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한 겨울 02편을 읽고 오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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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검진을 받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
차 안은 정적으로 가득차 있다.
"폐경은 항암치료 부작용 중에 아주 흔한 증상 이니까, 너무 걱정 하실 것 없어요. 항암제가 잘 듣고 있다고 볼 수도 있구요. 항암 치료 끝나면 언젠가는 회복 될 수 있는 증상 이니까 걱정 마시고, 이게 단순 페경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문제인지 그것만 확실히 검사를 해보죠. 오늘 검진 오신김에 산부인과 검진 스케줄을 잡아드릴게요. 그럼."
전담 교수님이랑 이야기 하면서 이번달 들어서 생리를 안 했다고 했더니, 항암치료 중에는 흔한 증상이라고 했고, 정기검진 온 김에 산부인과 검사도 받기로 했다.
검사결과 항암으로 최대한 늦추고 있지만 전이는 계속 되고 있었고,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안 하는 줄 알았던 생리는 임신 이었다.
"우선 임신기간 거쳐서 출산까지의 과정도 환자분께는 부담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저는 출산에 동의하지 않아요. 지금 당장 결정하실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제가 관여 할 수 있는 결정도 아니지만 출산 까지 환자분 몸이 버텨 낼 수 있을지가 걱정 됩니다. 만약 그래도 아기를 낳겠다고 하시면, 지금 복용하는 약은 다 중단해야 하고, 이미 주입한 항암제가 태아에게 영향을 얼마나 끼쳤는지 몰라서, 기형아 출산의 위험도 있습니다."
청천벽력같은 말 앞에서, 나는 어떤 결정이 맞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두분에게 힘든 결정이겠지만, 다음 진료때까지 결정을 하셔야 할 것같아요. 항암제 주입 해야 하는 주기도 있고, 출산을 하시겠다고 마음 먹으시면 치료방향을 다시 생각해봐야죠."
"네. 저희.. 저희가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네요."
다음 진료까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계속 벙쪄 있고 재현이가 대신 대답을 했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이제 병원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말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에 준비를 하세요" 인줄 알았는데,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 생겼다.
당연히 우리부부에게 아이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치료를 계속 하고, 그만 하는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 사람다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누구하나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병실에서 나와서 차에 탈 때까지 계속 된 침묵 이었다.
"재현아. 나 아기 낳고 싶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한번 던진 내 말에 너는 핸들을 급하게 꺽고 차를 세운다.
핸들을 두손으로 잡고 머리를 숙이더니 후... 하고 깊게 숨을 내쉰다.
"......그럼 항암 중단해야해."
"어차피 별로 도움되는것 같지도 않아."
".. 준희야. 우리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좀 해보자."
"내 몸 이잖아. 치료받을지 말지는 내가 결정할수 있어."
"지금 약물 치료 그만두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잖아. 네 치료가 더 중요해. 치료 다 받고 항암 끝내면 그때 가서 다시..."
"다음이 없으면?"
우리 사이에 암묵적으로 덮어두고 묻어두던 주제이다. 내일 뭐 하자 거나 다음 주에 뭘 먹자 같은 사소한 계획 들은 편하게 말했지만, 내년에 여기 또 오자는 말도, 몇 년 후에 우리를 말하는 것도 어느 순간 둘 다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할 수 없었고, 너는 그 언젠가를 혼자 감당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아슬하게 지켜 오던 선을 넘기면서도 해야 하는 말이었다.
우리에게 약속된 미래는 없다. 하루하루를 함께 하고 있지만 언제든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창문밖을 보는 재현이는 울음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한참 이어진 정적 속에서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울부짖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자. 너무 갑작스럽게 알게 됐고.."
"나는 재현아..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가기 전에 아이 얼굴 보고 가고싶어."
"........나 하루하루가 불안해.....니가 없어 질까봐. 오늘이 마지막 일까봐. 그렇게 되면...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
"........................"
"나 봐서 한번만.. 한번만 부탁할게... 준희야 제발 우리 치료 계속 받자."
내가 없어지면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다면서, 너는 기어코 눈물을 흘린다.
나는 계속해서 아이를 낳고 싶어 했고, 너는 내가 계속 치료를 받았으면 했다. 사소한 의견차 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결정의 결과를 뻔히 다 알고 있어서 결정은 쉽지 않았고. 그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우리는 한동안 냉랭하게 서로를 대했다.
