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늦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가로등 밑 잔잔하게 너를 밝혀주는 빛 덕분에 살짝 붉어진 너의 두 눈이 내 눈에 들어왔다.
너의 눈과 내 눈에 마주쳤을 땐, 너는 이내 고개를 숙여버렸다.
-
'먼저 들어가'
'너는'
'너 들어가고 들어갈게'
우리의 인사를 끝으로 내가 먼저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서자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울기만 울었다. 소리내어 그렇게 크게 운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울음소리를 들은 가족들이 놀라 가끔씩 방문을 두드렸지만 신경쓰지 않고 울기만 울 었다. 솔직히 내가 울 자격이 뭐가 있을까. 나는 자격이 없다. 이제 구준회를 위해, 구준회의 첫사랑을 응원해준다며 말을했지만 하고나니 속이 후련한것보단 너무나도 후회가 된다. 차라리 모르던 그때 그 날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답답하지 않지 않을까.
*
"미친.. 너.. 얼굴.."
"..."
"결국 싸웠냐?"
"뭘 싸워"
"네 얼굴끼리 졸라 치고박고 싸운거같은데"
실 없는 농담을 던지는 친구를 밀어내치고 책상에 엎드렸다.
"야야 아니 왜 그러냐고 어? 무슨 일 있어?"
끈질기게 무슨일있냐며 물어오는 친구때문에 나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친구를 보며 말을 했다.
"말했어"
"뭘 말해?"
"구준회한테"
"헐! 고백했어?"
크게 소리를 지르다 이내 다시 작게 소근거리며 고백했냐며 물어오는 친구,
"아니, 걔랑 잘해보라고."
천천히 어젯밤 이야기를 친구에게 말해줬다.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면 눈물이 날 것만같았는데, 눈물은 생각만큼 나지 않았다. 덤덤하게 말하는게 어디 한구석이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근데 넌 괜찮아?"
"보시다시피"
"별로... 네 상태보면 얘하나 죽은거같애"
내 상태를보면 사람하나 죽은거같다는 친구의 말에 그저 웃어보였다. 근데 사실이였다. 아직도 구준회를 생각하면 한쪽이 먹먹하긴 했지만, 어제 밤 보는데는 오늘 아침이 더욱 괜찮았고, 오늘 아침보단 지금이 훨씬 괜찮았다. 나는 지금 점점 나아가는 중이였고, 너를 잊기위해 나는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였다.
*
"어? 김지원!!"
급식을 다 먹고 나온 우리는 교실로 향했고, 앞서 걸어가던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하고선 친구가 반갑게 김지원을 불렀다. 자신의 부름을 들은 김지원은 길을가다 뒤를 돌아봤고, 우리는 김지원에게 다가갔다.
"밥먹고오냐?"
"보면 모르냐?"
"또 승질이야"
여전히 뚜닥거리는 둘의 모습에 웃으며 바라봤다. 곧이 김지원 너머로 김지원을 부르는 김지원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우리의 시선은 그 쪽으로 향했다. 그 친구들의 부름에 나도 모르게 구준회를 찾고있었다. 너를 잊겠다. 너를 응원하겠다. 괜한 멋은 다 부렸지만, 막상 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엔 너를 찾고있는 나를 보니 나도 어지간히 언행불일치인가싶다.
"아!! 김지원!!!! 빨리와!!!! 축구 시작한다고!!!!!!"
움직이지 않던 김지원때문에 답답해하던 친구들은 또다시 김지원을 불렀고, 김지원은 이내 가봐야겠다며 우리에게 잘가라는 인사를 전했다.
"맞다, 김여주."
가던길을 멈추고선 뒤돌아 나를 부르는 김지원에게 뭐냐며 물어보자.
"오늘 구준회 학교 안 왔어"
"어..?"
"아니, 넌 알아야될거같아서"
-
'이게다 두 놈다 고집쎄고 어울리지 않게 남 부터 생각해서 이렇게 된거잖아.'
'...뭔소리야'
'너네 둘 하나도 안 닮았다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닮았다고'
'야 좀 차근차근.."
'이제 둘이 알아서 해결해라, 힌트는 여기까지야.'
사라진 김지원의 뒷 모습을 뻥지게 쳐다보다, 이내 친구를 바라보며 구원의 눈빛을 보냈지만 친구도 모른다는 재스처를 취해보였다.
"뭔소리야.."
"근데 하나는 일단 확실한거 아냐?"
"뭐가"
"구준회가 학교에 안 나왔다며"
"..."
하긴 어젯밤은 꽤나 쌀쌀했다. 아직 겨울이라기엔 이른 날이였지만 10월로 접어들어가는 어젯밤은 꽤나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심지어 구준회는 나를 보내고선 얼마나 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있었는지 나는 모르니깐. 처음부터 아픈 녀석을 그렇게 두고 나혼자 들어왔으면 안됐었다. 얼마나 감기몸살이 심해졌는지도 아무 연락도 없고 할 수도 없어 난 그저 답답할 뿐이였다.
"그럼 병문안 가야지!"
해맑게 병문안을 가자는 너의 말에 나는 미쳤냐?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친구는 뭐가 문제냐면서 나에게 도리어 물어온다.
"야 오버하지마, 네가 네 입으로 응원해줄게~ 뭐해줄게~ 다 해 놓고선 걔 보기 껄끄러운게 뭐가있냐?"
"...."
"그냥 네 발에 네가 찔려서 이러는거 아냐"
"...."
"네말대로라면 정작 구준회는 아무 생각없을텐데!"
하긴 그건그래, 걔는 아무생각도 없는데, 지금 괜히 나혼자 찔려하고 나혼자 너를 잊기위해 너를 멀리하고 있다.
