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ush - Sofa
Written By. 미나리
# 헤어짐
**
"헤어지자"
"김여주"
"이정도면 됐어. 지호야."
나 이제 정말 지쳤어. 너무 힘들어.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왔던 말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버린다. 수십 번도 이해하려 했고 배려하려 했고 참으려 했는데. 끝내 난 모든 상황을 견뎌내지 못했다. 아무리 각오했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만날 때마다 우지호 얼굴에 비춰지는 피곤한 기색들과 밤샘의 흔적들. 그것들을 보며 매번 난 참아왔다. 피곤하잖아. 지호 힘들잖아. 하고 나를 다독여 가며. 그치만 이젠 내가 지쳤나봐. 너 못만나겠어. 지호야.
"진심이야?"
지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응. 진심이야. 이어진 내 대답에 복잡한 듯 머리를 짚고 있던 제 손으로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어제도 밤을 샌건지 피곤한 기색이 표정에 역력하다. 한껏 인상을 구긴 지호는 묻고 싶은게 많아 보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치만 거기까지. 여기서 흔들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힘든 결정이었던만큼 어줍잖은 안쓰러움에 다시 품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건 우지호에게도 잔인한 일이니까.
할 말 없으면 갈게. 차갑게 말을 내뱉고 돌아섰다. 잡지마라. 잡지 말아라. 속으로 수십 번을 되뇌이며. 하지만 하느님은 내 얘기를 들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지호의 손이 신경질적으로 내 손목을 낚아챘고 그 반동에 의해 난 다시 지호 앞에 그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말 아직 안 끝났어"
"..."
"고작 이 말 하려고 여기까지 왔어?"
"우지호-"
"말 끊지마. 나 지금 많이 화났어"
잘근 입술을 씹으며 제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에 지호는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새롭다. 지금 네 표정도. 좁아진 미간이 네가 화났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 손목을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얼마 안 가 느껴지는 통증에 작게 신음하며 인상을 구기자 우지호는 금세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힘을 풀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날 배려하는 행동에 순간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한숨 지은 지호는 결심한듯 내게 눈을 맞췄다.
"갑자기 왜그러는데"
"..갑자기 아니야"
"나한테는 갑자기야. 여태껏 말해준 적 없잖아"
"내가 뭘 어떡했어야되는데"
"김여주"
"내가 뭘 어떻게 했어야 됐냐구"
어느새 내 목소리도 함께 날카로워졌다. 안 좋게 끝내려고 했던 거 아닌데. 아까 붙잡지 말지 그랬어. 속으로 지호를 원망했다. 끝까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지호가 밉다. 많이 힘들었냐고, 네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그렇게 다독여주지 않는 우지호가 정말 밉다. 차라리 잘 됐어. 진짜 끝내자 김여주.
"너는 맨날 피곤하고, 힘들고 바쁘고. 그래. 나도 알아. 이런 거 각오하고 너 만났어."
"..."
"근데"
"..."
"이제 못하겠다구. 그러니까 그만하자고. 나도 평범한 연애 하고 싶어 이제"
눈물이 맺혔다. 울지 않으려 울음을 꾹 삼켜냈다. 평범한 연애. 그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나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됐는지. 억눌렸던 감정들을 쏟아내는 내 말에 지호는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말없이 내 눈을 바라본다. 흔들려. 솔직히 여전히. 이러다간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아 얼른 몸을 돌렸다.
"난 더이상 할 얘기 없어. 들을 얘기도 없고. 잘 지내"
도망치듯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렸다. 지호의 작업실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을 즈음 그간 눌러왔던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렇게 벽에 기댄 채로 주저앉아 몇 시간을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잘했어 김여주. 잘한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우지호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나 자신이 참 모순적이다.
이제 정말 끝인데.
