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가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정한의 누나 기일도 지나, 여주가 떠났던 그 날씨처럼, 그러니까 12월이 찾아왔다.
아이들을 만날 걱정에 여주는 밤을 설친 채 비행기에 올랐지만, 한 숨도 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잠에 들지 못했다. 여전히 제 머릿속을 헤집는 여러 생각들 때문이었다. 심란한 여주는 제 손바닥만한 수첩에 이상한 낙서들을 했고, 옆에 있던 창균은 그런 여주를 바라보다, 영화를 보다 그리고 또 생각에 잠기다를 반복했다.
한편, 여주와 창균이 비행기를 타고 있는 시점, 하숙집에 있는 아이들은 여주가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보낸 문자를 보곤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문자 내용은 이러했다.
승관) 형. 그건 아니지.
민규) 그래! 다 나가야지 당연히!
민현) 여기로 데려와서 인사해도 되잖아. 다같이 가면 인원도 너무 많아서 여주가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고.
원우) ..그래 뭐. 어차피 오면 볼텐데.
민규) 그래도! 빨리 보고싶잖아!
승관) 그래~ 그냥 다같이가서 반겨주자! 그것도 좋을 것 같아!
찬) 에이, 너무 많아- 적당히 가 적당히
정한) 그럼 한 다섯명만 민현이 차 타고 가자.
명호) 민현이 형 차가 5인승인데 다섯명이 타면 여주는 어떻게 타?
정한) ..아 그렇네?
민현) ..근데, 여주 창균이랑 같이 오는거잖아. ..창균이 차 타지 않을까?
석민) ..아니지! 우리 차 타야지!
정한) 민혁이가 어차피 창균이 데려가겠지. 민혁이도 올거 아니야.
민현) 아 그렇네. 그러면 네명만 가자!
정한) 일단 민현이가 운전하니까, 민현이랑 나랑-,
승관) 나!
석민) 야 빠져! 나야 나!
민규) 난 당연히 가지.
지훈) 나 갈래.
정한) 아 장난해? 몇명이야 벌써.
민현) 아 그만해 얘들아. 벌써 열한시야.
정한) 정해야 잘 거 아니야
원우) 어차피 내일 오후에 오는거잖아.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정해도 상관 없어
민규) 안돼! 지금 안정하면 나 잠 못자
석민) 뭐래 잘만 잘 거면서 ㅋㅋㅋㅋㅋㅋㅋ
민규) 아니거든 나 오늘 여주 볼 생각에 설레서 못자거든
석민) 아 그건 인정
아 그래서 누가 가는데!!!!!
"그러게 비행기에서 좀 자라니까."
"...거기선 잠이 안왔어."
"너 비행기 타기 전에도 밤 샜잖아. 그럼 이틀이나 샌거야. 안피곤해?"
"...보다시피 엄청. 매우. 피곤해."
"...호텔가서 좀 자."
"그래야겠어."
여주와 창균이 짐을 찾고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공항을 거닐었다. 그러다 창균이 제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발걸음을 멈춰 휴대폰을 들었고, 여주는 그런 창균을 따라 멈춰서서 창균을 바라봤다.
"민혁인데? ....어 왜?"
-야 니 어디야! 공항인데 안보여!
"....나 아까 나왔는데? 우리 이제 차타고 나갈거야."
-아이씨, 게이트 앞에서 목빠지게 기다렸구만. 언제 지나갔대? 보지도 못했어!
"너보다 우리가 먼저 나왔나보지."
-어디쯤인데? 거기로 갈게.
"여기 국수 집 앞에. 벤치에 앉아있을게."
짧은 통화를 마친 창균은 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혁이가 이리로 온대. 공항 왔나봐.
"그래? 말이라도 하고 오지. 엇갈릴 뻔 했네."
"그러니까.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자."
"그래."
