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도화궁부터 궐 밖으로 이어지는 모든 걸음을 모두 뜀박질로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태형의 길쭉한 눈매가 세로로 길어졌다. 숨을 쉴 때마다 태형이 입은 연홍색 비단이 들썩였다. 귓가에 선연한 심장 고동 소리도 함께였다.
그것은 취지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던 의도치 않은 사고였다. 분명히 넘어지려는 걸 도와주려고 했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태형이 짜증스럽게 제 뒷머리를 헤집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궐 밖까지 뛰쳐나오고 나니 이상하게 걸음이 무거웠다. 바삐 움직인 온 몸이 휴식이라도 취하려고, 이리 늑장을 부리려 하는 것인지 몰랐다. 무거운 태형의 발이 땅에 질질 끌리며 좋지 않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귀갓길을 걷는 태형은 혼자였다. 혼사가 끝날 시각이면 궁 앞에서 기다리던 식이 늦어지는 태형의 퇴궐에 못 이겨 홀로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태형은 그 ‘혼자’가 어쩌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고였다. 옆에 누군가 있다면 숨기지도 못했을 그런 사고.
“이제 와?”
태형이 조그맣게 발작했다. 조용히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리 늦었냐는 추궁이 이어져도 그냥 오다가 일이 조금 있었다고 잡아떼면 될 일이었지만 괜히 성가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태형의 대책이었다.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기. 제 방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여자 아이가 태형을 보며 웃어보였다. 태형의 동생, 은진이었다.
“…종규는?”
태형이 제 남동생의 이름을 언급했다. 딱히 할 말도, 찾을 이유도 없었지만 그를 찾는 이유는 단순히 말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둘이서 대화를 하게 된 이 어색한 상황을 다른 동생으로 만회하기 위해서. 두 남매는 의외로 친한 구석이 없었다. 저를 보며 단숨에 투닥투닥 뛰어와 태형의 앞에 선 은진은 그런 태형에 서운한 얼굴을 했다. 왜 오자마자 걔를 찾아? 은진이 되물었다. 태형은 답했다. 그냥.
“걔 아프대.”
“왜?”
“몰라. 아까 뭘 잘못 먹었나봐. 자꾸 가슴이 답답하다구 그러데?”
흠칫. 태형이 몸을 조금 떨었다. 거름망을 거쳐 오듯 자연스럽게 들리는 특정 단어 때문이었다. 이를 알 리가 만무한 은진이 얼굴을 구기는 태형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할 말을 이었다. 피를 나누었지만 그리 깊게 친하지는 않은 둘 사이에서, 은진이 꼭 태형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 오빠오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
“저기 골목길 돌아서 나오는 큰 집 있지.”
“그게 왜?”
“거기 민윤기라고, 알아?”
윤기. 민윤기. 은진이 태형에게 재차 강조했다. 태형은 뜬 눈을 천천히 끔뻑댔다. 대답을 않는 것은 왜 그걸 묻는지 이유부터 알아야겠다는 심보였다.
“오늘 나갔다가 봤는데, 물어보니까 사월이가 민윤기라고 그랬어.”
“…….”
“오빠 또래라며. 수학관 같이 다녔었지? 응?”
“…….”
“알면 나 좀 소개시켜주라. 제발.”
‘사월’은 은진의 옆을 따르는 젊은 여자 종을 말하는 것이었다. 태형이 저도 모르게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결국 이거 때문이었구만. 하나뿐인 여동생이 날 기다린 게 아니고 내 인맥을 기다린 거였어. 근처에 사는 춘추관 장의 둘째 아들 민윤기라면 태형과 수학관에 다닐 때부터 친분이 있는 형이었다. 그래봤자 소개시켜줄 마음은 없는데 안 해준다고 하면 분명 태형을 하루 종일 쪼아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골치가 아팠다. 어디서 쪼끄만 게 연애 감정을 먹어. 내년이면 너도 내 꼴 나서 궐 드나들 게 뻔한데. 은진은 태형의 속도 모른 채 태형을 향해 눈을 빛냈다.
“…안 돼.”
“뭐?! 왜! 왜 안 돼!”
“이 쪼끄만 게.”
태형은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제 여동생을 언제나 ‘쪼그만 것’이라고 불렀다. 은진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첫 머리를 다시 떼었다. 친절한 ‘오빠’라는 호칭부터 시작해서.
“…아, 오빠! 나 진짜 마지막 소원.”
“…뭐, 맨날 마지막이래.”
“진짜야! 나 진짜 운명을 만난 것 같아.”
“…….”