***
[단독 보도] 지코, 동갑의 일반인 여성과 열애중
[스타 독점] 블락비 지코 일반인 여성과 작업실 데이트
[특종] 지코, 일반인 여성과 열애. 데이트 장소는 지코의 작업실로 추정…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며칠 뒤 실시간 인기 검색어는 '지코 열애'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아침에 눈 뜨자마자 놓여있는 이 현실에 믿을 수 없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각종 포털 사이트는 '지코 열애'로 뜨겁게 달궈졌고 그 기사의 중심에는 바로 나. 내가 있었다. 헤어지던 그날 저녁 지호의 작업실에서 빠져나오던 내 모습과 언제 찍혔는지 모를 다른 사진들. 기사 속에는 작업실을 드나들던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사람들 참 잔인하다. 우리는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구나..
'넌 나고 난 너야- 난 너고 넌 나야-♬'
기다렸다는 듯 울리는 전화에 놀라 휴대폰 액정을 확인해보면 '박경'. 딱 두 글자가 내 눈에 들어온다. 아침부터 시끄러울 게 눈에 보여 작게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받자 격양된 목소리가 내 귀를 찌른다.
[여보세요-]
[야 김여주!! 기사 뭐야 너 봤어?]
[지금 봤어..]
[너네 뭐야. 우지호는 왜 또 전화 안 받고]
[우리 헤어졌어]
[뭐?]
우리 헤어졌다구. 며칠 전에. 덤덤하게 말하는 내 목소리에 박경은 벙찐 듯 말이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쫑알쫑알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던 녀석이 말이 없자 분위기가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런 반응 정말 싫다.. 숨 막혀.
[하..]
[어떻게 할까. 하하, 상황 참 잔인하다. 그치?]
[너는 지금 웃음이 나와?]
[...]
[하여간 진짜. 조심하라고 내가 그랬지? 그러게 누가 작업실을 그렇ㄱ..]
[경아, 나 지금 니 잔소리 들을만큼 정신 안 멀쩡해..]
금세 잔소리 모드로 돌변한 박경 목소리에 머리가 더 복잡해져 경이에게 말하자 '아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냐'하며 작게 욕을 읊조렸다. 그러게,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일단 끊어. 알겠으니까. 너한테 우지호 연락해보라고 하려했는데 그것도 안되겠네 이제]
[...]
[힘내고 정신 똑바로 차려. 알겠어?]
[그래.. 알겠어. 고마워]
뚝-
끊긴 전화를 바라보다 한숨 쉬며 이불에 고개를 묻었다. 지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연락은 또 왜 안 받아 우지호.. 연락이 돼야 뭘 해결을 할 거 아니야 회사에서도. 하, 내가 지금 누굴 걱정하니. 지 처신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미 얼굴이며 신상이며 다 털려있는 상황에 남 걱정할 때냐. 박경 말대로 정신 똑바로 차리자 김여주. 지금 와서 후회하면 뭐 해.. 작업실 드나든 사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 각오한 일이잖아. 하필 이런 타이밍에 터졌다는 게 큰 충격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지호를 만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야 입을 맞추든 뭘 하든 할 테니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마자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우지호를 찾자. 캡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바로 지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받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고 무작정 버스를 탔다. 지호가 어디에 있을 거라고 확신한 건 아니었다. 작업실에 처박혀 작업실 밖을 둘러싼 기자들로 인해 밖에 아예 나오고 있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어쩌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곳에 네가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새 난 우리가 처음 마주했던 그 근처에 다다라있었다. 예전 우지호가 살았던 아파트, 그리고 내가 다니던 회사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의 벤치. 그래, 우린 여기서 처음 만났었지. 잠시 첫 만남을 회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불과 100미터 남짓 되는 거리에 우리가 마주했던 그 벤치가 있는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여기 왔으면서, 이젠 정말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밀려온다. 고개를 세차게 젓고 발걸음을 옮겼다.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김여주.' 눈빛이 그렇게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여전히 지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난 정말 끝까지 네 속을 알지 못하네..
"우지호"
"..여기 왜 왔어"
"우지호, 너 목소리가 왜그래. 어디 아파? 왜 이렇게 갈라졌ㅇ"
"여기 왜 왔냐고"
차가운 지호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 꽂힌다. 아참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눌 사이는 아닌데.. 내가 잠시 착각했어. 헤어지자고 먼저 내뱉은 사람이 누군데. 참 이기적이게도말야. 그렇지만 갈라진 네 목소리가 너무 신경 쓰인다. 감기라도 걸린 걸까. 연예인은 몸 관리가 생명인데 왜 아프고 그래. 하, 미쳤지 김여주.