아침, 점심, 저녁 '식후 30분 후' 라고 적혀 있는 약봉지들이 한가득 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너는 당연하다는 듯이 약봉지와 물컵이 한 잔 올려져 있는 쟁반을 내 앞에 놓아줬고, 나는 뻔히 보고있는 너를 알면서도 약을 먹지 않았다.
이어지는 한숨. 서로 언성을 높이지 않기로 했지만 끝까지 우리의 의견을 하나로 좁혀지지 않았다.
2주 가량의 냉전이 계속 되었고, 다음 검진일이 가까워 왔다. 여느때랑 다를것 없이 말 없이 마주앉아 있는 식탁 앞에서 재현이 먼저 말을 꺼낸다.
"이따 데리러 올게, 검진 같이 가."
"알겠어."
언제나의 정재현이 그렇듯 자신의 잘못으로 싸운게 아니라도 먼저 숙이고 들어온다. 여주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평상시의 다정함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병원 예약은 2시, 1시쯤 재현에게 전화가 온다.
"나 갑자기 외근이 잡혀서, 데리러 못 갈 것 같아. 혼자 갈 수 있겠어?"
"그럼, 혼자 다녀올 수 있어."
"조심히 다녀와."
갑자기 잡힌 외근 때문에 데리러 가지 못한다는 말,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겠지만 재현은 준희가 선택할 수 있게 배려해줬다. 치료를 계속 받았으면 좋겠지만, 준희가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였다. 좀더 제 곁에 있어 달라고 하는건 제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시작한 거면서, 그게 언제가 되었건 그걸 감당해 내는 건 온전히 제 몫이라 생각하는 재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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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들어오면, 미주알 고주알 너의 하루를 들어주는게 내 낙인데, 오늘 따라 너는 조용하다. 쭈뼛쭈뼛, 할말이 있어 보이는데 손에는 서류가방이랑 쇼핑백이 하나 들려있다.
"이게 뭐야?"
"... 마케팅 부에 있는 동기가 와이프랑 병원 왔다가 우리를 봤었데, 그래서.."
"그랬구나, 아기 신발이네."
회사 동료가 임신 축하한다면서 아기 신발을 선물해 줬다고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아이가 찾아 왔으니 축하 받을 일이 당연한 일일 테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해야 하는 대화를 미루고 미뤄서, 몇 일때 그 일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말하면 또 싸울 게 뻔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내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핑크색 리본으로 포장된 작은 박스를 열었더니, 손바닥 보다도 작은 아기 신발이 들어 있었다.
한참 병원에서 울고 왔는데, 손위에 올려진 아기 신발을 보니 또 눈물이 흐른다.
"예쁘다 자기야.. 그치?"
마음 약한 정재현, 사무실에 그냥 두거나 오늘 길에 가져다 버릴 수도 있었으면서,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텐데, 버리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지만, 아이 아빠니까. 어떻게 아이 선물을 그냥 버리겠어.
아이 신발을 한참동안 만지작 만지작 거렸다. 계속 해서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다가와서 재현이는 말없이 눈물을 닦아주고 아무 말 없이 안아준다.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생각했어. 우리 아이 낳자. 안그래도 힘든데 나 까지 더 힘들게 해서 미안해."
"..............."
"그만 울고 나 좀 봐봐. 응?"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정말 전하기 싫은 소식을 전해줘야 했다. 더욱이 미안하다고 사과해오는 품에 안겨 말하기는 싫었는데,,,
'"재현아."
"응"
"우리 쑥쑥이 아들이래,"
"첫 아들이니까 준희 닮겠다. 그치?"
".......너 빼닮은 아들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우리 꼭 만나고 싶었는데.. 우리 쑥쑥이가 많이 아프데, 항암제 노출이 너무 심했어서..우리 쑥쑥이....."
"...... 그런 말 혼자 듣게 해 줘서 미안해."
"잘 왔다고, 엄마 아빠가 기다렸다고 반겨준 적도 없는데, 우리 애기 불쌍해서 어떡해...."
그렇게 우리는 쑥쑥이를 보냈다.
잘 왔다고 반겨주지도 못한 채 이별인사부터 전해야 했다.
안녕 아가
안녕 쑥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