“처음 봤는데 가슴이 막 뛰더라니까?”
뭐? 태형이 다시금 들리는 특정 단어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제 동생을 바라봤다. 제 앞에서 조잘대는 은진의 말을 전부 듣지 못한 채 제 머리칼을 헤집었다. 잊으려고 할수록 선명했다. 그 도화궁이. 그 여자 애가.
“아, 몰라몰라! 저리 가!”
“……오빠아.”
“가라, 진짜.”
태형이 얼굴을 구기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동생의 눈에는 하나도 무섭지 않을 것이 당연했지만. 은진의 말꼬리가 태형의 뒤꽁무니를 무섭게 따라다녔다. 태형은 괜한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뵌다. 태형 나름의 철칙을 이행하러 가는 길이었다. 따르는 은진의 말은 모조리 묵살한 채였다.
“태형이 왔니?”
“예.”
“식이가 먼저 와있기에 걱정했다만, 별 탈은 없어 보이는 구나.”
태형이 말없이 제 치열을 드러내며 웃었다. 별 탈은 없었지만, 별 일은 있었지. 태형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말을 삼켰다. 이 시간이면 태형의 아버지가 사랑방에서 서책을 읽고 계실 것이라 예상해 사랑방에 들렀다 빈 방이기에 그의 어머니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태형과 닮은 이목구비가 태형을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단지 얼굴을 비추기 위함이었다. 출석 도장이라도 찍듯.
“아버님은 어디 계십니까?”
태형이 물었다. 어머니에겐 귀가의 표시로 얼굴을 비추었지만, 태형이 다녔던 서당은 부재가 이를 거를 수 있는 사유가 된다고 가르친 적이 없었다.
“잠시 친구 집에 가셨다는 구나.”
“아버지가요?”
“그 분이 전장에 나갔다가 화를 입으신 모양이다.”
“…….”
“가슴에 활을 맞았다지 뭐니?”
태형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이건 우연의 일치라고 봐야 할지. 온 가족이 작당하고 나를 놀려먹는 건지. 제 어미의 심각한 얼굴로 보아 놀려먹는 투는 아닌 것 같은데. 태형은 조금 당황한 기색을 띄었다. 그 찰나, 태형의 어머니는 태형의 차림을 훑으며 다시 입을 떼었다.
“헌데, 못 보던 옷이구나.”
“아, 이거. 아까 물에 빠져서….”
태형이 그제야 제 차림을 인지한 듯 눈알을 굴렸다. 황태자의 옷이라고 했다. 연홍색 비단에 놓인 수가 태형에겐 나름 인상 깊었다.
“…옷이 젖어 잠시 빌렸습니다.”
“더럽혀지지 않게 조심해라.”
태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도화궁에서 공주에게 했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나 갈게. 그러고 보니 사과도 안 하고 나왔다. 그리 큰 사고를 치고서도.
백단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태형이 제 입술을 꼭 깨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며칠만의 방문이었다. 목적은 또 지긋지긋한 ‘혼사’일이었지만 걸음은 그와 부합하지 않게 도화궁을 향했다. 어제 일은 미안, 고의는 아니었어. 비밀은 지키려고 할 건데, 네가 신경 쓰인다고 하면 다신 안 올게. 태형이 머릿속으로 하려던 말을 곱씹었다. 할 말이 많았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하지. 일단 불러야 하나. 복잡한 머릿속을 차곡차곡 정리하던 태형이 좁은 담의 쪽문을 지났다. 이 길만 지나면 도화궁이 나왔다. 그리 길을 잘 찾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냥 도화궁은 그림 그리듯이 지도가 그려졌다. 멀리서 보이는 낡은 궁과 문패, 좁은 마당. 그리고 공주. 태형이 낯익은 풍경에 마른 침을 삼켰다. 입술을 축이며 입을 열었다.
아, 그게.
황녀(皇女)
六
결국 걸렸다. 그러니까, 고뿔에.
물에 빠진 다음날부터 한기도 돌고 머리도 가끔 욱신욱신 거리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제야 본격적인 증상이 나타난 셈이다. 무거운 머리를 들었다. 이마에 놓인 차가운 물수건이 툭 떨어졌다. 이 궁 안에서 내 발열을 내가 가장 늦게 안 모양이었다. 어쩐지 새벽에 다들 분주하다 싶더니. 은은하게 궁 안에 드는 겨울 햇볕은 이미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음을 알렸다. 핑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잠에 든 채로 아무것도 못 먹고 감기 증상만 끙끙 앓았으니 아플 만도 했다. 고개를 돌려 구석에 앉아있는 정국이를 바라봤다. 궐내에 있는 약방에 가서 해열에 좋은 약이나 받아오라고 시킬 요량이었다. 어차피 나는 못 가니까.
