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제 또 최회장은 내 허벅지를 노골적으로 지분거렸고 덕분에 과음을 했다. 살인적인 두통이 나를 짓눌렀지만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팔러 휴일임에도 스스로 발걸음을 해야했다. 어제 매니저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걔만 단골로 잡으면 십년은 먹고 살아.’ 아마 돈생각 없이 남자들을 대할 내게 충고를 한 걸지도 몰랐다. 가끔 매니저는 내게 너무 계산적인 면이 없다고 했었다. 그래서 손님들이 더 찾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지만 이 직종에서 계산적이지 않으면 끝까지 살아남기 힘들다고. 이곳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니,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대기실에서 화장을 약간 고치고 바로 매니저를 따라 구회장이 예약했을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은근한 조명아래 구회장의 얼굴이 바로 띄었다. 옆엔 정장을 입은 남자가 하나 앉아있었다. 나는 웃으며 구회장의 옆으로 갔다. “회장님, 나 오늘 휴일인데 이렇게 부르기에요?” “아이, 우리 한나씨가 좋아서 그렇지! 대신 다음에 오빠가 두배로 챙겨줄게.” “됐네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다음부턴 안돼?” “알았어, 알았어. 자, 먼저 인사부터 해. 얘는 내가 말했던 한나.” 구회장은 옆에 앉아있던 남자에게 나를 소개했다. 남자의 얼굴을 바로 보게되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비춰진 그의 얼굴은 꽤나 잘생긴 듯한 얼굴이었다. 나잇대는 나랑 비슷해보였고. “내가 여기서 제일 아끼는 애야. 이쁘지?” 남자는 웃으며 네, 예쁘네요. 라고 대답을 해왔다. 그리고 그 웃는 얼굴을 보자마자 남자의 얼굴이 미치도록 익숙히 느껴졌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얼굴. 날렵한 턱선에 살짝 쳐진 눈이 아주 강렬히 뇌리로 박혔다. “얘가 이쪽에서 일하는 애인데도 순수해. 성격도 좋고.” 그 남자 또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길. 묘하게도 누군가가 떠올랐다. 애써 무슨 생각을 하는거냐며 스스로 비웃어보았지만 남자는 확실히 그때의 그 아이의 얼굴을 닮아있었다. ……아니야, 그랬다면 저 남자가 나를 알아봤을거야. 아무리 내가 가명을 쓰고 있다지만, 그 애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누군지 알아봤을거다. 난 그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고, 네가 내 얼굴을 잊었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남자의 얼굴은 그저 여유롭기만 했다. “자, 이쪽은 나랑 제일 친한 동생.” 하지만 아무리봐도 닮은 듯한 그의 얼굴이 나를 혼란케 만들었다. 분명 그 시절 그 애의 얼굴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저 남자가 그리도 닮아보이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당연히 말이 될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저 얼굴, 나는 스스로 어이없는 상상을 했다며 실소를 머금었다. 그래, 그럴리가 없지. 당연히. 마침 남자는 내 혼란에 답을 내려주듯, 예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저는 변백현이라고 합니다.” “…….” “한나씨.” 너는 그제서야 예전과 조금도 변함없는 눈빛을 드러낸다. 날 처참히 깔아뭉개는. ▼ CODE KUNST - PARACHUTE (Feat. 오혁,Dok2)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장편으로 돌아온 백빠입니다. 잘 부탁드려요(꾸_벅) 다들 행복한 메리크리스마스 보내요♡ +암호닉... 받는데 신청해주면 안될까요 ☞☜
내가 괴롭혔던 변백현.
1
W. 백빠
시끄러운 알람소리.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 사이로 캄캄한 방 안이 보였다. 저번주 목요일이었나, 창문에 검은색의 암막 커튼을 단 이후로는 아침 햇빛이 눈부셔 깨어나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덕분에 그 이후로의 내 기상시간은 일정해졌다. 언제나 알람이 울리는 4PM. 오후 네시가 되어야 나는 하루를 시작한다. 부엉이처럼 밤이 되서야 눈을 뜨는 나로서는,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드는 평범함을 항상 꿈꾸고 있다.
알람을 끄곤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창가로 갔다. 커튼을 치자 해가 뜬 것도, 진 것도 아닌 애매한 밝기의 빛이 눈가를 파고들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져있는, 어제 입었던 외투를 주워 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찾아 능숙히 한 개피를 꺼내 물었다. 끝에 불을 붙이곤, 가만히 내 손에 쥐어진 라이터를 바라보았다. 300원짜리 작은 라이터만 쓰다 며칠 전부터 손님이 준 고급 라이터를 쓰고 있는데, 그 이후로는 불을 붙일 때마다 이 라이터를 보는 습관 아닌 습관이 생겼다. 아마 일종의 자괴감인듯 했다. 내가 이런 몇십만원을 호가하는 라이터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나를, 내 자신을 팔았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피워도, 담배 연기엔 여전히 비위가 상했다. 아니, 담배 연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창문을 살짝 열자 틈새 사이로 내 온 몸 주변을 매캐하게 떠돌던 연기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코 끝에 맴도는 담배향이 조금 누그러졌다.
