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ka - Blue skies
w. 후뿌뿌뿌
그렇게 한참을 뛰었다. 주디! 하며 발악하는 뉴트의 목소리가 뒷통수에서 들렸지만 크레덴스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내 손목을 쥔 손아귀에 힘만 더 들어갈 뿐. 충분히 연회장에서 멀어졌는데도 크레덴스는 내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숨을 천천히 고르며 움직이는 계단에 몸을 실었다. 헉헉대는 내가 웃겼던건지, 크레덴스는 눈을 감고 가만히 웃음을 참았다. 치, 그럴 필요 없는데. 크레덴스의 콧구멍이 벌렁거려, 난 크레덴스가 웃음을 참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아, 이런것도 귀여우면 어쩌자는거야. 버논의 콧구멍이었다면 어땠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 소름이 우두두 돋았다.
"네 친구에게 꼭 고맙다고 전해줘, 주디"
크레덴스가 헝클어진 내 머리를 귀 뒤로 넘겨 꽂아주며 말했다. 눈웃음이 참 예쁘다. 응, 그럴게. 고개를 몇번 끄덕였다. 고개를 들자 또다시 크레덴스의 검은 눈이 날 옭아맨다. 그때완 다른 느낌이네, 그때는 뭔가 위험하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피하고 싶지 않다. 그냥 크레덴스의 눈동자 속에 잠식되어 천천히 잠겨들고 싶다는 마음만 든다. 그렇게 눈을 맞춘지 얼마나 지났을까, 쿠궁, 하는 소리와 함께 계단이 멈췄다. 진득하게 눈을 맞춰오던 크레덴스의 눈이 돌아간다. 타이밍 한번 그지같네, 갈까? 크레덴스가 날 이끈다. 이젠 손목이 아니라 손이 따뜻해졌다. 괜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크레덴스와 우연히 들어온 곳은 날 3층 트로피 진열실이었다. 제임스 포터, 해리 포터, 톰 마볼로 리들까지. 100년도 채 안 된 사람들인데 무언가 이상한 마음이 든다. 우와, 연신 감탄사를 내 뱉으며 날 이끌던 크레덴스의 발걸음이 가만히 멈춘다. 주디, 크레덴스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크레덴스가 가리킨 것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후플푸프 퀴디치 트로피였는데, 트로피 하단에 쓰인 '윌리엄 재프리콧' 이라는 이름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크레덴스가 루모스 마법으로 주위를 밝혀준 탓이었다) 윌리엄 재프리콧. 그 이름을 가만히 되내었다. 아버지. 내 아버지였다.
-
"주디, 난 네가 어떤 기숙사에 들어가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해"
아버지는 엄한 사람은 아니었다. 늘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온화한 분이셨고, 내가 기차에 올라타 아버지께 사랑을 담은 손키스를 퍼부어줄때까지도 그랬다. 주디, 넌 어딜 가도 잘할거야. 내 맞은 편에 앉아있던 어린 뉴트의 얼굴을 기억한다. 뉴트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는 절친한 친구 사이셨는데, 두분의 롤모델은 조지 - 프레드 형제였다. (이 한 문장으로 두 분을 설명할 수 있을거라 믿는다) 아버지와 뉴트의 아버지께선 서로를 늘 윌리와 디, 라고 칭하곤 했는데 (뉴트 아버지의 성함은 다니엘이었다) 두 사람의 애칭을 합치면 weird (이상한) 이 되었었다.
절친한 친구였던 두 분은 서로의 자식들의 이름을 정해줄 때도 유쾌했다. 뉴트가 태어나던 날, 뉴트의 이름을 정하느라 골머리를 앓던 아버지는 New Thing! (새로운 것!) 이라고 종이에 쓰시곤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셨고, 뉴트의 아버지는 그 말에 영감을 얻어 Newt,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게 된 뉴트의 어머님께서, 미들 네임은 의미있고 예쁜 걸로 지어주셨다) 내 이름은 어떻게 지었느냐고? 내가 태어나던 날은 뉴트과 태어나던 날과 다르게 아주 추운 겨울 밤이었는데, 디는 (편의상 아버지와 뉴트 아버님을 윌리와 디라고 칭하겠다.) 예쁜 여자아이 이름이 가득 담긴 주머니를 품에 안고 우리 집으로 오시는 중이었다. 윌리는 빙판길이 많아진 탓에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디를 마중나가있었는데, 디는 윌리를 보고 반가워 뛰어가다 그만 빙판길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디의 품안에 있던 주머니가 하늘로 던져졌고, 영화처럼 윌리의 발 바로 앞에 떨어진 이름이 주디. 였다
내가 입학하던 해, 그러니까 뉴트가 3학년이던 해였다. 아버지는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며 내게 어떤 기숙사도 좋다고 말씀하셨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전직 오러이셨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다이애건 앨리에 들렀다가, 무언가를 보고 녹턴 앨리로 들어가셨다가 실종되셨다. 무엇을 보셨던걸까, 벌써 6년이나 지난 지금, 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 윌리엄 재프리콧. 잊고 지내던 이름이었다. 내가 웃으며 지내도 되는걸까. 하는 이상한 마음이 가슴 한켠에서 솟아올랐다. 울어도 괜찮아, 주디. 적어도 내 앞에선. 크레덴스가 내 볼을 매만진다. 아버지의 실종사건은 예언자 일보의 헤드라인을 차지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날 이후로 친구들은 내 앞에서 가족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뉴트 역시 그랬다. 그저 좋은 친구로만 내 옆에 남아있어주었는데, 내가 행복해도 되는걸까 크레덴스? 크레덴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
"내가 미안해 주디, 괜히 저 곳으로 이끌어서."
크레덴스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제가 아픈 것은 신경쓰지도 않으면서 내 아픔엔 어쩔 줄을 몰라한다. 괜찮아 크레덴스, (여전히) 잡고 있는 손을 가만히 매만진다. 내 아버지, 윌리엄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정의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이라고, 그 뒤에는 달콤한 열매가 있다고. 크레덴스, 난 크레덴스라는 달콤한 열매를 얻었다. 네가 좋아 크레덴스. 얼떨결에 크레덴스에게 고백을 해버렸다. 크레덴스의 큰눈이 두어번 깜빡이더니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아.. 아니.. 한시간 넘게 잡고 있던 손도 놓아버린 크레덴스가 양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고 땅만 응시한다. 아니, 고백해서 부끄러운건 난데, 왜 자기가 더..! 결국 3층 홀에는 멀뚱멀뚱 서 있는 후플푸프 여자애 하나랑 빨개진 얼굴을 붙잡고 동동거리는 슬리데린 남자애하나가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