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향기가 퍼지는 순간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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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문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12 걸음, 계단 120개를 내려가 왼쪽으로 12 걸음.
그를 만난다.
차갑고 냉정한, 무섭도록 시린.
그가 존재하는 하얗고 따뜻한 분위기와 상반되는 검은색의 남자.
따뜻해야 할 인상을 잔뜩 구기고 날 짜증스럽게 쳐다보는 사람.
날 필요로 하지 않는 첫번째 나의 남자.
드르륵-
" 나 상담하러 왔어요. "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속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있어야 할 남자가 검정색 와이셔츠를 살짝 접어올리고 마우스를 만지고 있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 무심한 행동에 먼저 말을 걸며 다가가 슬쩍 보니 아무런 창도 열려있지 않은 컴퓨터 화면이 보인다.
" 웃기는 소리하네. "
표정에 눈꼽만큼의 변화 없이 낮은 울림으로 조용히 말하는 그.
아름답다, 아름다워.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 진짜야, 나 고민있어서 온거예요. "
" ...... "
진지한 내 목소리를 느꼈는지, 아님 상담 내용에 호기심이라도 생겼는지
컴퓨터 화면에만 두고 있던 시선을 내게로 옮긴다.
장난꾸러기일 것 같은 얼굴, 그러나 빛나야 할 눈 안에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가 살고있다.
" 몇 주 전부터 생각해봤는데 나 아무래도 동성애자인가봐, 선생님만 보면 두근거리는걸 보니. "
"미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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