“…정ㄱ,”
그러다 말았다. 불편하게 벽에 기대 앉아 새근새근 자고 있기에. 따끔거리는 성대를 타고 나온 가라앉은 목소리를 급하게 집어넣었다. 밤낮을 안 자고 저러고 있는 걸 아니까 자는 걸 함부로 깨울 수도 없고. 그래서 생각한 게 고작 그거였다. 이 안은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 내가 나가서 나인이든 상궁이든 찾기. 최대한 조용히, 조용히.
나 혼자 다 해결하겠다고 일단 나오긴 했다. 무슨 정신으로 옷까지 꿰어 입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뜨거운 숨을 토했다. 그것은 곧 바깥의 찬 공기와 조화롭게 섞였다. 이상하게 눈앞이 돌았다. 도화궁 마당 앞에 있는 매화나무도, 도화궁 연못으로 통하는 쪽문도, 전부 다.
어쩌면, 그래서 김태형이 눈앞에 보인 건지도 모르겠다.
“…으으.”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미간을 흉하게 구겼다. 헛것까지 보이니 내가 괜히 혼자 한답시고 무리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했다. 아니, 뭐 때문에 김태형이 궐에 드나드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또 올 리가. 아무래도 내가 너무 아파서 나인을 김태형으로 착각하고 있나보다, 그리 여겼다.
“아, 그게….”
“그.”
“어?”
“…약.”
“…….”
“약을…,”
그래서 애써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냈는데.
그 뒤로 정신을 잃었다. 한참 잤는데 얼마나 더 잠을 청할 것인지는 나도 몰랐다. 아마 다리에 힘이 풀려 그 나인의 품에 쓰러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공주야.”
“…….”
“공주야?”
태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품에 안긴 여인의 팔을 흔들어 깨웠다. 이름을 모르니까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태형은 당황스러웠다. 흔들어 깨워 봐도 요지부동인 그녀가 제일 그랬다. 아직 미안하다고 안 했는데. 많이 피곤했나. 약 뭐라고 한 건 들었는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생각이 태형의 머릿속에 오갔다. 태형이 여인의 등을 단단히 받쳐 들었다. 그녀의 뜨끈한 귀이 태형의 목 언저리에 닿았다. 태형은 그제서야 모든 행동을 우뚝 멈췄다. 가쁜 숨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린 것도 그 시점이었다.
“…공주야.”
불덩이. 사람들은 가족의 일원 누군가가 심한 열병을 앓을 때면 그를 ‘불덩이’라 말하곤 했다. 태형은 실감했다. 불덩이였다. 공주가.
아픈 상태로 혼자 옷도 꿰입은 건지 흐트러진 옷 모양새가 태형의 눈에 들어왔다. 태형은 평소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한 방금 전의 자신을 원망했다. 어정쩡하게 그녀를 안아든 상태인 태형이 혹여나 자신의 찬 피부에 열병이 더 돌까 염려해 등을 받친 손을 소매에 숨기곤 그녀의 얼굴을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찬바람이 괜히 신경 쓰였다.
“…누구 없어요?”
태형이 외쳤다. 도움을 얻기 위함이었다. 약을 가지고 오든, 침실에 눕히든 일단 무엇이든 해야 했으니까. 가장 근본적인 생각이 태형의 뇌리에 스친 것은 그 때였다. 아, 맞다. 나 들키면 안 되지.
아, 이렇게 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태형이 탄식을 내지르며 몸을 숙였다. 정신을 잃어 자꾸만 힘이 픽픽 풀리는 다리 때문에 몸을 안아드는 것이 태형에겐 꽤나 고역이었다. 태형이 한쪽 손으로 여인의 등을 받치곤 반대쪽 손으로 그녀의 치마폭을 크게 안아 들어올렸다. 끙차. 태형이 힘에 부치는 소리를 내자마자 마른 몸이 허공에 떴다. 메마른 입술에서 터지는 연약한 숨이 태형의 눈앞에서 오갔다.
“…마마!”
정국이 침실로 힘겹게 들어서는 태형을 보며 외쳤다. 정확히는 그의 품에 안긴 공주를 보며 한 말이었다. 태형은 한 달음에 제 앞으로 달려와 가뿐히 여인을 안아드는 정국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참나, 안에 있으면 말을 할 것이지. 무인의 자제로 자란 이유도 있겠지만 공주를 안아든 얼굴이 일말의 힘겨움도 없어 보여서 태형은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언제…, 언제 나가셨습니까?”
