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카디] 이별 후, 나에게 남겨진 것들 : 종인 (조각글)
경수와 내가 헤어진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서로의 마음이 너무 깊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도 애틋했던 우리는 다투는 일이 잦았다. 늘 서로에게 어디인지, 누구와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할 것을 강요했다. 워낙 개인적이었으며 자유로운 것을 좋아했던 우리는 서로의 그런 집착 아닌 집착을 견디지 못했다. 거기서 끝나면 됐을 걸, 항상 서로를 끈질기게 갉아먹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왜 그 사람이랑 거기를 가? 네가 왜 그 사람을 만나? 네가 왜 그 사람이랑 영화를 보고 밥을 먹어? 데이트 해? 친구 사이에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만남도, 우리는 너그러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우리가 헤어진 이유였다.
나는 늘 경수보다 어린 내가 싫었다. 경수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어른스러운 사람을 좋아했다. 나와 사귀기 전에 사귀었던 사람들도 경수보다 두세 살 정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으며, 다들 하나같이 자상했고 어른스러웠다. 경수는 이상형 또한 딱 정해져있었다. 저보다 나이가 세 살정도 많고 남을 위한 배려와 어른스러움에 몸에 베어있는 사람. 경수는 늘 감정적이고 어린애같은 나와는 전혀 반대의 사람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경수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싫었고, 경수에게 아이같은 면을 보여주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형이라고 부르라는 경수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늘 어른인 척 하려고 애썼다. 그런 나에게 하루는 경수가 말했다. 나의 그런 면이 싫다고. 저는, 자연스러운 김종인이 훨씬 좋다고. 그렇지 않아도 서로에게 한껏 예민해져있던 때였다. 경수는 분명 좋은 쪽으로 말한 것임이 틀림없는데, 그게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힘들게 끙끙댔던 나에게는 짜증나는 일이었다. 온통 짜증나는 것 투성이였다. 경수보다 어린 나도, 몸에 어리광과 이기적인 마음이 베어있는 나도. 그래서 그랬다. 진심이라고는 하나도 담겨있지 않은, 경수에게 상처가 될 게 뻔한 말을 너무나도 쉽게 했다. 분명 후회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럼 헤어져.'
'…뭐?'
'그런 내가 싫으면, 헤어지자고.'
'김종인.'
'다 너를 위해서 한 일이었어.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네가 너무 좋아서. 근데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알기나 해? 고맙다고 말해도 모자랄 판에. 남의 생각은 하지도 않고. 너 그거 알아? 나 너 그러는 거 지긋지긋해. 매일 널 위해서 하는 일인데도 싫다 그러고, 하지 말라 그러고. 그럼 여태껏 노력해온 내가 뭐가 돼?'
'…종인아.'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 너한테 짜증나는 거 엄청 많아. 왜 자꾸 친구들이랑 놀고 있을 때 전화해서 귀찮게 굴어? 너는 너 1학년 때 학교에서 있는 모임같은 것도 다 나가고, 정신 못 차리고 떡 될때까지 술도 마시고, 여자도 끼고 놀고 다 했잖아. 근데 나는 왜 못해? 나는 왜 술은 입에도 대면 안되고 친구들이랑 놀지도 못해? 내가 네 개야? 네가 하라고 하면 다 그대로 해야돼?'
필요치 않게 심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아차, 싶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정도로 그 때의 나는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자꾸만 하게 되는 경수와의 감정싸움에.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던 내게, 경수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뒤를 돌았다. 경수는 크게 쉼호흡을 한 번 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어디로 가는지 모를 길을 걸었다. 그리고 경수는, 그 뒤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경수가 살던 내 앞집은 주인이 들어오지 않은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참이었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그 집이 너무 쓸쓸해 나는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결국 학교 주변의 집을 하나 구했다. 방학 내내 새로 구한 그 집에서 틀어박혀 살다가, 개강일이 되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가면 경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수는 없었다. 경수와 제일 친했던 선배가 말해주었다. 군대에 갔다고. 방학동안 내내 매일 밤 술을 마시고 어디서 자는 건지 집에는 잘 들어가지도 않더니, 갑자기 머리를 깎고 영장이 나왔다며 씩 웃고는 그대로 군대에 가버렸다고. 어이가 없었다. 나한테 한 마디도 안하고 네가, 어떻게.
그 뒤로 매일 밤마다 술을 마셨다. 술이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몇 년 후 돌아오게 될 경수에게 떳떳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네가 왔을 때도 아무 힘 없는 그저 그런 학생이면, 좀 그렇잖아. 열심히 공부했다. 경수가 갔다는 부대로 군대를 갈 생각이었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다쳤던 팔로 인해 군대는 면제되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에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미친듯 공부하다보니, 졸업을 하기도 전에 한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경수가 그토록 가고 싶다고 했던 회사라, 별 생각도 없이 단번에 가겠다 했다. 왠지 경수도 그리로 들어올 것만 같아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하지만 경수는 그 뒤로도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회사 밖 그 어디에서도. 어쩌다 경수의 소식을 들었을 땐, 허탈한 웃음만이 맴돌았다.
'아, 도경수? 걔 더 좋은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 들어와서 그리로 갔어. 팔자 폈지, 뭐. 근데 왜? 번호 알려줘?'
회사 앞 커피숍에서 만난 대학 선배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경수의 얘기가 나왔고, 경수와 나의 관계를 모르던 그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경수와 아직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경수는 잘 지낸다고, 더 좋은 회사에 취직도 했다고. 연락처가 필요하냐는 선배의 말에 나는 고개만 저었다. 목 안이 따가워 아니라는 말도 못했다. 그냥 그렇게 고개만 저었다. 네가 잘 지낸다면, 옛날처럼 예쁘게 웃으며 지낸다면… 나는 그 웃음을 굳이 망가트리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까 그냥 선배도 못 만난 척, 네 안부도 듣지 못한 척 눈 감아줄게. 그러니까, 지금처럼 잘 지내. 빨리 좋은 사람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애들도 낳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지난 번 올렸던 카디 조각글 '이별 후, 나에게 남겨진 것들'의 종인이 이야기입니다!
경수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면 있으니 한 번 읽어봐주세요!
원래는 나올 생각이 없었던 녀석이라 글이 엉망이네요.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
원래는 구독료를 10P로 잡았는데, 오늘 하루는 글잡에 있는 모든 글의 구독료가 무료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50P... 괜찮으시죠? :)
언제나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