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 …………
요즘들어 익숙한 일이었다. 아침마다 여주의 침대에 여주가 없는 것은. 민현의 침대에서 한 번 잠들었던 여주는 잠이 오지 않으면 밤마다 민현의 방문을 두드렸다.
민규) …………
여주의 방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오던 민규는 제 방에서 조심스레 나오는 민현을 보더니 말했다. 형.
민현) ..어. 아침 당번인가?
민규) 응. 여주는?
민현) 자.
잔다는 짧은 말을 남긴 채 민현은 칫솔을 입에 물며 거실 화장실로 들어갔다. 자신의 방에 딸린 화장실을 쓰던 민현이 제 방에서 잠든 여주가 물소리에 깰까 싶어서 한 배려였다.
그리고 민현의 손에 들린 갈아입을 옷을 보던 민규는 고개를 저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
밤낮이 바뀌는 건 죽도록 싫어했던 본인이었다. 차라리 잠을 못자서라도 남들 깨어있을 때 깨어있고, 잠들어있을 때 자고 있어야한다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그래야만한다고, 건강하게 살려면 그래야한다는 글을 많이 봐왔으니까.
“………….”
그리고 홀로 새벽을 지킨다는 건, 얼마나 외롭고 우울한지 여주 스스로도 알고 있었으니까.
“…………..”
지수의 테라스에 멍하니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고 일어난지 얼마 되지않아 쌀쌀함을 느낀 여주는 한솔이 자신에게 준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있었고, 지수는 그런 여주에게 따듯한 차를 한 잔 건네주며 옆에 앉았다.
“고마워.”
“뜨거운 거 싫어해도 추우니까 그냥 마셔.”
“…응.”
“……….”
“……….”
“있잖아.”
“………..”
“언제까지 민현오빠 방에서 잘 순 없는건데,”
“………..”
“…안그래?”
“………..”
“빨리 비켜주고 싶어.”
“………..”
“…근데 잘 안돼.”
방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해도, 뜬 눈으로 두세시간을 있어. 근데 그 정적이 미치도록 싫어.
여주의 말에 지수는 제 손에 들린 잔을 매만지더니 천천히 잔을 들어 차를 마셨고, 다시금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다려.”
“………..”
“겨우 일주일도 안됐어.”
너 민현이 방에서 잔지 5일 됐나?
“………..”
“민현이 스타일 몰라? 너 계속 못자면 아무말 없이 계속 침대 내어줄 애야. 미안해 하지마.”
“..그래도. 나때문에-,”
“때문에가 어딨어 여기서.”
이 집엔 때문에는 없어.
“너 잠들어야된다는 부담으로 오히려 더 늦춰진다-“
“…………”
“미안해하지말고, 그냥 푹 자는데에만 집중해.”
“…………”
“………….”
새벽 1시. 제 침대에 누워있던 여주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더니 한숨을 푹 내쉬곤 몸을 일으켰다. 어두운 방을 둘러보던 여주가 무거운 중압감을 느끼는듯 고개를 숙이더니 곧 몸을 일으켜 방을 나왔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다 민현의 방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
또 다시 불러본다.
“…오빠, 자?”
손톱을 탁탁 거리던 여주가, 다시금 입을 열기도 전에,
철컥-.
“안자. 들어와.”
“…………”
민현의 방문이 열렸다.
침대에 누워있던건지, 뭉개진 이불을 보던 여주가 책상에 앉은 민현을 바라봤다.
“..자려던거야?”
“..아. 아냐. 그냥 누워있었어.”
“…………”
“신경쓰지마. 나 나가서 자면 돼.”
“…오빠 내 방 가서 자. 소파에서 자지말고.”
“알았어.”
민현이 웃으며 말하자 여주가 침대에 누웠고, 한참 눈을 감고있던 여주가 여전히 책상에 앉아있는 민현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러다 이것 저것 종이를 들추고있는 민현을 나지막이 불렀다.
“오빠.”
“응?”
“…그냥 가서 자.”
내일 일요일이라 출근도 안하면서..
여주의 말에 민현이 종이를 천천히 내려놓더니 몸을 돌려 여주를 바라보고, 은은한 스탠드 빛 하나에 서로 눈을 마주보는게 길어질 때 즈음 민현이 몸을 일으켜 여주의 옆에 앉아 여주를 내려다봤다.
“잠들어야 가지.”
“…………”
“네가 자야,”
내가 자.
“…………”
“…………”
“…………”
“…………”
“…왜?”
왜냐는 물음에 민현이 말없이 여주의 머리칼을 정리하고, 여주가 그 손길에 눈을 감자 민현이 입을 열었다.
“밤이 와야, 잠을 자잖아.”
“………….”
“…얼른 밤이 와야할텐데.”
“………….”
잘자.
