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
"정신 차려요. 이런다고 돌아오는 거 아니니까."
술 냄새로 가득 찬 달동네에 윤기 홀로 남겨져 있었다. 얼마나 손톱을 물어뜯은 건지, 더 이상 물어뜯을 것도 없는 손톱에 윤기는 자신 손톱 옆의 살을 뜯기도 했다. 그 모습에 지민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사람 여럿 잡는구나.' 라는 말과 함께 잠시 눈을 감았다가 곧바로 뜨고는
"아프잖아."
윤기의 손을 잡았다.
그때서야 사람의 인기척을 느낀 건지 윤기는 잔뜩 풀린 눈으로 지민이를 올려다봤고,
"내가 잘 못 한 거야."
"내가."
윤기는 자신의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하늘이 울었다.
그래서 달동네는 물을 잔득 머금었고, 무거웠다.
달동네 사는 음악하는 민윤기 X 달동네 사는 학생 OOO
20
오후 4시 30분
평소와 같이 학교 끝나고 올 OO이를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OO이가 타는 버스가 5번이나 정류장에 왔지만 OO이는 없었다.
아무리 늦어도 5시, 6시에는 오던 OO이가 보이지 않았고 불안한 듯 자리에 앉지 못하고 버스정류장 앞을 서성거렸다.
저녁 6시가 넘어가자 결국 윤기는 OO이 학교를 찾아갔지만 OO이는 보이지 않았다.
오후 7시
OO이가 학교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봤지만 신호음만 갈 뿐, OO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윤기는 자신의 엄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혹시 자신이 없는 사이 OO이가 집으로 간 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힘들어 하던 달동네 오르막길을 뛰어 올라갔다.
그러다 윤기의 손에서 지잉ㅡ 짧게 울리는 진동에 뛰던 것을 멈추고 곧바로 핸드폰을 쳐다봤을 땐 익숙한 이름이 띄어졌다.
OO이
그때서야 비 오듯 땀이 나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하는 게. 울퉁불퉁한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 쉬었다.
그 안의 내용은
'저 오늘 늦어요. 걱정하지 마요. 늦게 보내서 죄송합니다. 07:46PM - OO이'
비록 내용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 연락이 됐다는 것에 안심하는 윤기였다. 하지만 곧바로 왜 늦는지, 어디 있는지 궁금해진 윤기는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오후 11시
곧 꺼질 듯한 가로등을 보며 계단에 앉아 있는 중,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비 때문에 집으로 들어가 우산을 들고 나왔다. 그 잠깐 사이, 이미 회색 계단은 더욱 짙어졌다.
그 짙어진 계단을 멀뚱히 보다가 OO이가 우산을 챙겼는지 걱정이 돼, 답장 없는 OO이에게 또 한 번 연락을 했다.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느린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엔 교복을 입은 채 땅을 응시하며 걸어오는 OO이가 있었다.
그 모습에 윤기는 한 시름 놓였는지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 OO이 앞에 섰다.
사람의 그림자가 생겼을 때 OO이는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앞을 보고 다녀야지. 내가 아니라 이상한 사람이였으면 어쩔려고 그래."
"…"
"일단 너 지금 시간이 몇 시야. 문자 하나 달랑 보내면 이렇게 늦게 와도 되는 거야?"
"…"
"기다리는 나는. 나는 어쩌자고 그랬어."
윤기는 OO이에게 윽박 아닌 윽박을 질렀다. 그 말에 OO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가 곧 물기 어린 목소리로,
‘너무 힘들어서.’
그 모습에 윤기는 ‘OO이 마음 속 비는 개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으로 결국 OO이 어깨에 올린 자신의 손을 스르륵 내리고 들어가 쉬라고 했다.
비가 개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윤기는 며칠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
.
.
달동네에 햇빛이 들어선지 오래지만, 아직 OO이에게는 들어서지 못했다.
며칠 동안 온 비 때문인지, 사랑 받지 못한 건지. 꽃은 모두 제 빛을 잃은 채 떨어져 있었다.
OO이 마음을 대변하는 듯.
다른 사람이 보면 무서워 발길을 돌릴 굳게 닫힌 갈색 쪽문.
윤기가 몇 번이고 들어가려 했지만
"OO아."
"들어오지 말라고요!"
"OOO."
"오지 마!"
들어오지 말라며 윤기를 향해 악을 쓰고 물건을 던지는 바람에 문 앞에서 몇 번이고 좌절 했다.
며칠동안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 안에만 박혀 있는게. 밥은 먹은 건지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건지. 윤기는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나간 OO이 때문에 윤기는 그 굳게 닫힌 문을 열어 들어섰고,
집안은 윤기를 놀라게 했다.
책상 서랍에 붙어 있는 테이프. 차곡차곡 쌓여진 책. 각종 상자 등.
자신이 달동네로 이사 오기 직전의 집을 보는 듯 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굳은 채 가만히 서있었을까,
"…남의 집을 막 들어오면 어떡해요."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곧바로 윤기는 몸을 돌렸다. 하지만 곧장,
"우리가 남이야?"
윤기의 말에 OO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신발을 신고 나가려는 뒷모습에 윤기는,
"어디 가려고. 가지 마."
OO이가 힘들어 하는 모습에 윤기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렸는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건지, 더 이상 기다리면 안 될거라 판단한건지 급하게 OO이를 잡았다.