어찌보면 나혼자 너를 잊기위해 힘들어하는 한심한 짓이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나의 최선의 방법인데.
*
"뭐냐 너?"
"뭐긴"
"왜 여기있어"
"야자하잖아 나"
"아니 그건 그건데 너 구준회한테 안 가봤어?"
야자시간에 야자하러 들어온 나에게 구준회한테 안 가봤냐는 김지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야 너 내가 한 말 이해 못.."
"야 지원아"
"어?"
"친구잖아."
"뭐?"
"구준회한테는 내가 그냥 친구일 뿐이라서, 내 일 먼저하고 가도 걔한테는 늦지않아"
"뭔.."
"나도 이제 혼자 안 다급해도 된다고."
내 말을 끝으로 김지원도 나도 더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평소보다 더욱 조용한 야간자율을시작했다.
한번 깊이 빠지면 시간이 가는줄도 무슨 일이 일어난줄도 모르는 내 집중력이 오늘은 조금 발휘한것같다. 어느순간 책에 깊게 집중했고, 딩동댕동이라는 소리와 집으로 돌아가라는 야감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필기도구와 책들을 가방에 넣었다. 큰 사거리까지 같이가자는 김지원의 말에 나는 따라 일어섰고, 교문을 나서자.
어제보단 조금 더 차가운거 같은 밤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날씨가 좀 풀렸나"
"날씨?"
"어제보다 조금 따뜻한거같아서."
-
"가라"
"어 너도 조심히가"
김지원과의 인사를 끝으로 나도 사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이 골목을 지나 어젯 밤 너와 내가 마주 앉았던 벤츠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금 떠오르는 네생각에 고개를 올려 너를 환하게 비춰주던 가로등을 쳐다봤다. 이 밝은 가로등 밑 아래에서 너는 꽤나 힘들어했었다. 몸이 많이 아픈건지 눈가까지 붉어진게 꽤나 힘들어보였는데, 나는 내 감정을 숨기고자 먼저 도망치듯 그 곳을 벗어났었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였는지, 너는 오늘 학교까지 안 나왔더라지, 참.. 몸이 많이 아프면 그렇게 문자를 남기고 나를 불러내지말던가.
"그래도 애가 아픈데.."
또 아픈 네가 걱정되는건 어쩔수 없나보다. 야자시간때 까지만해도 다짐했었다. 내일은 학교를 나올테니 그 때 구준회를 만나면 되지 않겠냐는 그런 다짐, 하지만 막상 네 방에 불이 꺼져있는 것을 보니 나혼자 조심스럽게 얼굴만 보고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래, 친구가 아프다는데..
한 수백번은 우리집 맞은편에 있는 너의 현관문 앞에 서서 고민을 한것같다. 간다 안 간다. 간다 안 간다. 결국 내 손은 너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난 뒤였고,
"누구세... 여주니?"
누구세요 하면서 문을 여는 아주머니가 나오셨고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 준회가 아프다고해서요."
"어쩌지? 준회 지금 자는데"
"아.... 그.. 숙제! 숙제주려구요!!"
"숙제?"
"네! 이모 이것만 두고 갈게요!"
가방에서 아무 내용도 안 담겨있는 공책을 흔들며 이것만 두고 간다고 말을하고 구준회의 집으로 들어섰다. 구준회의 집은 수도 없이 와서 물어보지 않더라도 여기가 어디인지 저기는 뭐하는 방인지 구준회의 방은 어디인지 모든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익숙하게 구준회 방 앞에 섰고, 심호흡을 한번하고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어둠컴컴하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날이 밝고 달도 오랜만에 밝게 떴는지, 커튼사이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불빛사이로 네 얼굴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너는 두 눈을 감고 잠을 자고있었고, 나는 의자를 가져와 네 옆에 앉았다. 너는 오늘 하루종일 꽤나 많이 아팠는지 너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고 아직도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나는 맺혀있는 너의 땀을 닦아 주기위해 옆에 놓여있는 작은 수건을 들어 너의 조금씩 닦아내기 시작했다.
"네가 왜 아프냐"
"..."
"졸라 넌 좋아해야하는거 아니냐?"
"..."
"걔도 너 좋아하고 너도 걔 좋아하는데 뭐가 문제야.."
대답없이 두 눈을 감고있는 너에게 돌아오지 않는 혼짓말로 나혼자 중얼거리다. 이내 너의 이마에서 손을 놓았다.
"짜증나"
"..."
"네가 아픈거 내가 아팠으면 좋겠는데"
"...."
"넌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게 얼마나 힘든줄 아냐?"
"..."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
"...."
"네가 너무 좋은데"
"..."
"그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게"
"..."
"난 그게 너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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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젊은재주꾼입니다! 늙은 재주꾼에서 필명을 젊은재주꾼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전하지 못 할 사정으로 한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찾아뵙지도 못했네요. 심지어 필명까지 바뀌어서 신알신도 못받으시는 분들이 대다수일거에요. 하지만 다시 이 글을 연재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인지 이렇게 나마 찾아오게 됐어요. 꼭 완결을 내리고 싶다는 생각일까요? 하하 신알신을 못 받아서 이번 편을 놓치시는 분들이 많을테고, 다가오는 순간들 12화를 처음봐서 이 글을 1화부터 보고싶은데 밑에 1화가 없어 당황할 분들이 있을거에요.(아..ㅎ 그런분은 없을려나..) 하지만 혹시 모를 그런 경우를 대비해! 검색란에 다가오는 짧은 순간들을, 검색해서 읽어주세요! 새로운 시작이라 생각하면 다시 다가오는 짧은 순간들을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제 모든 독자님들이 돌아오는 그 날까지? :) 암호닉은 늘 소중하게 받습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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