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러니까 내가 왜 여기 있더라.
생각없이 앞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는 태형이를 멍하니 쳐다봤다. 쟤 뭐래 지금.
곧 내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고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한듯 어깨를 퍽 쳐대는 태형이다.
"할 말 있어서 왔다면서."
"내가 그랬나."
"입 꾹 다물길래 내가 먼저 말 걸어줬더니만."
응, 고맙네.
영혼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말투에 태형이는 눈을 흘겼다. 너 나 없으면 말 할 사람도 없지? 그러니까 나 붙잡고 이러는거지?
혼자 재잘재잘 잘도 떠드는 태형이를 보면서 시계를 슬쩍 봤다. 점심시간 거의 끝나가는데... 반으로 돌아가야하나.. 뭔가 자꾸 찜찜한데..
"또 너?"
"악!"
"아오, 귀 떨어지겠네.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멍하게 창밖을 보다 귀에서 바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간 떨어질뻔...
얘는 질리지도 않는지 오늘도 입에 무언가를 물고 나타났다.
잘근잘근 씹어지는 빨때를 쳐다보면서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얘는 바나나우유 하나 물고 있으면 되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 왜 뚱뚱한 바나나우유 있잖아.
"뚱바."
"엉?"
"다음부턴 그거 먹어."
"그게 뭔데?"
그런게 있어. 우물쭈물 말을 대충 흘리며 반을 나왔다.
야! 대답은 하고 가던가! 궁금하게!
뒤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혼자 열심히 생각해 보세요, 나 모르시는 분.
반에 와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방 먹였네, 박지민! 한동안 그 애가 고뇌에 빠질 생각을 하니까 저절로 신이 났다.
기분이 좋다. 비집고 나오는 웃음에 괜히 헛기침을 남발했다.
*
다음날도 어김없이 태형이네 반을 찾았다.
요즘 나도 모르게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여기로 오는 것 같다. 습관처럼 태형이 자리 옆 책상에 걸터앉으려다, 멈칫하곤,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그냥,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웬일이야? 박지민이 까리한 걸터앉기를 다 포기하고?"
"...아니, 별로, 뭐. 자리 주인이 싫어한다는데..."
"너가 남 말 듣는 애였냐?"
"그냥 그럴수도 있는거지 말이 많아."
"하긴... 탄소가 한성깔하지. 너도 감당 못할지도."
곰곰이 생각하다 어깨를 으쓱한 태형이는 앞에 놓아져있던 뚱바를 들었... 어? 뚱바?
그러고보니 내가 어제 탄소라는 애한테 뚱바를 먹으라고 하고 갔던 기억이 났다. 근데 왜 걔도 아니라 너가 먹고있냐. 태형이가 들고있던 뚱바를 휙 가로채서 흔들어보였다.
이제 너가 왜 이걸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보시지? 강렬히 눈빛을 쏘아대자 김태형이 입을 열었다.
"일단 좀 줄래. 그거 내껀데.."
"설명부터."
"음... 설명할게 있나? 그냥, 탄소가 준건데."
"...너 걔랑 친해?"
"일단 짝궁이잖아. 짝궁된지 하루이틀도 아니고 당연하지."
"하여간, 걔가 왜 이걸 너한테 줬냐고오."
"너가 어제 뚱바 어쩌고 했잖아. 그래서 뚱바가 뭐냐 묻길래 알려줬더니, 고맙다고 주던데?"
아씨, 이게 아닌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었다. 내가 이러라고 바나나 우유 말한거 아니었는데.
진짜 도움 안된다, 김태형. 한껏 기분 상했다는 표정으로 따지려고 하는데, 또 뒤에서 누가 귀에대고 갑자기 소리를 내서 깜짝 놀라버렸다.
"야."
"으아...!"
"것 참, 잘 놀라네."
"아 뭐야... 왜 자꾸 놀래키는데.."
"야, 이거 어제 너가 알려준 거 맞지? 바나나우유."
"......"
"자, 받아."
으응...? 갑자기 나한테 우유 하나를 내밀기에 얼떨결에 받았다.
이거, 꽤 맛있더라? 추천 고마워. 자주 먹을게.
정말 맛있었는지 지금 마시고 있는 것 빼고도 두개를 더 사온 듯, 나머지 우유가 책상위에 올려져있었다.
근데, 방금 이거 나 준건가? 나 먹으라고...?
"야, 저기, 이거는..."
"그거 너 마시라고. 맛있는 거 알려줘서 고맙다는 답례야."
"아... 고마워, 잘 마실게."
"그랭."
자기 할말을 마친 뒤 휙 돌아서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던 김탄소가 곧 나를 다시 쳐다봤다.
뭐지 할 말 또 있나...
힐끔, 김태형을 쳐다보니 이쪽엔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저 내 손에 있던 자신의 우유를 다시 가져가 마시고 있었다. 아, 맞다. 여기 쟤 자리지...
쭈뼛쭈뼛 일어나서 얌전히 반을 나가려고 했다. 그 애가 나를 부르기 전까진.
"야."
"...나?"
"엉. 너 말야..."
"......"
"책상말고 의자에 앉아있으니까 얼마냐 좋아? 앞으론 의자에 앉아."
"..어? 그, 그러지뭐!"
한박자 쉬고, 그것도 모자라 대답한번 우렁차게 하고 나왔다. 아, 방금 진짜 찌질하게 보였겠다.
이게 무슨 쪽이냐...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근데, 좀 전에 했던 저 말...
앞으로도 자기 반에 와도 된다는 말인가. 책상에만 안앉으면...?ㅎㅎ...
반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내일도 나는 아마 김태형네 반에 갈거고, 그러면 또 당연하게 걔랑 마주치겠지.
내일도 똑같이 바나나 우유 마시고 있으려나... 아니면 다른 거 마시고 있으려나. 이걸 왜 고민하는 지는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조심스레 김태형한테 문자를 날렸다.
[야, 너 딸기우유 좋아해?]
[너 짝궁도?]
보내놓고 스스로 한심해서 발을 쿵쿵 굴렀다. 아씨! 괜히보냈어!
차라리 김태형 핸드폰이 갑자기 오작동나서 문자를 못보게 해주세요..., 푹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짧게 진동이 두번 왔다. 차마 답장을 확인하기 불편해 실눈을 뜨고 화면을 쳐다봤다.
[난 별로~]
[탄소는 좋아한댄다]
방금까지 고민하고 짜증냈던 순간들이 무의미해졌다. 딸기우유도 좋아하는구나.
그럼 내일 딸기우유 사서 가야지.
~*~
뿌에에ㅔ헤엥 탄소시점보다 지민이 시점이 더 괜찮을 거 같았는데 똑같이 어려웟...!
그나저나 뚱바라는 단어 써도 되는걸까요..?(눈치)
한동안 쉬는날이라 하루에 하나씩 올렸는데, 앞으로는 조큼 연재가 느릴수도 있을 거 같아요! 최대한 빨리 쓰겠습니당...
그리고 고작 두편올렸는데 암호닉 신청해주셔서 다들 감사해여... 하트뿅
(암호닉은 약속대로 더이상 받지 않아요!)
암호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