창균과 여주가 커다란 캐리어를 덜덜덜 끌고선 벤치에 앉았고, 창균은 휴대폰을, 여주는 커다란 티비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안그래도 소란스러운 공항이 더욱 소란스러워짐을 느낀 둘이었고, 곧 둘의 시선은 멀리서 다가오는 민혁,
민혁) 짱균아-!!!!!!!!!!!!
"...뭐,"
"..........."
그리고 그 뒤엔 여주가 근 7년간 보지 못했더라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아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민규는 여주를 제 품에 안았고, 곧 울먹거리며 여주를 향해 말했다. 보고싶었다고.
민규) ....여주야.
여주) ...왜 울어. 울지마.
민규) 너무 보고싶었어. 그래서 그래.
여주) ...나도 보고싶었어.
...미안해, 민규야.
여주의 사과와 함께 민규는 그나마 참고있던 울음을 더 크게 터뜨리고, 그 뒤에서 석민도 주저앉아 꺽꺽울어댔다. 아이들은 그런 둘의 등을 두드리거나 안으며 달래주었고, 여주는 제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질러댔다. 그러다 민현이 여주를 향해 말했다.
민현) 일단 집으로 가자.
여주) ...응?
민현) ...집에 가야지. 집에 안가?
여주) ..아 그게,
석민) ..왜? 언제 다시 갈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우리집에서 같이 있다가 가야지!
민규) 그래, 여주야. 집에 안가?
여주) ...이미 호텔 예약도 다 해서.. 예약했다그랬지?
창균) 응.
민혁) 야! 호텔 예약을 왜 해! 너 당연히 우리집에서 지내는 거 아니었어?
창균) 니네집 좁잖아. 호텔에서 지내는게 편해.
민혁) ...야 좁긴 좁아도 그래도!
정한) ..그럼 일단 집에는 가자. 애들은 다 너 집에 오는 줄 알거든.
민현) 그래. 우리집에서 안지내도 애들은 봐야지. 일단 집에 가자.
여주) ..아 그게,
창균) ..다녀와. 나 얘랑 있을게.
당연히 하숙집으로 가서 다른 아이들도 보고싶었던 건 여주도 마찬가지였지만, 혼자 남겨질 창균이 꽤 마음에 걸리는 듯 여주는 생각에 잠겼고, 이를 이해하는 창균이 여주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그러자 여주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눈을 느리게 깜박거렸다.
'애들 다 만나도,'
여주) ...........
여주) ...........
자꾸 아른거리는 창균의 표정과, 말 때문이었다.
창균) ...너 뭐타고 왔어?
민혁) 공항철도 타고 왔지.
창균) 내 차 타고 가자.
민혁) 아 그래. 야 다들 다음에 보자!
먼저 섣불리 발을 떼지 못하는 여주에, 창균은 민혁을 데리고 먼저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여주는 무언가 시큰해짐을 느끼며 옅은 한숨을 뱉어냈다.
눈물겨운 상봉을 끝낸 아이들은 퉁퉁 부은 눈으로 식탁 정 가운데에 앉은 여주를 바라보며 하나 둘 질문들을 쏟아 부었다. 남자친구는 사겼었냐, 가서 친구는 많이 사귄거냐, 도대체 어떻게 택배를 보냈냐,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한테 다 보내면 너는 뭘 먹고 살았냐, 못 본 사이에 야윈 것 같은데 기분 탓이냐 등.
후엔 서로의 근황을 전하다가 진동이 울린 여주의 휴대폰이 밝게 빛을 냈고, 여주가 휴대폰을 들어보이자 아이들이 흘끔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언제 나올거야? 데리러 갈게. - 창균오빠
여주) ...........
'10:07PM'
시각을 확인하던 여주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운을 떼려했고 그와 동시에 민현이 여주를 향해 물었다. 여주야.
민현) 그럼 미국엔 언제 다시 가?
여주) ....아.
민규) 금방 또 가? 저번 처럼 잠깐 온거야?
여주) ...나도 몰라.
석민) 엉?
