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 - 우주를 건너
w.후뿌뿌뿌
초록글 감사합니다:)
기숙사 소파에 몸을 뉘였다. 내가 기숙사로 돌아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뉴트는 잠옷을 입은채로 침실에서 비척거리며 걸어나와 내 옆에 걸터앉았다. 크레덴스는, 만났어? 잠에서 덜 깬건지 웅얼거리는 뉴트의 음성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내가 썼다는 에세이를 찬찬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분명히 쓴 사람은 나라고 되어있지만 내가 쓴 기억이 없다. 게다가, 이 글씨는 내 글씨도 아니고. 자꾸만 드는 이상한 생각에 에세이를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봤다. 지금 시간 8시. 10시가 되면, 기숙사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 뉴트, 나 잠시만 나갔다 올게! 어딜 가냐며 날 붙잡는 뉴트의 손길을 뿌리치고 기숙사 바깥으로 향했다. 슬리데린 기숙사가 어디더라?
집요정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는 주방을 지나 어딘지도 모르는 슬리데린 기숙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다. 그렇게 호그와트를 이리저리 뛰어다닌지 1시간, 진이 빠져 계단에 걸터앉아있다가 이 시간에 기숙사에 안 있고 뭐하는거냐는 한나 - 한나는 뉴트의 동급생이자 호그와트 학생부회장이다- 에게 슬리데린 기숙사가 어디냐고 물었다가, 요즘 폭력사건때문에 뒤숭숭한거 모르냐며 된통 혼이 났다. 뒤숭숭한걸 내가 왜 모르겠어. N.E.W.Ts를 준비하랴, 학교를 이끌어가랴, 정신이 없어, 내가 그 사건에 얼마나 깊게 관여하고 있는건지 모르고있는 한나에게 바쁠테니 어서 가보라고 손을 휘적였다. 한나는 나를 미심쩍은 눈으로 흘겨보더니, 이내 망토자락을 휘날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슬리데린 기숙사가 알고 싶은게 아니라, 슬리데린 애들을 찾고 싶은 거라면, 피투성이 바론을 찾는게 빠를거라는 말을 남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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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챙겨줘서 고마워"
크레덴스의 눈을 보지 못한채로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저녁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인 지금, 주변은 학생들로 가득차 왁자지껄 하지만 나와 크레덴스가 마주보고 서있는 이곳은 뭔가 주변과는 다른 공기가 맴돈다. 날 응시하고 있는 크레덴스 (물론 난 그 시선을 애써 모른척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가 갑자기 박수를 짝, 하고 치며 제 허리춤에 달려있는 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 휘적이다 내 에세이를 건네 주었다. 에세이를 받아들고 크레덴스를 보면, 화들짝 놀라선 괜히 다른 곳을 응시하는 크레덴스가 보였다.
서로 괜히 다른 곳을 응시하며 눈만 껌뻑거리다, 크레덴스가 이제 기숙사로 돌아갈 예정이냐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기숙사로 돌아가기 보단, 크레덴스와 여기 걸터앉아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낼 자신은 없었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더듬, 더듬 말을 이으면, 왠지 모르게 표정이 우울해보이는 크레덴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얘도 나랑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걸까, 그렇다면 내게 파트너를 신청해줄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물론, 친구된지 일주일도 안 된 애한테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주를 이뤘지만 말이다.
"오늘 하루종일 나랑 같이 도서관에 있어줘서 고마워"
묘한 정적만이 맴돌던 그때, 크레덴스가 여전히 허공을 응시한채로 더듬더듬 내게 말을 건네왔다. 사실 난 도서관에서 같이 있어줬다기 보단 그냥 제 옆에서 잠을 잔 것 뿐이지만, 내게 고맙다고 제 마음을 전해오는 크레덴스가 고맙고, 또 측은해졌다. 착한 아이인데, 집에서까지 천대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라, 크리스마스에도 행복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 마저든다. 너도 이제 기숙사로 돌아갈거지? 이젠 주변에 학생들이 얼마 없어 주변이 조용하다. 내게 감사를 전하고 나선 줄곧 바닥만 응시하던 크레덴스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응시한다. 피해야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잘자, 주디. 내일 천문학시간에 보자. 그 말만 남기고 크레덴스는 뛰어서 사라져버렸다. 잘 자라는 말도 못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선,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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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각 아홉시 삼십분, 통금시간 까지 삼십분 밖에 안 남았다. 호그와트 곳곳을 또다시 돌아다녔지만, 피투성이 바론은 고사하고, 다른 유령들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얼른 돌려줘야하는데. 날 위해 쓴 것인 이 에세이를. 이걸 그대로 제출 하기엔 내 양심에 너무 찔려서 그럴 수가 없다. 그리고 사실, 내일 도서실에서 또 같이 에세이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걸. 내일은 졸지 않을 자신 있는데. 퉁퉁부은 발을 이끌고 기숙사로 향했다. 소파에 누워서 코코아나 마시고 자야지. 이대로 잠들면 내일 아침에 낑낑대며 일어날 것이 뻔했지만, 크레덴스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겐 더 커서 잔뜩 우울한 채로 기숙사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주디..!"
기숙사로 향하는 코너를 막 돌자마자, 기숙사 입구에 흐릿한 인영이 하나 보였다, 그리고 그 인영 근처엔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피투성이 바론을 비롯한 거의 호그와트의 모든 유령들이 모여있었다. 바론의 이름을 부르며 입구로 향하자, 유령들에 둘러싸여있던 인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크레덴스였다, 내 이름을 부르는 크레덴스의 목소리에, 모든 유령들이 화들짝 놀라 내게로 다가왔다. (사실, 미끄러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네가 크레덴스의 친구냐며, 이런 저런 질문을 쏟아내는 유령들에 눌려 아무말도 못하고 눈만 꿈뻑대고 있으면, 유령들을 쫓으며 내게로 다가오는 크레덴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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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금시간까지 십분 남았다. 크레덴스가 유령들을 겨우 쫓아내곤 기숙사 입구 앞, 커다란 드럼통에 걸터앉았다. 많이 놀랐지? 미안해 주디. 안절부절하는 크레덴스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널 두시간 넘게 찾아다녔는데, 너도 날 찾았다는게 묘했다. 내가 움직이는 계단을 뛰어다니고 있을때, 크레덴스가 이 앞에 서서 애꿎은 벽만 두드렸을거라고 생각하자 괜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왜 여기 있어? 이미 너덜너덜 해져버린 에세이를 손에 쥐고, 드럼통 뚜껑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크레덴스에게 물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크레덴스의 얼굴이 달아올랐고, (기숙사 앞은 어두웠지만 난 눈치가 빠르기에 그 정도는 쉽게 눈치 챌 수 있었다) 크레덴스는 줄게 있어서 그랬다며 더듬거렸다. 크레덴스는 계속 눈을 꿈뻑이면서 제 주머니를 뒤적였고, 난 이 에세이를 어떻게 건네야 할지 머릿속으로 수천번 고민하고 있었다. 그 순간. 뎅, 하는 소리와 함께 통금이 시작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