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Baby J
온 세상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듯, 나른하게 찾아온 봄이 지나갔다. 봄이 지나감과 동시에 후덥지근한 여름 기운이 몰려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여름은 어디 한번 당해봐라, 하는 듯 뜨겁게 열기를 불태우곤 어느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선선하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프던 가을 또한 순식간에 훅, 하니 지나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코스모스 한 송이도 보지 못한 채 말이다.
3년은 그렇게 금세 지나가 버렸다. 모든 걸 얼려버리는 듯한 추위에 꽃은 지고, 화창하게 빛나던 봄기운에 다시 피고.
그렇게 피웠던 꽃과 나뭇잎들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에 의해 떨어지고, 말라 비틀어져 버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 매무새 역시 얇게, 얇게, 두껍게, 두껍게. 그렇게 변해 버렸다. 다만,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널 향한 나의 마음이겠지.
‘…죄송합니다.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피고인 박찬열, 징역 3년 집행유예 1년’
바보 같은 박찬열, 소위 말하자면 질이 좋지 않은 청소년이었던 찬열이는 자주 들락날락 거리던 재판장을 또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결국 찬열이는 소년원으로 옮겨졌다. 찬열이와 나의 관계는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하게 선을 긋지 않은 상태에서 3년 징역을 받아버린 찬열이를 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기다려버렸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만을 갖고 고백조차 해보지도 못한 채 떠나버린 찬열이를 항상 그리워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길고, 외롭고, 애틋했다.
“또 서신 써? 안 지겨워?”
“응, 우리 졸업도 얼마 안 남았네.”
“못산다 진짜.”
졸업시즌이 다가와서인지 학교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빨리 끝났다. 오늘 역시 단짝 친구인 선영이와 함께 우리 집으로 향해 컴퓨터를 켜곤 서신을 쓰기 바빴다.
침대에 누워있던 선영이는 나에게 다가오며 또 서신 쓰냐며 한소리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신을 다 쓰곤 컴퓨터를 꺼버렸다.
내 서신이 잘 갔는지, 안 갔는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서신을 쓰려 한다.
3년간 단 한 번의 답장도 받아보지 못한 내가 병신같지마는 난 꽃이 진다고 찬열이를 잊은 적은 없기에.
따뜻한 방안에서 선영이와 영화를 보며 귤을 꽤 많이 까 먹은 것 같다. 밖은 어느새 어두컴컴해졌고, 영화가 끝나자 선영이는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영이를 바래다주기 위해 패딩 점퍼를 더욱 여미고선 찬열이가 선물해줬던 목도리까지 목에 꽁꽁 싸맨 후 밖으로 나왔다.
아, 눈 온다. 에이씨, 한 계단을 내려가던 선영이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후드티 모자를 푹 눌러쓰는 게 보인다.
주황빛 가로등 조명에 비친 눈은 마치 한겨울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국화꽃 마냥 아름다웠다.
멍하니 그 자리에 서 국화와 닮은 눈을 감상하고 있으니 선영이는 주책이다, 하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끌고 가는 선영이에게 몸을 맡기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곤 내려오는 눈을 그대로 맞으며 아파트 입구까지 걸어간 것 같다.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던 얼굴 위로 눈 떨어져 녹아 물방울이 얼굴선을 타고 흘러내렸고 어느새 온기 가득했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어휴, 박찬열 걔. 질 않 좋아서 별로인데 네가 이러는 거 보니까 안 되겠다.”
“응? 뭐가?”
“걔 내일인가 내일모레 나온다더라, 간다.”
“ㅇ,어? 잠깐, 선영아!”
아파트 입구에 다다르지 내 손을 꽉 잡고 있던 선영이는 내 손을 뿌리치며 찬열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일 혹은 내일모레 나온다는 말을 듣고선 놀라 눈을 크게 뜨자 선영이는 뒤를 돌아 내 부름을 무시하고 걸어가 버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많이 됐구나, 새삼 느끼게 됐다. 선영이가 점이 되어 사라지는 것 까지 보고 나 역시 뒤를 돌아 아파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 보낸 서신은 읽지도 못하겠구나. 혼잣말을 되뇌이며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토닥여주듯 내 어깨 위로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
학교에 있는 동안 내린 눈이 제법 많이 쌓인 것 같다.
