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일 - 난 좋아
시골이고, 봄입니다.
제 7화 : 이별이란 상상만 해도 아린 것
w.선샘미가좋마묘
햇볕이 따가운 3월 하순의 점심시간. 창가 근처 자리라 그런 건지 엎드려 있는 내게로 직사광선이 쏟아져 내렸고, 나는 점점 따뜻해지는 얼굴을 가리려고 교과서에 얼굴을 묻다가도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아서 그냥 포기를 한 상태로 햇빛에 내 얼굴을 맡겼다. 타려면 타고, 말려면 마라… 피부 조금 까매진다고 더 못생겨지는 거 아니고 좀 하얗다고 더 예뻐지는 거 아니니까…
혼자서 예쁘고 아니고를 생각하고 있다가, 며칠 전에 이지훈이 내게 예쁘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상체를 확 일으켰다. 걔는 진짜 못하는 말이 없어-. 혼자서 고개를 저어대다가 다시 책상에 엎드려 내 옆자리를 보면, 이지훈은 아직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남자애들은 이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도 축구를 하고 싶나?
이해되지 않는 에너지다... 하며 어깨를 으쓱, 하고는 눈을 감았다. 분명히 눈을 감았는데도 눈 앞이 부신 것 같은 게, 분명히 5교시 종이 칠 때까지도 잠이 안 올거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자고자 하는 본능은 생각보다 아주 강했나보다. 그 후로 잠이 들었다.
"마, 인나라- 6교시 체육이다, 가시나야."
나를 흔들어 깨우는 연지덕분에 5교시 내내 꿀잠을 잤다는 걸 알게 됐다. 나를 쳐다보던 연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고, 나는 그게 또 나를 놀리는 표정인 줄 알고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냐며 연지의 등짝을 내리쳤다. 그러자, 연지는 오늘따라 절대 수업시간에 졸지 않던 이지훈이 수업시간 내내 서서 수업을 들었다는 말을 내뱉었다.
내 질문과는 동떨어진 듯한 쌩뚱맞은 대답에 무슨 소리야- 라며 체육복을 집어 다리를 집어 넣으면, 연지는 이지훈이 잠들어 있는 나를 보더니 괜히 일어나서는 내 얼굴에 햇빛이 닿지 않도록 온종일 서서 수업을 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커튼은 교내 공사때문에 2주간 떼어놓게 되었고, 김여주 너는 괴로워하고. 이지훈은 얼마나 속 탔겠나? 호호 웃으며 말하는 연지의 팔뚝을 아프지 않게 찰싹 때렸다. 넌 입이 방정이다 인마.
내 말에 오버하며 아픈 연기를 하던 연지는 저것 좀 본나! 라며 내 책상을 가리켰고, 연지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겨가면 그곳에는 분홍색 딸기 우유가 놓여 있었다. 위치도, 물건도, 누가 보아도 이지훈이 갖다 놓은 게 분명했기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며칠 전 월요일에 마셨던 딸기 우유의 달달한 맛이 다시 입가에 맴도는 듯 했다.
"에에, 가시나 얼굴 빨개진 거 보소-!"
"연지야. 내가 아까 뭐랬지?"
"응? 뭐가?"
"너는 입이 방정이라고 이년아."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주먹을 들어 보이며 웃어주니, 연지는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미안! 이라고 외친 후에 교탁쪽으로 후다닥 도망을 갔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는 않지... 저거 입을 확…! 하고 중얼거리며 체육복 상의에 들어 가 있던 머리카락을 빼고는 머리끈을 집었다. 머리 묶는 거 싫은데... 투덜거리며 교탁으로 향하자 연지는 공감. 이라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체육 선생님은 학교마다 한 분씩은 있다는 노처녀 히스테리의 대표주자였고, 여자애들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체육시간에 머리를 묶지 않으면 손바닥을 때린다고 으름장을 놓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체육 선생님의 손에 들려있던 긴 30cm 자는 스치기만 해도 아플 게 뻔했기 때문에 이를 바드득 갈며 머리를 묶었다.
