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같이 썸의 진도를 원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느리게 갔으면...! 하는 분들도 계시네요.
우선,
느리게 가긴 합니다. 제 손을 후려치며 말이죠. 네.
역시 생각해봤는데...
서툰 두 사람이 만나서 뛰려고 하면 같이 넘어지는 꼴밖에 안 날테니까,
걸음마부터 차근차근 해야겠죠?
우선 두 발로 좀 서고... 걸으면서 넘어지고... 그러다가 걷고... 그러다가 뛰는... 언제 다 하지.
사실 빨리 쓰고 싶어도 지금 이 둘의 관계에서 쓰고 싶은 소재가 너무 많아서
이것만 다 쓰고... 이것만... 이것도... 하다가 느리게 갈 듯 합니다.
번외는 뭐... 그냥 뒤가 생각나면 쓰죠 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남준아, 윤기야. 여기서 니네가 하는 거 너네 둘만 빼고 뭔지 다 알아...
세레노 - 소년이 소녀에게 보내는 편지.
간혹 집이 답답하다면서 저녁에 산책을 나가자고 조르는 윤기가 보고 싶다.
그럼 남준이는 마침 날씨도 괜찮으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으면.
외투를 걸치고 맨발에 신발을 구겨신는 윤기를 보고 남준이가 한 마디 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바로 요 앞에 살짝 걸었다가 오는건데 뭐 어떠냐면서 결국 윤기는 남준이가 사준 신발을 신고,
거리를 나섰으면 좋겠다.
편의점에 들러서 얼마 전에 윤기가 꽂히기 시작한 초콜릿 크림 슈와
남준이가 마실 커피를 샀으면 좋겠다.
길을 걷다가 얇은 빵에 크림이 터져나와서 윤기의 입가에 초콜릿 크림이 가득 묻으면,
남준이는 주머니에서 챙겨온 작은 물티슈로 윤기의 입가를 벅벅 닦아줬으면 좋겠다.
윤기가 슈를 들고 있지 않은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아깝게 그걸 왜 다 닦아버리냐고 했다가
남준이에게 볼이 꼬집혔으면 좋겠다.
평소보다 길게 밤산책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조금 집 근처를 빙글 돌아가던 도중에 윤기가 작게 인상을 찡그렸으면.
걸음이 조금 느려졌으면.
그리고 결국 남준이의 소매를 잡았으면.
야.
왜요?
그게, 아... 나 발 아파.
아, 그럼 좀 앉았다 갈까? 아니면 이만 집에 갈래요?
아니, 그게 다리가 아니라 발 아프다고. 쓰라려.
윤기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던 남준이가 아파트 근처 주민들이 쉬라고 만들어놓은 곳에 윤기를 데리고 갔으면.
그리고 널찍한 벤치에 윤기를 앉히고 그 옆에 앉아 단단히 묶여진 신발끈을 풀어줬으면.
천천히 벗기자 발이 아픈지 앓는 소리를 삼킨 윤기가 남준이의 어깨부근을 꾹 그러쥐었으면 좋겠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어 윤기의 앞에 앉은 남준이가 작게 탄식을 뱉었으면.
새 신발에 맨발로 오래 걸어서 그런지 엄지 발가락 아래의 살갗이 쓸려 피가 조금 새어나온 하얀 발을 발견했으면.
아... 엄청 쓰라렸겠다.
어. 아파.
산책은 무리겠네요. 걸을 수는 있겠어요?
보니까 더 아픈데. 기어가야 되나.
... 형. 이거 형이 다친 거잖아요. 왜 이렇게 무덤덤해.
윤기가 멀뚱히 저를 올려보고 있으니 화를 낼 수도 없어
그저 걱정만 하며 작게 인상을 찡그리는 남준이가 보고 싶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 근처에 편의점이 있어서 급하게 가 연고와 반창고를 사왔으면.
그리고 아직 찬 공기 안에 맨 발을 드러내놓고 있는 윤기의 발을 잡았으면 좋겠다.
야, 야. 더러워.
아, 거 참. 누가 깔끔한 거 모른다고 할까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거든요?
내가 할게. 내가.
반창고 어떻게 쓰는지 알아요?
알거든.
응. 똑똑하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고.
저를 놀리는건가 싶어 울컥한 윤기가 제 발목을 쥐는 손에 놀라 숨을 삼켰으면 좋겠다.
윤기의 발을 제 허벅지에 올려놓고 서툴지만 꼼꼼하게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는 남준이가 보고 싶다.
윤기야, 너는 가만히 그런 남준이의 얼굴은 바라봤으면 좋겠다.
집중하느라 살짝 벌려진 입술,
제 걱정에 조금 찌푸려진 미간,
투박하지만 따듯한 온기를 머금은 손길까지.
남준이가 손을 대고 있는 곳이 욱씬거려 발 끝을 오므리면서도 얌전히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버릇마냥 귀가 있는 곳을 손으로 건들였다가,
제 토끼의 귀가 지금은 사람의 귀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어찌할 줄 몰랐으면 좋겠다.
결국 이리저리 옮겨지던 손은,
벤치만을
꾸욱
움켜쥐었으면 좋겠다.
됐어?
네. 된 것 같아요. 근데 걷다보면 이거 다 그냥 까질 것 같은데.
그래도 어떡해. 집에는 가야지.
치료가 끝나자 윤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신발을 신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신발끈을 매는 모양새가 영 어색해서 결국 남준이가 신발끈까지 묶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둘은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왜 하필 오늘 멀리까지 걸어갔을까, 작게 후회하던 남준이가
다시금 제 소매를 잡아오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윤기의 손을 잡아내었으면.
몸을 돌려 허리를 숙이고 꽤 따가운지 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윤기를 바라봤으면.
허리를 숙여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윤기의 표정을 살폈으면 좋겠다.
괜찮아요?
아니.
업어줄까요?
내가 여자냐. 아, 쓰, 따가워. 토끼로 변하면 안 되나?
여기 아파트 근처라 사람 많아요. 아예 못 걷겠어요?
반창고 그거 다 떨어진 듯.
윤기의 말에 남준이가 어쩌지 싶어 머리를 헝클이다가 윤기의 앞에 등을 보인 채 앉았으면.
죽어도 업히기 싫다는 윤기의 말에 결국 윤기의 팔을 제 어깨에 두르고,
윤기의 허리를 잡아 부축해줬으면 좋겠다.
업히면 훨씬 편할 것을. 형 어차피 말라서 별로 안 무거울 것 같은데.
야, 이거 불편해.
그래서 업힌다고요?
아니. 가자고, 얼른.
둘은 묵묵히 집으로 향했으면 좋겠다.
업히면 괜히 또 심장이 뛰는걸 남준이가 다 느낄까봐 거부한 윤기가 진지하게 제 선택을 고려해봤으면.
그 뒤로는
윤기는 허리를 잡은 남준이의 손이 미치도록 간지러워서,
남준이는 생각보다 더 얇은 허리와 제 품에 거의 들어오다시피 하는 마른 몸이 생각보다 더 선연하게 느껴져서,
집에 들어갈 때까지 간혹 윤기가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소리와 그 말에 맞받아치는 남준이의 짧은 대화만 있었으면.
그마저도 짧게 끝나버려 그 외에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길었던 밤 산책이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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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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