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 - 어른이 되면
w. 후뿌뿌뿌
"우리 가문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어왔는지, 영국 마법 세계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모를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그웬."
늘 그래왔다, 누구나 날 옹호해주는 사람은 아버지에 의해 내 곁에서 사라져갔고, 난 철저히 혼자였다. 나도 손을 한번만 꼼지락거리면, 그웬처럼 불이 붙었다가 꺼졌다하면 좋을텐데. 미안 크레덴스, 그래도 난 네가 마법사라고 믿어.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던 누나이자, 공식적으로 우리 집안의 막내인 그웬이 호그와트로 떠나기 전 날 밤. 꼭 슬리데린에 들어오라는 형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내게 건넨 말이었다. 첫째 형 찰리, 둘째 형 패트릭, 셋째 형 케빈과 로버트. 넷째 형 레옹, 그리고 막내딸 그웬. 이 집안에서 내 위치는 철저히 바닥이었다. 가끔씩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어머니의 안타깝다는 눈빛을 받을때와 이미 마법부에 취직한 첫째 형 찰리가 내게 제 부러진 지팡이 조각을 버리라고 건네주었을때가 내 생애 최고의 기억이었다. (물론 그웬과 함께 했던 기억들을 제외하고) 이런 내가 옵스큐러스를 품지 않게 된 것은 어쩌면 큰 행운일거다. 사실 형제들과 다르게 요람 속에서 부터 마법을 부리지 못했고, 그 탓에 스큅으로 취급받았으며, 그래서 내가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자 마자, 아버지는 어머니의 뺨을 내리치셨다고 했다. 그건 내가 형제들과 다르게 머리가 검은색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버지가 이 일을 어머니께 사과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는 어머니께서 결혼 전 약혼했었던 머글과 바람이 나 나를 낳았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버지가 형들과 그웬을 데리고 루마니아로 여행을 떠날때면 가끔씩 검은 머리의 남자가 우리 집에 찾아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때문이었다. 정말 내 아버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보다 더욱 따뜻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그가 나와 어머니를 데리고 아무도 찾지 못하는 먼 곳으로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했었다. 물론,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머글은 오블리비아테를 당할테고, 나와 어머니는 영영 마법 세계에서 사라지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웬이 그리핀도르에 배정 받았다는 소식이 집요정 발렌타인에 의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갔을때, 아버지는 그 소식을 전하던 발렌타인을 발로 걷어찼다. 그웬이 후에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을때, 아버지가 그웬을 나와 같은 표정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잠시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면 무슨 일이있어도 제 뜻대로 행동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 탓에, 그웬은 1학년도 끝마치지 못한채 보바통으로 전학가야만 했다. 예쁜 파란빛이 도는 실크 교복을 입은 채 그리핀도르 목도리를 만지작 거리던 그웬의 눈동자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내가 마법사라는 사실이 발견되던 그 날 아침은 매우 고요했으며, 올빼미가 죽어버려 다른 올빼미가 필요하다는 로버트의 편지만이 식탁에 고요히 올려져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식사를 마치고 냅킨으로 입가를 두어번 닦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면 내 식사는 겨우 시작될 수 있었는데, 그 날 아침은 내가 식사를 하던 도중 아버지가 아끼는 접시를 깨버린 탓에 포크도 제대로 쥐지 못한채 벌벌 떨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 손이 베이시면서도 접시를 치우고 있었고 내 시야는 눈물탓에 흐려지기만 했다. 두려움과 공포가 내 온몸을 잠식해서 그랬던걸까, 난 내 머리 위에서 반짝거리던 샹들리에를 깨버렸고, 어머니와 발렌타인이 힘들게 장식해놓은 벽 선반을 모두 주저앉게 만들었었다. 후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날 껴안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아버지는 도망치듯이, 마치 날 부정하듯이 호그와트에 집어넣어버렸고, (물론 그 다음 날 입학 통지서가 날아오긴 했지만) 내겐 집에서 가족들과 단란하게 즐기는 방학따윈 다신 상상할수 조차 없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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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게 주디는 어떤 의미 인지 차마 가늠 조차 하기 힘들다. 어쩌면 멀린이 내게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입학 후 5년간, 우리 가문에 의해 멸시 받았던 오코널, 맥콰이어, 윌슨 가의 아이들은 나를 마치 제 장난감인 마냥 가지고 놀았고 난 그것이 호그와트에 입학한 대신 주어진 짐이라고 생각한채 참기만 했는데. 그토록 열망하던 마법사가 된 대가라고 생각했는데. 주디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계단에서 구르던 나를 안아주던 따뜻한 품과, 제 옆에서 울던 나를 달래주던 주디의 손길을 기억한다.
"저기 크레덴스, 슬리데린과 후플푸프는 정말 친구가 될 수 없을까?"
도서실에서 에세이를 끝내고 나오던 그 날, 주디가 에세이를 손에 꼭 쥐고 허공을 응시한 채로 더듬더듬 말을 건네왔다. 아니, 너랑 내가 친구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그런 주디가 귀여워 가만히 바라보면 얼굴이 새빨개져선 손을 급히 휘젓는 그 애가 있다. 너랑 내가 친구가 아니어도 난 괜찮은데, 네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난 괜찮을텐데.
언제부터라고 정확히 말하긴 힘들지만, 주디가 많이 좋아졌다. 많이 표현하고 싶고, 또 주디에게 걸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녀가 내 파트너 신청을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좁디 좁은 도비의 방 안에 몸을 구겨넣은 채로, 내 앞에서 곤히 잠든 주디의 얼굴을 가만히 쓸어본다. 내일은 말 할 수 있을까, 나의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주디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쿠키 상자를 만지작 거린다. 네가 이걸 받고 좋아하는 얼굴을 내 눈에 꼭꼭 담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난 용기 없는 작은 소년일 뿐이다. 아직 아버지가 많이 무서운 작은 아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