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전공 수업 시간은 물론이고 모든 강의가 끝이 난 후에도 김종현의 수줍은 웃음과 비롯된 인사가 자꾸만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헤집고 다닌다. 김종현이 내 인사를 받아준 적은 오늘이 처음이라서 그런 거라며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심각한 표정으로 사물함 앞에 가만히 서 있자 김재환이 툭툭 팔꿈치를 치면서 비스듬히 날 바라본다.
" 지금 너 배고프지. 맞지? "
" 야. "
" 뭐, 뭐. "
평소의 김재환 답지 않게 방어 태세를 하면서 내 눈치를 살피는 게 여간 수상한 게 아니었다. 국밥을 먹은 후로 줄곧 조용한 내가 내심 마음에 걸린 건진 모르겠지만 김재환은 제 사물함에 책을 집어넣으며 다시금 내 눈치를 보았다.
" 나 카톡 추천친구에 그 오빠 떴어. "
사물함에 책을 집어넣으면서 무심히 말을 내뱉었다. 슬쩍 옆을 보니 김재환은 시선을 내리깐 채 어설픈 표정으로 입을 움직였다.
" 와... 진, 진짜? 그..종현이 형이 떴다고? "
" 뭐야. 너 말투 왜 그 모양이야. "
" 내..가 뭘. 야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치킨 먹으러 고? "
이거 봐 이거 봐. 뭔가 수상한 느낌이 묘하게 흘렀지만 일단은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김종현이 친구추천에 떴다는 말에도 그다지 놀란 얼굴이 아닌 것부터가 어찌 수상하다. 흐음. 가방을 고쳐 메고 나란히 김재환과 과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우다다다 뛰어오는 형체가 보인다. 아, 놀래라. 실로 오랜만에 보는 권현빈이 심장 부근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다.
" 아 뭐야! 너넨 나 안 반가워? 어? "
" 너 군대 간 거 아니였냐? "
" 와 김여주 말하는 거 봐. 존나 서운. "
농담 멍청아. 말을 덧붙이자 권현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늘어 놓으면서 김재환의 옆에 착 달라 붙었다.
" 야 근데 너네 어디가? "
" 아, 치킨 먹- "
" 안 가! 아무데도 안 가! "
뭐야 왜 저래. 전공 시험 때가 아니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드문 앤데. 한 손에는 휴대폰을 꽉 쥔 채 김재환은 목소리를 높이다가 큼큼, 다시 목을 다듬었다. 시무룩한 얼굴로 권현빈이 뭐냐며 추궁해도 김재환은 꿈쩍없이 입을 다물었다. 쟤 진짜 왜 저래? 어제 오빠들이랑 술 마시고 뭔 일 있었나. 미심쩍은 눈으로 김재환을 곁눈질했다. 제게 닿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김재환은 걸음을 멈추고 나와 권현빈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 아하하하. 나 약속 있는 걸 깜박했네. 현빈아 오늘 만나서 반가웠고 다녤하고 넷이 술 먹자. 나 그럼 간다! "
" 야 어디, "
내가 말을 다 끝내지도 않았는데 김재환은 마치 변이라도 마려운 사람마냥 아주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점이 되어 멀어졌다. 쟤가 저렇게 빨리 달리는 건 처음 본다. 아무리 봐도 수상하단 말이지.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권현빈이 울상을 지으며 날 바라본다.
