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일주일이 흘러 흘러 변백현은 퇴원했고 다시 병원 노동자가 되었지. 저번에 말했다시피 변백현 병원에서 인기 되게 많단 말야, 이지은도 말 했었지? 변백현이랑 엄청 붙어다니는 여자애. 솔직히 변백현은 걔한테 별 관심 없는거 아니까 나는 별로 신경 안 쓰는데 변백현 혼자 안절부절해. 변백현이 원체 성격이 다정하니까 주변사람들한테도 살갑게 잘 한단 말이야. 나 저번 달에 고생 많이했다고 수쌤이 이번달 듀티 완전 은혜롭게 짜주셔서 나이트가 별로 없어. 저번달은 진짜 헬이었지. 손다치고 나이트 연속 3일 수시로 걸리고 변백현 아프고, 일을 따따블로 했던 것 같아. 변백현도 수술한지 얼마 안됐다고 담당쌤이 쉬엄쉬엄 일을 시키시나봐. 인턴주제에 퇴근을 꽤 자주하더라고.. "김간, 오늘 저녁 데이트 콜?" "나 좀 늦게 끝날 것 같은데, 기다릴래?" 내가 마지막에 차트 넘겨야하니까 막 미친듯이 정리하고 있는데 변백현이 데스크에 턱괴고 계속 쳐다보는거야. 내가 쳐다보지 말라고 손으로 얼굴가렸는데도 끈질기게 쳐다보길래 앞머리 부시시하게 만들어버렸어. 내가 앞머리 마구잡이로 만들어버리니까 헤헤 웃는데 그게 또 엄청 귀여운거야. 그래서 내가 막 웃었더니 수쌤이 얼른하고 변백현 처리하라고 변백머리 툭툭 치고 가시고. "야, 너 이번에 수쌤 잘 걸렸네." "그치. 그래서 일이 그나마 쉽다." "저번 병동에서는 맨날 울고 난리치더니, 난 그때 너 진짜 그만두는줄 알았어." 혹여나 누가 들을까 싶어서 손으로 입 틀어막고 초고속 정리 끝내고 같이 나왔지. 파마를 한 건 아닌데 병원에서 일하느라 머릿망 쓰다보면 머리가 구불거린단 말야. 밖에 나갈 땐 망 풀고 한줄로 묶고 나오니까 파마된 것 처럼 말려있는데 변백현이 그걸 되게 좋아해. 그래서 맨날 손가락으로 머리 돌돌 마는게 습관이 된거야. 맨날 돌돌말면서 파마하면 안되냐고 조르는데, 귀찮아서 한번도 안했지. 그러면서 병원 나가는데 이지은이랑 딱 마주쳤어. 아마 이브닝근무라서 지금 출근하는 듯 했는데, 변백현보고는 되게 반가워하면서 달려오는거야. 나는 또 짜증이 솟구치고.. "쌤, 지금 퇴근하시나봐요?" "아..어. 지금 출근해?" "저 이브닝이거든요, 어디 나가세요?" "오늘 일찍 들어가도 된다셔서, 수고해." "어, 쌤 오늘 집 가시면 안되는데.." "왜?" "수민이 어제 수술했는데 좀 안좋나봐요, 근데 수민이가 아플 때마다 쌤 찾으니까.." "아, 아 수민이 아깐 괜찮던데? 나 찾으면 콜해, 올테니까." 내가 수민이 아까 멀쩡한거 보고 나왔는데 개소리야? 이지은이 변백현 집 가는 날마다 콜해서 불러내는데, 난 그게 진짜 마음에 안드는거야. 얘가 맨날 집가는애도 아니고 일주일에 많아야 두세번 집가는데 그때마다 누가 선생님 찾는다고 불러내니까. 변백현이 애들이랑 되게 잘 놀아줘서 애들이 맨날 찾긴하는데, 애들이 아픈것도 아니고 그냥 선생님보고싶어한다고 변백 쉬는날 병원 불러내고. 이래저래 마음에 안들어서 표정 썩어들어가는데 변백현이 내 표정 살피더니 어깨 감싸안고 빨리 가자는거야. "이따 콜해도 가지마, 쟤 너 부르려고 일부러 저러는거잖아." "애들이 찾는다는데 어떡하냐, 내가 알아서할게. 뭐 먹을래?" 딱히 먹고싶은건 없어서 고개 저으니까 변백현이 기분나빴냐고 묻는거야. 생각해보면 내가 기분나쁠이유도 없는데, 얘랑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근데 또 사귀는건 아닌데, 뽀뽀하고 손잡고 온갖 짓은 다했잖아. 나혼자 복잡해져서 오만가지 생각 다 하고있는데 변백현이 슬금슬금 손을 잡는거야. 그..사실 예전에도 손 잡은 적은 많았거든? 예전에는 덥석 아무렇지도 않게 잡았지만 요즘에는 눈치보며 잡는다는게 다른점이지만. "이지은 때문에 그래? 