"너 찾으려고 왔지.."
"그럼 할 말 하고 가. 들어줄테니까"
"지호야"
"열애설 난 건 미안해. 내 불찰이야."
네가 왜 미안해. 그리고 왜 이렇게 차가워. 헤어졌으면서도 이런 생각하는 나도 모순적이지만, 이런 날에 오는 연락도 다 씹고 나랑 처음 만났던 이 장소에 제 발로 찾아왔으면서 내게 이토록 차갑게 구는 너도 참 모순적이다.
"아니야. 그건 내 잘못도 있으니까"
"..."
"어떻게 해결할 건지 의논하려고 찾았어. 질문에 대답은 서로 맞춰야되잖아 우리"
차가운 지호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자존심을 세웠다. 나는 늘 감정에 솔직하지 못 했다. 네가 보고 싶어서 찾았어. 헤어지자고 말한 건 나였으면서 또 네가 미친 듯이 그리워서. 열애설에 대한 의논 그런 건 다 핑계였어 솔직히. 회사에 먼저 연락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이 곳에 오면서도 계속 생각했어. 네가 여기 있어주면 좋겠다고. 그래, 난 정말 나쁜 년이야.
덤덤하게 말을 내뱉었으면서, 속으로는 이런 순간에도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나를 저주하며 고개를 떨궜다. 여전히 지호는 말이 없다.
"그게 할 말 끝이야?"
"..응"
"더 할 말 없다고?"
"끝이야. 그러니ㄲ.."
와락, 날 품에 안아버리는 지호의 행동에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멍하니 그렇게 서 있었다. 보고 싶었어.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이는 지호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차갑게 대할 거면 끝까지 냉정했어야지. 우지호 너 바보야? 자존심 굽혀야 할 건 난데 왜 항상 이런 상황에서는 네가 무너져 왜.
"너도 나 보고싶었잖아"
지호의 말에 내 마음도 무너져내렸다.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한 채 가만히 지호 등을 감싸자 날 안은 팔을 더 꽉 조여오는 지호였다. 맞아. 열애 기사가 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너였어. 너에 대한 걱정. 내 신상 정보들이 사람들 구설수에 오르는 그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너한테서 등을 돌렸을까 그 걱정 밖에 안 들더라. 보고 싶었어 지호야.
"왜 울어- 울고싶은 거 난데"
"..미안해"
"눈물 안 닦아줄거야. 괘씸해서"
"끅.. 안 닦아줘도 괜찮아. 미안해.."
"나 봐봐"
"..."
"어? 김여주. 나 봐"
슬며시 나를 제 품에서 떼어내고는 바라보는 지호의 눈길에 아무 말 없이 줄줄 흐르는 눈물만 닦아내자 지호가 허리를 굽혀 시선을 맞춘다. 너 눈 못 쳐다보겠어 지호야.
"김여주"
"응.."
"지금부터는 더 힘들거야"
"알아.."
"나 앞으로도 너 믿어도 돼?"
"..응"
"대답 반박자 늦었어. 너"
"..."
"나 너 믿어. 니가 믿지말래도 난 너 믿어"
"..."
"그러니까"
"너도 나 믿어줘. 힘들 땐 얘기해. 나 너만 그 고민 안고 가게 안해"
알겠어 김여주? 하는 지호의 말에 눈물 고인 눈으로 지호를 바라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예쁜 그 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냈다. 오늘은 눈물 안 닦아줄 거라면서.. 언행불일치야 너.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눈물을 닦아낸 지호는 다시 한 번 나를 꽉 껴안았다.
"그 때 이렇게 안을 걸"
"..."
"너 가고 후회했어 나"
"..바보"
"미안해, 니 마음 못 헤아려줘서"
이걸로 충분해, 나는. 내가 미안해. 너한테는 헤어지자는 말이 갑작스러운 얘기가 맞는 거였는데, 내 생각만 했어.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았으면서 네가 날 이해해주길 바랐어. 앞으로 안 그럴게, 정말로
"나 진짜 오글거리는 거 싫어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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