" 재환이 애가 왜 저렇게 됐어? "
" 몰라. 야 오랜만에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 "
" 그랭. 니엘이도 부를까? "
" 웃으면서 달려올듯. "
권현빈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강다니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난 듯 강다니엘에게 학교 정문에 있는 떡볶이 집으로 오라며 재잘거린다. 잠자코 권현빈의 목소리를 듣는데도 계속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김종현과 김재환. ㄱㅈㅎ. 같은 초성인 둘이 뭔가 통하는 게 있었나. 아무래도 떡볶이를 먹고 김재환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빌어먹을. 신경 쓰이는 게 또 하나 늘었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형 현빈이라고 친구 한 명 있는데 걔도 치킨 같이 먹어도 돼요? 오후 6:25
안돼. 종현이 낯 가려. 오후 6:26
그럼 어떡해요..? 오후 6:26
일단 여주랑 치킨 먹는 건 다음으로 미루는 걸로 하자. 오후 6:26
그리고 재환이 여주 앞에서 티는 내지 말구. 오후 6:27
넵ㅎㅎㅎ형 그래서 저 김여주랑 최대한 말 안하구 있어요 오후 6:27
그게 뭐야 ㅋㅋㅋ 여주 상처 받게 하지는 말구. 오후 6:28
ㅋㅋ네! 형 낼 봐요! 오후 6:28
민현은 방금 전 재환과 나눈 카톡 대화를 다시 한 번 보았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보이는 건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잠들어 있는 재환과 종현의 모습이었다. 성우는 민현의 침대 위에 곱게 누워 있었다. 남들보다 제일 먼저 일어난 민현은 널브러져 있는 술병들을 첫 번째로 치웠다. 민현이 부지런히 청소를 할 때까지도 세 사람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다행히도 민현은 오늘 공강이었고 종현은 오후 수업만 있었다. 성우의 시간표는 잘 몰랐던지라 먼저 성우를 깨우고 다시 거실로 나오니 재환이 퍽 놀란 얼굴로 입을 크게 벌린 채 종현을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민현이 묻자 그제야 재환의 입이 다물어지면서 종현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 ..말..해써. 내가 여주... '
뒷말은 자연스레 생략 되었다. 짝짝짝. 방을 나오면서 박수를 치는 성우의 소리 때문이었다. 모두가 씻고 해장 준비를 하러 가는 순간에도 재환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입을 쩌억 벌리면서 어버버거렸다. 민현에게 묻기까지 했다. 형, 종현이 형 진심이에요? 민현이 대답을 하려 했지만 종현이 먼저 선수를 쳤다. 응 진시미야. 도와주면 안대..? 나란히 국밥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재환과 종현은 악수를 하며 연맹을 맺었다. 민현은 옅은 미소를 띠면서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을 기점으로 여주와 종현을 한 걸음 친해지게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민현은 휴대폰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미녀나! 항미년! "
그때였다. 화장실에 들어가있던 종현이 민현을 다급히 불렀다. 빼꼼 고개를 내밀며 화장실 쪽을 보자 종현이 머리에 왁스를 떡칠한 채 방긋 웃으며 서 있었다. 민현은 웃지 않으려 노력했다. 입술을 꾹 물었다.
" 괜차나..? "
" ..어? "
" 나 지금.. 괜차나? "
오늘 밤에 어쩌면 여주와 치킨을 먹을 수도 있다는 말을 종현에게 하지 말 걸 그랬다. 민현은 한껏 기대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종현의 설렘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총총총 민현의 앞으로 종현이 걸어왔다. 왁스로 인해 떡이 되어 뭉개진 머리를 민현에게 잘도 내밀면서 종현이 배시시 웃었다.
" 하핫. 빨리 가쟈. "
" 아.. 종현아. "
" 응? "
" 오늘 여주가 시간이 안된대서 치킨은 다음에 먹기로 했어. "
" .....그러..쿠나.. "
민현의 청천벽력같은 말에 종현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진다. 이럴 줄 알았다. 민현은 검지 손가락으로 턱 부근을 긁적였다. 그래도 내일 여주랑 같은 수업 듣잖아. 그치? 민현의 다정한 물음에도 종현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힘없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상심이 큰 모양이다. 민현은 화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고객님의 전화가 꺼져있어 삐-소리 이후 통화...
어젯밤 김재환에게 전화를 했지만 들려오는 건 순 안내원의 목소리 뿐이었다. 카톡을 읽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생각의 연속이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김재환은 그냥 존나 피곤한거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니까 마음이 편안했다. 김재환의 부재 때문에 내가 잠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던 게 있었다. 김종현. 강의실에 들어와서야 김종현의 생각이 났다. 역시나 강의실 구석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곧바로 눈에 띄었다. 오늘은 파스텔 톤의 옷을 입고 왔다. 그간 내가 봐오던 김종현은 늘 검은색 옷과 검은색 모자를 쓰는 검은색 성애자가 분명했는데. 살금살금 걸어가서 김종현의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꼬물거리던 김종현의 손이 돌연 멈추었다. 슬쩍 옆을 보니 김종현은 빳빳한 자세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물어볼까. 번호를 대체 왜 물어본거냐고? 생각을 하는데 뭔가 앞서 가는 것 같아서 관두었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가방에서 노트와 필기구를 꺼내드는데 조그마한 소리가 잔잔히 흘러 들었다.
" 좋은 아치미에여. "
" ..네? "
" 하핫.. "
뜬금없이 좋은 아침이라니. 게다가 하핫. 저 하핫은 여태 내 착각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김종현이 내는 소리였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김종현에게 잠시 두었던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각자 토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흘깃이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헉. 내내 날 보고 있던 모양인지 김종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 제가 자료조사 몇 개 해 봤는데요. "
" 녜, 녜. 저두 이거.. "
김종현이 답을 하면서 주섬주섬 가방을 뒤적거렸다. 잠자코 그 모습을 보다가 슬쩍 물었다.
