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ka - Free
w. 후뿌뿌뿌
비몽사몽한 와중, 웬디와 뉴트가 저녁시간이 끝난건지 내가 누워있는 병동으로 찾아왔다. 내가 미안해 내가, 하며 울먹이는 웬디를 한번 껴안아주자, 나는? 하며 능글거리는 뉴트가 있었다. 알겠어, 너도. 하며 꼭 껴안아주자 껴안은 상태로 몸을 격하게 흔들어온다. 숨 막혀 죽겠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취침시간이 되었고, 웬디와 뉴트는 내일 아침에 보자며 기숙사로 돌아갔다. 뉴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무리들은 아마 정학을 당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방관한 몇몇 슬리데린 아이들도 징계를 받게 될거란다. 크레덴스, 그 애가 보고 싶어지는 밤이었다.
그 날 밤, 내 손을 붙잡은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크레덴스였다. 몸을 조금 뒤척이자 크레덴스가 눈물을 급히 닦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보, 이미 다 봤어. 밤중이라 조용히 말을 건네자 뒤돌아서있던 크레덴스가 가만히 내 옆으로 와 앉는다. 넌 괜찮아? 눈물로 이미 눈이 젖어버린 크레덴스가 내 이마를 가만히 쓸어넘긴다. 난 괜찮아, 하며 크레덴스의 상처난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자 조용히 눈을 감는다.
"다시는 나 도와주지마, 주디"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 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가슴에 꽂혀 날 아프게 만든다. 당황해 횡설수설 하면,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치는거 싫어.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이 너인 것도 싫어. 라며 가만히 내 눈을 응시하는 크레덴스. 내 얼굴을 쓰다듬던 그의 손길이 내 입술에 머문다. 이상한 분위기에 괜히 헛기침을 해본다. 우리 그럼 친구할래? 크레덴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으면 내 얼굴을 쓰다듬던 크레덴스의 손길이 멈춘다. 어두워서 다행이지, 아마 밝았으면 붉어져버린 내 얼굴이 티 났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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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주말 아침, 머릿속을 가득 매운 어제의 기억 (특히 내 눈을 응시하던 크레덴스의 그 눈빛!) 에 크림수프를 깨작거리자, 내 앞에 앉은 뉴트가 손뼉을 짝,짝 치며 내 주의를 돌린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내 입에 크림수프를 떠넣어주는 뉴트의 다정한 손길에 미소를 짓는다. 이젠 슬리데린 테이블에서 커다란 파열음이 들리지 않는다. 크레덴스는 여전히 혼자이지만 예전보단 한결 편해보인다. 뉴트를 보는 척 하며 뉴트 너머의 크레덴스를 훔쳐보다 크레덴스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달아오르는게 느껴져 크림스프에 고개를 박자, 뭐야, 어디 아파? 하며 내 이마에 손을 얹는 뉴트에 고개를 들면, 무언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크레덴스의 눈빛이 느껴진다. 퍽 난감하군. 그렇게 크림스프에 코가 닿을 듯이 고개를 숙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웬디가 소리를 지르며 이쪽으로 뛰어온다. 야, 어둠의 마법 방어술 에세이 다음주 화요일까지래! 하는 말도 안되는 소식을 전하며.
"아니 교수님 우리 싫어하시는거 아니야?"
주말이라 아침만 먹고 뉴트랑 웬디와 함께 호그스미드로 놀러가, 무도회를 위한 드레스와 턱시도를 사려던 계획이 산산조각 나버린 지금, 도서실에 앉아 테이블을 쾅쾅 내려치자 주위에 앉아있던 레번클로 조슈아가 눈을 흘긴다. 뉴트는 사실 N.E.W.Ts 를 공부하려고 했었다며 책을 꾸역꾸역 싸들고 내 옆에 앉아 보우트러클과 놀고 있었고 (그럴거면 왜 힘들게 책을 싸왔는지 정말 의문이다. 그냥 보우트러클이랑 놀아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할텐데) 웬디는 벌써 양피지 다섯장을 돌파하며 각성한 채였다.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책을 뒤적여봐도 적절한 책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5학년 학생 40여명중에 거의 대부분이 에세이 숙제를 하러 도서실에 모여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둠의 마법 방어술 따윈 필요없다며 다 때려치고 호그스미드에 놀러간 간 큰 버논이나 줄리안 같은 애들도 있었다)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온 몸을 잠식 할때쯤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콕콕 찔렀다. 크레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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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안녕!"
