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어쿠스틱 - 고백
시골이고, 봄입니다.
제 8화 : 걱정
w.선샘미가좋마묘
"마, 왜 도망가는데!"
"귀찮게 굴지 말고 좀 꺼져요!"
주치의 보고 꺼지라니, 나도 어른이거든! 잘 아는 사이인 듯 친근한 말투로 소리를 질러대던 남자의 말 중에서 '주치의'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이지훈의 손을 놓으며 자리에 멈췄다. 잠시 당황하던 이지훈은 너무 뛰어서 힘든 거냐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채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게 아니라 웬 주치의야. 너 어디 아파? 라며 되물었다.
이지훈이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 동안 우리를 쫓아오던 그 남자는 말 실수를 했다는 표정으로 나와 이지훈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저기요, 지훈이 어디 아파요? 네? 나는 어느새 눈물까지 고인 채로 그 남자에게 다가갔고, 내 뒤에서는 이지훈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남자는 아주 오랜만에 지훈이를 만났으니 설명도 해 줄겸 근처의 카페에 좀 가자고 했다. 이지훈은 싫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지금 저 남자에게 설명을 듣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가자. 라며 남자의 뒤를 순순히 따라갔다. ほし라는 카페에 들어 가서 나와 지훈이 몫까지 음료를 시키고 온 남자는 자리에 앉아 나를 쳐다봤다.
나름 심각하게 남자를 쳐다보다가도 나를 뚫어져라 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워져 눈을 살짝 피하면, 남자는 지훈이를 향해 이지훈 너- 요새 잘 안오더니 여자친구 만들었나. 라며 말했다. 그런 거 아이그든요. 발끈하며 남자에게 으르렁거리는 이지훈의 모습에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이석민도 요즘 안 오드만… 이라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아, 음료 가지고 올게. 이지훈 너는 망고 스무디, 맞제?"
"몰라요, 내는 냉수가 좋다했는데-"
"사주면 또 맛나게 마실 거면서, 으휴…"
남자는 지훈이의 까칠한 태도에 고개를 저어대다가 나를 바라보며 딸기 스무디 좋아해? 라고 물었다. 무작정 시킨 메뉴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표정을 한 남자를 향해 딸기 스무디 좋아해요.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맛있게 무라- 이지훈이 저래 질색해서 그렇제, 내 나쁜사람 아니니까 경계 좀 풀고"
"아… 네."
남자는 내 앞에 딸기 스무디를, 지훈이의 앞에는 망고 스무디를 내려놓고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 뒤에 자신의 앞에 내려 놓았다. 까맣고 까만 아메리카노, 쓰지도 않은 건지 아메리카노를 쭈욱 마시는 남자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완전히 어른이었다.
일단 내 이름은 최승철. 아까 말했다시피 지훈이 주치의다. 나를 보곤 씩 웃으며 말하는 남자다. 아, 저는 김여주요. 이제서야 생각나서 내 이름을 말하자, 남자는 이름 예쁘네. 라며 살짝 웃어 보였다. 그가 의사가 맞기는 한지 의구심이 들 때쯤, 그는 내 표정을 대충 살피더니 자신의 자켓 안주머니에서 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목에 걸고 있는 카드를 내게 보여줬다.
'우지 병원 최승철' 그의 얼굴과 이름 밑에 적힌 그의 담당 부서를 보기도 전에 카드를 거두어 갔다. 더 이상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그 주치의라는 게 어떤…"
"몸이 아픈 건 아이다. 저래 쪼매내도 몸은 뒤지게 튼튼하드만"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망고 스무디를 마시 지훈이를 한 번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니 샐쭉 웃는데 그게 또 예뻐서 웃음이 나왔다. 남자는 그런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병원 안 와도 될 것 같기도 하고… 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자신의 휴대폰에다가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토도독, 타자판 소리가 들리길래 괜히 숨을 죽이고 딸기 스무디를 마셨다. 타자소리가 멈추고, 의사 선생님은 아메리카노를 한 번 더 빨아들이더니 자신의 정체에 대해 밝혔다.
"지훈이 정신과 다닌 거 모르제? 정신과 의사다."