" 저 근데 오빠.. "
" ..녜! "
뭐야 왜 이렇게 놀라. 가방을 뒤적거리던 김종현이 행동을 멈추고 거의 이등병 뺨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까부터 느낀건데 김종현은 참 잘 놀라는 타입 같다. 자꾸만 내가 부를 때마다 놀라는 것도.. 그 뭐지. 무슨 생선인데. 그.. 복치. 맞다 개복치. 개복치를 닮았다. 톡 하고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만 같다.
" 제 번호는 왜 물어본거에요? "
" ..녜? "
" 조별과제 때문에 물어본 줄 알았는데 연락이 없길래요. "
김종현을 안 이래로 역대급인 대화 길이였다. 김종현은 내 말에 골똘히 생각에 빠진 듯 눈을 요리조리 굴렀다. 그러더니 소중히 품 안에 안고 있던 노트를 꺼내서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쓰려나. 김종현의 손 움직임에 집중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점차 움직임이 느려졌다. 김종현은 노트를 슬쩍 내밀고 눈을 말똥였다. 새하얀 노트에 김종현이 쓴 문구는 다름 아닌.
' 오늘 집가서 연락할게요 ㅎㅎ '
뭘까 정말. 나는 또다시 김종현에게 의문점이 들었다.
빌어먹을 어니부기는 날 싫어한다
교양 수업 시간에 김종현과 이리도 대화를 많이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별과제 토의를 하다가 김종현은 노트에 적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곤 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궁금했다. 내게 웃으며 말을 하는 걸 보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자꾸 노트에다가 써서 말하는거지? 또 하나. 나는 김종현이 순순히 연락을 하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그나저나 김재환은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평소 같았으면 교양 수업이 끝나고 김재환과 점심을 먹고는 했는데. 어제부터 김재환과 연락이 되질 않는다. 휴대폰을 꺼내 김재환에게 전화를 하려는 참이었다. 사물함 옆쪽 비상계단에서 낯익은 머리통이 보인다. 삐죽 튀어나온 둥그런 머리통. 누가 봐도 김재환이 분명했다. 느릿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혹시라도 김재환이 도망갈까 소리도 없이 벽에 붙어서 비상계단에 점차 가까워질 때 즈음이었다. 야, 김재환! 하고 김재환의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였다.
" 형. 그래서 김여주가 뭐래요? 연락 기다리겠대요? "
" 재환아 조금만 조용히 말해. "
" 아 죄송해요 형. 제가 지금 너무 흥분해가지고.. "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차례대로 김재환과 민현오빠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침이 절로 삼켜졌다. 꼭 들으면 안 될 것을 몰래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 안니. 여주가 오늘 카톡 한대써.. 조별과제 때무네. "
" 아 뭐야 형. 조별과제 말고 사적인 카톡을 해야죠. "
" 재환이 쉿. 그럼 종현아 이젠 여주랑 말 놓는 게 관건이야. "
" 헐. 형 김여주랑 아직도 존댓말해요? "
" ..응. "
" 그러니까 진전이 안 나가는거에요. 형이 먼저 말을 놓으라고 해야 김여주 성격상 편하게 대한다구요. "
잠자코 세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말아 쥔 손에 땀이 가득 들어찼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눈이 여러번 깜박여졌다.
" 모라구..하지? "
" 형 큰일났네요. 말도 못 놨는데 고백은, "
" 재환이 쉿. 종현이 앞에서 그 단어 내뱉지 않기로 했잖아. "
" 아 맞다.. 형 미안해요. 얼굴 지금 너무 빨간데.. 괜.. 괜찮아요? "
존..나 이게 대체 뭔 상황이래. 김재환과 김종현, 그리고 민현오빠 셋이서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더군다나 고백이라니. 다소 이질적인 단어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입을 꾹 다문채 고개를 살짝 돌렸다. 가려진 틈 사이로 김종현의 볼이 살며시 보인다. 퍼뜩 고개를 돌리고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여자 화장실 안에 몸을 숨기고 화장실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 비춰지는 내 얼굴이 지금 퍽 낯설다. 김종현의 얼굴이 다시금 떠오른다. 고백, 김종현. 두 단어가 의미하는 건 대체 뭘까. 설마, 진짜 설마.
방금 전 두 눈에 가득 들어찬 볼이 발그레해진 김종현의 모습이 지금 거울 속 내 얼굴과 겹쳐 보인다.
제 목적은 둘이 연애하는 것입니다...^^
도짜님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램)
저..그리구...생각보다 훠어얼씬 많은 도짜님들이 봐주셔서..막..부담되궄ㅋㅋㅋㅋㅋ
이거 진짜 별 거 아닌 글인데 ㅠㅠ 다 부기(김종현)가 귀여워서 그런거에요...
부기빨 열심히 받고 있습니다 흑흑 같이 부기 앓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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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분들 도짜님들 모든분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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