내가 담배를 처음 피우기 시작한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였다. 그때 나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였다. 남자친구는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모두 지역구 내에서 알아주는 싸움꾼들이었다. 매일 같이 비슷한 부류들과 어울려 놀았고, 마셨고, 피우고, 뺏었다. 마침 ‘부모님의 사업실패’라는 적절한 이유가 나타나 질 낮은 학창시절을 즐겼고, 그 결과 지금이 되었다. 인과응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가 만든 것이었다. 순간 머릿 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과거를 생각하는 일은 손에 꼽을만큼 드물지만, 그럴때면 어김없이 그 얼굴이 떠올랐다. 변백현, 그 얼굴이. 이젠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필수불가결 할 뿐이었다. 고개를 저으며 얼른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오늘 최회장님 예약 니가 받을래?”
“최회장님요? …그분은 무턱대고 만져서 불편한데.”
“그래도 돈 많이 주잖어. 지금 괜찮은 애가 너밖에 없어서 그래. 응?”
“……네.”
최회장, 이라면 아마 저번에 허벅지와 허리부근을 뻔질나게 주물거리던 영감 아니었던가. 매니저의 물음에 싫은 티를 팍 냈지만 결국엔 네, 라는 대답이 나오고야 말았다. 언제나 그랬지만서도.
내가 일하고 있는 이 곳은 회원제로 운영이 되고 있는 술집이었다. 회원이 아니면 알 수도, 이용할 수도 없는 곳. 최상의 여자들로 구성해 S급의 남자들만 상대했다. 재벌가, 국회의원, 법조인, 연예인 등등 많은 상류층의 남자들은 모두 이곳의 회원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으면 쉽사리 가입할 수 없기에 이곳의 회원은 아주 소수였다. 백여명 남짓. 보장되는 강력한 비밀유지에 숨길 것이 많은 남자들은 이곳을 찾아들었다. 난 그들에게 웃음을 팔고 친절을 팔고 진심을 파는 여자였다. 저급하고도 날카롭게 말하면 술집여자였다. 몸만 자주 내어주지 않을 뿐 창녀나 마찬가지인.
애초에 이렇게 되길 바라고 태어난 사람은 없듯이 나 또한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내가 화류계에 뛰어든 것은 2년 전,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을 기점으로 4년을 방황하다 24살에 결국은 이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틀고야 만 것이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을 그따위로 보냈음에 있다. 학교에서 잘나간다 싶은 남자애들은 어떻게 날 한번 사겨보려 안달했었고 여자애들은 그런 내 옆에 붙어다니고 싶어 안달했었다. 날 한심하게 보는 애들도 더러 있었지만 부러워 하는 눈길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에 졸업해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영원히 사람들의 그 ‘안달’이 지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나자, 당연히 고졸 딱지는 떼지 못한채로, 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졸업하기 전까지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조직폭력에 가입해 쌈질을 하러다녔고 그때 좀 친했던 애들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지방대학을 가거나 일찍이 화류계로 빠지거나 했다. 나는 생각과는 너무 다른 현실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방황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 공부를 하려 했지만 경제적인 벽에 부딫혀 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과는 고등학생 때 사업이 망한 이후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고. 그러니까,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내겐 젊음과 반반한 껍데기 하나만이 남아있었다.
자연스레 나는 누군가에게 이끌려오듯 이곳으로 오게되었다.
과거를 떠올린 지금 이 순간 역시나 그 얼굴이 또 떠올랐다. 변백현, 네가.
“아, 그리고 한나야. 너 내일 출근 좀 해줘야겠다.”
“…….”
“한나야. 들었어, 내 말?”
“야, 한에리!”
내 이름을 크게 불러오는 매니저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렇게 가끔 정신이 나가있을 땐, 항상 부르던 가명 대신 진짜의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곤 했다. 매니저에게 대답은 했지만 변백현에 대한 생각은 멈추지 못했다.
“네?”
“너 내일 출근 좀 하라구.”
“내일요? 내일은 저 휴일이잖아요.”
“구회장이 내일 너가 나와야된대. 친한 동생한테 여기 소개시켜준다고. 구회장이 너 아끼는거 알잖아.”
“…휴일엔 좀 그런데.”
“지금 휴일이 문제야? 야, 구회장 친한 동생이면 무조건 재벌가쪽이야. 걔만 단골 잡아도 십년은 먹고 살아.”
“ ……. ”
“완전 차원이 다른 사람일거라니까. 나올거지? 응?”
아까 말했듯 언제나 나는 또 네, 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한켠으론 변백현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되뇌여지는 그 아이를. 항상 한번 머릿 속에 떠오르면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너는 내게 잊기 참 힘든 존재임에는 분명했다. 너에게도 내가 그럴까. 그 이름이 내 머릿 속 구석모퉁이를 차지하게 된 것은 8년 전, 열여덟살 때부터였다.