“…방금요.”
“…….”
“왜 이제 나와요?”
“깜빡 졸아서…….”
태형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태형은 거리감 때문인지 공주와 동갑인 정국에게 반말이 잘 안 됐다. 처음 정국이 태형에게 꺼낸 말은 분명 반말이었지만 자신이 그땐 침입자 신분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태형이 정국이 공주를 침상에 눕히는 것을 쳐다보며 그 옆에 앉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볼이 통통하게 부풀었다. 잠이 단숨에 깬 정국이 다급하게 말했다.
“약방! 약방에 가서,”
“…….”
“아니, 먼저 점심상을 들어야 하는데….”
“어딘지 모르는데.”
정국이 당황한 낯빛으로 말을 더듬거렸다. 태형은 두 눈을 끔뻑이며 정국을 바라봤다. 의외였다. 말도 없고 위협을 가하는 것에 나름의 위엄도 스며들어서 꽤 우직한 줄 알았으나 이럴 때엔 영락없는 열여덟의 소년이었다. 자기보다 두 살밖에 어리지 않은 탓에 태형도 별반 다를 것이 없긴 했다. 정국이 제 머리를 헤집었다. 곤란했다.
“여기 나가서 왼쪽으로 돌면…,”
“…….”
“아닙니다. 내가 갈게요.”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라리 자신이 옆을 지키는 편이 마음 편했지만 태형이 갈 수 없으니 별 수가 없었다. 정국이 나가는 뒷모습을 응시하다 태형이 고개를 돌려 끙끙 앓는 건지 새근새근 자고 있는 건지 모르는 공주를 지켜봤다. 둘 뿐인 방 안이 고요했다.
“미안하다고,”
“…….”
“말하려고 왔는데.”
그 미안한 일은 일전에 공주와 함께 넘어지며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의미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도 나 때문이야?”
태형이 멋쩍게 뒷목을 매만졌다. 맨날 사고치고 다녀서 어떡하냐. 말을 잇는 태형은 자신이 입궐한 이유도 잊은 채였다.
“근데 여긴 왜 이렇게 사람이 없어.”
“…….”
“나 없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치.”
태형이 읊조렸다. 열병을 앓는 사람을 직접 보는 것은 태형에겐 처음이었다. 자신은 아픈 적이 거의 없었고, 가족들이 아프면 그들의 옆에 있는 종이 대신 간호를 도맡아 한 데다 병이 옮는다며 방에 드는 것을 허하지 않아 그럴 일이 없었다. 전에 유생들과 함께 수학할 당시에도 아프기만 하면 완쾌를 바라며 집으로 보내서 지켜볼 기회도 없었고. 태형은 열이 오른 채 제 앞에 누운 여인이 괜히 측은했다.
그리고 신시(時)*를 알리는 종이 쳤다. 태형이 침상 옆에 앉아 숙인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혼사를 위한 태형의 약조는 신시에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태형이 일어섰다. 미련이 가득 남았다.
* 신시 : 오후 3시 ~ 5시
“나 간다, 공주야.”
“사신이라구요.”
그것도 민(旻)에서 온.
석진의 말에 황제의 앞에 엎드린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저하. 한 달 전에 황제의 손에서 민으로 보내진 사신 중 한 명이었다. 이유는 물론 민으로의 공물 때문이었다. 이번 해엔 풍년이라 백성들이 세금으로 낸 토산물이 넉넉해 공물을 보내고도 남아 다행이었다. 황제의 옆에 자리한 석진은 표정을 굳히며 사신의 정수리를 쳐다봤다. 황안전(皇安殿)에서 비밀스럽게 마련된 자리였다.
“읊어보라.”
늙은 황제가 말했다. 민에 관한 이야기였다.
“공물은 잘 전달했사옵니다.”
“……다른 일은 없느냐.”
고운 비단을 입은 사신이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공물이 잘 전달되었다는 건 전달된 순간부터 전해들은 소식이었다.
“민심은 여태 변함이 없으나,”
“…….”
“……민의 황(皇)이 오늘 내일 한다 하옵니다.”
듣기론 올해를 연명하기가 힘들다고…, 사신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히 조심스러운 소식이었다. 석진이 고개를 숙였다. 오래 전 현(賢)을 쳤던 그 황제였다. 석진의 옆에 있던 황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소신, 민에서 황태자를 만나 들은 이야기이옵니다.”
“…고생했다.”
