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ger 활동은 힘들었다. 몸도 몸이었지만 마음이 더 힘들었다. 마음에 추를 달아놓은 듯 무거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꾸만 아래로 쳐졌다. 무대 위에선 활짝 웃었지만 아래선 웃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매니저의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한편, 여주는 손의 상처만 치료받고 바로 퇴원했다. 여주의 입원소식이 네티즌에 의해 기사로 나오자 회사에서는 여주의 상태를 밝히고 잠정적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 날 이후로 여주는 인터넷을 보지 않았다. 회사에서 보지 말라고 한 이유도 있지만 그녀도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여주는 쉬는 동안 잠만 잤다. 우울증의 증세로 잠을 못 잤던 날이 많아서 그런지 끝도 없이 잠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중에도 그녀는 멤버들이 활동하는 것은 꼭 챙겨봤다. 음악방송이 시작하기 전부터 틀어둔 텔레비전에서 방탄소년단의 곡을 소개하는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멤버들의 목소리에 여주가 감고 있던 눈을 떠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살 빠졌다.”
텔레비전 속에 멤버들이 힘든 안무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수척해진 얼굴들에 여주가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언제더라. 여주는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기억을 더듬었다. 아, 그 날이 마지막이었구나.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날. 그 후로 멤버들을 보지 못했다. 회사에서 막기도 했지만 여주 스스로 한동안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있잖아. 너희가 미워서, 싫어서 보기 싫다고 한 거 아니야.”
여주가 텔레비전에 비치는 멤버들을 보며 말했다. 멤버들이 가사에 맞춰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어쩐지 여주의 눈에는 그 얼굴들이 힘들다고 울부짖고 있는 것처럼 보여 순식간에 고이는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내가 못된 말을 할 것 같아서, 괜히 죄 없는 너희한테 화를 낼 것 같아서 그랬어.”
목소리가 여리게 떨려왔다. 멤버들의 노래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주는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볼 자신이 없었다. 마침내 노래가 끝이 나고 다음 노래가 들려오고 있을 때 여주의 핸드폰이 짧게 여러 번 울렸다. 여주가 느린 행동으로 핸드폰을 찾아 내용을 확인했다.
“미안해.”
핸드폰 화면을 키자 보이는 문자에 여주는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그녀는 우는 동안 무슨 말을 웅얼거렸지만 울음에 엉망이 된 발음이라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돌아오고 싶을 때 언제든 말해. - 유일한 오빠]
[야. 너 없으니까 심심하다. 빨리 와. - 내친구 슙슙]
[누~나~ 희망 꽃이 누나가 오길 희망하고 있어요! 희망~ 희망~ - 희망 꽃]
[누나. 남자들만 있으니까 칙칙해요.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요. 누나 자리는 언제든 비워둘 테니까. - 든든한 리더]
[누나가 기댈 수 있게 내가 더 클게요! - 망개떡]
[진짜로! 보고 싶어요. 누나. - 태태]
[누나가 없으니까 형들도 나도 웃음이 안나요. 얼른 와요. 누나 – 막내꾸기]
한참을 울고 나니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맑아졌다. 쉼 없이 흘린 눈물에 모든 것이 씻겨 나간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면 인터넷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주가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은 팬 카페였다. 오랜만에 들어간 카페가 낯설어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이던 여주가 그동안 읽지 못했던 편지를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 내렸다. 편지를 읽으니 마음이 따뜻해지며 동시에 미안해졌다. 이렇게 저를 생각해주는 이들이 많은데 그걸 보지 못하고 제 힘든 것만 생각한 것 같아 여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밀린 편지를 다 읽고 카페에서 나가려 할 때 새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볼지 안 볼지 모르겠지만’ 여주가 홀린 듯 글을 눌렀다.
[여주에게. 네가 이 글을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기에 편지를 적어본다. 네가 우울증으로 활동을 쉰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나는 심장이 내려앉았다. 네가 걱정됨과 동시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왜 몰랐지? 널 많이 좋아하고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네가 그토록 힘들고 아프단 걸 왜 알아채지 못했지? 이렇게 자책하다 너에게 화가 났다. 우리가 최고라던, 고맙다던, 오래보자던 너의 말은 다 거짓이었나. 우리가 그렇게 믿음직하지 못했나? 그냥 서로 힘든 일 있으면 힘들다 말하고 기쁜 일 있으면 기쁘다 말할 수 있는 존재. 딱 그 정도면 됐는데 우리는 너에게 그 정도도 안 된다고 하는 것 같아 혼자 상처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네가 활동을 쉬고 시간이 지나니 알 것 같다. 너에게 우리라는 존재가 한없이 크고 또 크다는 것을. 네가 무심결에 짓는 표정에도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우리가 걱정 되어 더 표내지 못했다는 것을. 그래도, 그래도 여주야. 힘든 일이 있으면 아니, 꼭 힘든 일이 아니고 그저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나 투정부리고 싶어질 때 그 어떤 고민이나 생각하지 말고 마음껏 표현해줬으면 좋겠다. 널 걱정하는 것조차 우리에겐 기쁨이니 부담 갖지 말고 네 감정을 우리에게 들려줬으면 좋겠다. 끝으로 우리는 언제든 너를 기다릴 테니 마음 푹 놓고 괜찮아지면 꼭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와주길.]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겠다고 꽁꽁 숨겨둔 속마음에 들어와 모든 것을 훔쳐보고 간 것 같았다. 멈춘 것 같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여주는 멍하니 그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진짜로 괜찮아?”
여주가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힘들다고 해도 괜찮아…?”
화면 위로 눈물이 투둑 떨어져 웅덩이를 이뤘다.
“힘들다 해도 나 계속 좋아해줄 거야…?”
한참을 울어댄 탓에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쉬어버린 목소리 안에 무섭고 두려워 한 번도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진심이 담겨 나왔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 여주가 화면을 보며 다시 말했다.
“그래도 걱정하고 상처받는 건 내가 다 할게. 당신들은 그저 좋아하는 감정만 느꼈으면 좋겠어. 상처받지 말아요.”
아무도 듣지 못할 혼잣말이었지만 말을 하고 나니 힘이 생겼다. 주저앉으려 했던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피디님.”
-어쩐 일이니. 뭐 필요한 거라도 있니?
다음 날 여주는 눈을 뜨자마자 방시혁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주가 전화를 걸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피디는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피디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간만이었다. 여주는 이젠 아빠처럼 편한 피디의 목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필요한 건 없고요. 부탁드릴 건 있어요.”
-뭔데?
“다음 활동 때 저 합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긍정의 대답에 여주는 그제야 환히 웃으며 설레는 심장을 느꼈다.
P.S. 08-10(재업)이 잠시 초록글에 올라갔었어요. 연재할 때도 생각했지만 별로 인기 없는 제 글이 초록글에 올라갔다는 쪽지를 받으면
음? 요새 방탄소년단 글이 엄청 없나보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또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그리고 제가 따로 암호닉은 적고 있지 않지만 기억하고 있어요. [너만보여]님 연재할 때도, 지금도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