뒷통수를 누구에게 세게 맞은 것 마냥 벙찐 상태로 의사 선생님을 쳐다보자, 놀랄만도 하제. 원래는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도 정신과 다니는 거 말 안해주는데, 딱 보니까 김여주. 너 덕분에 거의 5개월을 잠수 탔던 이지훈이 상태가 좀 호전된 것 같으니까 마음 놓고 말한기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아직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지훈이, 왜? 어떤 이유로? 밝고 따뜻하기만 한 저 아이가 왜? 여러 의문으로 머리가 하얗게 질려갈 때 쯤에 남자는 지훈이에게 다음번에는 지훈이 좀 끌고 와도. 여기 내 번호. 라며 자신의 번호를 카페에 놓여 있던 휴지에다 적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훈아 함부로 말한 건 미안타, 근데 여주 표정이 적당히 슬퍼야지. 얘가 니 독감만 걸렸다캐도 엉엉 울라카는데, 똑바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이가. 지훈이 너도 얘 우는 건 싫제?"
나가면서 지훈이에게 사과를 하는 남자에게 지훈이는 탁자 위를 응시하며 입을 꾸욱 다물다가도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의사 선생님은 만족한다는 듯 웃어보이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훈이 잘 부탁한다. 라며 말하고는 카페를 빠져 나갔다.
어떤 말을 할지 모르겠어서 그저 입을 다물고 지훈이와 똑같이 탁자를 응시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지훈이와 마주보는 자리로 옮겨 앉았다. 갈곳을 잃은 지훈이의 눈동자에 나도 뭐라 말을 해야할까 고민했다.
"아무것도 안 물을래. 말할 수 있을 때, 네가 말 해줘"
"…어머니는 내가 8살일 때 도망갔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새끼였고, 내가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 대회에 나가서 타 오는 모든 돈은 자기가 가져갔다.
석민이랑 나는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찾은 돌파구였어 정신과는."
"… …"
"승철이형은 혹시 금세라도 아버지한테 말할까봐 멀리하려고 했다. 호칭은 그 형이 편할대로 부르래서 형이라고 하는 거고. 작년부터 죽고싶다는 생각은 덜 들길래 병원 가는 걸 끊었어.
나만 공짜로 봐주는 것도 껄끄러웠고 쪽팔리더라고"
"… …"
"내는 진짜 괘안타, 진짜로 괘안타. 그러니까 이래 울지마라 예쁜 눈 붓는다."
지훈이는 어느새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자상하게 웃어보이더니 내 양 볼에 흐르는 눈물을 자신의 엄지 손가락으로 살살 닦아 주었다. 괜찮지만, 괜찮지만은 않은 눈빛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아픔까지도 공유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일까. 지훈이의 아픔이라면 같이 아파할 자신이 있었던 나였지만, 지훈이의 담담한 아픔은 내게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더욱 눈물이 났던 건지도 모른다.
"정 걱정되면 다음번에 같이 가자, 약속."
내 손을 감싸들어 자신의 약지와 내 약지를 걸어 약속이라고 말하고는 지훈이가 내 손을 양손으로 꼭 잡았다. 손을 잡은 상태로 탁자를 빙 둘러 걸어 와서는 그대로 나를 품에 안았다. 토닥거리는 손길은 네가 내게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네게 해줘야하는 건데… 새삼 대단했다. 작은 아픔들에도 위태롭게 흔들리며 누군가를 붙잡는 나와는 다르게, 이지훈과 이석민은 큰 아픔에도 꿋꿋이 일어나 다시 걸어갔다.
그리곤 내 앞에 놓인 휴지 조각을 집어 자신의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지훈이를 쳐다보자, 능구렁이같은 남자다. 라며 장난스레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따라 웃었다. 울음은 멈췄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너와 함께라면 너무 행복해서 온 종일을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너를 걱정했고, 너는 저를 걱정하는 나를 걱정했다. 열여덟의 우리는 그렇게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떨림과 설렘으로 가득했었다.
-
-여보세요, 우리 여주 잘 지내?