그 부름에 OO이도 밖으로 가려던 행동을 멈추고 뒤를 돌아 윤기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오빠가 그랬잖아요.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
"그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알 수 없는 OO이 말에 윤기는 이해하지 못한 듯 눈썹을 들썩이다가, 곧장 짧은 한숨과 함께
"그게 그 뜻이 아니잖아, OO아."
"…"
"서로 엇갈렸던 거 같은데, 그 뜻이 아니야."
윤기의 말을 제 멋대로 해석한 OO이 때문에 뒤늦게 그 뜻을 정정해주려 했지만, 윤기의 말을 듣지 않고 이미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려는 OO이 모습에 윤기는 점점 화가 치밀러 올랐다. 결국 하던 말을 멈추고,
"그게 너의 행복이야? 그럼 가 봐, 한 번."
그 말에 OO이는 당황한 건지, 상처 받은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윤기를 쳐다봤고 윤기는 그 눈을 피했다. 결국 OO이는 다시 뒤돌아 신발끈을 묶기 시작했다.
신발끈을 묶는 OO이 뒷모습을 계속해서 쳐다보다
"너 나가기 전에 하나만 묻자."
"…"
"충분히 나한테 말 할 수 있는 거 아니였어? 우리가 멀어져도 영원히 멀어지는 거 아니잖아
연락도 할 수 있고, 내가 찾아갈 수도 있고 그런 건데 너는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밖에 생각을 못 했어?"
"…"
"난 너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간다."
"…그러면 이해하지 마세요."
"…뭐?"
"이해가 가지 않으면, 이해하지 마세요."
신발끈을 다 묶었는지, OO이는 벌떡 일어나 물기가 잔뜩 끼인 눈으로 윤기를 쳐다봤고 그 모습에 윤기는 멈칫했다.
대답 없는 윤기를 뒤로 하고 OO이는 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을 땐 점점 뿌옇게 보이는 달동네가 위태로웠다.
한 걸음 한 걸음. 달동네를 나서는 중,
거칠게 잡아오는 손길에 강제적으로 몸이 돌려졌다.
"난 너랑 이렇게 끝낼 수가 없어. 넌 그게 가능할지 몰라도 난 안 돼."
"무슨 일이 있던 거냐고."
"할머니…"
"놀랐나."
"조금."
"난 우리 손녀가ㅡ 행복했음 좋겠어."
"난 지금도 행복한데,"
"할미 마지막 소원."
"……"
"가서 지금까지 못 받은 사랑 다 받아야지. 지금까지 고생한 거 안 하고."
작은 창문으로 윤기가 세상을 내다봤을 땐, 비탈진 달동네 그 언덕길에 낯선 삼륜차 하나가 있었다. 그 뒤에 실린 익숙한 물건. 그리고 익숙한 사람.
선뜻 윤기는 세상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 모습에 자신을 자책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겁내 본 적이 있던가. 뭐가 나를 이렇게까지 두렵게 하는 것인가.
작은 창문을 보며 그 생각을 했을 땐, 결론은 하나였다.
이별
두려움에 숨어서 세상을 보다, OO이가 차를 타기 전 윤기의 초록쪽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에 홀린 듯 세상 밖으로 나섰다.
OO이가 있기 때문에.
갑자기 열린 문에 OO이는 당황한 듯 차 문을 열어 급하게 탔다. 그 모습에 기사 아저씨도 구석에서 피고 있던 담배를 끄고는 차를 타려고 내려왔다.
윤기는 OO이가 타고 있는 조수석에 창문을 두어번 두드렸고 OO이는 서로의 목소리는 들릴 만큼의 작은 틈을 열었다
“OO아.”
“…….”
"사랑해?"
"……"
"나 사랑해?"
"……"
"난 사랑해."
그 말에 OO이는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기는 안도의 한숨을 푹 쉬고는 살짝 웃어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그 웃음이 너무 예뻐서 그만 크게 불어진 풍선이 터진 거 마냥 OO이 울음도 그렇게 터졌다.
"됐다 그럼."
"……"
"내가 너 데리러 갈 거야. 언제가 될 지는 몰라도.
그러니까 그 때까지 지금 날 향한 마음 그대로 있어줘. 마지막으로,"
“또 한 번 겨울에 갇히지 마. 이건 부탁이야.”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게.”
미소는 어느덧 사라지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달동네를 채웠다.
"지민아."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흔들렸다.
자
"나 좀 불안해.
내가… 못 갈 거 같아.
어쩌지. 그러면 어쩌지. 나 그럼, 정말…"
말라버린 꽃이 다시 피지 않듯이
(Like A Dried Flower That Never Blooms Again)
비를 머금은 달동네.
비가 유난히 많이 온 그 날.
멍청하게 기다렸다는 OO의 말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윤기의 말
평소와 다른 달동네 제목
(제가 지금까지 ‘달동네’ 를 어떤 식으로 표시했는지 보시면 대충 감이 오실 거예요.)
19편의 힌트입니다.
윤기에게 세상
중간에 OO이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갈색 쪽문인지, 제 빛을 잃고 떨어진 꽃잎인지.
19편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안 나온 이유
윤기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의 뜻이 광범위하다는 것.
I'm no j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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