출석부 담당인 연지는 출석부를 꼭 껴안고, 나는 이지훈이 준 딸기 우유를 꼭 껴안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빨대 하나를 꽂고는 쪼옥- 빨아 들이자 입안 가득히 딸기의 향이 퍼졌다. 아- 달다. 옅게 미소를 지으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서면, 친구들과 먼저 체육관에 와 있던 이지훈이 보였다.
다른 남자애들보다 훨씬 작은 체구인데도 불구하고, 지기는 커녕 오히려 자기 팀을 이끌며 농구공을 튀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 찼다. 솔직히 말해서, 좀 반했다.
"어, 우유 묵고있네"
"네가 준 거... 맞지? 저번에도 그렇고, 맨날 얻어먹기만 하네. 다음번엔 내가 사 줄게!"
"그럼, 오늘 하굣길에 사도"
"어? 오늘?"
마, 이지훈! 니 얼른 안 오나! 나에게 말을 걸러 잠시 쉬는 타임에 왔던 건지 지훈이의 뒤에서는 남자애들이 쉬는 시간이 끝났다며 고래 고래 소리를 쳤다. 당황한 내 대답에 이지훈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한 번 털더니, 아씨… 오늘 하교 같이 하자는기다. 라고 한 후에 농구공을 들고선 재빨리 자기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출석부를 내러 갔던 연지는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건지, 뭔데에-! 니들 뭔데 이래 진도가 빠른데! 라며 내 귀에다가 초 고음파를 내뱉었다. 아, 몰라아... 오늘은 같이 하교 못해. 미안해- 라며 연지를 작게 밀어내는 내 행동에 연지는 자기가 더 흥분을 하며 좋아했고, 나도 내심 기대를 가졌다. 얼굴이 후끈 달아 오르는 게 느껴졌다.
하교를 같이 하자는 단순한 말에도 두근 거리는, 너를 향해 달려가는, 마음에는 브레이크도 없는 건지 주체가 되지를 않았다. 너도 나와 같이 흩날리는 꽃이 되기를 기대했다.
-
"뭐 먹고싶어?"
음… 떡볶이 묵을까. 장난스러운 이지훈의 대답에 작게 웃으며 팔을 살짝 쳤다. 배도 고픈데 짜장면 어때? 내가 묻자, 이지훈은 결국 답은 정해져 있던 거 아니냐며 나를 놀렸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자기도 마침 배가 고팠는데 잘 됐다며 이 근처의 짜장면집으로 가자며 내 손목을 잡았다. 잡힌 손목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웠다.
괜히 놀란 척 손을 빼려고 하면, 이지훈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손을 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가만보면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이지훈의 기에 눌려 손을 가만히 두자, 이지훈은 다시 앞을 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 밑에는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벚꽃들이 깔려 있었다. 발로 밟을까 조심히 피해가면, 이지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길라 하는 거가"
"아니… 그냥 눈에 보인 이상 밟기가 좀 그러네…"
그제, 눈에 한 번 채인 이상은 괜히 신경 쓰이제. 이지훈은 공감되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따라 바닥에 놓인 벚꽃을 피해 폴짝 폴짝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넘어지려 하면 나를 잡은 손에 힘을 실었고, 내가 바닥을 보며 실실 웃으면 이지훈도 똑같이 실실 웃었다. 점점 너와 나에 대한 감정이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장난을 치며 도착한 짜장면 가게에 앉아서는 각자가 먹고싶은 걸 골랐다. 지훈이는 짜장, 나는 짬뽕. 두 가지 메뉴를 선택한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니 정적이 찾아왔다. 괜히 뻘쭘해져서는 손가락을 가지고 이리저리 장난을 치는데, 이지훈은 어쩌다 이곳에 전학을 왔냐는 질문을 던졌다.
"아, 부모님이 외국에 가셔서, 난 잠시 여기로 온 거야. 아시다시피 할머니랑 살고 있구"
"언제쯤… 돌아가는데?"
"잘 모르겠어. 아마도 6개월 뒤? 이번년도 안으로는 돌아갈 것 같아"
근데 왜? 내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짜장면과 짬뽕이 나왔고, 우리는 일단 먹자며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즈음, 지훈이는 나를 짐짓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도 헛웃음을 터뜨리며 내 입가에 묻은 국물을 휴지로 살짝 닦아줬다. 아, 고마워. 머쓱하게 입가를 한 번 더 훑자, 이지훈이 다시 말문을 텄다.