화창한 일요일 오전.
순영) 너이쒸 야! 거기서 받아야지!
찬) 형이 마이마이 외쳤잖아~!
순영) … 그건 마이쮸 먹고싶어서 그런거거든!
아침을 먹은 아이들 중 몇몇은 마당에서 족구를 하고있었고, 정한은 이번 판은 쉬겠다며 마당에 앉아 아이들을 보고있었다. 그러다 나가는 창균에 정한이 창균을 불러세웠다.
정한) 창균아! 어디가?
창균) ..아 잠깐 그냥 요 앞 편의점. 뭐 사다줘?
정한) 아냐! 뭐 있음 전화할게.
정한이 휘휘 손을 흔들자 창균이 알았다며 대문을 열고 나서고, 시끄럽게 족구는 이어졌다.
민현) …………
여주) …………
그 마당에서의 소리가 민현의 방 창을 통해 들어오고, 민현은 방바닥에 앉아 침대에 엎드려 잠들어있는 여주를 바라봤다.
민현) ………….
한참을 여주의 손을 잡고있던 민현은 옅은 미소를 한 채 몸을 일으켰다.
민현) …뭐해?
민규) 아 출출해서. 먹을래?
민현) ㅋㅋㅋㅋㅋ아니 밥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방을 나오던 민현이 과자를 들고 있던 민규를 마주치고, 둘은 자연스레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켰다.
민규) 살찌려나. 요즘 밥먹고 바로 뭐가 먹고싶어
민현) ㅋㅋㅋㅋㅋㅋㅋ 찌면 뭐 어때. 또 빼면 되지.
민규) ㅋㅋㅋㅋㅋㅋㅋㅋ그렇지?
석민) 형형 이따 저녁에 뭐먹어?
민현) 쟤도 너 못지 않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민규) 아침 먹은지 얼마나됐다고 저녁메뉴 물어봨ㅋㅋㅋ
석민) 난 매일 뭘 먹을지가 궁금해
민현) 생각 안해봤는데. 먹고싶은거 있어?
석민) 시켜먹으면 뭐든 맛있지~
민현) 여주 일어나면 물어보자.
석민) 그래. 맨날 아무거나 아무거나.. 오늘은 여주보고 고르라그래야지.
짧은 대화 후 티비 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울 때 현관문이 열리며 창균이 들어오고, 창균은 비닐봉지를 흔들거리며 석민에게 안겨주었다. 간식.
석민) 오우! 왜 사왔어?
창균) 그냥 이상하게 에너지바 땡겨서 이것저것 사왔어.
민현) 그거 맛있어? 난 질리도록 먹어서 그 이후론 입도 안댄다.
창균이 에너지바 먹는 걸 보더니 민현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곧 소파에 앉더니 한 입 더 베어물며 왜? 하고 물었다.
민현) 고딩 때 밥 먹을 시간 없어서 맨날 그걸로 때웠거든.
처음엔 편의점에서 앉아서 먹다가 그것도 이제 질리고.. 밤에는 내가 편의점에 앉아서 컵라면 먹는데, 창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보이는거야.
민규) ..그래? 그게 초라한가?
민현) 나도 남이 그렇게 먹는 건 별로 안초라해보여. 근데, 내가 먹는걸 내가 보는게 싫은거지. 그래서 그 이후론 편의점 진짜 안가게 되더라.
식사로 떼우던 그 초코바는 더더욱 안먹고.
창균) 혼자가 아니었다면?
민현) 응?
창균) 편의점에서 혼자 먹던게 아니라,
옆에 친구가 있었으면 그 기억이 이렇게 씁쓸하게 남았을까, 싶어서.
‘웬 전화야?’
“그냥, 생각나서.”
‘미친놈. 징그럽게 왜이래?’
“잠깐 나올래?”
‘어디로?’
“니네 집 앞이야.”
‘아 왜이래! 애인이냐 미친놈아?!’
귓가에 울리는 민혁이의 목소리에 창균은 옅게 웃었고, 빨리 나오기나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 제 머리 위에서 무수히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며 휴대폰 카메라를 켰고, 가로등 빛을 받으며 떨어지는 꽃잎들을 찍었다.
“………..”
하숙집 단톡방에 올리자 아이들이 어디냐며 혼자 꽃을 보러 간거냐는 물음과 언제 올거냐는 그 무수한 메시지를 보며 웃었다. 그러다 민혁의 목소리가 창균을 향했다. 야!
“뭔데! 왜 집까지 오고 난리야!”
“그냥 생각나서 왔다니까 왜이렇게 지랄이야.”
“무섭게 하지마라.”
“마셔.”
창균이 민혁에게 이온음료 한 캔을 건네고, 민혁은 음료를 받아들었다.
치익- 탁!