그 애 때문에 너무 놀라서 엄청 크게 인사를 해버렸다. 마법방어술 서가 반댓편에 서있던 피터가 책사이로 날 흘겨본다. 책 찾고 있었나봐, 크레덴스가 미소지으며 말을 건넨다. 괜히 책꽂이에 꽂힌 책들의 등을 쓰다듬는다. 음, 그러니까.. 크레덴스의 시선을 피해봐도 내 옆 얼굴에 내리쬐는 듯한 그 애의 눈빛이 느껴진다. 어색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네. 그러니까, 음, 어둠의 마법 방어술 에세이 때문에..! 말을 더듬자 크레덴스가 내 손목을 살며시 잡는다. 난 숙제 다했는데. 도와줄까?
잠시만, 내 짐만 챙겨가도 될까?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크레덴스와 나란히 아까까지 앉아있던 자리로 향했다. 내가 크레덴스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꽤나 놀라웠는지 뉴트는 눈을 크게 뜨고 날 가만히 응시했다. 숙제 금방 끝내고 올게, 가만히 속삭이자 뉴트가 의미심장하게 미소짓는다. 천천히 와도 돼, 주디. 라는 이상한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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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덴스가 앉아있는 자리는 위인전이 꽂혀있는 서가 근처라 그런지 한산한 편이었다. 그러고보니 웬디가 자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잡는 듯 싶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숨막히는 어색함이 나와 크레덴스를 감쌌다. 정작 크레덴스는 신경도 쓰지 않고 웬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지만, 내 양피지는 10분 동안 깨끗했다. 10분동안 가만히 있는 내가 이상했는지, 크레덴스가 뭐 도와줄까? 하며 물어왔지만 그저 고개를 젓기만 했다. 그 애가 책을 넘길때마다 닿는 손등과, 은은하게 풍기는 레몬 라벤더 향 때문이었을까.
따뜻한 도서실 안, 향기로운 레몬 라벤더 향, 포근한 분위기에 절로 고개가 책상을 향한다. 내가 움찔거릴때마다, 크레덴스는 날 슬쩍 보곤 혼자 미소짓는다. 처음이네, 저런 미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저 애를 왜 괴롭힌 걸까, 하는 생각. 이렇게 착하고, 인정하긴 싫지만 잘생겼는데다가, 또..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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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도는 한기에 잠에서 깼다. 크레덴스는 책을 찾으러 간건지 자리에 없었고, [우리 먼저 간다. 저녁 시간에 봐 . 좋은 시간 되렴 xoxo - W,N] 하는 이상한 쪽지를 남기고 뉴트와 웬디는 이미 사라져버린 후였다. 분명히 아침 10시였는데, 벌써 3시다. 몇시간을 잔거야. 그도 그럴 것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책상 위에는 글씨로 가득 찬 에세이만이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에세이 - 주디. 왓? 눈을 의심하며 양피지를 다시 들여다 봐도 10장을 꽉꽉 채운 에세이를 쓴 사람은 나였다. 눈을 크게 뜬 채로 에세이를 넘긴지 얼마나 지났을까, 일어났네? 하는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크레덴스의 양손에는 코코아 두잔이 들려있었는데, 내 것에는 토끼모양 마시멜로가 띄워져있었다. 크레덴스가 의자에 기대 코코아를 마시며 내 손에 들린 에세이를 뺏어가 이리저리 보더니, 숙제 끝났네? 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어보였다. 너가 했어? 묻자 크레덴스는 어깨를 으쓱 해보일 뿐이었다. 무언가 이상했지만 여튼 숙제는 끝났기에, 숙제 (아무리봐도 이건 크레덴스가 한것 같다) 를 바닥에 내려놓고 평소에 관심있었던 머글들의 소설을 읽었다. 코코아는 무지 달았다. 엄청 잘 타네- 코코아 잔을 흔들어보이자 크레덴스가 내 잔에 건배하며 제 코코아를 들이켰다. 벌써 그 두꺼운 책이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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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50분, 저녁 시간까지 30분 남은 시각. 크레덴스는 벌써 제 책을 다 읽고 내가 책을 읽는 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릴 자신이 없어 그냥 책만 보는 척 했다. 옆에서 크레덴스의 눈빛이 느껴질 수록 글씨들은 더욱 뒤엉켜 머릿 속을 헤집어 버렸고 벌써 같은 페이지에서 10분째 머물러있었다. 크레덴스가 날 바라보는 눈빛이 진득해 질수록, 어젯밤의 그 기억이 계속 떠올랐다. 눈물짓던 크레덴스의 눈과, 내 얼굴을 쓰다듬던 그 손. 저기 크레덴스.. 하고 고개를 돌리자, 크레덴스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날보는 크레덴스의 눈빛이 날 옭아맨다. 깊고 검은 눈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왜, 뭐 얼굴에 묻었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크레덴스가 미소지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땡, 저녁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도서관에 퍼진다. 우와! 벌써 저녁이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크레덴스의 손이 날 끌어내린다. 여기 조금만 더 있으면 안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