…안 되나. 작게 말한 탓에 나는 이지훈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인상을 찌푸리며 이지훈에게 조금 가까이 몸을 기울이며 잘 못 들었으니 한 번만 더 말해 달라고 했다. 내 말에 이지훈은 어느새 깨끗하게 비운 짜장면 그릇 옆에 자신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내 눈을 바라봤다.
"안 가면 안 되나. 벌써 헤어지는 것 같아가 기분이 안 좋다."
"… …"
"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했을 때엔, 네가 알았다 했는데… 김여주 니도 깡촌보단 서울이 낫제?"
"… …"
"아- 이지훈 언제 이렇게 찌질했나. 그냥 해본 말이다, 그냥 무라"
대답 없이 행동을 멈춘 나를 보던 이지훈은 머쓱하게 웃으며 기지개를 켜고는 얼른 먹던 거나 마저 먹으라며 자신의 말을 애써 취소했다. 여기서 3주가 다 돼도록 있으면서 아예 잊고 있었던 이별은 한달이라는 시간 만큼이나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 난 아직 열여덟의 고등학교 2학년일 뿐이었고, 고등학교 재학 중에 다시 시골에 내려 올 확률은 아주 적었다.
정을 붙이기도 전에 떼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에는 눈물이 터져나오기 직전이었고, 나는 이를 악 물며 다시 눈물을 집어 넣었다. 그 때의 일은 그 때 생각하지 뭐.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억지웃음을 지어보이자, 이지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나를 따라 작게 웃어 보였다.
이별은 생각만 해도 아린 것, 그리고 아주 작았던 나는 그 아픔을 감당 할 자신이 없었다.
-
"내일도 같이 하교할까?"
"진짜가, 아님 나 놀리는거가"
"진짜로. 어차피 넌 맨날 혼자 하교하는 것 같던데?"
내 말에 정곡을 찔린듯 하하. 하고 웃어보인 이지훈은 학교가 파하자마자 피아노 학원에 연습을 하러 가야되기 때문에 그런 거지, 친구가 없는 건 절대 아니라며 안 해도 될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엔 되게 무뚝뚝하고 조용할 줄만 알았던 이지훈은 나를 닮아 점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너를 닮아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봄이 시작 된지는 한달도 채 되지 않았건만, 우리 주위는 벌써 5월이었다.
"마, 이지후이-!!!"
"아, 잘못 걸리면 뒤지는데-"
그때, 뒤에서 누군가 이지훈을 크게 불렀다. 내가 먼저 뒤를 돌아보니, 훤칠하고 체격 좋은 한 남자가 거기 예쁜 학생! 지훈이 좀 불러도! 라며 내게 소리쳤고, 그 소리에 뒤를 돌아 본 이지훈은 미간을 짚으며 질색팔색을 하더니 내 손을 잡으며 뛸 수 있나? 라고 물었고,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지훈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의 등장이었다.
이제 암호닉 정리 안 하고 그냥 다 받기로 했습니다. 정원도 없앨래요. 다시 신청해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당.
독자님들 없으면 안 되는 주제에 시건방 떠는 것 같기도 해서… 그냥 풀었어요. 대신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ㅂ'!
(독자님들 : 차암나, 변덕 빼애앰!) (선샘미 : 인정합니다. 매애앤...)
너와 내 사담 쪽지에 다 담아서 |
투표 현황을 보니까 10분 이상이 다른 거에 투표하시지 않는 이상은 아마 이 글은 25편으로 구성이 될 듯 합니다! 스토리를 25까지 끌고가는 게 힘든 건 둘째치고, 독자분들이 넘 길어서 지루해하시지 않을까 좀 걱정... 아까 말씀 드렸듯이 오늘 분량은 꽤 괜찮죠? 흐흐, 그리고 새로운 사람의 등장! 누구일지, 어떤 사람일지는 여러분들이 맞춰보세요!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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