“와. 우리 이거 고딩 때 존나 많이 마셨던 거 아니냐?”
개추억이네.
“….그치. 추억이지.”
“………..”
“아. 맛도 그대로여? 이렇게 보니까 우리 고딩 때 같다 ㅋㅋㅋㅋㅋㅋ 학교에서 밤까지 공부하다가 나온 것 같아.”
“..그니까.”
“왜 불렀는데?”
“………..”
“………..”
“누구한텐 추억인데, 누구한텐 악몽이야.”
“..뭐가. 이 음료수가?”
“뭐든지.”
“………..”
창균의 말에 민혁은 갸우뚱 거리다가 한 입 더 홀짝였다. 그런 민혁이에게 창균은 오늘 낮에 들었던 민현이의 이야기를 느지막하게 풀어냈고, 민혁은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니 생각이 났어.”
“………..”
“나도, 너가 없었다면 편의점에서 혼자 먹던 모든게 싫었겠지. 싶더라.”
“..참나. 뭐 그런거 갖고.”
“…………”
“…………”
“…내 유년시절에, 그리고 지금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아이씨, 너무 야밤이야 새끼야! 너 안들어가?!”
“야. 여섯시가 무슨 야밤이야. 돌았어?”
“아 몰라! 가서 저녁이나 먹어!”
“같이가자.”
“어딜!”
“우리집.”
“…니네집에 내가 왜가.. 나 집가서 저녁 먹을거야.”
오리고기 사놨단 말이야.
“우리집엔 피자 치킨있을텐데.”
“자랑하냐?”
“같이 먹자고.”
“그걸 니 혼자 결정할 사항이냐. 됐다.”
됐다고 손을 휘휘 저어보이는 민혁에, 창균은 민현이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 폰으로 바꿨고, 얼마 지나지않아 민현의 목소리가 둘을 향했다.
‘왜?’
“이민혁 데려가도 돼?”
‘아- 나간게 민혁이 만나러 간 거였어?’
“응. 근데 얘도 아직 저녁 안먹었대.”
“야이쒸 됐어! 나 집가서 오리고기 먹을거라고!”
‘ㅋㅋㅋㅋㅋ데려와~ 우린 치킨이랑 피자 먹는다고 말해줘~’
“야! 다 알거든?! 왜 자꾸 자랑인데!”
“알았어. 금방 들어갈게.”
야, 가자.
Epilogue
-잠들지 못한 어느 날의 대화
“…오빠,”
“..응?”
“………..”
“………..”
“…내 하늘엔,”
왜 비만 내릴까,
“…………”
“…………”
여주의 힘없는 물음에 민현의 펜이 멈추고, 곧 몸을 돌려 여주를 쳐다봤다.
“…………”
“비가 그치면 그 다음날은 해도 쨍쨍하잖아.”
“…………”
“..근데 비가 안그쳐서,”
“…………”
“내 하늘엔 해가 쨍쨍한 날이 없어.”
“…………”
여주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옆으로 투둑, 툭 하고 떨어져 이불을 짙게 적셨다. 그러자 민현이 여주의 시선에 맞춰 앉아 눈물을 닦아주며 입을 열었다.
“…어쩌나,”
“……….”
“매일 비가와서 어쩌지.”
“……….”
우는 여주가 속상해, 자신도 똑같이 눈물을 흘리는 민현에 여주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흔들리는 목소리완 다르게 여주를 위해 올린 입꼬리가 참, 묘한 감정을 들게 만들었다.
“……….”
“…여주야.”
“……….”
“….그 비 내리는 여주의 세상에,”
“……….”
“….그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있어.”
“……….”
“그 사람들은 해가 뜨는 걸 기다리는게 아니래.”
“……….”
“…그냥 그 세상이 좋아서 서있는거래.”
“……….”
“…그냥 가지.”
“……….”
“바보처럼 왜 서있어.”
“…좋으니까,”
“……….”
“비가 많이 오든 안오든,”
..좋아해서.
“…여주야. 비가 많이오는 건 신경쓰지마.”
“……….”
“그냥 우산만 쓰고있어.”
“……….”
“그럼 내가 어떻게든,”
“..어떻게 해서든,”
여주가 해가 보고싶으면,
해 뜨게 해줄게.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제발 조금만..
민현의 조용한 울부짖음에 여주는 힘없이 눈물만 흘렸다.
**
제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앞 부분은 여주의 세상, 근데 그걸 세미콜론을 붙여서 자세히 설명하면 민현의 세상입니다. 여주가 잠에 들지 못한다는 건 민현의 세상에서 아직 밤이 오지 않았다는 걸 뜻해요 :)
**
정신이 피폐해요. 너무 아파요. 어디 숨어서, 함박눈이 펑펑 오는 날 깨어나고 싶어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요.
넉점반의 함박눈 같은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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