"응, 엄마. 그냥 그럭저럭 지내… 친구들도 착하고"
-야, 확실히 이쪽이 선진국이긴 하더라. 옷이랑 화장품 예쁜 거 많길래 보내놨으니까 입어!
"진짜로? 진짜? 으아, 전지전능한 어머니 감사합니다! 잘 입을게!"
-이럴 때만 어머니고 존댓말이지? 으휴… 택배는 며칠 전에 보냈으니까 조만간 도착할 거야."
"이번주 일요일 안으로?"
-오늘이… 아, 수요일이구나. 그래 일요일 안으로.
엄마 사랑해!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옷과 화장품이라는 말에 광분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는 내게 엄마는 됐네요- 라며 말한 뒤에 전화를 끊었고, 나는 수화기를 내려 놓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예쁜 옷, 좋은 화장품… 두 가지가 떠오르자, 자연스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곧장 수화기를 한 번 내려놓았다가 다시 든 후에 번호를 차례로 눌렀다. 0, 2… 아 맞다. 여기 부산이지. 자연스레 서울의 지역번호를 누르고는 혼자서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에 번호를 눌렀다. 0, 5, 1, 7, 4, 8, 그리고… 지훈이의 생일 1,1, 2, 2. 번호를 다 누르고 나니 연결음이 들려왔다.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하고 있는데, 잠에서 덜 깬듯한 이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흥분해서 늦은 시간에 전화했구나… 혼자 자책을 하며 시계를 보니, 벌써 시침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잘하는 짓이다 김여주. 뭐라고 말해야하나 입술을 잘근, 깨무는데 이지훈은 수화기 너머로 작게 웃고 있었다. 집 전화가 자기 방에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냐는 이지훈의 말에 미안하다며 말끝을 흐리자, 이지훈은 왜 전화했나? 라고 물었다.
"이번주 일요일에 놀자"
"진짜가, 뭐하고 놀낀데"
"몰라. 계획 없음. 근데 꼭 만나야해, 이거 데이트 신청이야"
가시나, 훅 들어오네- 작게 웃음을 터뜨린 지훈이는 알겠으니 내일 지각 할 수도 있으니까 얼른 자라며 대답했다. 들뜬 기분에 크게 알겠다고 대답하려다가도 작게 숨죽여 대답했다. 그때 보자, 자는데 깨워서 미안해. 내 말에 이지훈은 괜찮다며 대답을 했고, 나는 그때 보자! 라고 말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자다 깬 남자의 목소리는 아주 섹시하다는 걸 말이다. 손을 가슴에 가져다대니, 쉴새 없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면서 겨우 심장을 진정시킨 나는 할머니의 옆으로 살금 살금 걸어가서 그 옆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이번주 일요일은 또 어떤 봄일까, 기대되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새벽에 올린 글은 정말 죄송합니다...
늘 브금 칭찬해주시고, 댓글 길게 달아주시는 학샘미들 사랑해오♥ 오늘따라 글이 너무 어수선하네요... ;ㅅ;
제가 드릴 건 보잘것 없는 글 뿐이라서 이렇게 열일해요! 'ㅂ'* 개학해도 자주 만나요 우리! (단편관련 주저리는 접어놓은 사담에!)
그냥 가만히 있을 사담은 아닌데 |
오늘 브금은 빠꾸를 세번이나 먹었네요. 겨우 안착한 브금인데 어떠신지...! (기대 중) 볼빨간 사춘기의 좋다고 말해랑, 김예림의 널 어쩌면 좋을까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바닐라 어쿠스틱 노래로! 8화 자체가 분위기를 뭐라 정의할 수 없는 화였는데, 고백이 딱 잔잔하고 달달하니 괜찮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 결과, 아마 시봄은 두개의 시즌으로 나뉘어서 1시즌은 10부작, 2시즌은 15부작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1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연재 텀이 조금 짧을 것 같아요! (희소식!) 너무 길고 지루하더라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오늘처럼 어수선한 글이면 금방 지루해지실테지만...) 그리고 새로 등장하는 멤버는 승철이었답니다! 다들 나쁜사람으로 오해했지만 아니에요... 차칸짜람... ;ㅅ;...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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