변백현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던 남자애였다. 얼굴은 그냥저냥 평범했었던 것 같다. 사실 이젠 얼굴 생김새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키는 160 후반을 웃돌았었고 좀 말랐었다. 말도 없고 과묵해서 반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었다. 나는 그런 변백현을 1년 내내 괴롭혔다. 매일을, 하루같이. 왠만한 여자애들이라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질만큼 괴롭혔다. 내 친구들은 그런 비실거리는 남자앨 괴롭혀서 뭐가 재밌느냐며 쿠사리를 주었지만 나는 꼿꼿이 변백현을 괴롭혔다. 이유는 하나였다. 변백현이 괴로워하지 않아서. 괴로워할때까지 괴롭혔지만 너는 절대로 괴로워하지않았다. 아직도 니가 날 향해 보냈던 깔보는 듯한 눈빛은 선명하다.
너는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항상 나에게만큼은 무시하는 듯한 오묘한 눈빛을 내비쳤다. 여느 다른 아이들처럼 울고불고 그만해달라며 애원하기는 커녕, 너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로 날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돈도 수없이 뜯었고 때리기도 많이 때렸다. 변백현에게 말할 땐 단어 하나에 욕이 하나씩 붙었고 심부름도 오질나게 시켰었다. 그러나 변백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뭘 사오라고 시키면 것보다 두배는 더 사와 내 앞에 던져주곤 했다. 왜 패배감 또한 가해자의 몫이란 말인가. 내가 위에 서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변백현은 2학년이 끝나기 이틀 전, 말 없이 이민길에 올랐다.
내가 ‘그때’를 생각할때마다 변백현이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 그 눈빛 때문일거다. 유독 나에게만 내비쳤던 그 무시하는 듯한 눈빛. 너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만약 내가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걸 알면 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제 또 최회장은 내 허벅지를 노골적으로 지분거렸고 덕분에 과음을 했다. 살인적인 두통이 나를 짓눌렀지만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팔러 휴일임에도 스스로 발걸음을 해야했다. 어제 매니저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걔만 단골로 잡으면 십년은 먹고 살아.’ 아마 돈생각 없이 남자들을 대할 내게 충고를 한 걸지도 몰랐다. 가끔 매니저는 내게 너무 계산적인 면이 없다고 했었다. 그래서 손님들이 더 찾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지만 이 직종에서 계산적이지 않으면 끝까지 살아남기 힘들다고.
이곳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니,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대기실에서 화장을 약간 고치고 바로 매니저를 따라 구회장이 예약했을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은근한 조명아래 구회장의 얼굴이 바로 띄었다. 옆엔 정장을 입은 남자가 하나 앉아있었다. 나는 웃으며 구회장의 옆으로 갔다.
“회장님, 나 오늘 휴일인데 이렇게 부르기에요?”
“아이, 우리 한나씨가 좋아서 그렇지! 대신 다음에 오빠가 두배로 챙겨줄게.”
“됐네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다음부턴 안돼?”
“알았어, 알았어. 자, 먼저 인사부터 해. 얘는 내가 말했던 한나.”
구회장은 옆에 앉아있던 남자에게 나를 소개했다. 남자의 얼굴을 바로 보게되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비춰진 그의 얼굴은 꽤나 잘생긴 듯한 얼굴이었다. 나잇대는 나랑 비슷해보였고.
“내가 여기서 제일 아끼는 애야. 이쁘지?”
남자는 웃으며 네, 예쁘네요. 라고 대답을 해왔다. 그리고 그 웃는 얼굴을 보자마자 남자의 얼굴이 미치도록 익숙히 느껴졌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얼굴. 날렵한 턱선에 살짝 쳐진 눈이 아주 강렬히 뇌리로 박혔다.
“얘가 이쪽에서 일하는 애인데도 순수해. 성격도 좋고.”
그 남자 또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길. 묘하게도 누군가가 떠올랐다. 애써 무슨 생각을 하는거냐며 스스로 비웃어보았지만 남자는 확실히 그때의 그 아이의 얼굴을 닮아있었다. ……아니야, 그랬다면 저 남자가 나를 알아봤을거야. 아무리 내가 가명을 쓰고 있다지만, 그 애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누군지 알아봤을거다. 난 그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고, 네가 내 얼굴을 잊었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남자의 얼굴은 그저 여유롭기만 했다.
“자, 이쪽은 나랑 제일 친한 동생.”
하지만 아무리봐도 닮은 듯한 그의 얼굴이 나를 혼란케 만들었다. 분명 그 시절 그 애의 얼굴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저 남자가 그리도 닮아보이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당연히 말이 될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저 얼굴, 나는 스스로 어이없는 상상을 했다며 실소를 머금었다. 그래, 그럴리가 없지. 당연히.
마침 남자는 내 혼란에 답을 내려주듯, 예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저는 변백현이라고 합니다.”
“한나씨.”
너는 그제서야 예전과 조금도 변함없는 눈빛을 드러낸다. 날 처참히 깔아뭉개는.
▼
CODE KUNST - PARACHUTE (Feat. 오혁,Dok2)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장편으로 돌아온 백빠입니다. 잘 부탁드려요(꾸_벅)
다들 행복한 메리크리스마스 보내요♡
+암호닉... 받는데 신청해주면 안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