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범주 (feat. 정인) - 28.5
w. 후뿌뿌뿌
댕, 하는 소리에 누군가 머리를 망치로 내려친것 마냥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제 주머니를 바쁘게 뒤지던 크레덴스의 움직임은 멈췄고, 우리는 숨소리도 내지 못한채 그렇게 얼어붙어버렸다. 망했다, 하는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매웠다. 후플푸프 5점 감점입니다. 재프리콧 양. 하는 토마스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우리, 이제 어쩌지? 크레덴스가 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내게 물었다. 나도 몰라. 크레덴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후플푸프의 문은 굳게 잠겨버렸다. 기숙사로 들어가려면, 정물화에 그려진 초록 배를 간지럽혀, 그것을 문 손잡이로 만든 후, 열고 들어간 다음, 앞에 놓여있는 드럼통을 두드려야하는데, 배를 아무리 간지럽혀도 배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내가 정물화에 찰싹 달라붙어 배를 계속 간지럽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던 크레덴스가 날 그림에서 떼어네 제 옆에 앉혔다. 우리 일단 방법을 찾을 때 까지는 여기 있는게 나을 것 같아. 괜히 돌아다니다가 교수님이라도 만나면.. 크레덴스가 여전히 허공을 응시한채로 더듬더듬 말을 잇는다. 맞다, 기숙사 앞에서 걸리는게 차라리 변명하기엔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크레덴스가 통금시간 이후에 기숙사로 들어오는 것을 본 슬리데린 학생들이, 크레덴스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 정도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안에 제이든은 포함되지 않길 바랐다. 게다가, 슬리데린의 문 역시 잠겨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란 말야.
"호그와트 5년 다니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야,"
당황스러운 상황에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나도, 크레덴스도 절망스러웠는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난 친구 없어서 괜찮은데, 넌? 네가 없어진 걸 누가 알아채면 어떡하지? 크레덴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친구가 없다, 친구가 없다. 크레덴스의 눈은 하나도 슬퍼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날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만 느껴진다. 어..어.. 뉴트가 아마 알아서 잘 둘러대줄거야, 대충 얼버무리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크레덴스의 말이 예기치 못하게 날 아프게 만드는것이 슬펐고, 그 아픔에 둔감해져버린 크레덴스가 슬펐다.
-
"어디 불편해?"
내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있자, 크레덴스가 말을 걸어왔다. 숙인 고개때문에,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크레덴스의 손이 보인다. 불편한게 아니라, 널 정말 많이 도와주고 싶은거라고, 네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난 용기있는 그리핀도르 학생이 아니라서 그냥 고개를 몇번 내젓기만 했다. 저번에,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그리핀도르 루카스가, 용기 있는 자 만이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내게 말했었는데. 아무래도, 난 좋은 친구가 되긴 글렀나보다. 혹시, 어디 아픈건 아니지? 크레덴스가 내 옆으로 바싹 붙어앉으며 물어왔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다음주가 되면 크리스마스이고, 지금은 겨울이라 크레덴스가 그런 걱정을 하는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앉아있는 여긴 지하라 꽤나 추웠고 그래서 더 고개를 무릎에 파묻었다. 크레덴스가 내 옆에 붙어앉자, 크레덴스에게서 레몬라벤더 향이 짙게 풍겼다. 졸리면 좀 자도 돼, 크레덴스가 나른하게 말을 걸었다. 크레덴스의 목소리에 그 날 밤의 크레덴스의 눈빛이 생각나며 순간 몸에 열이 돌았다. 크레덴스가 이걸 의도한거라면, 얜 정말 천재임에 틀림이 없다.
-
그리고 까무룩 잠이 들었나보다. 내 옆에서 속닥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잠깐 졸았던건지, 복도에 나있는 작은 창문 밖으로 바라본 바깥은 전혀 밝아져있지 않았고, 크레덴스의 자세도 아까와 그대로였다. 달라진게 있다면 내가 크레덴스의 어깨에 기대있다는 점, 그것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어색하지 않게 일어날 수 있을까, 수천번 고민하고 있었던 그때, 속닥거리는 소리의 주인공이 내 팔을 붙잡았다.
"주디! 통금시간이 지났잖아요..!"
집요정 도비가 내 앞으로 걸어와선 날 흔들어 깨웠다. 눈을 겨우 뜨자, 크레덴스가 날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라서 바쁜데! 도비가 팔짱을 끼곤 툴툴거렸다. 미안 도비, 이건 정말 사고였단말야. 도비에게 변명을 하자, 크레덴스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도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와 크레덴스의 앞에 앉았다. 크레덴스가 아니었으면 안 도와줬을거예요. 도비가 괜히 또 툴툴거린다. 뉴트는 도비에게 부탁을 할때는 사탕을 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크레덴스는 어떻게 도비를 알지? 슬리데린 학생인데. 내가 도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있자, 크레덴스가 내 볼을 제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알겠어, 내일 호그스미드 나가서 사탕 사다줄게 도비. 도와줄거지? 도비의 커다란 눈이 크게 요동친다.
-
"여기서 조금만 쉬어요. 맥고나걸 교수님도 이해해 주실거예요"
주방 안 쪽으로 들어가, 도비의 침실에 몸을 구겨넣었다. 따뜻하고 노곤노곤해서 그런지 자꾸만 고개가 바닥을 향했다. 크레덴스는 졸리지도 않은지 졸고있는 나를 계속 응시하기만했다. 너도 좀 자둬 크레덴스, 내일 천문학 수업 있잖아. 자꾸만 감기는 눈을 꿈뻑이며 크레덴스에게 말을 건넸다. 크레덴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도비의 강아지 인형을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주디, 날 왜 찾아다녔어? 깊은 잠에 빠져 들려던 찰나, 크레덴스의 목소리가 내 잠을 깨웠다. 크레덴스가 거의 처음으로 내게 한 질문이었다. 무언가 오묘한 감정이 들어, 크레덴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거, 네가 쓴거잖아. 맞지? 크레덴스를 찾으러 뛰어다니며 꼭 쥐고 있어서인지 너덜너덜 해져버린 에세이를 크레덴스 쪽으로 밀며 물었다. 크레덴스가 에세이를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난 그저 널 돕고 싶어서.. 크레덴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울리려고 그런건 아닌데..! 이젠 잠이 싹 달아나버렸다. 그런게 아니라, 난 그냥 이걸 받기엔 너무 네게 미안해서, 그래서 돌려주려고 한거야. 당황해 횡설수설 하면, 크레덴스가 인형을 손에 쥔채로 그대로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내게 손을 내밀어줘서 정말 고마워 주디"
크레덴스의 눈이 이젠 더 이상 허공을 향하지 않는다.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는 창 밖 풍경. 후플푸프와 슬리데린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아침 식사를 하며 버논과 내가 시시콜콜하게 나누던 이야기가 현실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크레덴스는 내 좋은 친구라는 걸, 정말 좋은 아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도비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면, [ 난 기숙사로 돌아갈게. 아침식사때 보자 - C.B] 하는 크레덴스의 쪽지가 날 반겼다. 크레덴스가, 주디는 좀 더 재우라고 했어요. 도비가 활짝 웃으며 내게 조그만 쿠키 상자를 건넸다. 크레덴스가, 주디에게 이걸 주고 싶어서 기숙사 앞에서 기다렸대요. 크레덴스가, 내게 조그만 과자를 선물하기 위해 두시간 동안 벽을 두드렸다. 내게 이 과자를 선물하기 위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아침이었다. 도비, 오늘 아침식사 맛있게 할게! 흥이 나는 걸 주체하지 못한채 기숙사로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