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New Year!
w. 후뿌뿌뿌
새해에는 뭐가 이뤄졌으면 좋겠어?
음....
한참을 우물거려도 선뜻 그 말 만은 못하겠다. 달다, 너무 달아서 그 말을 내 뱉기가 너무 아프다. 어서 말해달라는 듯 눈썹을 꿈틀거리는 에지의 표정에 고개를 떨구었다. 왜 그래, 머리 아파? 하는 다정한 손길에도 고개를 못 들겠다. 지금 널 보면 모든게 무너질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난 너랑 내가 영원히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 이 순간 처럼. 영원히-!
에즈라가 손에 쥔 잔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어서 건배해줘,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애써 모른 척 소다팝을 들이킬 뿐이었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미안 에지,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했나봐. 떨리는 손으로 겨우 잔을 부딛히자 이내 만족스럽다는 듯 잔을 들이키곤 손을 비비며 날 응시한다. 이제, 5분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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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3
어두운 펍 안, 손을 꼭 붙잡고 티비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다. 이제 2초뒤면 어른이야 우리. 능글맞게 웃는 에즈라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2, 1, 해피 뉴이어! 새해의 시작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귓전을 울려댔지만 난 뭔가에 홀린 듯 그의 얼굴만 빤히 볼 뿐이었다. 17년의 시작을 너와 함께 해서 기쁘네, 에즈라. 에즈라가 가만히 미소지으며 날 껴안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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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야, 아직도 에즈라랑 펍이니?
네, 곧 갈게요, 의미없는 말 뿐이었던 부모님과의 통화를 끝내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제 성인이라며 술을 들이키는 에즈라가 보였지만 그를 말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딱 일주일이다, 일주일 뒤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 뭐해, 잔 안 들고? 와인 병을 들고 해맑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딱, 지금. 시간이 가만히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일버-르모니, 행-복한 곳이지,
잔뜩 취한 에즈라가 내 어깨에 기댄채 알 수없는 말을 웅얼거린다. 일버르, 일버르모니. 너 많이 취했어 에지, 에즈라의 머리를 가만히 떼어내고 그의 얼굴을 찬찬히 본다. 일주일 뒤면 이제 너랑도 안녕이네, 네가 없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 잠든 에즈라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에즈라가 마시다 남긴 와인을 살짝 홀짝여본다. 쓴 맛에 온 몸이 옅게 떨려온다. 아무렴 써도 네가 없는 한국보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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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
어젠 내가 너무 취했었나봐, 미안 - 오전 9시 57분
나 방금 일어났는데, 지금 너희 집 앞으로 가고 있어 - 오전 9시 57분
할 말 있어 - 오전 9시 57분
5분 내로 갈게. 나와 줄거지? - 오전 9시 58분
말도 안돼! 잠에 막 깨어 확인한 문자의 내용에 몸을 벌떡 일으켜 소리를 질렀다. 에즈라가 여기 온다고? 5분 내에? 지금 시간, 10시. 에즈라가 오기로 한 시간까지 3분 남았다. 난 망했다. 이부자리를 황급히 정리하고 방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지금 시간 10시 2분, 가글을 마치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가? 엄마의 목소리가 뒷통수에서 들렸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길 끝에서 에즈라의 인영이 보인다. 점점 가까워진다. 숨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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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와줬구나.
어느새 내 앞까지 다다른 에즈라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방금 일어났다는 말이 맞는 건지, 파자마 차림에, 머리도 까치집을 지었다. 귀여운 에즈라, 미소를 지으며 에즈라를 바라보자 에즈라도 살짝 미소짓는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아직은 쌀쌀한 12월의 아침, 적당히 부는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린다. 그 순간, 에즈라가 미소지으며 내 어깨를 잡은 순간. 여기가 어디야, 이거, 그거야? 순간, 이동? 당황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에즈라에게 묻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자, 그도 내 옆에 살짝 걸터앉아 어깨를 가만히 토닥인다. 놀래키려고 한건 아니었는데, 미안. 네가 너무 추워보여서, 안아주려고 한건데, 갑자기 의도치 않게- 횡설수설하는 에즈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뭐야, 너 뭔데. 너 뭐 슈퍼맨이라도 되는거야? 에지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그게 아니라면 난 왜 순간이동을 한거지? 난 왜? 혼란스러워지는 머리에 고개를 떨구자 에지의 따뜻한 손이 내 어깨를 감싼다. 말하지 않아도 돼, 난 슈퍼맨이 아니라 마법사니까. 찡긋 거리는 에지의 눈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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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그게 무슨 소리람, 얘가 어른되더니 드디어 미쳤나 싶어 에즈라의 뒷통수를 소리나게 갈겼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에지가 내 손찌검 한방에 꼬리를 내린다. 얼른 돌아가야겠어, 여기가 어디지? 추위에 벌벌 떨며 몸을 일으키자, 에즈라가 손을 잡아 날 끌어내린다. 여기, 호그스미드. 아침이라 다 문을 닫았어. 에즈라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나 아무 말도 안했는데 무슨 소리야? 붙잡힌 손을 살짝 비틀어 빼며 묻자 에즈라가 다시금 손을 붙잡는다. 나 사실 생각을 읽을 수 있어.
마법사 에즈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에즈라. 10분 사이에 너무 많은 사실을 알아버렸다. 사실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우습다. 분명히 어제, 그러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에즈라는 내 사랑스러운 남자친구일 뿐이었는데. 올해가 되자마자 갑자기 마블 속 슈퍼 히어로라도 된것 같다. 순간이동에, 이젠 내 마음도 읽어? 그럼 이거나 읽었으면. 엿 먹어 에즈라. 그를 노려보자 그가 피식 웃는다. 어쭈, 엿 먹으라는 것도 읽었다 이거야? 그럼 왜 나랑 같은 반인건데? 잔뜩 심통이 나 이마를 짚었다. 거짓말 쟁이, 모든게 거짓말이다. 마법사는 뭐 학교같은게 없나? 왜 나랑 같은 반이야? 활짝 미소짓고 있는 에즈라를 흘겨봤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실실 웃던 에지가 입을 뗸다. 6학년 때 사고쳐서 퇴학당하고 머글 학교다니는거야. 에즈라가 주머니 안쪽에서 기다란 막대기를 꺼내며 웃는다. 널 만나려고 퇴학 당했나봐.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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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지마, 나랑 있자.
하나 둘 주변 상점이 문을 열고, 사람들의 소리가 가까워져갈때 쯤, 에즈라가 몸을 일으키곤 말을 꺼냈다. 내가 한국 가는건 또 어떻게 알았대, 입을 비죽이자 에즈라가 미소짓는다. 마음, 맞다, 쟤 마법사랬지. 띵하니 울리는 머리에 고개를 가만히 떨구었다. 그렇지만 난 한국을 가야해. 웅얼거리자 에즈라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지금 날 비웃는거지? 그렇지? 고개를 들자 에즈라의 얼굴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아니, 넌 안 돌아가게 될거야. 에즈라의 말에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난 돌아가야해, 어른이 되면 한국으로 가기로 했어. 무릎을 잡고 날 내려다 보는 에즈라를 올려다봤다. 계속 미소짓는 그의 얼굴이 묘하다. 이제 난 어른이야. 너도. 맞지? 묘하게 미소짓는 에즈라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해피 뉴 이어라는 소리야. 새해 잖아.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에즈라 탓에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숨을 참는 것 밖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