승관) 이건 또 뭔소리야? 네가 미국 가는걸 네가 모른다고?
여주) ....응. 몰라.
원우) ..회사 휴가 끝나면 가야하는 거 아니야?
여주) ...회사 그만 뒀어.
지수) what?
찬) 뭔 소리야? 회사 그만 뒀다고?
민현) ...왜? 무슨 일 있었어?
여주) ....조금만 쉬고 다시 다니려 그랬는데, 창균오빠가 그냥 그만두고 한국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들어온거야.
...여기서 지내면 조금 나아지지 않겠냐고 하길래.
여주의 차분한 말에 아이들이 놀란 듯 아무 말이 없었고, 여주의 상황을 알고있던 정한과 민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정적을 깬 건 다름 아닌 승관이었다.
승관) 헐, 그럼 언제 갈 지 모르는 거면, 우리랑 계속 이렇게 지내면 되잖아!
민규) ...맞아. 여주야, 호텔 말고 여기서 지내자. 그게 더 편하고 좋잖아.
석민) 그러네! 갈 필요가 뭐가 있어! 어차피 쉬러 들어온거고, 응? 여기서 같이 지내면 되겠네!
지훈) 여주 방도 그대로 있어.
한솔) 맞아. 이불도 맨날 같이 빨아서 갈았어. 엄청 깨끗해.
여주) ...아, 근데 이미 호텔도 예약 해놨고, 창균오빠 혼자 호텔에 있어야해서..
정한) 창균이 민혁이 있잖아! 둘이 같이 지내면 되지.
여주) 약속했어. 같이 있기로.
석민) 왜! 왜 그 형이랑 같이 있어야하는데?!
민규) 우리도 같이 있고싶어! 그리고 그 형은 미국에서 너랑 계속 있었잖아!
승철) 야 좀 진정들 좀 해라!
여주) ...그치, 창균오빠는 나랑 미국에서 계속 있었고, 너희랑은 엄청 오랜만에 보는거고..
나도 물론 여기서 지내면 오빠들이랑 너희 계속 보니까 좋지. 근데, 창균오빠 나 힘들 때 계속 옆에 있어줬어. 그거 나 한 번 도 못 갚아줬는데, 그렇게 챙겨주기만 하던 사람이 나한테 옆에 있어달랬어. 나한테 그런 말 꺼낸 거 처음이야.
여주) ....나 그 약속 깨고싶지 않아.
여주의 말에 서운함을 표하던 민규와 석민이 조용해지고, 나머지 아이들은 고민에 빠진 듯 제 앞에 놓인 음료수를 바라보거나 허공을 응시했다. 그와중에 민현은 한숨을 옅게 내뱉더니 입을 뗐다. 자,
민현) 가족회의 시작할게.
정한) ...뭔소리야?
지수) ..지금 얘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
민규) 형. 지금 그게 중요해?
민현) 이번주 가족회의 안건은,
민규) 김여주 간다잖아!
민현) 창균이를 우리집에 들인다 안들인다.
민현의 말에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해지고, 그건 여주도 마찬가지였다. 여주에게 꽂혀있던 시선이 오로지 민현만을 향하고, 아이들의 시선을 다 받던 민현은 여주의 눈을 맞추며 다시금 말했다.
민현) 여주야.
여주) .........
민현) 창균이 지금 오라그래.
여주) ...뭐?
민현) 우린 두 번 다신 널 보내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모르고, 저번처럼 너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한국에 있는데 굳이 너랑 왜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 여기서 그거 이해하는 사람 한 명도 없어.
민현) 창균이 불러서 다시 얘기 해보자.
여주) ..........
민현) 창균이만 여기서 지내면, 여주도 호텔 갈 이유 없잖아.
여주) ...그건 맞는데,
민현) 여주는 창균이한테 연락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만 있으면 얘기해.
창균이 집에 들이는 거 불편한 사람 있어?