나 걔랑 병동에서 얘기 잘 안해, 아까는.." "아니야, 배 안고프면 그냥 집 가자. 너도 쉬어야하잖아." "피곤해? 집 갈까?" "응, 나 업어줘. 다리아파." 알겠어,알겠어. 잔뜩 쳐진 표정을 짓는 내 얼굴을 손으로 몇번 문지른 변백현이 내 가방을 손에 들었어. 읏차, 하며 내 앞에 쪼그리고 앉은 변백현의 등판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업히니까 변백현이 힘드냐고 묻는거야. 사실 아까까지만해도 기분 좋아하다가 급 우울해지니까 변백현도 당황스럽겠지. "안추워? " "추워." "그럼 손 넣어." 내가 예전부터 손시렵다고 변백현 옷 속에 손 막 넣었었거든. 변백현은 차갑다고 떨궈버릴거라고 흔들고. 근데 오늘은 내가 자기 목 뒤에 손 안넣으니까 이상했나봐. 내가 그냥 손 뻗어서 변백현 볼 잡고 문질문질하니까 얘가 웃는게 손에서 느껴지는거야. 그래서 계속 쪼물딱거리고 있으니까 변백현이 갑자기 되게 조용한 목소리로 날 부르는거야. "응?" "내가 생각해봤는데," "어?어." "나는 좀, 다르지않냐?" "뭐가?" "그니까, 딴 닥터들이랑.." "뭐가 달라, 임마. 너나 준면오빠나 똑같이 싸이코야. 아, 김민석도." "김민석이랑 김준면은..아니, 그 말이아니라." "그럼 뭐?" "...아냐, 됐어." 홱 토라져서는 어깨가 축 쳐진거야. 변백현한테 업혀가니까 편해서 다리 달랑거렸더니 변백현이 갑자기 멈춰서 나를 내려놓는거야. 걸어가기 힘들어서 내가 안떨어지려고 변백현 어깨 붙잡고 다리 감고 딱 달라붙었어. 그러니까 변백현이 잠깐 내려와보라는거야. 그래서 내가 고개 절레절레 저었더니 지도 웃긴지 픽 웃더라고. 그러고 몸 한번 탁 흔드니까 나 나가 떨어짐. 에이씨, 아쉬워서 내 가방 들고 입 삐죽이는데 변백현이 내 어깨 딱 잡는거야. 뭐지 이 분위기? 싶어서 올려다보니까 변백현 혼자 엄청 진지해. 그때는 나도 눈치챘지. 어떻게 해야 안 민망하게 만들수있을까 싶어서 머리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변백현이먼저 입 뗐어. "솔직히, 우리 나이에..결혼하자고 하는게 더 어울리지만," "누누히 말하지만, 나 결혼 서른 전에는 안 한.." "일단은 사귀자, 그리고 결혼은 서른에. 그럼 되잖아." 변백현의 엄청 다급한 고백에 내가 웃었더니 변백현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지는거야. 그리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더니 내 손에 쥐어주더라고. 뭔지 확인해보니까, 반진데. 지 손에 끼고 있는거랑 똑같은거. 엄마가 준거라고 맨날 끼고 다니더니 그거랑 똑같은걸 산건가봐. "나보고 끼라고?" "어, 어.." "내가 해?" "응.아..아니, 내가 해줄게." 뒷머리 벅벅 긁으면서 당황하는데 그게 또 귀여워서 계속 웃었지. 변백현은 반지 끼워주고 내 손 붙들고 앞만 보고 걸었어. 변백현이 잡은 손 막 흔들면서 싱글벙글 웃는데 전화벨이 막 울리는거야. 쟤랑 나랑 벨이 똑같아서 둘이 동시에 폰 꺼내들었는데, 변백현이야. 애가 곤란한듯이 머리 긁적이더니 받을까?이러는거야. 분명히 저거 받으면 다시 불려갈텐데, 고민하고 있으니까 변백현이 전화받아서 내 귀에 가져다대는거야. -여보세요? 선생님, 어디세요? "아, 왜 나한..여보세요? " -아, 선배. 쌤이랑 같이 계세요? "어. 왜, 무슨 일인데?" -선생님 바꿔주세요. "너, 변백현이 콜할때마다 온다고 한가한 줄 아냐? 병원에 인턴 얘 하나야?" -..수민이 수술 다시 들어갔어요. 선생님 차트에 문제있어서, 주치의쌤이 콜 하신거예요.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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