“…헌데,”
사신이 말을 이었다. 석진은 그 말에 숙인 고개를 들었다. 분위기가 적막해졌다. 예감이 그리 좋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민의 태자가 황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 못하다고….”
“……그가 그리 말했느냐.”
“중전을 다시 들이는 것은 무리인 듯 하니 얼른 비를 들이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였사옵니다.”
권유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명백한 강요였으며, 재촉이었다. 황태자비를 맞으라. 황제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애써 공주를 숨겼으나, 그것은 악순환의 시작점을 끊은 셈이기도 했다. 황제가 조용히 눈을 돌려 석진을 바라봤다. 석진은 얕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비(妃)를 맞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석진의 거절은 황녀의 잉태를 미리 막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황제는 그 또한 걱정스러웠다. 헌데, 태자가 혼인할 생각을 않으니…. 나이 든 황제는 걱정이 많았다.
시운청(視雲廳). 구름을 보다. 궁궐의 사람들은 모두 이리 해석했으나 정확한 의미는 ‘구름 속의 복(福)을 꿰뚫어본다’는 의미였다. 간략히 말하면 궁궐의 제사와 점(占)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신시에 태형과 수아가 만나기로 한 곳이기도 했다. 둘의 의지는 아니었으나 아무튼 그랬다.
“김태형.”
“…….”
“윤수아.”
혼사의 일환이라고 했다. 보통 틀어지는 궁합은 잘 없으나 형식상으로 치러지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무언가를 보던 늙은 여인이 두 사람의 이름을 천천히 읊었다. 수아는 그녀의 점괘를 보며 눈을 빛냈으나, 태형의 눈은 공허함 그 자체였다. 다름 아닌 도화궁에서 본 그 공주 때문이었다.
태형이 며칠 전 공주와 함께 물에 빠졌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분명 공주가 춥지 않냐고 태형에게 물었고, 태형은 옷을 벗어줄 수 없다며 장난스럽게 응수했다. 근데 그게 지금까지 올 줄이야. 자신이 이리 멀쩡하니 그것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더 이상했다. 태형은 공주를 두고 온 것이 못내 찝찝했다.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려 들른 것이었으나 결국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떠나 왔다.
“어떠합니까?”
“…음, 양과 음이 조화롭고, 흑과 백이 어우러지는구만.”
완벽하진 않다만 나쁘지는 않아. 늙은 여인의 말에 수아가 해사하게 웃었다. 틀어지는 일이 없다고 듣긴 했으나 혹시나 싶은 마음에 긴장한 탓이었다. 수아가 옆에 앉은 태형을 쳐다봤다. 아직 많은 만남은 지속하지 않았지만 여태까진 수아의 눈에 좋은 사람 같았다. 수아는 마음이 들떴다.
“헌데,”
여인은 다시 드문드문 말을 이었다.
“사내가 문제가 있네만.”
“예?”
그게 뭡니까? 수아가 미간을 급격히 구기곤 태형과 여인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들리는 ‘문제’가 수아에겐 짐작이 안 갔다. 여인이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주변에 웬 낯선 계집이 있어.”
“계집이요?”
수아가 짜증스럽게 되물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은 여태 말이 없었다. 어쩌면 늙은 점쟁이의 말을 듣고 있지 않는 지도 몰랐다. 수아는 그런 태형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물었다.
“…저보다 대단합니까?”
“물론이지. 비교도 못해.”
“…….”
“네가 탁한 백(白)이라면, 그 계집은 짙은 백이야.”
“…….”
“…계속 두면 재앙이 오겠어. 부인 될 사람이 잘 보필해야 해.”
점쟁이가 눈을 떴다. 수아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봤다. ‘부인’. 수아가 듣기에 꽤 어감이 좋았다. 잘 부탁드려요. 수아가 웃었다.
그 옆에 앉은 태형은 꾸준히 머릿속 생각을 떨치지 못한 채였다. 다시 도화궁을 찾을 생각이었다. 찾아서 또 뭐라고 하지. 물에 빠트려서 미안하다고? 감기 걸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태형이 한참 고민하다 제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이상해, 자꾸 신경 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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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을 잃음)
안녕하세요^ㅁ^ 히히,,
오랜만에 왔는데 뭐 이따구람..
글이 매끄럽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ㅠ_ㅠ
→ 현국 공주님 63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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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 / 찬아찬거먹지마 / 천사소녀제티 / 체셔리어 / 쵸코두부 / 태형아뷔태해 / 틸다 / 핫초코 / 현질
할꺼에요 / 호비 / 화학 / 황토색
모두 잘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