민현의 말에 여주는 휴대폰을 들어 고민하는 듯 한참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더니 곧 토독 토독 문자를 보냈다. 오빠, 지금 좀 와줄 수 있어?
짧게 문자를 보내자 금방 답장이 돌아오고, 여주는 도착하면 연락달라는 문자를 보내고서 휴대폰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곧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순영) 불편할게 있나? 여기서 창균이랑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애들 있어?
원우) 우린 다 아는데, 1학년 애들은 모르지 않나?
석민) 맞아. 우린 잘 모르지.
명호) 응. 얼굴만 알아.
승철) 나도 다른 반에다가 접점도 없어서.. 모르긴 해.
정한) 어차피 민혁이 친구라서 편하긴 할거야.
민현) 맞아. 순영이랑 원우랑은 좀 친하지? 같은 반이었잖아.
원우) 응. 착해. 조용하고.
순영) 난 괜찮을 것 같은데?
민현) 반대인 사람?
우웅-....
여주) ..여보세요? 아.. 잠깐만 내가 나갈게.
여주가 휴대폰을 들고서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남아있는 아이들은 그런 여주를 바라보다가 현관문이 닫힘과 동시에 시장통이 되었다.
민규) 그래. 솔직히 불편할 건 없어.
석민) 맞아. 뭐가 불편해! 하나도 안 불편해!
승관) 아니 그렇다는 애들이 아까부터 표정이 왜그래?
명호) 그니까. 너희 둘 엄청 심통 나있는 것 같아.
준휘) 오히려 미국에 있을 동안 여주 옆에 있어줬다니까 고마워해야하는 거 아니야?
승관) 그니까! 엄청 고마운 사람들이지!
석민) 그걸 누가 모르냐! 나도 여주 옆에서 도와준 건 고맙거든!
명호) 그럼 뭐가 문젠데!
민규) 아 그냥 질투난다고!!!!!!!!!
석민) 그래!!!!!!! 그냥 질투나서 그래!!!!!
민규) 여주 지금 와가지고 그 형 엄청 챙기고 있는거 안보이냐! 겁나 질투나잖아!
석민) 우리는 어?! 몇 년 만에 제대로 보는건데! 그냥 지내던 대로 우리집에서 같이 지내면 되지! 굳이 호텔 간다고 엄청 챙기잖아!
민규) 이러는데 우리가 심술이 안나냐!
명호) ...질투의 화신들이네.
승관) ...민현이 형. 마저 진행하자.
지수) 무시하는게 나을 것 같아.
민현) 쟤네는 어쩜 변한게 없냐. 고등학교 때도 나 여주랑 어울리면 경계 엄청 했는데.
정한) 몸만 컸지, 아직도 마인드는 고딩이야.
아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여주가 창균을 데리고 들어왔고, 여주가 제 자리에 앉자 창균이 그런 여주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곧 순영은 비어있는 제 옆자리를 가리키며 창균에게 말했다. 야 여기 앉아.
창균) ....왜?
석민) 형은 좋으시겠어요!
창균) ..........?
석민) 여주 사랑 독차지 하고!
여주) 뭐?
창균) 뭐?
승관) 얘들아 창피하다 진짜..
석민) 뭐가!
민규) 뭐가! 맞는 말인데!
민현) 여주가 너 혼자 호텔에 냅둘 수가 없대. 그래서 너도 같이 지냈으면 하는데. 어때?
창균) ....여기서 지내라고?
정한) 우린 여주랑 꼭 같이 지내고 싶은데, 여주는 너도 같이 지내고 싶어해서.
창균) ..........
여주) ...불편하면 안지내도 돼. 그냥 호텔에서-,
창균) 아냐.
**
내용 추가하느라 쪼오꼼 늦었다 ㅎㅎ..
미안해요 ㅠㅠㅠ😭🙏
창균이 들어오는 거 반대하는 사람 없죠?!
보듬어주세요 예뻐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보고싶어요 매일매일 💛
넉점반의 봄 눈 같은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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