서서히 그쳐가던 눈은 수업이 끝나갈 때 즈음 다시 펑펑 내리기 시작했고, 수업이 끝난 후 가방에 들어있던 접이식 우산을 꺼내 들어 펼치곤 교문을 나섰다.
약속이 있다며 먼저 간 선영이 덕에 오래간만에 혼자 거리를 걸으며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의 노란색 우산 위로 쌓이는 눈을 보니 수선화 생각이 난다. 3월, 꽃샘추위가 끝나갈 때 쌓여 있는 눈 사이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수선화 생각이.
찬열이가 없는 3년 동안 꽃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아와서 그런지 어느 것을 봐도 꽃이 생각난다.
“○○○.”
“……….”
“고생 많았어,”
찬열이의 생각과 꽃 생각을 함께하니 입가엔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 덕에 이젠 콧노래까지 나올 지경이다.
한참을 그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던 순간,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을 때 내 우산 속으로 불쑥 들어온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내 이름을 낮게 불러왔고 고개를 들어 보이는 나를 꽉 끌어안으며 고생 많았다며 등을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답장을 안 하면 네가 날 잊을 줄 알았어. 난 못난 놈이니까,”
“……….”
“3년 동안 꾸준히 서신 쓰느라 힘들었지?”
“……….”
“뭐라고 대답 좀 해봐.”
“…힘들었어, 엄청 많이.”
“미안해….”
한참을 토닥여주다 날 때어낸 찬열이는 나와 눈을 맞추며 한마디씩 내뱉어나갔다.
힘들었다는 나의 말에 고개를 숙이곤 미안하다는 찬열이를 아무 말도 없이 꽉 끌어안아 버렸다.
찬열이를 끌어안고 있으니 지난 3년 동안 힘들었던 나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
꽃이 지고 피고, 계절이 여러 번 바뀌어도 단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찬열이를 미워한 적은 없다.
그저 보고 싶기만 할 뿐.
“나 많이 밉겠다.”
“하나도 안 미워,”
“립 서비스 안 해도 되. 나 이제 정신 차렸어, 언제까지나 내가 너 이렇게 잡아놓을 순 없잖아.”
“제대로 고백도 안 하고 놔버린다는 소리네,”
“그건…….”
꽤 오랫동안 안고 있을 때 찬열이의 훌쩍이는 소리를 듣곤 아파트 비상계단으로 이끌었다.
콧물을 훌쩍이던 찬열이는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꺼냈고,
고백도 안 하고 놔버릴거냐는 나의 말에 안경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곤 날 애틋하게 쳐다보기 바쁘다.
이렇게 놔버리면, 3년 동안 너만을 기다리며 홀로 있었던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정말 날 놔버릴것만 같은 찬열이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내뱉어 버렸다.
눈을 피하며 말하는 나에게 찬열이는 한 걸음 더 다가와선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날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
“네가 매일 서신에 써놓은 말이잖아. 나도 그래, 계절이 몇 번이 바뀌어도 널 잊은 적 없어.”
“……….”
“그니까, 나 이제 정신 차렸으니까 나랑 연애해볼래?”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는 찬열이 덕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찬열이도 항상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는걸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전해졌구나. 내심 선영이에게 고맙기도 하다.
서신 쓰는 것을 까먹을뻔하면 늘, 오늘도 서신 쓰게? 하고 물어준 선영이 덕분에 내 마음이 찬열이에게 전해진 것 같다.
나랑 연애해볼래? 하는 찬열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열이를 마주 보며 쭈그리고 앉아버렸다.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 찬열이와 눈을 맞추고 있으니 그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싹 사라지는듯하다.
이젠 행복한 일들만 있을게 눈앞에 훤히 보이니.
암호닉 |
『 웬디 〃 대박이 〃 정은지 〃 알로에 〃 허럴 |
Baby J |
이제 드디어 주인공 스포가 한 편 밖에 남지 않았네요. 퀄리티가 점점 떨어지는것 죄송합니다. 이해 부탁드려요. 차기작과 함께 작업을 하다보니 한쪽으로와 치우쳐진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차기작의 퀄리티가 높진 않습니다. 제 필력이 거기서 거기이니ㅠㅠ.. 정학히 11월 1일 차기작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To be continued 2013 . 11 . 1 [EXO/Secret] Replay 혹은 평행이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