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고등학교라고는 하나 밖에 없었다. 태환은 급하게 근처 고등학교로 달려갔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교무실로 쳐들어가 버렸다.
" 저기, "
" ...예? "
교무실 입구와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던 남자 선생에게 말을 걸었다. 순간 이렇게 무식하게 굴어도 되나 싶었지만 그런 생각도 한순간이었다.
" 여기에 쑨 양이라는 애가 다니고 있지 않나? "
" 쑨... 아, 2학년에 그 혼혈아 말씀이신가요? "
" 아직도 수업을 하나? "
" 지금은 각자 자율학습 하는 시간일겁니다. "
" 몇 반이지? "
검은 양복에 딱딱한 말투. 이 두 가지의 조합은 그 남선생을 벌벌 떨게 만들기 수월했다. 그 남선생은 급하게 선생님 사이를 수소문해서 찾기 시작했다. 2학년 부장 선생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명단을 받아 쑨 양을 찾다가 태환에게 다가와
" 10반이네요. "
한다. 태환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교무실을 나가버렸다. 남자 선생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 학교도 오랜만이네. "
고등학교도 아저씨 때문에 억지로 다녔던 태환이었다. 이 학교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뭔가 옛날 생각이 나는 태환이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보니 2학년들이 쓰는 층이 나온 듯 했다.
" 1반, 2반, 3반... 아, 저기다. "
복도 맨 끝에 위치한 10반이 눈에 보인다. 태환은 뛰었다. 조용한 복도에 태환의 발소리만 쿵쿵 들렸다.
10반 앞까지 도착한 태환이 뒷 문 유리창을 통해 반 안을 몰래 들여다 보았다. 유난히 키가 커서 그런지 남들과는 머리가 하나 더 볼록 튀어나와있는 쑨양의 뒷모습이 보였다. 책상을 보니 그 어느것도 올려져있지 않았다.
" 공부 하라고 보내놨더니 시간만 죽이고있군. "
하고 중얼거리고 문을 열려는데 뒷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기서 뭐하시는거죠? "
뒤를 돌아보니 선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태환을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본다.
" 복도에서 뜀박질 소리가 들려서 학생인가보다 했는데, 당신인가요? "
" ... 피해가 갔으면 미안합...니다. "
왠지 존댓말을 써야 할 것만같은 그녀의 딱딱한 말투에 그도 모르게 존댓말을 써버렸다. 그녀는 안경테를 올리며 다시 물어왔다.
" 여기엔 무슨 용무시죠? "
" 학생 한명을 데려가야 할거 같아서. "
그 학생 이름이 무어냐는 교사의 물음에 쑨양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뒤이어 그의 보호자냐는 말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또다시 안경테를 올리며 말했다.
" 죄송하지만 보호자가 아니시라면 데려가실수 없습니다. 8시에 자율학습이 끝나니 그때까지 기다리셔야 할 것 같네요. "
그녀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학교를 나와버린 태환이었다. 태환은 그 여교사를 왠지 엄청난 여자라고 생각하며 길바닥에 대충 앉았다. 시계를 보니 끝나려면 1시간 쯤 남았다. 그저 앉아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듯 했다.
문득 와글와글 거리는 소리에 놀란 태환. 길바닥에서 졸아버린 듯했다. 운동장을 보니 학생들이 학교 건물 속에서 쏟아져 나와 신나게 하교준비를 하고 있다. 태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학교 대문 벽에 최대한 붙어 서서 쑨양이 나올 때를 기다렸다.
" 이런 짓을 매일 매일 하는건가? "
나 때는 이런거 없었는데- 하고 중얼거리는 태환이었다.
수 많은 학생들이 교문 밖을 나서는데, 이상하게도 쑨양은 코빼기도 안보인다. 벌써 나온건가? 하고 생각해보는 태환이지만, 키가 그렇게 큰데 설마 못봤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학교 건물에서 나오는 학생들 수도 줄어들어 한 두명밖에 없다.
" 다시 들어가봐야되나. "
하고 학교로 다시 들어가려는데 학교의 본관 중앙 복도쪽에서 한 키 큰 남자애가 나오는 게 보인다. 쑨양이었다. 그러나 좀 뭔가 이상했다.
" 뭐지, 저 시뻘건거. "
얼굴에서 코 밑이 온통 새빨갛다. 옷도 얼룩들로 더럽혀진듯 하다. 태환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쑨양이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뜀박질 소리를 들은 쑨양은 코를 소매로 움키며 고개를 들었다.
" ... 아저씨?? "
쑨양이 눈이 동그래져선 놀란 눈치로 어버버 거린다. 태환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물었다.
" 하아.. 너 꼴이 왜그래. "
쑨양은 그저 눈동자만 뒤룩뒤룩 굴리며 어찌 해명 할 방도를 찾았다. 태환은 조용히 숨을 고르다 물었다.
" 너 맞았냐? "
쑨양은 자꾸 코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입을 다물었다. 태환은 하지말라며 그의 팔을 잡아 채고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아주었다.
" 야, 똑같은거 두번 묻게 하지마. "
" ..네? "
" 맞았냐고. 왜 그러냐고 "
쑨양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 다 큰 놈이 맞고다니냐? "
덩치로 보면 니가 애들 때릴 거 같은데. 하고 농담아닌 농담은 던지자 쑨양은 갑자기 뭐가 서러웠는지 눈물을 찔끔 흘리다 아예 펑펑 운다.
" 내가 그래서 학교 안 간다고 했잖아요! "
당황한 태환은 엉엉 거리며 대성통곡을 하는 쑨양을 잡아 이끌고 학교를 나왔다.
" 야, 울지 마. 다 큰 애가 찔찔 짜냐? "
" 왜 자꾸 나보고 다 큰 애래!! 나 아직 다 안컸거든요?! "
울면서도 쫑알쫑알 할 말은 다 한다. 손으로 눈을 막으며 엉엉 하고 우는 녀석이 왠지 덩치에 맞지 않는 짓을 해서 귀엽기만 한 태환이다. 그나저나 교복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피와 먼지에 찌들어서 빨아도 자국이 남을 것 같다.
" 내일은 학교 가지마. "
" 왜요! 그렇게 가라고 할땐 언제고. "
" 나랑 교복 사러 가자. "
그제야 쑨양은 어느정도 울음을 그치고 ' 교복이요? ' 하고 물어온다. 태환은 끄덕하며 ' 교복. ' 하고 재차 확인시켜주었다. 쑨양은 내심 기분이 좋아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태환에게 물었다
" 그, 그나저나 여긴 왠일이예요? "
" 갑자기 뭐. 뜬금없이. "
" 여긴 왜 왔냐구요. "
" 너가 집에 없길래 여기 있나 싶어서 와봤지. "
낮에 우리집 왔었어요? 하고 물어오는 쑨양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 네가 아까 같이 살자고 했지? "
" .. 네. 근데 이제와서 무슨.. "
" 같이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