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_코스프레_중인_늙은이들.jpg
"야 이것들아 안 일어나냐!!"
"악! 아퍼!! 아퍼 형!!"
퍽. 퍽. 그리고 잠시 뒤 이어지는 둔탁한 소리들에 나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귀를 꽉 막고 있던 손을 떼고 침대에서 살며시 빠져 나와 조신히 이불을 갰다. 거의 모든 주말 아침이 그렇지만, 지금 민석 오빠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정말이지 어떤 사단이 일어날 지 모르기 때문에. 거실에 나가보니 이미 정갈한 차림새로 식탁에 앉아 있는 루한, 크리스, 수호 오빠와 나머지가 보이고... 아마도 변백현과 박찬열은 지금 민석 오빠의 찰진 손놀림에 바닥을 구르고 있겠지? 조용히 눈빛을 교환한 우리는 제물로 바쳐진 그 둘의 명복을 위해 잠시 기도를 올리고 숟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아!"
13명이나 되는 식구들 탓에 밥상 머리는 항상 요란하다.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밤낮 없이 노력하신 부모님 덕에, 우리 13 남매가 탄생했다.
마침 방에서 퉁퉁 부은 얼굴의 변백현과 박찬열이 걸어... 아니, 기어 나온다. 그리고 그 뒤로 말끔한 얼굴로 나온 민석 오빠가 손을 탁탁 턴다.
"한 번만 더 이러면 컴퓨터 모니터 부셔 버린다."
저 오빠 저런 얼굴로 저런 말 할 때가 제일 무서워... 이 비대한 남매 중 첫째인 민석 오빠. 원래는 나랑 같이 우리 집안의 쌍돼지 였는데 대학 가면서 역변해서 만두로 진화했다. 최근에는 살을 더 빼서 빠오즈마저 벗어났다. 다이어트 비법 좀 공유하자고 해도 안 알랴줌ㅋ.
암튼 이 열두명의 비글+또라이 조합을 진두지휘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맏이인 만큼, 내공도 엄청나다. 얼굴만 보고 귀엽다고 개겼다가는 정말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변백현 - 박찬열 - 나 - 타오로 이어지는 상또라이 라인) 치고 박고 피터지게 싸우다가도 민석 오빠의 한 마디에 열 맞춰 선다.
하루는 변백현을 앞장 세운 후라이드파와 박찬열이 대장으로 나선 간장파 간의 전쟁이 있었다. 항상 치킨을 시킬 때마다 있는 일이기에 무시하고 넘겼는데, 그 날 따라 유난히 길어지던 전쟁이었다. 그리고 끝내 치킨집에 전화를 해서는 왜 후라이드 반 간장 반은 안 되는지에 대해 따지기 시작한 변백현과 박찬열이었다.
"아니, 아줌마! 왜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은 되면서 간장 반 후라이드 반은 안 되는데여!! 이거 완전 간장 차별 아니에여!?"
"아나 당연하지! 간장이랑 후라이드가 같은 레벨이 아니잖아! 감히 간장 따위가 후라이드랑 섞이냐고!"
"아 ssibal 변백현 방금 간장 치킨 모독함?"
결국 주먹이 나가고 둘이 하나가 되어 거실 바닥을 한참 굴러 다니고. 우리는 그걸 구경하고 있고. 핸드폰에서는 아줌마의 악에 받침 고함이 울려퍼지고...
"이 짜슥들아!!! 느그들 집에 다시는 배달을 가나봐라!!"
민석 오빠가 두 사람의 머리채를 잡은 건 조금 뒤의 일이었다.
그 날 밤새도록, 박찬열과 변백현은 팬티 하나만 달랑 걸친 채 아파트 현관에서 오들오들 떨며 눈물로 회개했다고... 그리고 다음 날 둘은 치킨집이 열자마자 찾아가서 아주머니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를 해야 했다. 그날의 굴욕적인 사진은 아직도 내 핸드폰에 고이 간직 중ㅋ
뭐 어쨌든.
사람들의 경악에 찬 시선도, 복작대는 집구석도 뭐, 21년을 살다 보니 나름대로 적응이 되어 간다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건 저 열두 명의 남자들의 감당할 수 없는 똘끼.
태어날 때까지만 해도 유일한 딸이라 해서 공주 대접 받던 나였다. 이미 내 위로 아홉 명의 비글들을 키운 엄빠였기 때문에, 나만큼은 그들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필사적이셨던 것 같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엄마가 나를 배고 태교로 들었다는 각종 클래식과, 다섯 살의 내게 항상 입히던 레이스 촵촵 달린 공주풍 옷도, 우리 남매의 피 속에 녹아 있는 똘끼와 비글력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 짐승들의 무리 속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점차 생존의 기술을 깨우쳐 가고 있었다.
예컨대,
두 개의 젓가락이 마주치며 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스팸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챙챙하며 마치 젓가락을 스나이퍼 마냥 휘두르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이스 샷. 젓가락에 걸린 스팸을 한 입에 넣고는 오물거리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변백현이었다.
"아 돼지야 그만 좀 쳐먹어!!"
"돼지니까 많이 먹어야 됨~♡"
입 안으로 퍼져나가는 부드러운 기름기에, 변백현이 지 이름에 있는 똥 씹은 얼굴에 하트까지 날려주자 우웩 하며 토하는 시늉을 하는 변백현이다. 아무렴 어떠리~ 오늘 아침의 승자는 나지롱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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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쓴 글이랑은 분위기가 좀 다르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